다음 날 아침, 회사에 지각했다.
세상을 한 시간씩 멈추는 인간에게 지각이 웬 말이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간단하다. 그 능력은 오후 여섯 시에만 나타났고 출근 시간에는 얄짤없었다. 초능력도 근로기준법을 지키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도겸 씨, 오늘 오전 회의 참석 가능해요?’
나는 한숨을 쉬며 답장을 썼다.
‘긴급한 개인 사정이 있습니다. 연차 반일 신청하겠습니다.’
그건 사실이었다. 개인 사정의 크기가 전국 단위라는 점만 빼면.
어젯밤 한시우에게 받은 전국 동시 퇴근망 시범 운영표가 가방 안에서 바스락거렸다. 서울 18시 정각, 부산 17시 42분, 대전 19시 11분. 같은 나라의 퇴근 시간이 제각각인 것은 놀랍지 않았다. 놀라운 건 각 지역 옆에 적힌 ‘시간 보관 노드’라는 항목이었다.
우리는 오전 아홉 시, 경찰이 제공한 별도 회의실에 모였다. 남기혁 형사는 화이트보드에 세 개의 시간을 적었다. 오유나는 커피를 내려놓았고, 진서아는 밤새 비교한 계약서를 펼쳤다. 강문석은 낡은 노트북을 전원에 연결했다. 한시우는 평소보다 한층 피곤한 얼굴이었다.
“시범 운영 대상이 몇 군데죠?” 내가 물었다.
“계약서에 적힌 곳은 열두 군데입니다.” 한시우가 말했다. “다만 장비 등록 서버에는 쉰여덟 군데가 있어요. 실제 연결 여부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열두 군데와 쉰여덟 군데의 차이는 뭡니까?”
“영업팀이 한 계약과 운영팀이 켠 장비의 차이일 수도 있고, 누군가 허가 없이 추가한 연결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화이트보드에 세 번째 숫자를 적었다.
‘확인되지 않음.’
개발자는 종종 숫자가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안심한다. 하지만 장비 대수와 영향을 받은 사람 수는 다르다. 출퇴근 관리 단말기 한 대 아래 백 명이 일할 수도 있었다. 누군가 그 백 명의 퇴근 기록을 묶어 시간 보관국으로 넘긴다면, 우리는 몇 명이 위험한지조차 모른 채 버튼을 누르게 된다.
나는 전날 밤에 만든 위험 목록을 회의실 벽에 붙였다. 다섯 항목이었다. 실험 지역, 실제 영향 범위, 대리 서명, 기억 징수, 정지 이후의 귀환 확인. 각각 옆에는 확인한 근거와 아직 모르는 부분을 다르게 표시했다.
“여기 빨간 표시가 너무 많네요.” 남 형사가 말했다.
“회사에서는 빨간 표시가 많으면 프로젝트를 연기합니다.”
“그럼 이번에도 연기할 수 있습니까?”
“운영자가 연기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야겠죠.”
서아는 내 옆에 다가와 위험 목록을 살폈다. 우리가 계속 싸워 온 대상이 사람의 기억을 훔치는 힘 자체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훨씬 구체적인 문제들이 쌓여 있었다. 바뀐 계약서의 참조 주소, 본인이 확인하지 않은 대리 승인,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기억 대체, 신청자에게 고지하지 않은 보관 시간. 그중 하나라도 해결되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
“도겸, 너 어제 잠은 잤어?” 서아가 물었다.
“네 시간요.”
“적어도 여섯 시간은 자야지.”
“퇴근망 중단하면 수면 시간도 정상화되겠죠.”
“그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오늘 기차에서 자.”
그녀가 수첩 안쪽에 작은 스티커를 붙였다. ‘먹기, 자기, 기록하기.’ 누구의 시간도 허락 없이 가져가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자기 시간부터 무상 제공하는 건 모순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스티커를 보며 피식 웃었다.
다른 사람의 선택권을 지키겠다고 한 뒤로, 동료들은 내가 혼자 모든 위험을 떠안는 일도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이 새삼 낯설고 고마웠다.
서아가 계약서의 작은 글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서비스를 신청한 사업장은 직원이 퇴근 확인을 누를 때 ‘잔여 근무 감각’을 정산한다고 돼 있어.”
“잔여 근무 감각?”
“피로, 잊고 싶은 통근 시간, 반복 업무의 기억 같은 걸 보관한다고 설명해. 구태형이 영업자료에 붙인 말이야.”
나는 종이를 받아 읽었다. 안내문 첫 장에는 활짝 웃는 직장인 사진이 있었다. ‘오늘의 피로, 퇴근과 함께 비우세요.’ 눈부시게 아름다운 문장이었다. 사실 그 문장은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피로를 지워 준다고 하면서 기억까지 가져간다는 말은 몇 장에 있죠?”
“계약 부속서 스물일곱 번째 장.”
“와. 사람들이 잘 읽는 곳에 숨겼네요. 누가 퇴근하려고 약관 스물일곱 장을 읽습니까.”
한시우는 웃지 않았다. 시우데이터 이름이 문서에 찍혀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직접 승인하지 않았다는 주장과 별개로, 거래처가 그의 회사를 믿고 단말기를 설치했을 가능성은 있었다.
“제가 할 일을 정해 주십시오.” 그가 말했다.
남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역할을 제가 정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회사 내부의 실제 계약과 승인 이력을 적법하게 보존해 주시면 도움이 됩니다. 원본 자료를 임의로 삭제하거나 수정하면 안 되고요.”
시우는 곧바로 회사 법무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우리는 그가 말한 내용을 녹음하거나 몰래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신의 회사가 연루된 사건의 자료를 적절한 절차로 내는 것은 그의 몫이었다.
한시우는 자신이 준비해 온 조직도도 꺼냈다. 계약의 맨 위에는 시우데이터가 있었지만, 운영 권한이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름 모를 외주 회사가 여러 겹 쌓여 있었다. 고객 지원은 A사, 서버 운용은 B사, 근태 정산은 C사, 실제 단말기는 D사가 설치한 것으로 표시됐다.
“문제가 생기면 각자 자기 일이 아니라고 하겠죠?” 내가 물었다.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 한시우가 씁쓸하게 말했다.
나는 새로 생긴 빈 종이에 책임자의 이름과 자료 보존 가능 여부를 적기 시작했다. 한시우는 자신의 회사에 자료가 있는 부분을 분명하게 표시했다. 없는 부분은 없는 대로 남겼다. 언뜻 복잡해 보이는 표였지만, 누가 증명할 수 있는 사실을 가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됐다.
남 형사는 그 표를 보더니 말했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기 전에, 무엇을 알고 있었고 무엇을 실제로 할 수 있었는지부터 따져야 합니다.”
“추리 소설이라면 딱 한 명만 악당이어야 하는데요.”
“그건 책 이야기고요.”
“현실에서는 악당보다 부실한 업무 인수인계가 더 무섭군요.”
사람의 기억까지 계약서 부속 문서로 다루는 사업이었다. 어설픈 인수인계가 곧 범죄의 통로가 될 수도 있었다.
유나가 지도에 파란 점을 하나 찍었다.
“부산에 권수진 씨가 있어요. 부산에서 도겸 씨 이름을 빌렸다고 했던 분.”
그 이름이 수첩에는 남아 있었다. 내가 얼굴을 정확히 기억하는지는 자신 없었다. 하지만 권수진이 부산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누군가 본인의 동의 없이 출입 기록에 내 이름을 덧씌웠다는 사실은 확인된 기록이었다.
우리는 수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플라스틱 상자가 부딪히는 소리와 지게차 후진 경고음이 들렸다.
“차도겸 씨? 저 지금 일하는 중인데요.”
“퇴근 관리 단말기 때문에 연락드렸습니다. 오늘 오후 다섯 시 사십이 분에 뭔가 시작될 수 있어요.”
“잠깐만요.”
멀어지는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그녀가 말했다.
“어젯밤 단말기가 바뀌었어요. 원래는 사원증 찍는 기계였는데, 오늘부터 퇴근할 때 화면에 동의 버튼을 누르래요. 안 누르면 근태 정산이 지연된다고 했어요.”
서아와 눈이 마주쳤다.
“누가 설명해 줬습니까?” 내가 물었다.
“없어요. 게시판에 안내문이 한 장 붙었죠. 직원들이 이런 걸 다 읽을 시간이 어디 있어요. 야간조는 어제 교대하면서 처음 봤대요.”
남 형사가 수진에게 먼저 안전을 확인했다. 작업 중이면 통화를 끊어도 되고, 위험한 장비 가까이서 촬영하지 말라고 했다. 수진은 지금 휴게실이라고 답했다. 이어 정식 신고를 위한 연락 방법을 안내받았다.
나는 회의실 벽시계를 보았다. 오전 아홉 시 사십팔 분. 부산까지 갈 시간은 충분했지만, 한 사람의 능력을 믿고 무작정 뛰어갈 일은 아니었다.
“제가 부산으로 가겠습니다.”
“왜 당신이요?” 유나가 물었다.
“거기서 내 이름으로 등록된 경로가 시작되니까요. 내가 가진 기록과 실제 장비를 대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위험하면 들어가지 않고 멈출 겁니다.”
“혼자 가면 또 구태형이 좋아할 텐데.”
“그래서 같이 가자고 말하려고 했죠.”
유나가 짧게 웃었다.
한시우는 부산 거래처 담당자의 공식 연락처를 제공하겠다고 했다. 서아는 대전 사업장의 승인 문제를 확인하기로 했다. 강문석은 서울에서 관측 장비를 유지하고, 남 형사는 관련 신고와 현장 안전 협조를 진행했다. 아무도 한 사람에게 모든 일을 맡기지 않았다.
회의가 끝날 즈음, 휴대전화에 회사 알림이 떴다.
‘퇴근 복지 신규 서비스가 등록되었습니다. 지금 참여하면 어제의 피로를 잊을 수 있습니다.’
나는 화면을 한동안 바라봤다. 우리 회사는 계약 대상이 아니었다. 적어도 한시우가 내게 보여 준 목록에는 없었다.
알림 아래 작은 글씨가 있었다.
[참여 신청자: 차도겸]
[신청 일시: 금일 08:59]
오전 여덟 시 오십구 분, 나는 경찰 회의실로 가던 택시 안에 있었다.
누구에게도 동의한 적 없었다.
나는 즉시 화면을 캡처하고 앱 로그를 별도 파일로 내보냈다. 전송 경로를 확인하기 전까지 버튼은 누르지 않았다.
그때 권수진에게서 사진 한 장이 왔다. 부산 물류센터 직원용 게시판이었다. 가운데 퇴근망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포스터 오른쪽 아래, 가맹 사업장 책임자 이름.
‘차도겸.’
수진이 말했다.
“제가 도겸 씨 이름을 빌렸다고 했죠. 그런데 그 이름, 이제 우리 센터 직원들 전부한테 붙으려고 해요.”
나는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었다.
다음 순간 나는 회사 메신저를 열었다. 내 계정으로 등록된 서비스 신청을 되돌릴 권한이 있는지 확인했지만 ‘관리자 문의’라는 문구만 나왔다. 나는 화면을 건드리는 대신 정보보호 담당자에게 정식 이의 제기를 남겼다. 허가받지 않은 연결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확인하려면 내 계정의 접속 기록이 필요했다.
회사라는 곳은 참 묘했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에는 여러 단계의 승인이 필요한데, 내 이름을 가져가는 프로그램에는 아무 승인도 필요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 모순을 잊지 않으려고 수첩에 또 한 줄 적었다.
이것은 단순한 등록 오류가 아니었다.
처음에는 퇴근 시간이 이상해졌다.
이제는 퇴근하는 사람의 이름까지 바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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