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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화
PAYLUA ORIGINAL · 제5화

5화. 당신은 나를 여섯 번 잊었다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157자

오프라인 책장
“총을 내려놓으세요.” 나는 손을 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손을 들지 않을 방법을 몰랐다. 남기혁 형사가 계단 아래에서 숨을 골랐다. “두 사람, 대체 뭡니까.” 오유나는 침착하게 물었다. “형사님, 이쪽으로 오기 전에 누가 시계를 줬죠?” 그 말에 남 형사의 얼굴이 바뀌었다. 그의 왼손목에도 낡은 시계가 있었다. 숫자 대신 붉은 선 하나. 그 아래에는 '06:00'이 새겨져 있었다. “경찰서 우편함에 있었습니다. 사건 관계 물품이라고 해서 찼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시계를 벗으세요. 지금 당장.” 그가 손목을 잡아당겼다. 시계는 떨어지지 않았다. “못 벗겠는데요.” “그럼 앞으로 열세 걸음만 걸어요. 열네 번째에는 멈추세요.” “왜?” “형사님은 정식 사용자가 아니에요. 누군가 빌려준 시간에 들어온 거예요.” 남 형사는 의심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열 걸음째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열두 걸음째에는 코피가 흘렀다. 열세 걸음을 딛자 시계의 붉은 선이 사라졌다. 몸이 정지했다. 눈을 뜬 채, 소리도 못 내고. 나는 놀라서 달려가려 했다. 유나가 팔을 붙잡았다. “건드리지 마. 지금 형사님은 우리 시간의 밖에 있어. 현실로 돌아가면 다시 움직일 거야.” “그럼 왜 들어올 수 있었죠?” “누군가가 네가 있는 곳으로 형사님을 보내고 싶었던 거지.” 형사의 손에서 떨어진 종이 한 장을 주웠다. 정지된 몸과 달리 종이는 움직였다. 검은 글씨가 찍혀 있었다. [차도겸 발견 시 구금. 기억 소유권 분쟁 중.]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못 했다. “내 기억을 두고 누가 소송이라도 했습니까?” “소송보다 오래되고 지저분한 일이야.” 유나가 계단으로 내려갔다. 우리는 지하 서버실 문 앞에 도착했다. 출입 인증 장치는 멈춰 있었다. 그런데 문 위쪽 경첩 하나가 새 제품이었다. 나는 수첩을 펴서 지난번의 내가 남긴 단서를 찾았다. ‘문이 잠겨 있으면 손잡이를 돌리지 말고 아래 패널을 밀 것.’ 나는 아래 패널을 밀었다. 손바닥만 한 금속 레버가 나타났다. 레버를 당기자 잠금이 풀렸다. “제가 만든 뒷문이네요.” “응. 우리 둘이.” 우리는 복도를 지날 때마다 소리를 줄였다. 당연히 서버실의 사람들은 모두 멈춰 있었지만, 우리 같은 움직이는 존재가 또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 바닥에는 붉은 실이 가느다랗게 깔려 있었다. 유나가 손전등을 비추고 고개를 숙였다. “징수자가 지나간 자국이야.” “사람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인데요.” “사람이라기보다는 기록 처리 장치에 가까워. 보관국이 만든 감시자.” 나는 키보드 없이 네트워크 장비를 살폈다. 몇몇 랙에는 전원을 뽑아도 사라지지 않는 고유한 빛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화면의 표시등이 아니라 케이블 속으로 흐르는 미세한 실선 같은 것이었다. “이거 광케이블이 아닌데.” “왜?” “빛은 진행 방향이 있어야 합니다. 저건 계속 같은 자리에서 꼬이고 있어요.” 유나는 빛줄기에 손을 가까이 했다가 거뒀다. 손가락 끝에서 핏기가 빠졌다. “기억을 옮기는 선이야. 사람의 과거를 데이터로 바꾸는 장치.” 나는 벽면 설비도를 확인했다. 사내 전산망이라면 내가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지하 서버실 공간이 실제 건축도면보다 두 배 가까이 넓었다. 건물 구조상 존재할 수 없는 방이 뒤에 붙어 있었다. “공간도 개발하면 확장할 수 있나 보군요.” “당신이라면 그런 말을 할 줄 알았어.”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기억을 데이터로 바꾼다는 게 가능합니까?” “가능하다고 믿은 사람들이 있었어. 처음에는 치매 환자가 잃어버린 기억을 복원하겠다는 계획이었지. 네가 그 연구에 들어온 이유도 그거였어.” “좋은 목적이었군요.” “언제나 시작은 그래.” 유나는 더 설명하지 않았다. 우리는 붉은 실선을 밟지 않도록 돌아갔다. 한 번은 내 운동화 끈이 줄에 닿았다. 끈의 끝이 마치 아주 오랜 세월 햇빛에 삭은 것처럼 하얗게 바스러졌다. 나는 황급히 발을 뺐다. 만약 그 줄에 내 손이 닿았다면 어떤 기억을 잃었을까. 아니, 손 자체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속이 울렁거렸다. 서버실은 얼음처럼 조용했다. 환풍팬이 멈춰 있었고 LED 불빛은 깜박이지 않았다. 장비 랙 뒤편에 공사가 끝나지 않은 작은 문이 있었다. 문에는 출입 금지 대신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열쇠 37.' 나는 유나를 쳐다봤다. 유나는 대답 대신 손을 내밀었다. 은색 열쇠를 건네자 문이 열렸다. 그 안에는 서버가 없었다. 문을 통과하자 공기부터 달라졌다.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았다. 사람에게 온도를 알려 주는 감각만 삭제된 곳 같았다. 우리가 밟는 발소리는 몇 걸음 뒤에야 들렸고, 손전등 빛은 뒤쪽 선반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어느 쪽이 위인지 헷갈릴 정도로 서랍이 높게 쌓여 있었다. 가장 가까운 서랍에는 어린아이의 이름이 붙어 있었다. 윤해준 — 처음 자전거를 탄 날. 나는 무심코 손잡이를 잡았다. 유나가 붙잡았다. “열지 마.” “왜요? 이 기억도 돌려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 “어디에서 빼앗았는지 모르면 어떻게 돌려줄 건데. 잘못된 사람에게 기억을 주면 그 사람은 자신이 실제로 살지 않은 삶을 믿게 돼.” “그럼 주인 이름이 적혀 있잖아요.” “여기 적힌 이름이 진짜 주인인지도 몰라. 보관국은 이름표도 바꿔.” 나는 손을 뗐다. 이곳의 문제가 더 선명해졌다. 감옥을 부수기만 해서는 사람이 풀려나지 않는다. 먼저 누가 어디에 갇혔는지 알아야 한다. 서랍 손잡이에는 작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어른의 손이 아니라 아이의 손이었다. 나와 같은 현상을 겪은 아이가 이곳에 왔던 걸까. 아무 기록도 없이 사라졌다면 찾아올 사람이 없을지도 몰랐다. 철제 서랍들이 천장까지 쌓여 있었다. 서랍마다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사람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을 설명하는 짧은 문구. 김태오 — 첫 연애의 장소. 정은경 —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들은 말. 오재민 — 누나에게 건넨 마지막 인사. 나는 오재민이라는 이름 앞에서 멈췄다. “이 사람은……” “내 동생.” 유나가 말했다. “그 애도 여섯 시를 걸었어. 당신을 도우려다가 사라졌지.” 그녀는 서랍 손잡이를 잡았다. 여는 대신 손을 오래 올려놓았다. “나도 네 말을 믿고 기다린 사람이야. 일곱 달 동안.” “왜 제 말을 믿었죠?” 유나는 동생의 이름표 앞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재민이는 늘 나보다 용감했어.” “몇 살인데요?” “스물둘.” 그녀가 웃음인지 한숨인지 모를 소리를 냈다. “네가 기억하는지 모르겠지만 재민이는 당신을 형이라고 불렀어. 연구소에서 사람들이 네 아이디어를 미쳤다고 했을 때에도, 형이 만든 시스템이면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 거라고 했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아직 본 적도 없는 사람의 신뢰가 어깨에 올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서아는 나에게 약속했어. 누구도 기억을 잃게 내버려 두지 않겠다고. 셋 다 그 말을 믿었지. 마지막엔 네가 그것을 지키겠다고 안쪽으로 들어갔어.” 유나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멈추라고 했는데도.” “그래서 당신은 계속 저를 되돌렸고요.” “응. 기다리면 다음엔 다르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그녀의 손에 주름진 사진이 쥐어져 있는 것을 봤다. 그 사진을 매일 보았을까. 혹시 나를 여섯 번 잊는 동안 그녀는 매번 같은 죄책감을 새로 겪었을까. 그것만으로 그녀를 용서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같은 적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은 알 것 같았다. 유나는 서랍에서 손을 떼었다. “그날 너는 서아를 구하러 들어갔어. 그리고 우리를 반드시 다시 데려오겠다고 했지.” 나는 이상하리만큼 차분했다. “그게 제가 여섯 번 잊은 이유입니까?” “아니.” 유나가 마침내 나를 바라봤다. “너는 여섯 번 잊은 게 아니야. 여섯 번 다시 시작한 거야.” 그녀는 주머니에서 접힌 사진을 꺼냈다. 사진에는 세 사람이 있었다. 나, 유나, 그리고 얼굴이 잉크로 지워진 여자. 사진 뒷면에는 날짜가 여섯 개 적혀 있었다. 서로 한 달쯤 떨어진 날짜들이었다. 전부 같은 문장이 따라붙어 있었다. '차도겸, 재진입.' “잃은 기억을 되찾겠다고 여섯 번이나 이곳에 돌아왔어. 그때마다 네가 남긴 기록을 확인했고, 어떤 진실을 알기 직전 스스로 리셋했지.” “스스로?” “응. 누군가에게 뺏긴 게 아니라 네가 선택한 날도 있었다는 뜻이야.” 나는 사진을 쥐었다. 얼굴이 없는 여자를 보니 참을 수 없는 슬픔이 올라왔다. 어떤 감정은 이유를 잊어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내가 사진을 찍던 날 그녀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그날의 하늘은 맑았을까. 혹시 우리가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던 것은 아닐까. 나는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붙잡듯 사진 모서리를 문질렀다. 종이의 표면은 이미 낡아 있었다. 이 종이가 처음 만들어진 곳에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쳤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유나는 내 옆에서 기다려 주었다. 이곳에서 내가 울거나 화를 내도 눈치 보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이미 여섯 번이나 본 장면일 수 있었다. 나는 그것이 위로가 되는지 모욕이 되는지 판단하지 못했다. 그런데 내게 더 큰 충격을 준 건 서랍의 맨 아래 줄이었다. 차도겸 — 미수령. 나는 불현듯 서랍 맨 위에 붙은 작은 흠집을 보았다. 누군가가 다섯 번이나 손톱으로 긁은 흔적이었다. 어릴 때 책상에 날짜를 새기던 것처럼 줄이 그어져 있었다. 다섯 줄 옆에 지워진 여섯 번째 줄이 있었다. 그 흔적이 내 것이라면 예전의 나는 이곳에 들어와 무엇을 확인했을까. 기억이 지워지는 대가를 알고도 다시 문을 열고, 다시 실패를 선택했을까. 그때마다 남겨 두려 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나는 서랍 손잡이 아래 작게 적힌 문장을 읽었다. '내가 나를 찾더라도 먼저 믿지 말 것.' 내가 남긴 경고였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글씨를 보고 처음으로 예전의 나를 두려워했다. 서랍 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신 내 이름이 적힌 카드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귀환 예정일: 오늘.] 유나가 재빨리 시간을 확인했다. 시계에는 04:02가 남아 있었다. “나가야 해.” 하지만 문이 닫히는 소리가 났다. 서랍 복도 끝에서 검은 우산을 든 사람이 나타났다. 얼굴은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있었다. 그는 우산을 접고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일곱 번째 재진입자 차도겸 씨.” 그는 열려 있는 서랍을 가리켰다. “본인의 기억을 직접 반납해 주시면 절차가 간단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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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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