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경찰서를 스스로 찾아간 적은 두 번뿐이었다.
한 번은 지갑을 잃어버렸을 때였고, 다른 한 번은 내가 미쳤는지 확인받고 싶었을 때였다.
목요일 오후, 나는 세 번째 이유로 강남경찰서 문을 열었다.
“차도겸 씨?”
내 이름을 먼저 부른 남자는 형사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피곤한 얼굴이었다. 정확히는 밤샘 근무를 이틀 연속으로 한 개발자처럼 생겼다. 내가 동족을 알아보는 데에는 자신이 있다.
“남기혁입니다. 실종팀 소속이에요.”
“제가 신고한 적은 없는데요.”
“신고는 다른 사람이 했습니다. 당신을 찾아 달라고요.”
그가 탁자 위에 신고서를 펼쳤다.
신고인: 진서아.
실종자: 차도겸.
접수일: 7개월 전.
나는 이름을 두 번 읽었다.
“저 멀쩡히 살아 있는데요.”
“그래서 이상하다는 겁니다.”
남 형사는 목소리를 낮췄다.
“신고를 접수한 당일, 진서아 씨도 사라졌어요. CCTV 기록은 남았는데 출구로 나오는 영상만 없습니다. 시각은 오후 6시 정각.”
남 형사는 진서아라는 이름 아래 붙은 서류 세 장을 차례로 펼쳤다. 주민등록 초본에는 주소 변경 이력이 정상이었고 마지막 카드 사용 기록은 평범한 편의점이었다. 그러나 대학 동문 조회에는 진서아라는 사람이 없었다. 동일한 이름으로 출판된 논문 목록에도 이제 이름만 남고 소속이 비어 있었다.
“자료가 삭제된 것 같습니까?”
“삭제라면 흔적이 있어야죠. 백업에서도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그럼 이 신고서는 왜 남아 있습니까?”
남 형사는 서류 끝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종이는 아직 남더군요. 누군가 복사해 금고에 넣어 둔 것은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디지털 기록과 다른 규칙이 있는 모양이에요.”
그가 노트북을 돌려 보여 줬다. 복도 화면에서 파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카메라 쪽으로 다가오다가, 화면이 단 한 프레임 흔들린 뒤 사라졌다.
영상 하단 시각은 18:00:00에서 18:00:37로 점프했다.
“37초.”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뭐라고요?”
“아뇨. 열쇠에 숫자가 하나 적혀 있어서.”
나는 손을 바지 주머니 안에서 꼭 쥐었다. 유나가 준 열쇠였다.
남 형사는 내 시선을 놓치지 않았다.
“차 씨, 일주일 전에 당신 회사에서 실종된 김태오 씨를 아십니까?”
“전단으로 봤습니다.”
“그가 사라지기 1분 전까지 당신 회사 서버실에 출입했어요. 그리고 당신 사번으로 승인된 출입 기록이 있습니다.”
등골이 싸늘해졌다.
나는 휴대전화에서 내 출퇴근 기록을 꺼내려 했다. 남 형사가 고개를 저었다.
“전부 삭제됐습니다. 삭제 로그만 남았어요. 본인이 지웠다는 기록으로.”
“전 기억 못 해요.”
“그 답을 예상했습니다.”
남 형사는 한숨을 쉬며 접수된 진서아의 실종 신고서 복사본을 내밀었다.
신고 내용 마지막 문장.
‘그는 사라진 사실을 모른 채 나타날 수도 있습니다. 오후 6시 이후의 진술을 믿지 마세요.’
내가 사라졌고, 동시에 살아 있다니. 이 문서는 내가 얼마나 억울한 인간인지 증명해 주는 공문서였다.
남 형사는 면담이 끝나갈 때 내게 따로 명함을 건넸다.
“나는 당신이 범인이라고 말한 적 없습니다.”
“그 말, 상당히 범인 취급하는 사람에게 어울립니다.”
그가 웃지 않았다.
“사라진 사람들 중에는 증발 직전에 통화하던 사람이 많았어요. 희한하게도 마지막 통화 기록이 모두 6시 정각에서 끊겨 있죠. 통신사 기록상 사고가 아닙니다. 통화 종료 요청을 보낸 단말기도 없어요. 그냥 연결돼 있던 시간이 빠져나가 버렸어요.”
그는 양손을 겹쳐 좁은 틈을 만들었다.
“경찰은 그 틈을 찾을 방법이 없습니다. 내가 그걸 인정하는 데 오래 걸렸어요.”
그는 서류봉투 안에서 작은 사진을 꺼내 보여 줬다. 여름날 공원 벤치에 앉은 여자와 남자가 웃고 있었다. 뒤에 작은 연못과 자전거가 보였다.
“내 아내입니다. 남하린.”
“왜 제게 보여 주시는 건데요?”
“당신이 모른다고 대답해도 괜찮습니다. 언젠가 봤다면 알려 주세요.”
나는 사진을 오래 들여다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그런데 사진 속 연못과 벤치가 어쩐지 익숙했다. 방문한 적 없는 장소인데 그곳의 바람과 습도가 떠오르는 것 같았다.
“이 공원 어디죠?”
“양재천 쪽입니다. 세상을 떠난 건 아니에요.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어요.”
형사가 사진을 다시 넣었다. 그 말끝에 처음으로 사적인 감정이 드러났다.
“실종 신고서가 많아지면 경찰은 통계를 만듭니다. 그런데 나는 그 통계를 볼 때마다 이름을 읽어요. 그 사람들이 숫자가 아니었다는 걸 잊지 않으려고.”
나는 그날 남 형사를 처음으로 조금 믿었다. 나처럼 기억을 잃는 사람도 있고, 잃을까 봐 매달리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서를 나오자 오후 3시였다.
유나가 알려 준 주소는 지하철역에서 두 정거장 떨어진 오래된 빌딩이었다. 지하 2층 보관창고. 관리인은 은색 열쇠를 보자 아무 말 없이 문을 열어 주었다.
“37번은 오래됐는데. 또 오셨네요.”
“제가요?”
“그럼요. 일곱 달쯤 전에 한 번. 그때도 얼굴이 꼭 지금 같았어요.”
보관창고 관리인은 문을 닫기 전에 한 가지를 더 말했다.
“그날 같이 오신 여자분은 안 오시네요?”
“어떤 여자요?”
“검은 머리, 얇은 안경테. 무슨 일이 생기면 여기서 다시 보자고 했는데. 두 분이 나중에 꼭 기억할 장소라고 하셨어요.”
그는 보관료를 적은 낡은 장부를 보여 주었다. 장부에는 정확히 7개월 동안 월세가 선불로 지급돼 있었다. 마지막 납부자는 진서아였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는 가려져 있었고 필체는 신기하게도 내 수첩에 남은 경고와 닮아 있었다.
“그 여자분이 뭘 맡기셨어요?”
“열쇠와 편지.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는 절대 이 방을 열어 주지 말라고.”
“제가 먼저 왔습니까?”
“아니요. 여자분이 먼저 오셨다가 나중에 형씨를 데리고 왔어요. 형씨는 그때 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지.”
나는 오른손을 보았다. 상처 하나 없는 손이었다. 그런데 손가락 사이가 욱신거렸다. 오래된 상처가 있다는 사실을 피부만 기억하는 듯했다.
관리인은 내 얼굴을 다시 쳐다봤다.
“그때는 둘 다 꼭 오늘 밤 세상이 끝날 것처럼 굴더니, 지금은 괜찮으신가 보네요.”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괜찮지 않았다. 다만 그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기억하지 못했을 뿐이다.
보관함 안에는 낡은 녹음기, 필름 사진 세 장, 얇은 서류봉투가 있었다. 서류봉투 앞에는 내 글씨로 적혀 있었다.
‘매일 저녁 6시의 나에게.’
나는 서랍에서 필름 사진부터 꺼냈다. 첫 번째에는 강가의 작은 식당에서 찍은 풍경이 있었다. 의자 세 개, 식탁 위에 놓인 커피잔 두 개, 비어 있는 네 번째 자리. 사진 가장자리에는 손가락이 조금 걸려 있었다. 급하게 찍은 사진이었다.
두 번째에는 낯선 빌딩의 옥상이 있었다. 한쪽에 붉은 경고등이 켜져 있고, 난간을 향해 검은 우산이 늘어서 있었다. 그 그림자들은 사람의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세 번째 사진에는 숫자만 있었다. 흰 종이에 37을 여러 번 쓴 모습. 그 사이에 다른 숫자 하나가 섞여 있었다.
‘000.’
나는 확대경도 없는 손으로 사진을 들여다봤다. 필름 가장자리에 작은 설명이 있었다.
‘기억이 없는 곳에 사람이 남는다.’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사진 세 장이 차례대로 어떤 장소를 찾아갈 지도라는 생각은 들었다.
녹음기를 켰다.
잡음 뒤로 남자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내 목소리였다.
“네가 이걸 듣고 있다면 시작부터 잘못된 거야. 진서아를 찾으려면 절대로 여섯 번째 기억까지 잃어서는 안 돼.”
나는 머릿속으로 셌다.
월요일 하나. 화요일 둘. 수요일 셋.
아직 세 개였다.
“일곱 번째가 사라지면 네가 누구에게 돌아가야 하는지 잊는다. 그때부터는 누군가가 대신 살아 줄 수 있어.”
짧은 잡음.
“그리고 오유나가 찾아오면—”
갑자기 녹음이 끊겼다. 기계는 멀쩡했다. 테이프가 그 부분부터 잘려 있었다.
뒤쪽에서 여자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미리 듣기 서비스가 너무 짧지?”
오유나였다. 입구에 기대 서 있었다.
“미행했어요?”
“주소 알려 준 사람이 접니다.”
“전부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 안 했죠?”
“말하면 당신이 날 믿을까?”
“지금은 믿으면 안 될 이유가 더 많아졌는데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운해하지 않았다. 그게 더 수상했다.
“그래도 오늘은 도와줘야 해. 김태오를 찾을 수 있는 건 지금뿐이니까.”
“오늘요?”
“징수자가 그의 남은 기억을 옮기는 날이야.”
“어디로?”
“당신 회사 지하 서버실.”
나는 말했다.
“우린 거기로 갈 겁니까?”
“응.”
“저 거기 출입 권한도 없는데.”
“당신이 만들어 둔 뒷문이 있어.”
“왜 하필 오늘인지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내가 묻자 유나는 종이뭉치를 보여 줬다. 이름 옆에 붙은 빨간 원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서류 위 글씨가 저절로 변하는 일은 이제 완전히 놀랍지도 않았다.
“보관국은 매주 목요일에 이관을 해. 한번 이관되면 현실 쪽 기록까지 정리돼. 김태오가 사라진 사실은 남아도 그가 무엇을 하던 사람이었는지는 점점 흐려질 거야.”
“그럼 목요일마다 사람들이 지워집니까?”
“적어도 우리가 확인한 건 그래.”
나는 김태오의 실종 전단을 떠올렸다. 회사 서버실에 들렀던 남자. 내 사번으로 승인된 출입 기록. 그가 사라진 건 우연히 잘못된 문을 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누군가에게 이곳의 비밀을 알려 주려다 붙잡힌 걸까.
“절 왜 찾아왔죠? 저도 다 잊었는데.”
유나는 종이를 접었다.
“그래도 문을 만든 사람은 너니까.”
나는 그 말을 듣고도 안심할 수 없었다. 만든 사람이라면 닫는 방법도 알았을 텐데, 왜 일곱 달 동안 한 번도 닫지 못했을까.
오후 5시 57분. 우리는 회사 건물의 계단실에 숨었다. 유나는 신분증이 없었고, 나는 이미 오늘 퇴근한 것으로 등록돼 있었다. 내부로 들어가려면 여섯 시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왜 하필 우리 회사입니까?”
“당신이 거기에 시스템을 심었으니까.”
나는 유나를 바라봤다.
“제가요?”
“정확히는 잊기 전의 네가.”
6시.
공조기 소리가 끊겼다. 사무실 안 사람들은 모두 멈췄다. 나와 유나는 계단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때 계단 아래에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거기 두 사람. 아무 데도 가지 마.”
남기혁 형사였다.
그는 분명 경찰서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지금, 멈춘 세계에서 우리를 향해 총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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