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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5화
PAYLUA ORIGINAL · 제45화

45화. 멈추지 않은 수술실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112자

오프라인 책장
경로 09의 접속자가 현재에도 움직이고 있다. 그 사실을 알자 문을 열고 싶은 충동이 솟았다. 하지만 우리는 문을 열지 않았다. 오래된 근무표를 보고 과거 직원이 지금도 살아 있다고 결론 내릴 수 없었다. 계정을 다른 사람이 사용할 수도 있고, 기록 속에 남은 행동이 재생 중일 수도 있었다. "한정호가 실제로 접속한 건지 확인해 주세요." 내가 강문석에게 말했다. "로그가 말하는 건 한정호라는 식별키가 사용됐다는 사실뿐이에요. 실사용자를 확인하려면 별도 증거가 필요합니다." 유나는 아이에게 문을 닫아도 괜찮은지 물었다. 아이는 조금 망설이다 대답했다. "닫으면 또 잊어버리잖아." "그러지 않게 기록을 남길게. 네가 원할 때 다시 이야기하자." "약속해?" "응. 네가 바꾸고 싶으면 바꿀 수 있는 약속으로." 아이가 작게 웃었다. 나는 유나가 그 아이에게 '영원히 널 지킨다'고 말하지 않은 게 고마웠다. 끝을 정해 놓지 않은 맹세는 때때로 아이에게 또 다른 족쇄가 된다. 그날 저녁 우리는 기록사의 허락을 받아 보존소에서 확인한 정전 관련 공개 자료를 함께 검토했다. 남기혁 형사는 진료기록과 감시 자료를 섞지 말라고 했다. 하나는 환자의 민감한 사생활이고, 다른 하나는 건물 설비의 움직임이었다. 구태형에게 필요한 '시간 전체'와 달리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고가 일어났다는 객관적 사실이었다. 정전 점검표는 세 가지 시각을 남겼다. 오후 5시 59분 58초, 전력 전환 예고. 오후 6시, 첫 번째 기록 중단. 오후 7시 2분, 보조 발전기 인수인계 완료. 그런데 중간에 펜으로 적힌 낯선 문장이 있었다. '수술실 3번, 정전 중 조명 켜짐 확인.' "정전인데 불이 켜져요?" 내가 물었다. 형사는 대답 대신 병원 시설 담당 퇴직자의 진술을 보여 줬다. 정식 절차로 확보한 내용이었다. 직원은 당시 응급전원 장치가 작동했을 가능성을 말했다. 즉, 초자연적인 설명 없이도 불이 켜져 있을 수 있었다. "그럼 그날 시간 정지가 없었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게 단정할 수도 없죠. 서로 다른 설명을 차례로 확인해야 합니다." 형사가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보관국이 그동안 살아남은 이유를 새삼 깨달았다. 실제로 있었던 사고를 초능력으로 과장하거나, 초능력을 단순한 사고로 축소하면 어느 쪽에서든 사람들의 이야기를 놓칠 수 있었다. 강문석은 관측 로그를 순서대로 재생했다. 아버지 차정수가 남긴 파일이었고, 원본의 시간 도장이 그대로 있었다. 첫 장면은 병원의 좁은 복도였다. 벽에 '수술실 3'이라는 표지판이 보였다. 형광등 아래에서 커다란 벽시계가 6시를 가리켰다. 그 순간 화면이 흰색으로 번졌다. 초침이 멈추고 환자 이송용 침대가 공중에서 갑자기 끊긴 듯 고정됐다. 그러나 수술실 안의 누군가는 움직이고 있었다. 흰 장갑을 낀 팔과 작은 발이었다. "이거 아버지가 찍은 겁니까?" 내가 물었다. "관측 로그에는 그렇게 돼 있어. 영상 재생이 아니라 사건의 일부를 다시 조립한 것일 수도 있어." 유나가 말했다. "그럼 여기서 본 얼굴은 실제 얼굴이 아닐 수 있겠네요." "맞아. 구태형은 그런 복원 화면을 진짜 기록인 척 팔았어." 나는 화면 속 팔이 향하는 곳을 보았다. 수술대가 아니라 문이었다. 손에 잡힌 것 같은 작은 물체가 공중에 떠 있었다. 하얀 운동화 한 짝, 풀린 끈. 그다음 장면에서 아이 둘이 나타났다. 한 아이는 침대에 기대어 있었고, 다른 아이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둘 다 얼굴이 선명하지 않았다. 나는 누가 차도겸이고 누가 한시우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복도 반대편에서 어머니 윤혜정의 목소리가 들렸다. "둘 다 나한테 와. 한 사람만 먼저 보내면 안 돼." 이어 아버지 차정수가 소리쳤다. "문이 하나밖에 없어!" "그럼 문을 더 열어!" 그 순간 벽에 반쯤 걸쳐 있던 손잡이 하나가 새로 생겼다. 우리의 0번 보관실 나무문과 똑같은 손잡이였다. 오래전 어머니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던 두 번째 출구를 요구한 것이다. 나는 그 장면을 멈췄다. 어머니가 영웅이었던 건 아니었다. 두 아이가 울고 있는데 둘 중 하나를 포기하라는 말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 평범한 분노가 문을 만들어 냈다. "이게 보관국의 첫 시작입니까?" "맞을 수도 있어. 다만 누가 그 문을 지금처럼 운영하는 시스템으로 만들었는지는 별개지." 강문석이 답했다. 나는 영상의 재생 속도를 낮췄다. 병원 복도 끝에 희미하게 서 있는 간호사의 가슴에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글자는 거의 지워졌지만 손에는 환자 명부가 들려 있었다. 이 한 장면만 보고 간호사가 누구였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가 아이 둘 사이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보였다. 두 개의 체온계를 번갈아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멈춘 상황에서도 아이들이 아플 수 있나요?" 내가 물었다. 강문석은 조심스럽게 답했다. "정지 세계에 들어간 주체는 자기 몸의 시간을 체험합니다. 그곳에서도 심장은 뛰고 열이 날 수 있어요. 하지만 이 관측 영상이 실제 진료였는지는 알 수 없죠." 나는 병원 침대 위 흰 담요를 바라봤다. 담요가 조금 젖어 있었다. 아이 하나가 땀을 많이 흘렸던 모양이다. 누군가 그 아이를 살리기 위해 시간을 멈췄다면, 정지가 끝나자마자 치료가 필요했을 것이다. 시간을 멈추는 힘이 있다고 병이 낫는 건 아니니까. 화면을 정지시키자 침대 밑에서 종이컵 두 개가 굴러나왔다. 한 컵에는 물이 조금 남아 있었다. 어린아이는 그 컵을 건네받자 입술을 축였다. 나는 그 사소한 움직임을 오래 바라봤다. 기록의 소유권, 원본 신원, 제2정지 같은 거대한 말들 아래에 있는 건 물을 마시고 싶어 하는 아이들이었다. "이게 정말 첫 사건이라면, 처음부터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려던 사람들이 있었네요."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누가 무엇을 고쳤는지는 따로 확인해야 해." 유나가 대답했다. "그래도 이 컵은 기억해 둘래요." 나는 수첩에 컵 두 개를 그렸다. 하나에는 물방울을, 다른 하나에는 웃는 얼굴을 그렸다. 그림 솜씨가 형편없어서 유나가 웃었다. "어릴 때도 네가 그림을 못 그렸어?" "제가 기억하는 한 항상 못 그렸는데요." "네가 열여섯 살 때 나한테 그린 그림은 좀 달랐어." 나는 펜을 멈췄다. 유나가 그런 날을 기억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낯설었다. "제가 뭘 그렸는데요?" "문이었어. 작은 문 옆에 더 작은 문. 그리고 두 문 사이에 손을 잡은 사람들이 있었지." "그걸 언제 보여 줬죠?" "네가 처음 시간 정지를 겪었다고 울던 날. 네가 두 문을 모두 열 수 있을 거라고 믿었던 날." 나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잊어버린 기억 때문에 이야기를 듣는 사람이 된다는 게 가끔은 견디기 어려웠다. 하지만 유나의 기억이 내 기억에 없다는 이유로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때 전 무슨 말을 했어요?" "나중에 꼭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두 번째 문을 열겠다고 했어. 그냥 구하는 게 아니라,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어본 다음에." 나는 수첩에 그 문장을 적었다. '유나의 증언, 재확인 필요.' 눈앞의 수술실에서 처음 열린 두 번째 출구가 열여섯 살의 나에게도 영향을 남겼다면, 어쩌면 나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 약속을 붙잡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만 그 약속 때문에 누군가의 동의권을 빼앗을 생각은 없었다. 재생을 다시 누르자 하얀 복도 끝에 검은 흔적 하나가 보였다. 누군가 임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었다. 종이에 적힌 첫 줄은 의료 관련 내용이 아니었다. '사용 가능한 정지 시간: 60분.' '보존 대상: 선택 미완료 상태.' '보관 종료 조건: 원래 당사자의 귀환 의사 확인.' 그 아래에 붉은 펜으로 다른 문장이 추가됐다. '단, 관리자가 대리 선택 가능.' 나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짚었다. "문제는 마지막 줄이네요." "원문에 포함된 문장이 아닐 수도 있어." 형사가 말했다. "잉크의 시점과 기록 출처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저걸 덧붙였는지가 중요하겠군요." 아버지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그는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이건 치료 장치가 아니야. 아이에게 시간이 더 필요해서 잠깐 기다릴 장소를 만든 거야. 누가 이걸 마음대로 운영하게 해서는 안 돼." 그 말을 들으니 내가 왜 개발자가 되었는지 궁금해졌다. 아버지의 직업과 내 직업이 달랐던 걸까. 나는 어릴 때 컴퓨터를 좋아했던 기억 일부를 잃었다. 하지만 프로그램이 사람의 시간을 아낄 수 있다는 생각은 여전히 좋았다. 그 생각을 틀리게 만든 건 사람을 빌려 쓰는 관리자들이었다. 재생 화면 마지막에 한 남자가 나타났다. 원무과 근무표에서 본 한정호였다. 그는 종이를 접어서 자기 주머니에 넣더니 누군가에게 전화했다. "환자가 둘입니다. 선택하지 못한 사람이 남았습니다. 그런데 시간을 멈추는 장치가 생겼어요." 그의 수화기 너머에서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장치라면 운영권도 있어야겠군요." 나는 그 목소리를 안다고 생각했다. 구태형이었다. 그러나 1998년의 구태형은 지금처럼 나이가 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였다면 가능할까. 로그 복원 과정에서 목소리가 덧씌워졌을 수도 있었다. 나는 다시 관측 영상의 시간 정보를 확인했다. 음성이 삽입되기 직전 화면 위에 작은 점 하나가 나타나더니 한정호의 전화기 쪽으로 이동했다. 마치 누군가가 보이지 않는 손가락으로 재생 화면의 특정 위치를 눌러 문장을 붙인 듯했다. "여기가 삽입 지점인가 봅니다." 강문석은 두 화면을 비교했다. 음성이 들어가기 전에는 한정호가 수화기를 들고 있었지만, 그 뒤 누구와 말했는지는 원본에 기록되지 않았다. 구태형의 목소리만 떼어 내니 대화의 끝은 완전한 침묵이었다. "침묵을 억지로 채워 넣었군요." 나는 그 공백을 그대로 두었다.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상대를 구태형이라고 확정하는 것보다는, 아직 빈칸이라고 인정하는 편이 오래된 진실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때 화면에 붉은 경고가 떴다. [관측 로그에 존재하지 않는 음성이 삽입되었습니다.] [삽입 시점: 2026.10.26 18:00] 나는 숨을 들이켰다. 방금 누군가 현재 시각에서 1998년 대화를 수정하려 한 것이다. 화면 아래로 회색 메시지가 흘렀다. '차도겸, 이제야 내 목소리를 들었군. 한정호가 누구였는지 알고 싶으면 내일 여섯 시에 혼자 와.' 서명은 구태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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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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