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2화
PAYLUA ORIGINAL · 제42화

42화. 두 아이가 찍힌 사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156자

오프라인 책장
진서아의 통화가 끊긴 뒤에도 승인 버튼은 계속 깜박였다. 내 손가락은 키보드 위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계약을 확인하는 순간 누군가의 시간이 넘어갈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중요한 버튼을 예쁘게 파란색으로 칠해 놓은 개발자에게는 별도로 책임을 묻고 싶었다. 나는 창을 닫았다. 승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수첩에 적었고, 화면을 촬영했다. 파일 속성에는 '예정된 수신자 변경'이라는 문구가 남았다. 구태형의 행정 시스템이 아직 살아 있다는 뜻이었다. "서아 씨가 지금 위험한 거죠?" 유나가 물었다. "본인이 맡은 기록 때문에요. 우리 때문에 인계한 거라면 더더욱." 유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내 서아의 안전 확인용 번호에 메시지를 남겼다. 서아가 답할 수 있을 때만 응답하도록 정해 둔 번호였다. 우리는 그녀를 구하겠다는 구실로 위치를 강제로 추적하지 않기로 했다. 밤 열한 시. 어머니는 우리를 두고 먼저 주무셨다. 잠들기 전에 나는 복도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보아도 되겠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마음대로 하라고 하지 않고 한 가지를 당부하셨다. "사진을 빼 가지는 말아요. 예전에 누가 그러고 다시 안 갖다 줬거든요." "누가요?" "기억이 안 나요. 그래서 더 화나요." 나는 웃지 못했다. 사진첩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갈색 가죽 표지의 모서리는 닳았고, 첫 장에는 신혼여행 사진이 있었다. 아버지의 젊은 얼굴, 어머니의 서툰 브이 표시. 나는 마음 한편에서 오래전 행복한 장면이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 사실이 이제는 슬프기만 하지는 않았다. 사진 속 두 사람이 웃었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의 증거였다. 1998년 여름이라고 적힌 장에는 사진 세 장이 비어 있었다. 모서리를 고정하던 투명 스티커만 남아 있었다. 유나가 빛을 비추자 사진 뒷면에 남았던 필압 자국이 드러났다. '6/12 시우 생일' '6/13 병원' '6/14 돌아온 날'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한시우 생일이 6월 12일이었다는 거예요?" "날짜만으로는 몰라. '시우 생일'이라고 적혀 있어. 6월 12일에 찍었다는 뜻일 수도 있어." "추정하고 단정하지 않기. 오늘 업무 일지에 꼭 쓰겠습니다." 사진첩 뒤쪽에는 전에 본 두 아이의 사진과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바닷가가 아니라 병원 정원이었다. 여름 나무가 창 너머로 보이고, 작은 벤치에 어머니가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어린 내가 있었고, 옆에는 얼굴 절반이 프레임 밖으로 나간 소년이 서 있었다. 소년의 오른쪽 신발 끈이 풀려 있었다. 나는 사진을 한참 들여다봤다. 어린 나는 소년의 손목을 꼭 쥐고 있었다. 싸워서 붙든 표정이 아니었다. 헤어지는 게 싫어 붙잡고 있는 표정이었다. "이 사진은 병원에 가기 전일까요, 뒤일까요?" "아마 전. 사진에 적힌 날짜가 6월 11일이야." 유나는 사진 모서리를 가리켰다. 실제로 옛날 카메라가 찍은 붉은 날짜가 박혀 있었다. 날짜가 정확하다는 보장은 없지만, 나중에 누군가 화면에 붙인 전자표시보다는 독립된 단서였다. 그때 사진 밑에서 접힌 종이 한 장이 미끄러져 나왔다. 어린이 병원 입원 안내문이었다. 구석에 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도겸. 한시우. 아래에 환자 보호자 서명이 남아 있었다. 윤혜정. 그리고 다른 칸에는 낯선 성씨 하나가 있었다. '한정호.' "한시우 아버지인가요?" 유나가 고개를 저었다. "서명란 제목이 '동행인'이야. 가족인지 확인해야 해." 나는 잠시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이제까지 부모님이 두 아이를 돌봤다는 사실을 듣고 나면 자동으로 어느 한쪽이 진짜 가족이었는지를 따지고 싶었다. 그런데 사진 속 소년에게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있었을 것이다. 그 사람들을 지워 버리고 우리 집 이야기로만 만들면 지금까지 구태형이 하던 짓과 뭐가 다른가. 사진첩을 덮으려는데 유나가 제일 뒷장을 붙잡았다. 바스러질 듯한 투명 포켓 안에 사진 한 장이 더 들어 있었다. 인화 날짜는 적히지 않았지만, 사진 속 벽에는 '퇴원 축하'라고 색연필로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어린 나는 두 손에 종이배를 들고 있었다. 옆에 서 있던 아이의 얼굴은 사진 바깥으로 잘렸지만, 손목에는 작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어깨에 각각 손을 올려놓았다. 그런데 아버지는 셔터를 누른 사람이 아니라 사진 안에 서 있었다. 그렇다면 누가 사진을 찍었을까. 사진 뒷면에는 '찍어 준 사람에게 꼭 사진 한 장 주기'라고 쓰여 있었다. 이름은 없었다. 나는 그 빈칸이 아버지와 함께 있던 또 다른 어른의 흔적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유나가 물었다. "왜 그렇게 봐?" "제가 그날 병원에서 나왔다면 누군가 셔터를 눌렀겠죠. 사진이 남아 있는데 찍은 사람은 안 나왔잖아요." "가족이 아닌 사람일 수도 있겠지." "네. 그래서 찾을 이유가 생겼어요." 나는 그 자리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기록을 남겼다. 사진을 들고 나가지는 않았다. 어머니는 사진을 빼 가는 일을 싫어하셨으니까. 대신 사진에 적힌 글씨와 각 사람의 위치를 상세히 적었다. 검은색 펜으로 쓴 '퇴원 축하'와 어린아이 손의 붕대까지. 그때 유나가 모퉁이에 끼워 둔 작은 메모지를 찾아냈다. 아버지 차정수의 필체였다. '도겸은 시우가 돌아왔다는 말을 듣고 사흘을 울었다. 그 애가 곁에 있는데 왜 돌아왔다고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나도 정확한 뜻을 몰랐다. 기록하는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을 구분할 수 없었으니까.'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문질렀다. 아버지가 그날 본 것은 우리가 37번 우편함을 통해 만난 원본 차도겸과 비슷한 일이었을까. 같은 이름을 가진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시간을 살고 있었다. 아버지도 처음부터 해답을 알았던 건 아니었다. "아버지는 다 알고 있었을 줄 알았는데요." 유나가 메모를 다시 접었다. "그 사람이 뭔가 모른다고 기록했다는 건 그나마 다행이야. 구태형은 모르는 부분을 항상 자기에게 유리한 답으로 채워 넣었거든." 내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모른다고 인정하고 다음 날 다시 살펴보는 사람이었다. 프로그램을 고치다가 새벽까지 일하고, 가끔은 부품을 잘못 주문해 어머니에게 혼나던 사람. 그 모습을 떠올리자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사진첩 맨 앞쪽에는 아버지의 낙서가 하나 남았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을 바꾸려 하지 말고 방법을 바꿔라.' 나에게 해 주려고 적은 말인지 자기를 위해 남긴 말인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두 경우 모두 괜찮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사진첩을 제자리에 돌려놓았다. 어머니가 아침에 일어나기 전, 부엌 식탁에 사진과 관련된 사실만 적은 쪽지를 남겼다. 기억이 돌아오기를 바라며 옛 이야기를 억지로 떠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확인한 물건을 그대로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다음 날 아침, 남기혁 형사와 병원 기록 보존소를 방문했다. 오래된 건물은 폐쇄됐지만 당시 병원 재단의 기록 보존실은 다른 건물로 이전해 있었다. 형사는 수사 절차에 따라 요청 가능한 자료와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한 자료를 구분했다. 우리는 접근 권한이 없는 진료 내용을 몰래 열람하지 않았다. 담당 기록사는 서류를 들여다보더니 난감한 얼굴을 했다. "1998년은 전산화 이전 기록이 많아서요. 종이로 남은 문서가 있을 수 있지만 이미 보존 기간이 지난 자료도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면 없다는 사실부터 확인해야겠죠." 형사가 답했다. 보존실 안쪽은 종이 냄새가 짙었다. 오래된 보존 상자들이 서가에 쌓여 있었고, 손잡이마다 세월에 닳은 번호표가 걸려 있었다. 형사는 6월 13일 자료만 달라고 요청했다. 기록사는 그날의 문서가 한 묶음이 아니라 여러 부서에 흩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그래서 날짜 하나로 검색하면 전체 기록이 나오지 않습니다. 종이 원본과 전산 목록의 분류가 달라요."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기억을 잃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내가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공포였다. 하지만 이곳의 직원도 모든 기록을 한꺼번에 알지 못했다. 모른다는 사실은 잘못이 아니었다. 문제는 모르는 걸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다른 사람의 선택을 대신하는 일이었다. 기록사는 방문자 대장에 우리가 열람한 자료 목록을 적었다. 내 이름을 확인하려다 한 번 멈췄다. 같은 이름으로 문의한 사람이 며칠 전에도 있었다고 했다. 사진을 보지 않으면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당시 남겨 둔 연락처 끝자리가 내 번호와 달랐다. 형사는 그 사실을 별도 확인 대상으로 기록했다. 나를 사칭한 사람인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방문자인지는 아직 정할 수 없었다. 기록사는 자료 목록만 보여 줬다. 응급실 근무일지, 시설관리 정전 기록, 환자 이송대장. 내가 찾던 개인 기록은 별도의 신청이 필요했다. 대신 기록 보존소에 남은 '1998년 6월 13일 야간 정전 점검'이라는 제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정전이 있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예. 특이한 건 정전 기록이 두 번 있어요. 정전 시작은 오후 6시, 복구도 오후 6시. 그런데 직원 인수인계 서명은 오후 7시 2분에 돼 있네요." "그게 이상한가요?" "복구 시각에 적힌 필체가 다릅니다. 나중에 고쳐 쓴 것 같아요." 그 말이 이상하게 익숙했다. 여섯 시가 두 번 오는 날. 오래전에도 누군가 서로 다른 시간의 기록을 한 줄로 묶으려 했던 것이다. 기혁 형사는 기록사에게 문서의 출처와 보존 이력을 물었다. 원본을 바로 가져갈 수 없었기에 정해진 절차로 보존 요청을 했다. 그 사이 나는 창밖을 봤다. 골목 건너편에는 폐쇄된 병원 별관이 있었다. 철문 위에 새 간판이 붙어 있었다. '기억기록 디지털 아카이브 — 위탁 보존 센터.' 나는 이름을 읽자 몸이 굳었다. 구태형이 운영하던 회사의 상표와 같은 문양이 문 옆에 붙어 있었다. "형사님. 저 건물은 누가 쓰죠?" 기록사가 먼저 대답했다. "몇 달 전에 외부 업체에 임대를 줬어요. 서고와 폐설비 정리하는 곳이라고 들었는데요." "외부 업체 이름이요?" 그녀가 서류를 확인했다. "시우데이터. 대표는…… 한시우 씨로 되어 있네요." 나는 다시 건물을 보았다. 1998년 병원 침대에 누워 있던 소년의 이름이 지금 이십팔 년 뒤 회사 간판에 적혀 있었다. 그때 휴대전화로 메시지가 왔다. 발신자 번호가 없었다. '그 건물에 들어오지 마세요. 저는 아직 어른이 되는 중입니다.' 메시지 아래에는 오늘 날짜와 함께 엉뚱한 나이가 표시돼 있었다. [한시우 / 현재 연령: 6세]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42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4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