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의 병원 기록에 진서아라는 이름이 있었다.
나는 파일을 세 번 닫았다 열었다. 컴퓨터 개발자로 살면서 화면에 낯선 문장이 나타나면 대개 새로고침으로 해결했다. 이번에는 네 번 새로고침을 해도 똑같았다.
[기록 인계 책임자: 진서아.]
1998년 6월 13일.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이었다. 진서아는 내 기억 속에서 어른의 목소리를 가진 사람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나와 비슷한 나이였다. 서른 살쯤 되는 여자가 이십팔 년 전 수술실 앞에서 서류를 인계했다는 건 계산이 맞지 않았다.
물론 시간을 멈추는 세상에서 나이를 따지는 일이 우습기는 했다. 그렇다고 모든 모순을 초능력 탓으로 돌리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영상 재생을 멈추고 속성을 열었다. 복구 날짜는 오늘, 원본 관측 시각은 1998년. 두 숫자 사이에 작고 흐릿한 글씨가 있었다.
'표시 계층: 2026년 6월 13일 갱신.'
"아. 이거 합성 자막이네."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유나가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어머니 집에 와 있었다. 정지가 끝난 뒤 나는 멋대로 어머니 컴퓨터를 사용하고 싶지 않아 가져온 노트북만 켜 두었다. 어머니는 주방에서 조용히 국을 데우고 계셨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에게 나는 아들이 아니라 자꾸 찾아오는 낯선 손님이었지만, 그분은 손님을 그냥 보내지 않았다.
"무슨 말이야?"
"영상 자체에 적힌 게 아니라 누군가 나중에 덧씌운 정보입니다. 원본의 손목띠가 아니라 기록 보관 책임자 표시예요."
"그럼 서아가 1998년에 있었던 건 아니란 말이지?"
"아직 모르죠. 적어도 이 화면 한 장으로는 증명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유나는 의자에 앉았다. 그 표정이 안도의 표정인지 실망의 표정인지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둘 다였을 것이다.
나는 두 개의 화면을 나란히 띄웠다. 왼쪽은 아버지가 남긴 관측 영상, 오른쪽은 서아의 이름을 보여 주는 기록 인계 화면. 왼쪽 파일에는 병원 복도와 손목띠가 선명했지만 어느 아이를 누가 데려갔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오른쪽에는 담당자 이름과 서명이 있었다. 파일을 같은 날짜로 연결한 건 중간의 참조 번호였다.
[0613-00 / 보호 대상: 2 / 귀환 완료: 1 / 보관 계속: 1]
숫자 0613. 수첩 첫 장부터 따라다니던 바로 그 숫자였다.
"한시우가 '최초 귀환자'면 돌아온 사람 한 명은 시우라는 거겠죠?" 내가 물었다.
"문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어. 하지만 귀환이 어디로 돌아왔다는 건지는 아직 몰라. 현실에 몸이 나왔다는 뜻인지, 기록만 돌아왔다는 뜻인지."
"정말 성질 나네요. 제가 하는 업무에서 '성공'이라는 글씨가 뜨고 실제 서비스는 죽어 있으면 그건 성공이 아니거든요."
유나가 씁쓸하게 웃었다.
복구 영상을 더 자세히 살피는 동안 소름 돋는 차이가 하나 더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는 1998년 병원 복도를 보여 주고 있었지만, 화면 구석의 작은 화살표는 끊임없이 반대 방향을 가리켰다. 재생 시간은 앞으로 흘렀고 관측 시간은 뒤로 흘렀다.
나는 초침이 움직일 때마다 두 숫자를 수첩에 받아 적었다. 18시 00분 12초, 관측 시각 17시 59분 58초. 18시 00분 13초, 관측 시각 17시 59분 57초. 앞으로 일 초를 보는 동안 그곳에서는 과거로 일 초를 더 들여다보고 있었다. '보관된 선택'이라는 말이 비로소 조금 이해됐다. 이미 끝난 행동을 반복 재생하는 게 아니라, 끝날 기회를 놓친 순간을 계속 늘리고 있었다.
"지금 이거 보세요. 영상 안의 아이는 움직이는데 복도 밖 사람들은 그대로입니다."
나는 멈춘 병원 복도와 어른의 그림자를 가리켰다. 그런데 유나는 내 말을 끊었다.
"그 아이가 움직인다고 해서 지금까지 혼자 버텼다는 증거는 아니야. 누군가가 움직이는 순간만 골라 보여 주는 걸 수도 있어."
"아무리 그래도 이십팔 년인데요."
"바깥에서 흐른 이십팔 년이 안쪽에서도 이십팔 년이란 뜻은 아니잖아. 재민이도 실제로 겪은 시간과 우리가 계산한 시간이 달랐어."
오재민. 유나가 구조하려 애썼던 동생. 그는 시간 속에서 지낸 흔적 때문에 나이를 계산하기 어려웠고, 여전히 누군가가 그의 목소리를 '안전장치'라고 불렀다. 나는 한시우도 단순한 나이나 숫자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영상을 소리 없이 돌리는 동안 벽에 걸린 손 소독제 광고가 눈에 들어왔다. 1998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종이 포스터였다. 포스터 한쪽 귀퉁이가 찢겨 있었다. 그런데 정확히 같은 찢긴 모양이 우리 수첩의 오래된 사진에도 남아 있었다. 누군가가 원본 영상과 오래된 사진을 같은 사건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표식을 심어 놓은 걸까.
"이게 같은 장소라는 증거가 될까요?"
"힌트는 되지. 하지만 조작할 수 있는 표식이기도 해." 유나가 말했다.
나는 그 말을 수첩 왼쪽에 적었다. 오른쪽에는 아버지 차정수의 이름을 적었다. 아버지가 관측자였다면 최소한 그날 현장에 있었다는 증거는 다른 곳에도 남아 있어야 했다. 병원 직원이든, 영수증이든, 그가 집으로 들고 온 옷이든. 옛 기억이 떠오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에 아무 흔적도 없는 건 아니었다.
마지막으로 원본 화면에 한 줄이 더 있었다. '누군가 멈춘 시간 속에서 움직인다고 해서 그 사람이 모두를 대신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문장 끝에 아버지의 서명이 들어 있었다. 날짜를 찍는 붉은 도장 대신 볼펜으로 적힌 이름이었다. 왜 그런 문장을 남겼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까지 저지른 가장 큰 실수를 아버지는 오래전에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기혁 형사에게 영상을 보냈다. 정확히는 영상 원본을 건네기 전에 해시값과 보관 경로를 먼저 보냈다. 그가 며칠 전부터 내게 주입한 습관이었다. 형사는 새벽까지 자료를 분석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 아침 병원 기록 담당자와 정식으로 확인할 시간을 잡겠다고 했다.
'화면에 이름이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당시 현장에 있었다는 주장은 구분하십시오.'
그의 답장을 읽자 어깨가 조금 가벼워졌다.
그때 어머니가 쟁반을 들고 오셨다. 김이 오르는 된장국 두 그릇과 밥, 물컵 세 개였다. 나는 순간 물컵의 숫자를 세었다. 세 명이 앉아 있으니 당연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주방 쪽을 다시 보시더니 작은 접시 하나를 가져와 빈자리 앞에 놓았다.
"혹시 한 사람이 더 올 것 같아서요."
나는 무심코 물었다.
"누구요?"
"몰라요. 이상하죠? 계속 작은 남자애가 왔다 간 것 같아요. 겁을 많이 먹은 애인데, 밥은 두 그릇씩 먹던 아이."
숟가락을 잡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아이 이름이 한시우였어요?"
어머니의 눈썹이 아주 조금 움직였다. 단 한 번이었다. 기억이 돌아온 것처럼 눈동자가 반짝이더니 곧 낯선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죠?"
"아버지가 남긴 기록에서요."
"내 남편이요?"
어머니는 그 말을 자기 입으로 하고도 잠깐 어색해했다. 남편이 있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지만 얼굴이나 마지막 인사를 제대로 떠올리지 못하는 분이었다.
"잠깐만요."
그분은 서랍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낡은 약 봉투였다. 병원 이름은 지워졌고, 구석에 연필로 적힌 한 문장이 남아 있었다.
'시우는 유리문 앞에서 멈췄다. 도겸이는 손을 놓지 않았다.'
손끝이 얼어붙었다. 내가 잊어버린 여름 방학의 기억과 같은 문장 같았다.
"이걸 언제 적으셨어요?"
"몰라요. 자꾸 잊어서요. 그래서 종이에 남기면 누군가가 나중에 읽어 주겠구나 싶었어요."
나는 쪽지를 사진으로 찍기 전에 허락을 구했다.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원본을 돌려드렸다. 지금까지 남이 가진 기록을 모조리 가져와 퍼즐을 맞추려 한 일들이 부끄러워졌다.
식탁에 셋이 앉자 오래된 벽시계에서 여섯 번 종소리가 났다. 시간은 아홉 시를 넘었는데 종은 여섯 번 울렸다. 어머니는 아무렇지 않게 국을 드셨다.
"이 시계, 고장 났나요?"
"이상하게 저녁마다 여섯 번 울려요. 당신 아버지가 고치려다가 못 고친 시계래요."
"그건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그러니까 내 기억이 아직 완전히 고장 난 건 아닌가 봐요."
어머니가 조용히 웃으셨다. 나는 그 웃음을 기억하고 싶었다. 어느 장부도 가져가지 못하게, 머릿속뿐 아니라 오늘 날짜와 함께 수첩에 적었다.
밥을 먹고 일어서려는 순간 노트북에서 알림이 울렸다. 병원 영상의 표시 계층을 해제하려 했더니 별도의 승인 창이 나타난 것이다.
[1998 원본 열람 신청]
[2026 기록 보관 책임자: 진서아]
[인계 대상 변경 요구: 승인 대기]
그 아래에 실제 서명이 있었다. 같은 이름이지만 손글씨가 아니었다. 인증서로 남긴 전자서명, 일곱 달 전에 만들어진 파일이었다.
전화를 누르기 전 어머니가 내게 다가왔다. 그분은 내 수첩에 빼곡한 글씨를 보시더니 무슨 일이냐고 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펜 한 자루를 건네주셨다.
"계속 적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잊어버려도 읽을 수 있게."
나는 펜을 받아 들었다. 오래된 광고 문구가 적힌 평범한 볼펜이었다. 그러나 그 순간에는 어떤 검증 키보다 믿음직했다. 무엇을 기억하지 못해도 내가 오늘 들은 말이 어디선가 남는다면, 내일의 나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진서아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번째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두 번째에는 짧은 안내음만 들렸다. 세 번째에야 누군가 받았다.
"서아 씨?"
"도겸. 화면 봤구나."
"1998년 기록에 왜 당신 이름이 있어요?"
"그건 나중에 말하려고 했어."
"그렇게 말하면 사람 미치는데요."
상대는 웃지 않았다.
"나는 그때 병원에 없었어. 내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하잖아. 일곱 달 전, 네가 맡기려던 관측 로그를 내가 인수했어. 그 화면은 과거의 사진 위에 현재의 소유권을 덧씌운 거야."
"그럼 누가 장난친 거네요?"
"장난이면 좋겠네. 내가 기록을 맡았다는 전자서명은 진짜야. 하지만 누가 누구를 맡았다는 서명인지 그때 정확히 보지 못했어."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 넘기는 소리가 들렸다.
"도겸. 원본 로그의 마지막 줄, 아직 안 읽었지?"
나는 화면을 내렸다. 이십팔 년 묵은 관측 기록 맨 아래에는 잘려 나간 한 문장이 있었다. 아무리 확대해도 앞부분이 보이지 않았다.
'반환 실패 시 _______를 인계한다.'
"빈칸에 뭐가 적혀 있었는데요?"
서아는 아주 오래 침묵했다.
"사람 이름이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그 빈칸에는 '앞으로 살아갈 시간'이라고 적혀 있었어."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뚝 끊어졌다. 화면의 인계 대기 창에서 승인 버튼이 저절로 깜박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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