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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9화
PAYLUA ORIGINAL · 제39화

39화. 원본을 정하는 법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56자

오프라인 책장
0번 보관실에 들어서는 순간 바닥의 느낌이 바뀌었다. 종이로 된 복도는 여전했지만, 발밑에 선명한 그림자가 두 개 생겼다. 하나는 지금 내 몸을 따라왔고 다른 하나는 반 박자 늦게 움직였다. 맞은편에 놓인 긴 탁자에는 서류철 여덟 권이 쌓여 있었다. 표지마다 같은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도겸. 탁자 끝에 구태형이 앉아 있었다. 검은 정장을 입었으나 오늘은 넥타이를 매지 않았다. 그 옆에는 오래전 내가 보았던 회색 점퍼의 출입증 사진이 놓여 있었다. "결국 왔군요."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 왔습니다. 당신 선택지를 고르러 온 게 아니고요." 그는 미소 지었다. 빈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나는 의자를 조금 뒤로 뺐다. 첫 만남 이후 그의 말을 그대로 따랐던 순간마다 누군가 불행해졌다. 적어도 자리를 고르는 일 정도는 스스로 결정할 수 있었다. "진서아 씨부터 불러 주세요. 그분의 자격 만료 심사를 요청했습니다." "그 여자는 제 증인입니다." 구태형이 말했다. "본인이 동의했나요?" "구태형이 직접 설계한 시스템은—" "질문은 간단합니다. 동의했습니까?" 서기관이 장부를 넘겼다. 서아의 원본 진술은 아직 유효했다. 그녀는 자신의 이름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했다. 구태형의 증인이 되고 싶다는 말은 없었다. "대리 출석이 불가합니다." 서기관이 고지했다. 구태형의 웃음이 조금 옅어졌다. 구태형이 앉은 탁자 밑에는 낡은 서류함이 있었다. 종이가 아니라 차가운 금속으로 만든 함이었다. 그 안에는 최근 보관국이 수익으로 잡은 항목들이 정리돼 있었다. '기억 담보 회수율', '정지시간 재판매', '다중 사업장 식별 효율'. 나는 그 마지막 항목을 한참 들여다봤다. "이건 사람들 이름을 합쳐 놓은 걸 성과라고 부르는 표입니까?" "수많은 선택을 관리하려면 효율화가 필요하지요." 구태형이 대답했다. "누군가 매번 확인 절차를 밟았다면 이런 규모의 구조 작업은 불가능했을 겁니다." "구조 작업이요? 사람들을 내보내는 것보다 들여보낸 사람이 더 많아 보이는데요." "그 과정에서 실수가 있었던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 시스템 덕분에 살아난 사람도 있어요." 나는 그 말을 바로 거짓말이라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처음에는 구조 목적이 있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좋았던 결과 몇 개가 다른 사람의 동의를 무효로 만들 권한을 주지는 않는다. "누가 살아났는지 확인하죠. 그리고 누가 피해를 입었는지도. 두 기록을 하나로 합쳐서 상쇄할 생각은 하지 마세요." 구태형의 얼굴에 짧은 짜증이 스쳤다. 그는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가 잃어버린 기억이 자기 장부에 남아 있다고 말했다. "아버지 얼굴, 어머니 목소리, 당신이 사랑한 사람을 처음 만난 날. 그게 얼마짜리인지 알아요?" 나는 잠깐 흔들렸다. 잃어버린 것을 돌려준다면 무슨 조건이든 듣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유나가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회복할 수 있는 기억도 본인의 의사를 물어야 한다고. "가격표는 가져가세요. 그건 당신 물건이 아닙니다." 나는 말했다. 잃어버린 기억의 소중함이 줄어든 건 아니었다. 다만 그 기억을 되찾기 위해 다시 누군가를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대신 탁자 위 서류 한 장을 밀어 놓았다. [원본 신원 소유권 확인서.] 계약서 상단에는 차도겸이라는 이름이 있었고, 아래에는 7개월 전 찍힌 지문이 있었다. 내 지문과 같은 모양이었다. "보세요. 이 문서는 당신이 승인했습니다." "무슨 문서인지부터 확인해야죠." "당신이 기억을 제공하면 제가 다른 사람들을 구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종이를 가까이 가져왔다. 작은 글씨 사이에 똑같은 문장이 세 번 반복되어 있었다. '등록된 신원 사용자는 원본 신원 소유자와 동일인으로 간주한다.' 누군가 함정을 조항 안에 숨겨 놓은 뒤 그것을 전제로 다시 함정을 만든 것이었다. "지문은 같은데 등록된 사람은 다를 수 있겠군요." "지문이 같다면 같은 사람 아닙니까?" "당신이 만든 프로그램에선 아닐 수 있잖아요." 구태형이 침묵했다. 그가 직접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접속한 기록이 남아 있었다. 권수진의 진술도 있었다. 신원 키를 빌려 접속하는 행위를 그 자신이 허용했기 때문에, 키로 서명했다고 해서 실제 차도겸이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없었다. "그럼 당신은 무엇으로 자신을 증명할 겁니까?" 그가 물었다. "몸으로요. 그리고 제가 오늘 한 말로요. 다른 사람을 지우고 싶지 않다고 제가 말하는 순간, 그 말은 현재 제 선택이 됩니다." "과거의 당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럴 수 있겠죠. 그렇다고 과거에 누가 누구였는지 당신한테 정해 달라고 할 생각은 없습니다." 서기관은 오랫동안 묵었던 장부를 펼쳤다. 표지가 낡아 글씨가 떨어져 나갔다. 그는 최초 개설자인 윤혜정의 결정과 이후의 위조 서명을 차례로 읽었다. 둘 다 구태형이 주장한 '원본 하나만 남긴다'는 조항을 포함하지 않았다. "원본 우선권 심사에 제출된 핵심 근거가 상호 모순됩니다." 서기관이 말했다. 구태형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으로 서류철 한 권을 잡아당겼다. "그럼 처음부터 끝까지 원본을 보여 드리죠." 서기관이 거울을 설치하는 동안 나는 주변을 살폈다. 0번 보관실 복도는 여전히 두 갈래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37번 우편함으로, 다른 한쪽은 작은 아이가 있는 나무문으로 이어졌다. 구태형이 원본 심리를 열었는데도 두 통로는 지워지지 않았다. 어머니가 남긴 '아무도 버리지 않는다'는 조항이 아직 작동하고 있었다. 나는 서기관에게 물었다. "오늘 누가 원본이라고 결정하면 두 문 중 하나가 닫힙니까?" "운영 규칙상 그렇습니다." 그는 잠깐 멈췄다. "다만 최초 개설 동의 범위에는 그런 규정이 없었습니다." "그럼 운영 규칙을 바꾼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야죠. 사람을 고르기 전에." 서기관이 구태형의 서명을 바라봤다. 그는 처음으로 내 말을 받아 적었다. 오늘 심리의 목적은 원본을 결정하는 것인데, 우리는 그 결정을 요구할 권한이 실제로 있었는지부터 따지는 중이었다. 나는 우편함 앞으로 갔다. "거기 있어요?" 원본의 목소리가 답했다. "응. 오늘은 네가 처음으로 나한테 진짜인지 묻지 않네." "대신 물을게요. 지금 나오고 싶습니까?" 오랜 침묵이 이어졌다. 이윽고 대답이 돌아왔다. "응. 그런데 내가 나오면 안쪽 아이가 사라진다고 생각했어. 그게 전부 거짓말이라면, 난 이제 그 애한테 사과해야겠지." 나무문 안쪽에서 작은 두드림이 들렸다. 우리는 모두 그 소리를 들었다. 처음으로 두 문 안의 사람들이 같은 공간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아차린 순간이었다. "나도 들었어." 아이가 말했다. 원본은 한참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가로채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서로를 만나기 전에 스스로 말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다. 탁자 뒤편에 큰 거울이 내려왔다. 그 안에는 일곱 달 전의 내가 서 있었다.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고 메모장을 든 남자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반갑다, 일곱 번째." 나는 심장이 크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거울 속 인물이 말을 하기 전 서기관이 먼저 말했다. "경고합니다. 관측 화면은 증거로 단독 채택할 수 없습니다." 그 한마디 덕분에 나는 거울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당신이 진짜 차도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겁니까?" 내가 물었다. 남자가 대답했다. "나는 네가 잊어버린 선택들이야. 처음 만났을 때의 약속, 여섯 번의 실패, 문 앞에서 돌아선 순간. 전부 기록돼 있어." "당신은 나와 다른 사람입니까?" "그걸 결정하기 전에 네가 알아야 할 일이 있어." 그는 거울에 손바닥을 댔다. 장면이 바뀌었다. 7개월 전의 나는 노트북에 무언가를 입력하고 있었다. 화면에는 직원 명단 대신 보호 대상 목록이 있었다. 나와 오유나, 진서아, 강문석, 어머니, 그리고 0번 보관실의 미귀환 아이. "저녁 여섯 시에 세상이 멈추게 된 건 실험 때문이 아니야. 이미 존재하던 정지를 바깥으로 꺼내, 그 안에 갇힌 사람을 구하려던 거야." 나는 숨을 삼켰다. "그런데 왜 매번 기억을 잃게 된 거죠?" "누군가 통행료를 받기 시작했으니까." 거울 속 남자는 구태형을 보았다. "우리가 만든 건 구조 통로였어. 이 사람이 만든 건 요금소였고." 구태형은 웃음을 멈췄다. 그는 탁자 위의 빨간 버튼을 누르려 했다. 서기관이 몸을 움찔했고, 나는 단말기를 내밀었다. "잠깐. 그 버튼이 무슨 일을 하는지 설명하세요." 서기관이 확인했다. [원본 우선권 심사 강제 종료. 관련 신원 일괄 해지.]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거두지 않았다. 대신 버튼 앞에 서류를 놓았다. 모든 당사자가 동의하기 전에는 누구도 일괄 해지를 승인할 수 없다는 29화의 조항이었다. 구태형의 손가락이 잠시 멈췄다. 그때 거울 속 남자가 내게 말했다. "도겸, 중요한 건 누가 최초로 이름을 썼는지가 아니야. 누가 마지막으로 책임을 질 건지야."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지 않았다. 책임은 누군가 대신 지게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신 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당신이 했던 선택을 설명해 주세요. 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제가 정하겠습니다." 거울은 잠깐 맑아졌다. 그 안에서 진서아가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창백했지만 분명히 살아 있는 얼굴이었다. 그녀는 탁자 저편을 가리켰다. "도겸, 구태형은 서류를 지우려는 게 아니야. 두 번째 여섯 시가 끝나면 증언을 한 사람 전부를 같은 신원으로 병합하려고 해." 내 휴대전화에는 외부 세계의 메시지가 하나 들어와 있었다. 어머니가 보낸 것이었다. '저녁에 국 끓여 놓을게요. 혼자 먹기 싫으면 누구든 데려오세요.' 짧은 문장을 보며 나는 0번 보관실의 두 문을 떠올렸다. 지금 누가 원본이라고 결론 내리면 어머니가 기다리던 두 사람 중 하나는 돌아오지 못할지도 몰랐다. 구태형의 서류는 그렇게 주장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처음부터 둘 다 집에 데려오고 싶다고 했다. 나는 그 뜻을 대신 지키겠다고 약속할 수는 없었다. 다만 누군가 그것을 거부할 근거가 있는지 확인할 수는 있었다. 나는 휴대전화를 껐다. 남은 세 분은 과거의 이름을 쟁취하는 데 쓰지 않기로 했다. 서기관의 장부가 붉게 변했다. [제2정지 종료까지 00: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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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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