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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8화
PAYLUA ORIGINAL · 제38화

38화. 두 번째 여섯 시에는 거울을 보지 마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25자

오프라인 책장
두 번째 여섯 시가 왔다. 신호등이 두 개로 보였다. 왼쪽에서는 빨간 불이었고, 오른쪽에서는 초록 불이었다. 사람들은 신호등 사이에 서 있었다. 실제 도로는 하나인데 서로 다른 시간의 교차로가 종이 두 장처럼 겹쳐졌다. 나는 먼저 내 손부터 확인했다. 오른손에는 검은 단말기, 왼손에는 수첩이 들려 있었다. 반사된 쇼윈도 속 내 손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아가 거울 보지 말라던 이유가 이거예요?" 유나가 대답할 틈도 없었다. 쇼윈도 속의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또 지각했어." 당황스러운 건 말투보다 목소리였다. 일곱 달 전의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나는 기억하지 못했다. 하지만 유리 속의 남자는 나보다 자신감 있게 서 있었다. 그는 비웃듯 손가락을 흔들었다. "문 앞에서 세 번이나 망설이고, 이제 와서 무슨 영웅인 척이야." "반성문이면 메일로 보내 주시죠." "여덟 번째가 될 준비는 됐고?" 나는 유리에서 눈을 뗐다. 그 직후 손목의 동심원이 느려졌다. 내가 반사된 모습을 오래 바라볼수록 한쪽 시간이 다른 쪽을 덮어씌우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나는 손바닥으로 창을 가렸다. "지금 보이는 건 네 과거 기록이야. 하지만 저 기록이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인 건 아니야. 구태형이 중간에 문장을 끼워 넣었을 수 있어." 나는 숨을 고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내가 잊어버린 장면이라면 뭐든 믿고 싶었다. 하지만 기억을 잃었다는 이유로 타인이 내 과거를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건 아니었다. 거리의 전광판은 서로 다른 광고를 두 개 보여 주고 있었다. 한쪽에는 오늘 저녁 행사 안내가, 다른 한쪽에는 일곱 달 전의 전자제품 광고가 흘렀다. 전광판 아래에 서 있는 여자는 자신이 두 풍경 가운데 어디에 속하는지 몰라 고개를 돌렸다. 유나는 시계의 안쪽 고리를 보여 줬다. 그 고리는 한 시간 전이라는 숫자 대신 '기록 시각'이라는 글자를 표시했다. 구태형이 재생하고 있는 것은 반드시 한 시간 전의 모습이 아니었다. 한 시간 정지 안에 저장된 서로 다른 날짜의 행동들이었다. 그는 그것을 현재의 여섯 시처럼 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그럼 두 번째 여섯 시가 시작되었다는 알림은?" "과거가 되돌아온 게 아니야. 보관국이 두 번째 장부를 켠 거지. 다른 사람의 선택을 현재 것으로 등록할 수 있게."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건물 벽에 붙은 포스터가 일그러졌다. 사람들은 가로등 쪽에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7개월 전의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었고, 누군가는 자신의 과거가 보이자 눈을 돌렸다. 그 반응도 모두 달랐다. 과거의 나를 만나면 누구나 기뻐할 것이라는 생각은 틀린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는 지워 버리고 싶은 기억일 수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맞아. 그래서 기억을 돌려주는 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는 거야. 과거에 겪은 고통을 본인 동의 없이 한꺼번에 다시 보여 주면 또 다른 폭력이 될 수 있어."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복원은 자동 재생이 아니다.' 어머니에게서 배운 원칙이었다. 잃어버린 게 모두 좋은 것일 리 없고, 되찾고 싶지 않은 상처도 있을 것이다. 바로 그때 가로등 밑에 선 한 사람이 큰소리로 물었다. "내가 예전에 어떤 사람이었든 지금 여기 있는 나는 내가 맞죠?" 나는 쉽게 답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을 대신해 확정할 권리는 내게 없었다. 그래서 물었다. "지금 무엇을 원하세요?" "조용히 살아가고 싶어요. 나를 자꾸 누군가의 과거라고 부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나는 그 소망을 기록했다. 구태형이 그 소망을 '비효율적인 중복 데이터'라고 부르더라도, 적어도 우리가 가진 장부에는 그대로 남을 것이다. 맞은편에서 권수진이 걸어왔다. 어제 영상에서 보던 작업복 차림이었다. 옆에는 회사원의 옷을 입은 또 다른 권수진이 서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멈췄다. "당신은 누구예요?" 작업복의 권수진이 물었다. "나잖아요." 정장 차림의 권수진이 말했다. "나는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나는 이미 그만뒀어요. 그 뒤로 이직도 했고요." 두 사람의 표정이 동시에 무너졌다. 회사에 남아 반복되던 선택과 그 후 실제 삶을 살아온 사람이 마주친 것이었다. 어느 쪽도 다른 쪽을 가짜라고 부를 수 없었다. "그럼 저는 언제까지 여기 갇혀 있어야 하죠?" 작업복 여성이 물었다. 나는 가까이 다가갔다. "두 분 모두 자신의 말을 남길 수 있어요. 오늘 여기서 다시 선택할 수도 있고요. 다만 어떻게 합칠지 아직 모릅니다." 현실의 권수진이 조심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미안해요. 내가 그때 무서워서 도망갔어요. 당신을 기억하지 못했어. 하지만 그만두고 싶었던 건 사실이야." 작업복의 그녀가 손끝을 맞댔다. 그 순간 두 사람 사이에 짧은 여름 오후의 풍경이 지나갔다. 컴퓨터 앞에서 퇴사 서류를 작성하던 한 사람. 문 뒤에서 그 모습을 감시하던 누군가. 모니터에 뜬 '결제 실패'라는 빨간 글자. [경로 03. 원주인 상호 인지. 반환 방식 협의 가능.] 두 권수진은 한동안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더니 현실의 권수진이 말했다.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우선 오늘은 둘 다 지우지 말아 주세요." 나는 그 결정을 기록했다. 해결하지 못했다는 사실까지 포함해. 그때 서기관이 나타났다. 평소라면 고개를 숙이며 도장을 꺼냈을 사람이었지만 오늘은 얼굴이 창백했다. 한쪽 소매가 흐릿해졌다. "기록 충돌이 통제 범위를 넘었습니다. 경로 01의 원본 우선권 심사가 시작됩니다." "그 심사 안 받겠다고 했잖습니까." "제2정지는 서명자를 자동으로 소환합니다. 구태형이 최초 신원 키를 신청했습니다." "또 제 이름으로요?" 서기관은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자기 이름으로 신청했습니다." 나는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가짜 신분 뒤에 숨어 있던 사람이 스스로 나타나겠다고? 뭔가 잘못됐다. "심사 조건은요?" "차도겸 신원 키를 최초로 소유했던 사람과 현재 사용하는 사람의 동시 출석." "최초 소유자가 구태형이라는 뜻입니까?" "그것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강문석의 단말기가 뜨겁게 달아올랐다. 화면에는 낯선 초대장이 표시됐다. [심리 장소: 0번 보관실.] [관측자: 진서아.] [당사자: 차도겸 외 관련자.] [기한: 두 번째 여섯 시 종료 전.] 유나가 말했다. "이건 덫일 수 있어." "아는데도 가야겠네요." "왜?" "서아 씨 신원 키도 거기서 심사한다고 했잖아요. 게다가 아이가 그곳에 갇혀 있어요." "너 하나를 잃으면 두 사람 다 못 구해." 나는 그녀에게 단말기를 건넸다. "그러니까 제가 혼자 결정하지 않도록 해 줘요. 우리끼리도 동의한 일을 기록합시다." 문에 들어가기 전 형사에게 준비해 둔 증거 전달 요청을 다시 보냈다. 그는 정지 세계 안에서는 움직이지 못했지만, 정지 전에 예약한 메시지는 증거 수신기에 도착해 있었다. 메모에는 매우 현실적인 충고가 적혀 있었다. '현장에서 적은 진술은 가능하면 원문을 유지하십시오. 듣고 싶은 뜻으로 고치지 마십시오.' 나는 피식 웃었다. 형사답게 가장 중요한 것은 거창한 초능력이 아니라 진술의 정확성이었다. 유나는 사람들에게 두 개의 선택지를 설명했다. 구조 요청을 위해 자료를 남기는 것과, 자료를 공개하는 것은 다르다고. 필요한 경우 당사자 동의를 받아 제한된 범위에서만 사용하겠다고. 몇 사람은 그 말을 듣고도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다. 나는 그것이 구조를 거부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분명히 적었다. 가로등 옆에 앉은 청년이 물었다. "이름 안 쓰면 아무도 저를 못 찾는 거 아닌가요?" "우리는 당신을 숫자로만 부르지 않겠습니다." 내가 대답했다. "당장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여기서 한 말을 가지고 계속 찾을 겁니다. 나중에 당신이 원하면 그때 알려 주세요." 청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잊어버린 것은 이름일 수도, 이름을 말하면 누군가 자신을 해칠 거라는 두려움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아직 차이를 알지 못했다. 그 순간 다른 사람이 유나의 손을 붙잡았다. "저 문 안에 들어가면 우리도 끌려가는 거 아니죠?" 유나는 단호하게 대답했다. "우리를 따라오지 마세요. 제가 여기 남아서 여러분 진술을 지킬게요."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나는 혼자 가나요?" "원래는 같이 가려 했어. 하지만 여기 사람이 더 많아. 한쪽에 한 명은 남아야지." 그 말이 맞았다. 우리는 서로에게 무모한 동행을 증명할 필요가 없었다. 누군가 현장에 남아 사람들을 지키는 일도 구출의 한 부분이었다. 나는 손을 들어 그녀와 약속했다.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일단 사람의 의사부터 묻겠다고. 우리는 사거리 한쪽에 모인 사람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누군가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고, 누군가는 구태형의 장부를 공개해 달라고 했다. 전부 다른 목소리였다. 나는 한 사람을 대표한다고 선언하지 않았다. 대신 서기관에게 요구했다. "심리장을 열되, 여기 있는 사람이 모두 출석한 것으로 취급하지 마세요. 각자의 의사는 따로 확인해야 합니다." 서기관은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대리 동의 금지.] 멀리서 0번 보관실의 나무문이 나타났다. 열린 문 안에서 서늘한 공기가 흘러나왔다. 그 안에는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발소리가 있었다. 나무문이 열리기 직전 유나가 내 귀에 속삭였다. "도겸, 너 예전에 저 문 안에서 거울을 봤어. 그때 이후로 여섯 번 실패했어." "오늘은 안 볼 겁니다." "아니. 이번에는 봐야 해. 다만 거울이 보여 주는 말을 네 것이라고 믿지 마." 나는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봤다. 유나는 가로등 아래 사람들에게 차례로 질문하고 있었다. 부산에서 나타난 여성이 자기 집 주소를 설명했고, 다른 사람은 말을 할 수 없다는 듯 고개만 저었다. 유나는 재촉하지 않았다. 아무도 영웅을 기다리며 제자리에서 얼어 있지 않았다. 각자가 할 수 있는 만큼 자신의 선택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 장면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었다. 기억이 사라지더라도 내가 다시 읽고 알아볼 수 있도록, 나는 수첩 한쪽에 그 풍경을 적었다. '멈춘 세계의 사거리. 사람들은 이름표보다 먼저 서로의 목소리를 들었다.' 문 안쪽에서 구태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환영합니다. 이제 진짜 원본을 결정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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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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