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있는 정지 시설을 찾아갈 때 가장 먼저 부딪힌 문제는 교통이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는 아무리 서둘러도 순간 이동을 할 수 없다. 내게 있는 능력은 시간을 멈추는 것이지 기차를 공짜로 만드는 것이 아니었다. 게다가 오늘 오후 여섯 시에 경로가 사라진다면 현장 도착까지 기다릴 수도 없었다.
"원격으로 확인하면 안 돼요?" 내가 물었다.
강문석이 노트북을 회전시켰다.
"직접 연결하면 구태형에게 우리 주소를 알려 주는 겁니다. 하지만 부산 현장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장치로 신호를 보내면 받을 수는 있어요."
남기혁 형사는 부산의 수사 협조 담당자에게 연락했다. 나는 그가 전화로 사건을 설명하는 걸 들었다. '한 시간 멈추는 사무실에 동명이인의 신원 기록이 존재한다'는 문장을 듣고도 전화를 끊지 않는 경찰 동료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상대도 믿기 어렵겠죠." 내가 말했다.
"이상할수록 더 정확하게 말해야 합니다."
형사는 발신된 영상 속 장소를 확인했다. 오래된 물류회사 건물이었다. 장기간 빈 사무실로 신고된 곳인데 한 달 전부터 야간에 불이 켜진다는 민원이 있었다. 구태형이 '사업'이라고 부르던 흔적 중 하나일 수 있었다.
현장 영상을 받기 전 우리는 원격 확인의 위험도 함께 따졌다. 카메라에 찍히는 것이 실제 현장인지 보관국이 재생한 영상인지 구분할 기준이 필요했다. 기혁 형사는 현장 담당자에게 외부에서 정해 둔 절차를 따르라고 했다. 건물 밖 도로명 표지판을 비추고, 주변 시각을 서로 다른 시계로 확인하고, 그날 발급한 문서의 번호를 보여 주는 일이었다.
강문석은 오래된 아날로그 시계가 영상 한쪽에 계속 나오게 했다. 전자 시각은 쉽게 바뀌어도 실제 움직이는 초침의 진동을 통째로 속이기는 어렵다고 했다. 물론 그마저 절대적인 증거는 아니었다. 이미 시간의 기록이 뒤섞이고 있는 세계에서 무조건 믿어도 되는 기계는 없었다.
"이렇게까지 확인해야 합니까?" 현장 담당자가 물었다.
기혁 형사가 대답했다. "확인할 수 있는 걸 확인해 두면 나중에 확인할 수 없는 일이 나와도 덜 흔들립니다."
나는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장애 대응 지침이었다. 서버가 죽었을 때도 로그와 실제 상태부터 맞춰 보지 않으면 엉뚱한 서버를 재시작하게 된다. 다만 오늘 우리 앞에 있는 것은 서버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영상의 화면 구석에는 누군가 찢어 놓은 시간표가 붙어 있었다. 오전 근무, 오후 근무, 야간 근무. 모든 근무의 종료 시간이 오후 여섯 시로 바뀌어 있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근무표였지만 회사는 그 시간표를 급여 계산에 사용했다. 정지된 시간에 일한 기록은 없는 것으로 처리하고, 그 시간에 내린 퇴사 결정 역시 '실제 근무 중의 결정이 아니다'라며 무효 처리했다.
"이건 노동 문제이기도 하네요." 내가 중얼거렸다.
"사람 시간을 훔쳐 팔았다는 증거죠." 형사가 대답했다.
나는 화면 속 복도 끝의 '퇴근 시 출입카드를 꼭 태그하세요'라는 안내를 보고 씁쓸하게 웃었다. 도망가려고 문을 열어도 시스템은 다시 입장으로 표시했을 것이다.
부산 경찰이 먼저 문을 열었다. 안전 확인을 마친 뒤 촬영을 시작했다. 영상이 끊겼다가 다시 이어졌다. 벽 한쪽에는 시계 여덟 개가 일렬로 붙어 있었고, 가운데 의자 하나가 바닥에 볼트로 고정되어 있었다.
"의자에 누가 있습니까?" 기혁 형사가 물었다.
"현재는 빈 의자입니다." 현장 담당자가 대답했다. "하지만 좌석에 체온이 남아 있습니다. 책상 위 커피도 따뜻합니다."
유나가 모니터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의자 다리 아래 보여 주세요. 종이끈 같은 게 묶여 있나요?"
화면이 아래로 내려갔다. 검은 띠가 의자 밑에 걸려 있었다. 어머니 손목에 있었던 추심 표식과 모양이 같았다.
"누군가 묶여 있었군요."
"언제까지인지는 몰라요." 유나가 말했다. "경로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마지막 의사를 붙잡고 있을 수도 있어."
나는 물었다.
"그럼 의자가 빈 게 꼭 좋은 신호는 아니겠네요."
"맞아. 이미 구조됐을 수도 있고, 아예 사라졌을 수도 있어."
현장 담당자가 책상에서 메모지 하나를 발견했다. 종이에는 '나는 이 일을 그만두겠습니다'라는 문장이 적혀 있었다. 서명은 차도겸이었다. 그 글씨를 보는 순간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진짜 내 필체라면 저 사람은 무슨 일을 그만두고 싶었던 걸까.
남 형사가 지시했다.
"원본 봉인하고 사진부터 보내 주세요. 인물 출입 여부는 단정하지 말고요."
유나는 동그라미 속 날짜를 확대했다. 메모지에는 기록이 적힌 날과 메모가 실제 작성된 날이 서로 달랐다. 작성일은 7개월 전, 출력일은 오늘이었다.
"이건 우리가 만든 편지가 아니야." 그녀가 말했다. "일곱 달 전에 정지 세계에서 남긴 사직서야."
"사직서가 왜 부산까지 왔죠?"
"경로가 이 사람의 행동을 계속 재생하고 있는 거야. 그 사람이 실제로 돌아온 건 아닐지도 몰라."
그 의자는 흔한 사무용 회전의자처럼 보였다. 팔걸이 하나가 닳았고 등받이 아래에는 직원이 붙인 작은 스티커가 있었다. '안전 제일'. 어처구니없게도 안전이라는 문구가 붙은 곳에서 사람의 결정을 가둬 놓은 것이다.
나는 화면을 확대하며 책상 위의 물건들을 살폈다. 개봉하지 않은 간식, 업무 수첩, 생일 축하 카드. 카드 날짜는 오래전이었다. 수첩에는 '오늘은 꼭 사표를 내겠다'는 문장이 반복돼 있었다. 어떤 날은 글씨가 단정했고, 어떤 날은 종이가 찢어질 만큼 세게 눌려 있었다.
같은 문장을 되풀이했다고 해서 같은 감정으로 살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반복할수록 두려움이 커졌을 것이고, 문밖의 세상은 자신 없이 흘러갔을 것이다. 나는 그 의자에 앉은 사람을 시스템의 오류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다.
"정지된 선택에 감정이 남을 수 있어요?" 내가 물었다.
유나는 잠시 생각했다. "그걸 우리가 단정할 수 있을까? 기억이 계속 쌓이면 경험이 되는 거잖아. 우리가 만난 사람들이 자기가 원하는 걸 말하고 있어. 그건 실제로 들은 말이야."
나는 그녀의 답을 기록했다. '독립 생명 여부 미확정. 그러나 소통 가능한 주체의 의사 보존.' 차갑게 들리는 문장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눈앞에서 도움을 청하는 대상을 마음대로 삭제하는 프로그램보다는 나았다.
나는 잠깐 생일 카드에 쓰인 글씨를 읽었다. '수진아, 우리 회사에서 제일 먼저 퇴근하는 사람이 되길.' 처음에는 평범한 농담이었을 것이다. 그 농담이 그 사람을 일곱 달이나 가두는 저주가 된 셈이었다.
그때 화면 속 의자가 움직였다. 누가 앉지도 않았는데 등받이가 뒤로 젖혀졌다가 원위치로 돌아왔다. 커피 잔 표면에 잔물결이 생겼다. 부산 경찰이 뒷걸음질 쳤다.
영상 하단에 문장이 떴다.
[경로 03. 사용자의 마지막 선택 반복 중.]
[마지막 선택: 퇴사.]
나는 숨을 멈췄다. 퇴사하려는 결정을 붙잡고 영원히 같은 순간을 반복시킨다니. 어떤 회사의 인사팀이 본다면 탐낼 법한 기술이었다. 물론 내가 본다면 최악의 기술이었다.
"의자를 부수면 풀리나요?" 현장 담당자가 물었다.
"손대지 마세요!" 나는 반사적으로 외쳤다. "그 의자가 통로일 수 있어요."
화면 너머 사람들이 물러났다. 강문석이 저장장치에서 작은 프로그램을 꺼냈다. 그는 사람이 남긴 동의 이력을 읽기만 하는 기능이라고 했다. 바꾸거나 삭제할 권한은 없었다.
"해당 경로에 대고 질문을 할 수 있어요. 대답을 한다면 누군가 아직 남아 있는 겁니다."
나는 마이크 앞으로 다가갔다.
"여기 있는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습니까?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금 나가고 싶습니까?"
한동안 아무 변화도 없었다. 의자에 걸린 검은 띠만 미세하게 떨렸다. 나는 두 번째 질문을 했다.
"당신이 그만두고 싶다고 했던 일을 누가 계속 시키고 있습니까?"
메모지 위의 글자가 바뀌었다.
'그만두겠다는 말을 일곱 달째 하고 있어요.'
나는 손가락을 꽉 쥐었다. 저 사람에게는 매일 같은 퇴근 시간이 돌아왔다. 회사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선택이 삭제되기 직전의 기록으로 남아, 그 사람 자체를 반복시키고 있었다.
"당신이 원하면, 이 반복을 멈추는 절차를 찾겠습니다. 다만 그 전에 현재 몸이 어디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몸은 밖에 있어요. 하지만 밖의 나는 퇴사한 걸 기억하지 못해요.'
유나가 나를 보았다. 반복하는 건 사람의 영혼이 아니라 잘라낸 결정이었다. 그런데 그 결정에도 자신이 갇혔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연속된 기억이 있었다. 생명이라고 단정할 수도, 단순 파일이라고 지워 버릴 수도 없었다.
나는 세 번째 질문을 했다.
"당신이 밖에 있는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까?"
잠시 후 종이에 문장이 적혔다.
'내가 그만둘 권리를 가진 사람이라는 걸 알려 주세요.'
그때 붉은 경고가 사라졌다.
[경로 03. 삭제 보류. 소유자 의사 확인 필요.]
남 형사는 그 문장을 별도 증거로 기록했다. 우리는 부산 현장에서 아무것도 파괴하지 않았다. 대신 경찰이 원본 장치와 메모지의 보존 조치를 했다. 구태형이 마감 시간을 강요했지만, 질문 세 개가 강요보다 오래 버틴 셈이었다.
우리가 화면을 지켜보는 동안 붉은 삭제 대기 표시는 회색으로 바뀌었다. 지워질 뻔한 기록에 '소유자 확인 필요'라는 글자가 붙은 것뿐이었다. 당장 누군가 집으로 돌아온 건 아니었지만, 돌아갈 가능성을 누가 멋대로 없애지는 못하게 됐다.
나는 부산 담당자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했다. 의자를 고장 난 장비처럼 폐기하지 말고 수사 종료 전까지 현장 그대로 보존해 달라고. 그 담당자는 씁쓸하게 말했다. "이상한 일은 많이 봤지만 빈 의자를 인질처럼 보호하라는 부탁은 처음입니다."
"저도 처음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마지막 말이 거기 남아 있어요."
그는 대답 대신 현장 봉인지를 보여 줬다. 사진 속에는 아직 따뜻한 커피와 닳은 팔걸이가 함께 찍혔다.
영상 통화가 끝나려는 순간 의자의 뒤편 벽이 잠시 열렸다. 아무도 없던 곳에 서 있는 사람이 보였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 그녀는 카메라를 똑바로 바라봤다.
"차도겸 씨."
나는 멈췄다.
"누구세요?"
"내 이름은 권수진이에요. 그리고 당신 이름을 처음 빌린 사람입니다."
화면이 꺼졌다.
제3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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