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퇴근 기록을 손에 들고 있으면 회의실 예약부터 취소하고 싶어진다.
나는 회사에서 열 시 회의를 하나 취소했다. 사유에는 '인사기록 오류 조사'라고 썼다. '미래의 내가 이미 퇴근했으므로 참석 불가'라고 적기에는 인사팀과 충분히 친해지지 못했다.
진서아에게 연락했다. 전날 밤 그 여자는 회사에 가지 말라고 했다. 오늘 아침 내가 회사에서 만난 닮은 사람에 대해서도 알고 있는지 확인해야 했다. 통화 연결음은 세 번 울렸다.
"도겸, 지금 어디야?"
"회사요."
"어제 경고했잖아."
"정확히는 여섯 시에 오지 말라고 했지, 오전 열 시에 오지 말라는 말은 없었잖아요."
"그렇게 말꼬리 잡다가 네가 여섯 번이나—"
그녀가 말을 멈췄다. 익숙한 문장이었다. 모두가 잊은 여섯 번의 시도, 한 시간에 담긴 실종자들, 서아의 기억. 누군가 말문을 닫는 순간이면 그 뒤에 엄청난 일이 숨어 있다는 걸 이제 알고 있었다.
"서아 씨. 제가 방금 미래 날짜의 퇴근 기록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그럼 아직 지울 수 있어." 그녀가 말했다. "오늘 오후 다섯 시 반 전에 로그를 외부로 빼. 원본을 보존하란 뜻이야. 네가 가지고 있는 복사본은 도움이 안 돼."
"그걸 어떻게 알죠?"
"내가 그 로그를 설계했으니까."
수화기에서 짧은 잡음이 났다. 나는 창가로 걸었다. 회사 건물 반대편 유리벽에 내 모습이 비쳤다. 반사된 나는 전화기를 왼손에 들고 있었다. 실제 내 손은 오른손이었다.
"서아 씨. 지금 제 반사된 모습이 다르게 움직여요."
"거울 보지 마. 기록이 널 원본으로 착각하면 현재 몸까지 끌어가."
나는 즉시 커튼을 쳤다. 정확한 메커니즘은 이해하지 못했지만 사용자가 치명적 오류 화면을 보지 않도록 하는 작업에는 익숙했다.
점심 무렵 나는 잠깐 밖으로 나가 커피를 샀다. 평소 같았다면 카페 주문을 기다리며 업무 메신저를 확인했을 것이다. 오늘은 주문번호가 내 이름 대신 불리는 게 이상하게 편안했다. '143번 고객님'이라면 누가 나를 대신해서 주문을 받더라도 음료가 두 잔 생기는 정도의 문제로 끝날 테니까.
계산대 옆에는 작은 분실물 상자가 있었다. 장갑 한 짝, 연필, 무선 이어폰 케이스. 물건을 찾아가는 사람은 자신의 물건임을 설명해야 했다. 어떤 이는 색깔을 말했고, 어떤 이는 장갑 속에 적힌 이니셜을 보여 줬다. 나는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알았다. 주인이 누구인지 모를 때 상자 전체를 첫 번째 사람에게 넘겨주지는 않는다. 보관국은 바로 그 기본 원칙을 어겼다.
카페에서 나오는데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그분은 오늘 아침에 냉장고를 열었다가 뚜껑이 다른 용기 하나를 발견했다고 했다. 그 안에 어린아이용 도시락이 있었다. 언제 만든 건지 모르겠고, 음식은 아직 따뜻하다고 했다. 나는 버리지 말고 그대로 두라고 부탁했다. 형사에게 현장을 확인해 달라는 메시지도 보냈다.
"누구 도시락인지 알고 싶어요?" 어머니가 물었다.
"네. 하지만 그 아이에게 먹으라고 줄 수 있는 날을 더 알고 싶어요."
어머니는 대답 대신 웃었다. "그럴 때는 반찬을 새로 만들어 줘야겠네요."
그 말이 사무실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에 남았다. 과거의 음식을 돌려받는다고 배가 고프던 아이가 구원받는 건 아니었다. 지금의 밥 한 끼를 먹을 수 있도록 밖에 나오는 게 더 중요했다.
유나는 강문석을 데려왔다. 그는 오래된 노트북과 암호화 장치를 들고 있었다. 둘 다 인터넷에 연결되지 않았다.
"여덟 개 경로는 사람 수가 아닙니다."
강문석은 화면에 선을 여덟 개 그렸다. 끝에는 각각 원이 있었다.
"보관국은 같은 신원 키를 여덟 경로에 걸었습니다. 서울, 부산, 대전, 광주 네 곳에 실제 정지 시설이 있습니다. 남은 네 곳은 좌표가 없어요."
"0번 보관실 같은 곳인가요?"
"그럴 수 있지만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종이 위의 위치가 사람이 있는 곳이라는 보장은 없어요."
첫 번째 선 아래에는 '현실 차도겸', 두 번째에는 '원본 경유', 세 번째에는 '불명', 네 번째에는 '불명'이라는 글자가 붙었다. 나머지 네 개는 비어 있었다.
"여덟 개를 모두 끊으면 어떻게 됩니까?"
"시스템은 당신이라는 신원 키를 종료로 판단할 겁니다."
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그럼 저는요?"
"당신의 몸은 살아 있겠죠. 하지만 모든 사람이 당신을 기억하게 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근무 기록, 의료 기록, 가족 관계를 포함해서 연결된 자료가 한꺼번에 무효가 될 수도 있어요."
기혁 형사가 말을 받았다.
"그래서 차단보다 출처 확인이 먼저입니다. 잠깐 편하자고 주민등록 기록까지 지울 수는 없죠."
회의실 탁자에는 우리 넷이 앉아 있었다. 이상하게도 모두의 결론이 똑같았다. 덜 아는 상태에서 결론을 내리지 않기. 가장 용기 없는 선택처럼 들렸지만 여기까지 오며 그보다 필요한 선택을 나는 본 적이 없었다.
"여덟 경로 각각 어떤 사람이 이용하는지, 본인이 연결에 동의했는지 확인합시다."
기혁 형사는 수첩을 펼쳤다.
"이름이 아니라 본인의 의사를 증언으로 남길 방법부터 정합시다."
유나는 진서아가 설계한 보조 로그가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보관국이 이름을 바꿔 붙일 수는 있어도 누군가 그날 선택한 행동까지 과거로 돌아가 바꾸는 것은 어렵다고 했다. 단, 기록을 지킬 수 있는 독립된 증인이 있어야 했다.
"우리가 여덟 개를 찾아가서 질문해야 한다는 뜻이군요."
"그렇지. 사람을 발견하면 구조하고, 단순한 기록이면 출처를 확인하는 거야."
우리는 경로별 검증 순서를 정했다. 첫째, 실물이 남아 있는지 확인한다. 둘째, 그 실물과 다른 사람이 같은 기억을 갖고 있는지 비교한다. 셋째, 당사자에게 무엇을 원하는지 묻는다. 넷째, 해당 기록에 누가 접근했는지 확인한다. 서류의 제목이 아니라 서류가 만들어진 과정을 봐야 한다는 점에서는 평범한 보안 감사와 다르지 않았다.
강문석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도 장치를 내게 넘겨주지 않았다. 그가 가진 접근 키는 그 사람의 것이었다. 예전처럼 서로 믿는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게 열쇠를 공유할 수 없다는 뜻이다. 나는 대신 내가 가진 증거를 별도의 장치에 기록했다.
"서아 씨한테는 연락했습니까?" 내가 물었다.
유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답장이 늦어. 뭔가 막혀 있어. 그래도 그 애가 남긴 기본 규칙은 있어."
그녀는 메모를 펼쳤다.
'기억을 잃은 사람에게는 기억을 증명하라 요구하지 말 것.'
'기억을 가진 사람이 그 기억만으로 타인의 의사를 대리하지 말 것.'
'복원할 수 없는 항목은 삭제하지 말고 보존할 것.'
세 문장 전부 당연한 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당연한 일을 지키지 못해서 수천 명이 피해를 입었다. 나는 이것을 동료들의 개발 가이드에 넣을 수 있겠느냐고 농담했다.
"넣어도 돼. 다만 팀장한테 걸리면 여섯 시 전에 배포하라고 할걸." 유나가 말했다.
"배포 시간은 엄수해야죠. 세계가 멈추는 날에도 장애 대응은 해야 하니까."
강문석이 피곤한 얼굴로 웃었다. 오래된 원칙을 다시 말하는 동안 우리가 잠깐이나마 평범한 사람들이 된 것 같았다. 그때까지는,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노트북 화면에 아홉 번째 선이 나타났다. 누가 키보드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자동으로 그어진 회색 선이었다.
[경로 09. 제3자 관측 중.]
그 옆에 이름이 떴다.
'남기혁'.
형사는 자신의 이름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대신 시계를 확인했다.
"어제부터 누군가 경찰서 기록까지 들여다본다는 증거가 나왔네요."
"형사님도 사라지는 거 아닙니까?"
"모르죠. 그러니까 사라지기 전에 자료를 넘기면 됩니다."
그가 태연하게 말했다. 이 세계에서 가장 비범한 초능력은 어쩌면 남기혁 형사의 침착함일지 몰랐다.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 번호는 가려져 있었다.
"차도겸 씨." 구태형의 목소리였다. "여덟 개 중 하나가 오늘 오후 여섯 시에 터집니다. 당신은 어디까지 지킬 수 있을까요?"
"협박을 할 거면 구체적인 조건부터 적으세요."
"좋아요. 조건은 간단합니다. 하나를 내놓으세요. 그럼 나머지 일곱은 그대로 둡니다."
나는 강문석의 화면을 보았다. 거기에 쓰인 '사람 수 미확인'이라는 문장이 유독 선명했다.
"숫자를 가지고 사람 목숨을 흥정하지 마세요."
"당신은 끝까지 계산을 거부하네요."
"아닙니다. 계산을 제대로 하자는 겁니다. 아직 단위도 확인 안 됐잖아요."
그가 낮게 웃었다.
"그러니까 사업을 망치는 개발자라는 겁니다. 그럼 여섯 시에 부산에서 시작하죠."
구태형의 통화 녹음을 형사에게 전달했다. 위협의 구체적 대상이 누군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직접 부산 경로를 언급한 건 수사 방향을 좁힐 단서였다.
강문석은 경로의 색 변화가 뜻하는 바를 살폈다. 빨간색은 곧바로 삭제한다는 표시가 아니라 관리자가 삭제를 예약했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지연할 수 있는 제도적 이의 신청 경로를 찾았다. 파일을 지우는 버튼보다 그 버튼을 누를 권한이 있는 사람을 확인하는 게 우선이었다.
"일단 유효한 질문 하나를 던지면 좋겠네요." 내가 말했다. "누가 삭제를 요청했는지, 요청한 사람에게 그 사람의 선택을 지울 자격이 있는지."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사건에서도 적법한 권한이 없는 사람의 명령은 그대로 따를 수 없는 법이었다.
전화가 끊기자 부산 경로가 붉게 변했다.
[경로 03. 삭제 대기.]
유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도겸, 이번엔 우리에게 시간이 없어."
"시간이 없을 때가 제일 위험해요. 남이 써 놓은 선택지만 고르게 되니까."
나는 노트북을 닫지 않았다. 대신 경찰서와 부산에 있는 실종자 가족 연락망부터 확인했다. 경로가 가리키는 곳이 어디인지 파악하려면, 그곳에 정말 누가 살고 있는지를 먼저 알아야 했다.
그때 부산의 한 번호에서 영상통화가 걸려 왔다. 화면에는 사람이 아니라 텅 빈 사무실이 나왔다. 칠판 위에 누군가 커다랗게 적어 놓은 문구가 보였다.
'여덟 번째는 선택한 사람이 아니라, 선택당한 사람이다.'
제3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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