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나 여기 있어."
문 안쪽에서 들린 목소리는 어린아이 같았다. 그런데 가슴 깊은 곳에서는 아주 먼 옛날에 들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는 손잡이를 붙잡지 않았다. 이번만큼은 상대가 직접 열 수 있도록 기다리고 싶었다.
"들려." 내가 말했다. "안에서 괜찮아?"
"괜찮은 날도 있었고, 안 괜찮은 날도 있었어."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아온 시간의 무게가 들어 있었다. 그 아이를 '기록'이나 '대체자'라고 부르던 서류들은 어디에서도 이런 목소리를 담아 내지 못했다.
"이름은?"
"아직 말하면 안 돼."
"그럼 안 물을게."
잠시 침묵이 흘렀다. 나무문 너머에서 누군가 앉는 소리가 났다. 나는 맞은편 바닥에 주저앉았다. 서로 보지 못하는 채로 문을 사이에 두고 이야기하는 두 사람. 이상하게도 지금까지 어떤 감사실보다 편안했다.
"너, 밖에 나가고 싶어?"
"응. 그런데 나가면 다른 사람이 사라질까 봐 무서워."
"누가 그런 말을 했어?"
"매일 관리자가. 하나만 고르면 나머지는 남을 수 없다고."
"그 사람 말, 믿지 마. 오늘 엄마가 보여 줬잖아. 두 사람을 동시에 살리려고 하는 선택도 가능하다고."
"엄마?"
문 너머의 숨소리가 변했다.
"엄마 기억해?"
"아니." 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나도 중요한 걸 많이 잊었어. 그런데 지금 다시 알아가는 중이야."
"그럼 엄마는 어떤 사람이야?"
나는 오래 생각했다. 기억을 잃기 전 어머니를 묘사하기는 어려웠다. 지금 어머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채 밥을 차려 줬고, 누군가가 강요한 계약을 거절했다. 그래서 그 사실을 그대로 말했다.
"밥을 먹었냐고 묻는 사람. 모르는 사람한테도 밥을 차려 주는 사람. 그리고 두 사람 중 하나를 버리라고 하면, 그 말을 한 사람한테 왜 그런 선택만 있냐고 물어보는 사람."
문 너머에서 작은 웃음이 들렸다.
"엄마 맞네."
그때 서기관이 다급히 다가왔다. 손에는 방금 찍힌 집행 중지 통지서가 있었다.
"차도겸 씨. 대화는 여기까지입니다. 운영 장치의 잔여 기동 시간이 끝나고 있습니다."
"운영 장치가 꺼지면 어떻게 됩니까?"
"불법 추심을 중지하도록 재설정됩니다. 하지만 0번 보관실은 별도입니다. 그 안에 남은 주체의 외부 귀환은 아직 인가되지 않았습니다."
나는 눈앞의 문에 손바닥을 댔다.
"그럼 오늘 할 일은 문을 억지로 부수는 게 아니군요. 우선 이 아이의 위치와 의사를 기록하고, 다음에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그 약속을 몇 번 했는지 알아?" 아이가 물었다.
"몰라."
"일곱 번. 넌 일곱 번 와서 돌아오겠다고 했어."
가슴이 아팠다. 지금까지 사라진 여섯 번의 기억과 일곱 번째 현재의 내가 겹쳐졌다. 내가 무언가를 잊을 때마다 누군가는 약속을 기다린 것이다.
"미안해."
"사과하지 마. 이번에는 종이에만 적어 두지 말고, 다른 사람한테도 말해 줘."
나는 수첩을 펼쳤다. 그리고 남기혁 형사에게 전화 연결을 요청했다. 일반 전화는 정지 세계에서 통하지 않지만, 형사가 맡은 증거 수신기의 작은 불빛이 벽에서 깜박였다. 내가 말하는 단어가 실제로 전달되는지 알 수는 없었다. 그래도 기록할 수 있는 장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요했다.
"남 형사님. 0번 보관실 안에 아직 한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선택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귀환을 위해 보호 절차가 필요합니다."
우편함 속에 형사의 짧은 답장이 나타났다.
'접수. 이름 확인보다 안전 확인 우선. 다음 수사 대상 추가.'
나는 원본에게도 같은 내용을 읽어 줬다. 원본은 잠깐 침묵했다가 말했다.
"이제야 조금 다르게 행동하네."
"전에도 형사님한테 말 안 했어요?"
"전에는 네 기억만 믿고 돌아오겠다고 했거든. 기억이 사라지면 약속도 함께 사라졌지."
나는 웃었다.
"그럼 이번에는 저 혼자 지키지 않겠습니다."
서기관이 내 수첩에 도장을 찍었다.
[0번 보관실: 미귀환 주체 보호 신청 접수.]
기계가 낮게 울렸다. 천장의 오래된 시계들이 하나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목에 표시된 정지 시간은 05분 19초. 오늘은 더 이상 시간을 연장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이 언제나 내 것인 양 빌려 쓰다 잃어버린 것이 너무 많았으니까.
"나중에 다시 올게." 내가 말했다.
"이번에는 믿어 볼게." 아이가 대답했다.
문 앞에서 일어나며 나는 원본에게 마지막으로 질문했다.
"0번 보관실에 있는 아이, 당신도 본 적 있어요?"
"응. 처음 나를 여기 가둔 사람이 보여 줬어. 그런데 나는 매번 이름부터 확인하려 들었지. 네가 아까 말을 걸던 방식은 생각 못 했어."
"당신한테도 이름이 그렇게 중요했습니까?"
"누군가 나를 복제했다고 믿었으니까. 진짜인 쪽이 남아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다른 아이를 보는 순간에도 경쟁자로 여겼던 거야."
나는 그 말을 듣고 원본을 쉽게 비난할 수 없었다. 나 역시 10화에서 그를 처음 봤을 때 두 사람 중 누가 사라질지 두려워했다. 두려움은 사람이 가진 작은 것을 지키려는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그 작은 것이 타인의 생존권이 되면 얼마든지 잔인해질 수 있다.
"그래도 오늘은 증인이 생겼어요."
"그 형사?"
"형사님만이 아니에요. 유나 씨도, 돌아온 사람들도 자기 목소리로 말했죠. 엄마도요."
원본은 길게 침묵했다.
"우리 엄마가 나를 기억할까?"
"모르죠. 저도 못 알아봤으니까."
"그럼 어떻게 엄마라고 부를 수 있어?"
"저도 물어봤어요. 그런데 엄마가 저를 모른다고 하면서도 밥을 차려 줬거든요. 그게 대답인 것 같아요."
우편함 너머에서 작은 웃음이 났다.
"배고프네. 여기선 밥을 못 먹어서."
"나오면 같이 먹어요."
"약속은 기록해 둬."
나는 수첩 맨 뒤에 적었다. '원본과 밥 먹기. 0번 보관실 사람과도 같이.' 사람을 구해야 하는 이유가 갑자기 구체적이 되었다. 나중에 셋이 앉아 무엇을 먹을지는 아직 몰랐지만, 바로 그런 하찮은 계획이 살아 있다는 증거처럼 느껴졌다.
우리가 출구로 향하려는데 복도 끝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구태형이었다. 구겨진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고 넥타이는 풀려 있었다. 그가 들고 온 서류가방에서는 빨간 종이가 튀어나와 있었다.
"제법 대단하군요, 차도겸 씨. 운영 승인을 무효로 만들어 버리고."
"당신이 서류를 위조했으니까요."
"그 말은 좀 정확히 합시다. 내가 설계한 시스템은 서류를 위조한 게 아닙니다. 서로 다른 기억을 같은 사람의 것처럼 묶은 거죠. 여러분도 그 편이 훨씬 편했잖아요."
"편했던 건 당신뿐입니다."
그가 미소 지었다.
"오늘은 내가 졌다고 해 두죠. 하지만 한 가지는 놓쳤어요. 시간이 멈추는 곳은 이곳뿐이 아닙니다."
그는 가방에서 다른 지역의 서류 몇 장을 꺼냈다. 부산, 대전, 광주. 같은 양식의 기록들이었다. 다른 시각에 멈춘 사람들, 다른 이름의 보관실, 다른 방식으로 기록된 실종 신고.
"이게 다 뭡니까?"
"당신 아버지가 발견한 건 고장 난 시계 하나가 아니었어요. 문이 여러 개라는 사실이었죠. 나는 그걸 사업으로 만들었고."
유나가 그의 앞을 막아섰다.
"계약 무효가 된 사람들부터 돌려놔."
"정확히는 추심만 중지됐죠. 나머지 장부는 원본이 없으면 복원도 못 해요."
그는 강문석이 남긴 저장장치를 가리켰다.
"그 로그를 열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두 명 있습니다. 한 사람은 0번 보관실에 남아 있고, 다른 사람은 내가 데리고 있죠."
나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실제 증거와 일치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구태형은 늘 진실 사이에 거짓말을 끼워 넣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보여 준 서류를 마음속에 저장해 두었다. 주장과 사실을 나중에 대조하면 된다.
"그 두 번째 사람이 진서아입니까?"
구태형이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답이 되는 경우가 있다. 나는 더 묻지 않았다.
5분도 남지 않았다. 구태형이 뒤로 물러났다. 그가 사라진 곳에는 문서 한 장이 남았다.
[전국 제6시 연결망: 개방 예정.]
내가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을 막을 수는 없었다. 유나는 한쪽 손에 두 사진을 쥐고 있었다. 원본이 있는 우편함은 닫혔고, 작은 아이가 있던 방에도 불빛이 꺼졌다. 나는 두 문 앞에 각각 같은 문장을 적어 놓았다.
'오늘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그러나 네가 원하지 않는 선택은 하지 않을게.'
지상으로 올라온 뒤 우리는 벤치에 앉아 정지가 풀리기를 기다렸다. 나는 손목시계가 0으로 떨어지는 동안 잃어버릴 기억을 하나씩 떠올리려 애썼다. 어머니 목소리, 아버지 손의 온도, 진서아와의 약속. 이미 사라진 것들 사이에서 또 무엇이 없어질지 알 수 없었다.
19시 정각.
버스가 움직였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돌아왔다. 이번에는 멀리서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 왔다.
"저기요. 집에 잘 돌아왔어요. 경찰분이 연락처를 알려 주셨는데…… 오늘 밤에 와서 밥 먹을래요?"
나는 하늘을 올려다봤다.
"네. 갈게요."
"그리고 있죠." 어머니가 덧붙였다. "이상하게 꿈에서 아이가 둘 나왔어요. 둘 다 잘 데려와야 할 것 같아요."
내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목소리는 여전히 낯설었다. 그러나 그 낯선 사람이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나는 전화기를 잠시 무릎 위에 놓았다. 어머니가 집에 돌아왔고 적어도 오늘 밤은 새로운 기억 추심이 멈췄다. 모든 것이 해결된 건 아니었다. 돌아오지 못한 아이가 있고, 보관실의 원본도 여전히 문 뒤에 있었다. 이미 지워진 수많은 기억은 누가 어떻게 돌려줄지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처음으로 오늘 한 일을 전부 잃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형사에게 짧게 안부를 보냈고, 유나에게도 고맙다고 말했다. 다음 문제를 풀기 전에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그게 지금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통화를 마치자 새 메시지가 도착했다. 발신자는 진서아였다.
'도겸. 네가 오늘 한 일은 기록으로 남았어. 잘했어. 그런데 내일은 여섯 시에 회사에 가지 마.'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왜?'
문자 답장은 아주 짧았다.
'내일은 여섯 시가 두 번 와.'
그 순간 휴대전화 위쪽 시각 표시가 잠깐 흔들렸다.
19:00.
18:00.
19:00.
그리고 화면 아래에서 처음 보는 경고가 떠올랐다.
[제2정지 시간 동기화 시작.]
[연결 대상: 차도겸 — 총 8명.]
제30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