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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29화
PAYLUA ORIGINAL · 제29화

29화. 두 아이를 살린 계약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21자

오프라인 책장
어머니가 사라졌다. 나는 손목시계를 내려다봤다. 남은 정지 시간은 28분 46초. 어머니가 끌려갔다면 아직 보관국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문을 향해 달려가자 유나가 어깨를 붙잡았다. "도겸, 멈춰." "지금 엄마를 데려가잖아요!" "아무 문이나 열면 그분이 어디로 갔는지 영영 못 찾아." 나는 겨우 발을 멈췄다. 어머니는 낮부터 나를 알아보지 못했고, 아버지에 관한 기억도 완전하지 않았다. 그분이 스스로 서명할 능력이 없는 상태라는 이유로 누군가 멋대로 보호 장소를 정하려 한다면 나는 끝까지 거부해야 했다. 그런데 내게는 그분의 말을 대신할 자격이 있나. 어머니가 원하지 않는 구출은 또 다른 강요일 뿐이었다. "그분의 의사를 먼저 물어야겠네요." 서기관이 고개를 끄덕였다. "개설자 소환에 응답한 주체는 본인 이의 신청권을 갖습니다." "어디서요?" "0번 보관실." "그러면 통화 연결부터요." 서기관이 우편함을 바라봤다. 원본 차도겸이 말했다. "37번은 내 외부 이름이지만, 이번에는 엄마 목소리가 들어갈 수 있어. 경로를 빌려 줄게." 나는 은색 열쇠를 우편함에 끼웠다. 금속끼리 마찰하는 짧은 소리와 함께 수신부가 열렸다. "여보세요." 익숙한 여성의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내가 물었다. "나도 당신을 몰라요. 그런데 이곳 사람들이 내가 당신을 위해 뭔가 해야 한다고 해요." 어머니였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엄마, 지금 무슨 서류 받았어?" "두 아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네요. 둘 중 하나가 남아야 다른 하나를 돌려보낼 수 있다면서요." 서류철이 흔들렸다. 1998년의 두 사진이 공중으로 떠올랐다. 방금 전 두 문에서 잡았던 작은 손은 사라진 뒤였다. "서명하지 마세요." "왜요? 내가 누굴 선택하면 안 되나요?" "엄마가 선택하고 싶지 않았으니까요." 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 "맞아요." 어머니가 말했다. "그 애 둘을 다 데려가고 싶었어요. 그랬더니 정수 씨가 이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고…… 아, 조금 기억나네요." 나는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내게 가장 중요한 기억을 품고 살아온 사람은 어머니였다. 그분이 기억을 빼앗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대답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말로 이야기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때 무슨 일이 있었어요?" "비가 왔어요. 병원 창문을 넘어갈 것처럼. 두 아이가 있었는데 한 아이는 수술실 안에 있었고, 다른 아이는…… 사라진 시계 속에 있었어요." "그 아이 이름을 기억하세요?" "아니요. 이름을 부르면 관리자한테 잡힌다고 해서 일부러 안 불렀어요. 두 아이는 서로 이름이 달랐어요. 정수 씨가 한 아이의 목숨을 구하려고 시간 장치를 만들었는데, 문 안에서 다른 아이를 발견했어요." 나는 몸이 떨렸다. 서로 다른 사진은 한 아이의 복제본이 아니었다. 같은 날 같은 집에 서 있었지만 다른 시간에서 자란 두 사람이었다. 이름이 같아진 건 훨씬 뒤의 일이었다. "그럼 엄마는 어떻게 했어요?" "둘 다 데려오겠다고 했어요. 하나만 선택하라는 말을 안 들었죠. 그래서 내 기억을 담보로 잡겠다기에, 나는 아이들한테 맡기지 말고 내게 물으라고 했어요." 어머니가 울음을 삼켰다. "그런데 내가 동의한 건 내 기억을 써도 된다는 것뿐이었어요. 다른 사람들 기억까지 가져가도 된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나는 서기관을 돌아봤다. 그는 황급히 장부를 넘기고 있었다. [최초 개설 동의 범위 확인: 윤혜정 본인의 기억 일부.] 아래에는 다른 글씨로 덧붙인 조항이 있었다. [외부 운영 확대 승인: 차도겸의 동일인 관계자 전부.] 서명이 있었다. 구태형이 차도겸이라는 이름으로 일하던 시기의 서명. "서기관. 보이죠? 다른 사람이 쓰던 이름을 가져다가 동의 범위를 바꿔 놓은 겁니다." "원본 확인이 필요합니다." "좋습니다. 동의한 사람에게 물어봅시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나는 그런 서류에 서명한 적 없어요. 내 기억은 내 것이에요. 우리 애들 기억도 그렇고요." 그 말이 끝나자 감사실 천장이 천천히 울렸다. 긴 복도 곳곳에서 봉인 도장이 하나씩 떨어졌다. [동의 없는 담보 설정 4,183건. 임시 집행 중지.] 나는 처음으로 숫자를 보고 웃었다. 사천백팔십삼 명이 당장 기억을 되찾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오늘 밤 더 빼앗기지는 않게 됐다. "이제 엄마 돌려보내 주세요." "본인 확인이 필요합니다." 서기관이 말했다. 어머니가 바로 대답했다. "나 윤혜정이에요. 집에 가고 싶어요. 그리고 내 아들들한테 밥을 해 주고 싶어요." 아들들. 복수형이었다. 그 말을 듣자 지금까지 보았던 사진들이 다시 떠올랐다. 같은 현관, 다른 그림자, 두 아이. 나는 언제나 하나가 가짜이고 하나가 진짜일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처음부터 그 질문을 거부했다. 한 아이가 문 안에서 울고 있고 다른 아이가 집에서 기다린다면 두 아이 모두 집에 와야 한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 믿음이 어떤 고통을 불렀는지는 아직 모두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마음을 악용한 사람의 책임과 어머니의 선택은 구분해야 했다.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엄마, 우리 집 아들이 둘이었어?" "그랬나 봐요." 어머니가 조용히 말했다. "아직 이름은 몰라도, 둘이었어요." 서기관은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에게도 모든 답이 있는 건 아니었다. 한참 뒤 그는 종이에 작은 도장을 찍었다. [최초 개설자 귀환 요청 승인.] 우편함 너머에서 원본이 말했다. "도겸, 잘했어. 하지만 엄마가 돌아가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어. 구태형의 가짜 서명은 무효가 됐어도, 그 사람이 만든 장치는 그대로야." 나는 알았다. 계약이 무효가 된다고 해서 작동 중인 기계가 자동으로 꺼지는 것은 아니다. 잘못된 프로그램을 멈추려면 다른 절차가 필요했다. "장치를 끄는 방법이 있어요?" "있어. 네가 만든 마지막 문을 닫으면 돼." "그럼 당신도 나올 수 있습니까?" 원본이 대답하지 않았다. 침묵이 길어졌다. "나는 여기 남아야 할지도 몰라." "왜요?" "0번 보관실을 닫으면 아직 문 안에 있는 아이가 돌아올 길도 없어지니까." 문에 손을 얹자 차가운 나뭇결이 느껴졌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이라면 어떻게든 부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 너머에 남은 사람에게는 바로 그 문이 유일한 길일 수도 있었다. 통로를 파괴하는 것과 사람을 구하는 건 다르다. 나는 누군가가 오늘의 내 행동 때문에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문을 열기 전에 먼저 안쪽의 말을 듣겠다고 마음먹었다. 몸이 먼저 움직이려 했다. 가장 가까운 문을 열어 젖히면 누군가를 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는 성급하게 열었던 문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갇히는 장면을 봤다. 서류 한 장의 조항과 문고리 하나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의 삶을 바꿨다. 선택을 미룬다고 언제나 비겁한 것은 아니다.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확인할 시간을 만드는 것도 행동이다. 나는 종이 문 너머를 바라봤다. 남은 시간은 17분 04초. 방금 구한 어머니와, 돌아오지 못한 아이와, 일곱 달 동안 여기 남은 원본. 누군가 하나를 선택하라고 할 때마다 상황은 점점 더 나빠졌다. "선택하지 말라던 이유를 이제 알겠네요." 원본이 피곤하게 웃었다. "그럼 뭐 할 건데?" "문을 닫기 전에 사람부터 찾겠습니다." 나는 서기관을 불러 원본 계약의 효력에 관해 다시 확인했다. 그는 어머니의 한정 동의가 확인돼 제삼자 담보 조항은 집행 중지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수년간 그 조항을 이용해 이미 가져간 기억은 단번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왜요? 부당하게 가져갔으면 돌려줘야 하잖아요." "보관된 기억은 일부가 섞여 있습니다. 누구 것이었는지 이름표만으로 알 수 없는 항목이 있습니다." 나는 청구서 목록을 펴 보였다. 수천 개의 이름 앞에 붙어 있던 검은 실이 생각났다. 구태형은 모든 기억의 주인이 자기라고 주장하며 식별 번호를 뒤섞었다. 잘못된 압축 파일에서 파일 이름만 복원하는 것과 비슷했다. 누가 어떤 문서를 썼는지 알 수 없다면 무작정 풀어서 다른 사람에게 줄 수는 없다. "그럼 복구 전에 인수인계 검증이 필요하겠네요." "원주인의 자발적 확인이 있어야 합니다." "좋습니다. 기다려도 돼요. 대신 그동안 추가 징수는 막아 주세요." 서기관은 고개를 숙였다. "귀하의 청구서를 발행했던 제 판단을 정정하겠습니다." 나는 그를 바라봤다. 처음에는 인간의 감정 따위가 없을 줄 알았던 사람인데, 지금은 자기 손으로 잘못된 문서를 고치고 있었다. "보관국이 실수했다고 인정할 수 있습니까?" "사실 확인 뒤 정정하는 절차는 존재합니다. 다만 오랫동안 아무도 그 절차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조금 서글펐다. 누구도 이의 신청을 하지 못하게 해 놓고, 이의 신청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기록한 시스템. 내가 일하던 회사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장애를 보고하면 실적이 깎인다는 이유로 모두 보고를 멈췄다. 그러자 관리자 화면에는 장애가 0건으로 나왔다. 실제로는 시스템이 매일 고장 났는데도. "앞으로는 항목마다 소유자를 확인할 수 있게 해 주세요." 나는 말했다. "모두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니까요." "개정 권한은 최초 개설자에게 있습니다." "그러면 그분에게 물어보세요. 대신 답을 유도하지 말고." 서기관이 어머니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억은 불완전하지만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말할 수 있느냐고. 어머니는 아주 담담하게 대답했다. "잃어버린 걸 되찾고 싶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 것을 가져오고 싶지는 않아요. 내가 가진 게 내 것인지부터 확인하고 돌려줘요." 그 말이 장부 첫 장에 새 규정으로 적혔다. [반환 원칙: 소유자 확인 우선. 제삼자 기억 대체 금지.]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다. 거창한 승리 선언은 없었다. 그저 잘못된 문서를 한 장 고쳤고, 앞으로 잘못하지 말아야 할 약속을 한 줄 남겼다. 그러나 누군가 그 한 줄 때문에 오늘의 가족을 지킬 수 있다면 충분히 값진 일이었다. 그 순간 나무문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철컥. 열쇠가 안쪽에서 돌아갔다. 작은 목소리가 말했다. "형, 나 여기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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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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