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장 도착.]
손목시계의 글자가 붉어졌다. 다음 줄에는 주소가 표시됐다.
'서울시 ○○구, 철거 예정 구영병원 별관 0호.'
나는 곧장 유나에게 주소를 보여 줬다. 유나는 두 번 읽더니 입술을 깨물었다.
"거기 가지 마."
"이유부터 알려 주세요."
"예전에 재민이가 사라진 병원이야."
남기혁 형사가 주소를 자신의 휴대전화에 입력했다. 지도에는 폐업한 병원이 나타났다. 십 년 전 문을 닫았고 건물 철거 허가만 여러 번 연기된 곳이었다.
"오재민 실종 기록을 봤을 땐 폐건물이라고 돼 있었는데." 형사가 말했다. "그 전부터 병원이었군요."
나는 화면을 스크롤했다. 인터넷 게시물에는 병원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많았다. 자정에 환자가 나타난다거나, 폐쇄된 엘리베이터가 여섯 층에 멈춘다는 이야기. 믿을 수 없는 얘기들 가운데 한 줄만 눈에 들어왔다.
'특수 병동 최초 기록: 0613호.'
"0613이 날짜가 아니었다는 걸까요?"
"둘 다였을 수 있어." 유나가 말했다. "누군가 기록을 따라오게 하려고 같은 숫자를 여러 곳에 남겼다면."
형사는 건물 등기와 구급 출동 기록을 확인했다. 정상적인 서류에도 이상한 부분이 있었다. 철거 사유는 건물 노후화였는데, 전력 사용 기록에는 지난달까지 전기가 들어왔다. 누군가 폐건물을 계속 관리하고 있었다.
"구태형의 법인과 관련된 업체가 전기요금을 냈습니다." 기혁이 말했다. "그 남자에게는 분명 현실에서 돈을 대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경찰 지원을 부르세요."
"부르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외부에서 대기해요. 그 장치가 무슨 기능인지도 모르잖아요."
나는 '초대장'이라는 단어를 다시 봤다. 보관국은 강제 명령조차 초대장이라고 불렀다. 참석자가 거절할 수 있는 초대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안 가면 어떻게 됩니까?"
손목시계가 답했다.
[불참 가능. 단, 증거 0613호의 보전 기한은 20:59까지입니다.]
기혁에게 남은 시간을 보여 주자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수색영장을 받기에 턱없이 짧은 시간이었다. 나는 형사가 현실의 법을 계속 의식하는 이유를 이제 알 것 같았다. 보관국에서는 서류 하나로 사람을 지울 수 있었지만, 그럴수록 현실에서 남길 증거는 제대로 확보해야 했다. 우리가 불안한 마음에 절차를 무너뜨리면 나중에 구태형이 그 빈틈을 이용할 수 있었다.
그는 현장 출동 경찰에게 건물 내부에 무단 진입하지 말고 주변부터 확보하도록 지시했다. 그리고 자신도 공적으로 허용된 범위 안에서 사건 자료를 확인하겠다고 했다. 그가 조심스러운 이유를 이해했다. 무리한 방법으로 얻은 증거는 현실 법정에서 사용할 수 없을 수도 있었다.
나는 작업실 주인에게 부탁해 장치를 안전한 용기에 넣고 봉인했다. 접촉을 줄인 상태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기 위해서였다. 초대장 발신자가 내 기억을 읽을 수 있다고 가정하면, 준비하는 장소도 들키기 쉬웠다. 하지만 유일한 기회라면 원인도 남겨야 했다.
"저는 병원에 가겠습니다." 내가 말했다.
"도겸." 유나가 내 손을 잡았다. "네가 가면 그쪽이 원하던 사람이 직접 오는 거야."
"그러면 조건을 걸죠. 이름을 대는 사람에게만 문을 열겠습니다."
"이쪽에선 이름이 제일 위험하잖아."
"제가 누군지 정하는 이름이 아니라, 문을 연 사람이 책임지고 대답해야 할 이름이요."
출발하기 전 남 형사는 내게 짧은 질문 몇 개를 했다. 입원한 적은 없는지, 최근 약을 먹었는지, 정신을 잃은 적은 있는지. 처음에는 사건을 의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형사는 내 대답을 메모한 뒤 말했다.
"기억이 불안정한 증인과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누가 나중에 당신 진술을 문제 삼으면, 우리가 그 사실을 숨겼다는 것부터 공격할 겁니다."
나는 솔직히 대답했다. 언제부터 어떤 기억이 사라졌고 무엇을 수첩에 남겼는지, 지금도 정확히 모르는 사실이 무엇인지. 형사는 중간에 말을 끊지 않았다. 그가 다 적고 나서 다시 읽어 주었다. 나는 틀린 부분을 수정했다.
"이렇게 하면 되는 겁니까?"
"이게 가장 평범한 확인 절차죠."
그 평범함이 위안이었다. 보관국은 확인 절차를 매번 사람을 묶는 올가미로 만들었다. 그러나 형사의 질문은 내가 틀릴 권리까지 남겨 두었다. 무엇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해도 내 입을 막지 않았다.
유나는 차 안에서 오래된 지도 한 장을 펼쳤다. 그곳에는 지금의 병원 이름과 다른 이름이 있었다. '시립 기억재활 연구동'. 더 오래된 사진에는 한쪽 복도만 존재했다. 현재 남아 있는 별관의 절반은 나중에 덧붙인 공간이었다.
"여기 봐." 그녀가 말했다. "철거 예정이라는 발표 뒤에도 0호 건물은 남아 있어. 누군가 건물 절반은 버리고 나머지 절반만 감추려 했어."
나는 노트북에서 내려받은 옛 항공사진을 살폈다. 동일한 해상도의 두 사진인데 어쩐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그림자가 생겨 있었다. 한 장에만 보이는 계단이 있었다. 우리는 어느 사진이 현재의 현실을 나타내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이 병원 자체가 다른 시간과 이어져 있으면, 출입구가 옮겨질 수도 있겠네요."
"그래서 현장 대기 위치를 고정해서 정했어요." 기혁이 말했다. "건물이 달라지는 걸 보고도 동료를 혼자 들여보낼 순 없으니까."
그는 차량 통신기로 다른 경찰에게 연락했다. 누군가 안에서 나오더라도 신원 확인을 강요하지 말고 응급 상태부터 확인하라고 당부했다. 내가 들었던 어떤 지시보다도 현실적이었다. 특수한 범죄를 쫓는다고 사람에게 먼저 할 질문이 달라지는 건 아니었다.
나도 유나에게 출입구 근처의 탈출 경로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다. 함께 들어가지만, 누구라도 위험하면 먼저 빠져나갈 수 있어야 했다. 유나는 잠시 기가 막힌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예전엔 네가 끝까지 남겠다고 고집했어."
"지금은 별로 그러고 싶지 않아요. 살아서 다음 날 출근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됐거든요."
유나는 작게 웃었다.
우리는 병원 앞으로 이동했다. 녹슨 철문에는 붉은색 출입 금지 표지가 붙어 있었다. 경찰 차량이 조금 떨어진 곳에서 대기했다. 형사는 현장 경비원이 가진 합법적인 열쇠와 기록을 확인한 뒤 통로에 들어갔다. 그 과정은 현실의 절차였다. 아무리 비현실적인 사건이라도 불필요한 불법 침입을 할 이유는 없었다.
철거 예정 건물이라면 콘크리트 가루와 곰팡이가 먼저 떠올라야 한다. 그런데 이곳은 바닥에 물걸레 자국이 남아 있었다. 누군가 매일 드나드는 듯한 흔적이었다. 기혁은 출입구의 발자국을 촬영해 두었다. 유나는 벽에 적힌 오래된 병동 안내를 살폈다. 나는 청소 도구를 보았다. 새로 산 고무장갑과 빈 생수병이 있었다. 유령이 병원을 관리하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누군가가 이곳을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우리는 서로 말을 하지 않아도 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이곳은 과거의 유적이면서 현재의 범행 장소였다.
별관 내부는 예상보다 깨끗했다. 복도 끝의 자동판매기에는 전원이 들어와 있었다. 그 앞에는 벤치 두 개와 커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던 사람이 잠깐 자리를 비운 듯했다.
"제대로 된 유령이라면 커피 정도는 다 마시고 가야죠." 내가 중얼거렸다.
"긴장하면 농담하는 습관, 안 고쳐졌네." 유나가 말했다.
"전에도 그랬어요?"
"너는 거의 매번 그랬어."
복도 바닥에 흰 선이 그어져 있었다. 선을 따라가니 0호라고 적힌 방이 나왔다. 병실에는 침대가 없었다. 대신 오래된 벽시계 수십 개가 걸려 있었다. 모두 오후 6시 13분에서 멈춰 있었다.
벽 한가운데에는 작은 액자가 있었다.
'1998년 6월 13일, 최초 이상 시간 관측.'
내가 여섯 살 무렵이었다. 케이크 속 여섯 개의 촛불이 떠올랐다. 그날의 기억이 왜 보관국 안에 있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그럼 0613은 최초 사건 날짜인가요?" 기혁이 물었다.
"그랬겠죠. 그래서 모든 비밀번호처럼 쓰였을 겁니다."
유나가 액자 아래 글을 읽었다.
'관측 책임자: 차정수. 기록 보호자: 윤혜정.'
차정수. 돌아가신 아버지 이름이었다.
나는 잠시 손을 떨었다. 아버지가 남긴 시계 뒤의 0613, 예전 병원의 실험실, 어머니에게서 빼앗긴 생일 기억. 흩어진 퍼즐이 한쪽으로 맞춰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이걸 만든 겁니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방 구석에 작은 영상 재생기가 있었다. 화면에는 날짜가 표시되지 않았다. 투명 케이스 안에 자기테이프가 들어 있었지만 재생 버튼이 없었다. 대신 흰 종이가 놓여 있었다.
'관측자의 자녀가 아닌 사람은 이 기록을 열 수 없습니다.'
"신분 검사가 또 시작됐네요." 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네가 아들이라는 증거가 필요하겠군." 기혁이 말했다.
"안 됩니다." 유나가 급히 말했다. "이런 확인 절차를 밟다가 사람들이 기억을 잃었잖아."
나는 종이에 손을 대지 않았다. 대신 재생기 옆의 작은 구멍을 살폈다. 강문석이 준 저장장치와 모양이 같았다. 전용 키를 꽂으라는 것이 아니라, 장치가 신호를 보내고 받는 위치처럼 보였다.
나는 스마트폰 카메라로 재생기를 촬영했다. 화면은 검게 나왔지만 아주 잠깐 음성이 흘렀다.
"혜정아. 우리 아이가 시간을 건너왔다면 먼저 집으로 보내."
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사라진 기억 속에서도 그 말투만큼은 조금 남아 있었다. 나는 벽을 잡았다.
곧이어 다른 목소리가 이어졌다.
"차정수 선생님, 보호자께서 아직 서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가 대답했다.
"사람을 살리는 데 왜 자꾸 서명을 받습니까?"
영상이 꺼졌다. 재생기 아래 작은 숫자가 나타났다.
[발신 기록 재생 완료. 확인 대상: 미완료 계약서 1건.]
그 계약서의 수신자는 윤혜정이었다.
나는 펜을 들지 않은 채 종이를 들여다봤다. 계약서에는 아버지의 이름도 내 이름도 없었다. 단 하나의 조건만 적혀 있었다.
'문을 열었던 사람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그 사람이 잊은 사람을 찾아갈 것.'
그때 작업실에서 봉인했던 저장장치가 가방 안에서 진동했다. 누군가 통신선을 연결한 것도 아닌데 소리가 났다. 봉인 포장을 열지 않고 화면에 표시된 문자열만 확인했다.
[발신자: 차정수. 메시지: 문을 처음 연 사람은 나 아니다.]
나는 숨을 들이켰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관측자였지 개설자는 아니었다. 같은 방에서 내 이름과 어머니 이름이 동시에 지워지고 있었던 이유가 드디어 눈앞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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