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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23화
PAYLUA ORIGINAL · 제23화

23화. 연락처에서 사라진 이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981자

오프라인 책장
전화번호부에서 사람이 사라지는 광경을 본 적 있는가. 대부분은 해고당한 날 회사 계정을 회수당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나는 그걸 생각하며 휴대전화의 차가운 화면을 더 꽉 쥐었다. 나는 월요일 오후 일곱 시, 버스 정류장 앞에서 훨씬 대대적인 삭제를 구경했다. 연락처 목록의 이름들이 하얗게 변했고, 일부는 숫자만 남았다. 가족 단체 대화방에서 나를 가리키던 별명이 '알 수 없는 사용자'로 바뀌었다. "제가 누군지 모르겠습니까?" 나는 동료에게 물었다. "네. 번호가 저장돼 있어서 받았는데…… 업무 전화인가요?" "같은 팀 차도겸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서버 장애 같이 처리했잖아요." "아, 장애요. 기억하죠. 그런데 그때 담당자는 저 혼자였는데요?" 동료는 별다른 악의 없이 말했다. 누군가의 인생에서 나를 지운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를 미워하게 되는 건 아니었다. 더 무서운 건 공백을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회사 건물로 향했다. 유나가 뒤따랐다. 그녀는 여전히 내 이름을 부를 수 있었다. "유나 씨는 왜 괜찮아요?" "내 기록은 일부가 보관국 안에 묶여 있어. 밖의 추심이 닿더라도 그쪽과 충돌해. 완전히 안전한 건 아니야." "안전하지 않다면 이름 부르지 마세요." "네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너한테 누구로 남는데?"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했다. 회사 출입구에서 경비원이 나를 막았다. 사원증을 보여 주자 태블릿 화면에 빨간 글자가 떴다. [존재하지 않는 사원.] "저, 여기 다니는데요." "지금 농담하세요?" 경비원이 한숨을 쉬었다. "퇴근 시간에 이런 장난하면 곤란합니다." 나는 로비 사진을 가리켰다. 지난달 회식에서 찍은 단체사진이었다. 오른쪽 끝에 내가 분명 있었다. 그러나 자동으로 생성된 인물 설명에는 다른 팀원의 이름만 나왔다. 사진 속 내 얼굴은 남아 있었다. 사람들이 그 얼굴과 내 이름을 연결하지 못할 뿐이었다. 삭제는 사진 자체를 지우는 것보다 훨씬 교활하게 작동했다. 유나가 내게 물었다. "무엇부터 할 거야?" "기록 확인부터요." 나는 휴대전화 카메라를 켜 사진을 찍었다. 촬영본에는 내가 보였다. 같은 장면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물리적으로 증명할 수 있었다. 이름을 잃어도 몸은 남는다. 그 점이 첫 번째 단서였다. 남기혁 형사가 현관 옆 골목에 서 있었다. 그는 내 얼굴을 보더니 손을 들어 인사했다. "차 씨. 이쪽입니다."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형사님은 절 기억하세요?" "오늘 저녁에 수첩으로 설명을 읽었습니다. 처음 보자마자 반갑진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당신이 누구인지 알아요." 기혁은 자신의 수첩 첫 장을 보여 줬다. '나는 남기혁. 차도겸은 어머니의 기억을 잃은 개발자. 구태형의 강제 보관 혐의를 수사 중. 남하린은 내 아내. 잊어도 그 사실부터 확인.' "이런 것까지 적으셨어요?" "형사는 기억이 아니라 기록으로 수사해야 하니까요." 형사는 동료 경찰 세 명을 데려왔었다. 그들은 모두 차도겸이라는 이름을 잊었고, 심지어 기혁이 그들과 무슨 사건을 수사 중인지도 자세히 기억하지 못했다. 그러나 물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차량 운행기록, 오래된 통신사 응답서, 법원에 접수한 보전 신청서가 남아 있었다. "아직 물리적 기록은 일부 살아 있어요." 그가 말했다. "하지만 기록 안의 사람 연결이 계속 어긋납니다." "그럼 대상이 사천백팔십삼 명이라는 숫자는요?" "연락한 사람들 중 적어도 스물여덟 명은 이상을 호소했습니다. 더 많을 겁니다. 신고가 없다고 괜찮다는 뜻은 아니죠." 기혁은 나를 차량 뒷좌석에 태웠다. 응급 구조 차량 안에서 누군가 잠들어 있었다. 환자복을 입은 여성이었다. 남하린. 그녀는 얼마 전까지 유리병 속에 갇혀 있었고, 이제는 현실의 차가운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하린아." 형사가 불렀다. 여자는 눈을 떴다. 남기혁을 알아보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가 내민 종이컵을 받아 들었다. "저를 데려와 주셨죠?" "도와준 사람이 많아요." "고맙다고 전해 주세요."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울지 않은 건 감정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지금 무너질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다. "김태오 씨는요?"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있습니다. 일상 기록에는 지난 수개월의 공백이 있는데 본인은 모든 걸 기억해요. 오재민은 유나 씨와 다른 병원으로 갔습니다. 격리된 시간 동안 자란 몸 상태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나는 안도했다. 적어도 이번 구조는 단지 장부 속의 완료 표시가 아니었다. 실제 사람이 걸어 나왔다. "그런데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형사가 말했다. 그는 형사는 동료들에게 각자 기억나는 장면을 따로 기록하게 했다. 누구와 통화했는지, 언제 현장에 도착했는지, 어떤 차를 탔는지. 공통 질문은 피했다. 이상 현상을 겪은 사람들이 서로 답을 맞춰 버리면 진술의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했다. 나는 그 방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같은 메시지를 반복하는 것보다, 각자의 작은 증언이 모여 한 사건의 윤곽을 만드는 편이 훨씬 믿을 만했다. 나는 형사의 수첩이 조금 부러웠다. 그는 사건을 잊지 않기 위해 중요한 문장을 직접 적어 두고 있었다. 반면 내 휴대전화는 주인이 허락하지 않았는데도 연락처 이름이 바뀌었다. 편리하다고 믿었던 전자 기록은 누군가 접근권을 빼앗는 순간 무기가 되기도 했다. 앞으로는 종이와 사람과 기계를 따로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같은 사실을 다른 방식으로 남기는 일은 번거롭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어머니 윤혜정의 집 앞이었다. 경찰이 확인한 CCTV 영상에서, 오후 6시가 되기 직전 누군가 현관 앞에 서 있었다. 검은 코트와 모자, 검은 우산. "구태형입니까?" "얼굴은 안 보입니다. 그런데 현관문이 열리기 전에 안쪽에서 먼저 손잡이가 움직여요. 마치 집주인이 그 사람이 올 걸 알고 있었던 것처럼." 나는 속이 서늘해졌다. "어머니는 저도 못 알아보세요. 그 사람은 알았을까요?" "확인해야죠. 단, 차 씨 어머니를 범인으로 보는 건 아닙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진술을 받아야 해요." 나는 강문석에게서 받은 저장장치를 꺼냈다. 구형 USB처럼 생겼지만 금속 몸체에 작은 구멍이 두 개 있었다. "이건 보관국의 원본 로그랍니다." 기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경찰 장비에 바로 꽂지는 맙시다. 신뢰할 수 없는 장치잖아요." "맞아요. 제가 먼저 별도 장비에서 검사하겠습니다. 외부 연결도 끊고." 작업실로 가는 길에 회사 로비 앞에서 내 옛 상사를 마주쳤다. 팀장은 자판기 커피를 두 잔 들고 있었고, 그중 한 잔을 나에게 건네려다 손을 멈췄다. "어? 내가 왜 두 잔을 뽑았지?" "습관이겠죠." 나는 말했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한데 누구시죠? 얼굴이 낯익은데." "전에 같이 야근하던 사람입니다." "아, 그럼 야근 많이 하셨나 보네요. 제가 원래 남한테 이런 말 잘 안 하는데…… 힘들면 좀 쉬세요." 나는 커피를 받지 않았다. 그의 손목에 만성적인 피로 때문에 붙여 둔 파스를 보고 옛날 생각이 났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함께 야근한 날, 팀장은 오류를 고치고 나면 꼭 편의점 커피라도 사 주겠다고 했었다. 그 약속은 벌써 세 번이나 미뤄졌다. 보관국은 그 약속까지 지우지 못했을까. "제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왜 커피를 주려고 하셨어요?" "글쎄요. 자꾸 두 잔을 사게 되네요. 좀 이상하긴 하죠." 그는 한 잔을 나에게 건넸다. 나는 결국 받았다. 온기가 손바닥에 닿았다. "회사 개발팀에 차도겸이라는 이름을 물어봐 주세요." 팀장은 바로 휴대전화로 조직도를 열었다. 화면을 훑던 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런 사람 없는데." "그래도 혹시 같은 이름이 있으면,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했는지만 기록해 주세요. 기억할 수 없어도요." 팀장은 나를 경계하는 얼굴로 바라봤다. 나는 그를 탓할 수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직원이 회사 출입 명단이 틀렸다고 주장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깊게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오늘 밤에는 야근하지 마세요. 서버 오류가 나더라도 혼자 남지는 마시고요."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하면서도 대답했다. "그 말은 좋네요. 근데 제가 그게 될 사람이 아닌데." 내가 피식 웃자 그는 조금 따라 웃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잠시 뒤 팀장에게 메시지가 왔다. '혹시 차도겸 씨가 이 문자 번호 주인인가요? 기록해 뒀습니다. 내일 다시 연락해도 될까요?' 사라진 인연을 완전히 되돌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새로 만든 연결은 살아 있었다. 나는 문자 화면을 기혁에게 보여 줬다. 그는 증거로 보존하겠다고 답했다. 한 사람의 이름을 되찾으려면 수천 명의 기억을 강제로 되돌려야 한다는 보관국의 말이 틀렸을지도 몰랐다. 사람은 매일 서로를 다시 알게 된다. 그 평범한 능력은 어떤 계약서도 독점할 수 없었다. 우리는 수사 협조를 받은 비어 있는 작업실로 향했다. 중고 노트북 한 대를 인터넷에서 완전히 분리했다. 나는 운영체제를 읽기 전용으로 부팅하고, 장치의 속성을 먼저 확인했다. 파일 시스템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장치 측면의 작은 구멍으로 빛이 일정하게 깜박였다. 열세 번. 여섯 번 빠르게, 잠시 멈춘 뒤 다시 일곱 번. 그리고 또 여섯 번. "이게 0613을 뜻하는 걸까요?" 형사가 물었다. "아직 몰라요. 패턴을 녹화하죠." 나는 장치를 연결하지 않은 상태에서 카메라로 점멸을 기록했다. 그 사이 유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는 오재민이었다. "누나, 도겸 형 옆에 있어?" 유나가 눈을 크게 떴다. "응. 왜?" "나한테 그 형 이름을 아는 사람이 찾아왔어." "누구?" 수화기 너머에서 낯선 여자가 말했다. "차도겸 씨, 원본 로그를 가지고 계시죠. 열면 안 됩니다." 나는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누구십니까?" 여자가 짧게 숨을 들이켰다. "진서아예요." 사라진 기억 속에서만 보던 이름이 현실의 전화선을 타고 돌아왔다. "저를 찾지 마세요." 그녀가 말했다. "아까 구태형이 이름을 지울 때, 당신 대신 제가 하나 기억해 버렸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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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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