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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22화
PAYLUA ORIGINAL · 제22화

22화. 엄마의 목소리를 닮은 사람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24자

오프라인 책장
"도겸아." 나는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 목소리를 잊었는데도 그 부름이 마음을 밀어 올렸다. 이상한 일이었다. 머리는 인식하지 못하고 가슴만 먼저 반응했다. 문턱 너머에 서 있는 사람은 어머니였다. 낮에 봤던 회색 카디건과 똑같은 옷차림이었다. 한 손에는 마트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아까 보관국에서 본 서류철들과는 지나치게 어울리지 않는 물건이었다. "엄마? 어떻게 여기 왔어?" 어머니는 대답하지 않고 나를 올려다봤다. "너 누구니?" 가장 익숙하면서도 가장 견디기 힘든 질문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신분증을 꺼내려다 손을 멈췄다. 어제까지 그것을 몇 번이나 보여 주었는지 몰랐다. 신분증이 증명하는 건 행정 기록일 뿐, 지금 이 사람이 왜 나를 걱정하는지는 아니었다. "아들이에요. 차도겸." "나는 아들이 있는지 몰라. 그런데 네가 다친 것 같은 마음이 자꾸 들어." 어머니는 자기 가슴을 누르며 말했다. 유나가 내 앞을 막아섰다. "도겸, 가까이 가지 마." "엄마잖아요." "알아. 그래서 이상해. 그분은 현실 시간에 있었어. 여섯 시가 지나면 정지 구역으로 그냥 들어올 수 없다고." 그제야 봤다. 어머니의 신발 밑창에는 먼지가 없었다. 머리카락 한 올도 흔들리지 않았다. 장바구니 안의 우유팩에는 가격표 대신 이상한 숫자가 적혀 있었다. 0613. "당신은 누구입니까?" 어머니의 얼굴을 한 존재에게 물었다. 그 말이 끝나자 상대는 아주 슬픈 표정을 지었다. "그걸 정말 모르니?" 나는 손목의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35분 18초. 보관국의 회랑이 천천히 길어지고 있었다. 계단을 내려오던 강문석이 어머니의 얼굴을 보고 멈칫했다. "저건 인격 복제본이 아닙니다." "그럼요?" "과거의 호명입니다. 누군가 당신을 불렀던 순간을 잘라 보관한 거예요. 자기 모습을 유지하는 동안은 그때의 기억만 가지고 움직입니다." "기억 한 장면이 사람처럼 걸어 다닌다고요?" "보관국에서는 사람을 종이에 넣어 왔잖아요. 반대로 종이에서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가능합니다." 나는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의 물리 법칙을 진지하게 따지는 건 현장에서 경비원이 퇴근 버튼을 없애 놓고 자율 출퇴근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 이 사람은 지금 살아 있는 어머니가 아닌 거군요." 강문석이 말했다. "네. 하지만 목소리의 소유자는 분명합니다. 강제로 가져온 기억이에요." 여자는 장바구니를 내려놓았다. 우유팩 옆에 작은 네모난 케이크 상자가 있었다. 상자를 보는 순간 내 목이 막혔다. "도겸아, 촛불은 열세 개면 되니?" 나는 그 장면을 기억하지 못했다. 생일 케이크, 열세 개의 초, 장바구니 속 장난감. 어느 날의 어머니가 어린 나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열세 살 생일이었군요." "무슨 소리니?" 그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네 여섯 번째 생일이잖아." 손끝이 차가워졌다. 유나가 얼른 우유팩을 살폈다. 숫자 0613 아래에 흐릿한 인쇄가 있었다. '6년 13번째 정지 기록.' "이게 무슨 뜻이죠?" 강문석의 표정이 굳었다. "보관국 기록상으로는 당신이 어릴 때도 이 문이 열렸다는 뜻입니다." 그동안 나는 내 첫 정지가 며칠 전 금요일이라고 생각했다. 일곱 달 전 원본이 갇혔다는 설명도 간신히 받아들이고 있었는데, 어린 시절의 내가 이미 정지 시간에 연루돼 있었다니. 여자는 갑자기 내 뒤를 보았다. "저 사람은 누구니?" 회랑 끝에서 검은 우산이 펼쳐졌다. 유나의 우산과 모양은 같았지만 손잡이의 금속 장식이 반대로 꺾여 있었다. 우산 아래 얼굴이 보이지 않는 남자가 서 있었다. 강문석이 내 팔을 낚아챘다. "기억 추심자입니다. 원본에 붙어야 할 목소리를 찾아왔어요." "그럼 지켜야죠." "저걸 지키려고 기억을 쓰면 상대가 원하는 대로 됩니다." 나는 발을 멈췄다. 언제부터인가 시간을 쓰거나 기억을 포기하는 것이 내 유일한 해결책이 되어 있었다. 안 좋은 습관이었다. 누군가 만든 잘못된 시스템을 고치려고 내 기억을 무한정 제공할 필요는 없었다. "그럼 정식 인계합시다." 나는 서기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이 기억의 소유자가 누군지 밝혀 주세요. 실물 어머니는 현실에 살아 계십니다. 본인의 허가 없이 왜 꺼내 왔습니까?" 서기관이 청구서를 확인했다. "소유자는 윤혜정. 출처는 최초 개설자 보관함입니다." 어머니 이름이 윤혜정이라는 사실은 신분증을 봐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입으로 그 이름을 말하자 기억의 빈자리가 기묘하게 아팠다. "그럼 최초 개설자는 우리 엄마입니까?" "보관함 소유자와 개설자는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검은 우산이 한 걸음 다가왔다. 회랑의 폭이 좁아졌다. "서기관. 환수 사유는?" "기록 소유자의 주체가 확인되지 않아 임시 보관 중이었습니다." "지금 확인했죠? 그러니 추심자에게 넘길 게 아니라 원주인에게 돌려주세요." "원주인은 현실에 있으며 정지 기간 중 접수할 수 없습니다." "그럼 다음 정상 시간까지 집행 보류입니다. 경찰이 증거를 보관할 때도 아무나 와서 가져가면 안 되잖아요." 남하린이 앞으로 나왔다. "제가 증인이에요. 방금 그분이 자기 이름을 들었고, 저도 봤어요." 서기관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조금 전 피해자로 귀환한 사람이 자신을 증인으로 내세울 줄은 몰랐던 눈치였다. 여자의 한마디로 장부에 도장이 찍혔다. [윤혜정의 기억: 환수 보류. 원주인 확인까지 제삼자 집행 금지.] 검은 우산이 사라졌다. 방금까지 있던 자리에는 물 한 방울도 남지 않았다. 서기관은 환수 보류 통지서 옆에 작은 상자를 놓았다. 안에는 기억의 소유자에게 돌려줄 때 확인해야 하는 세 가지 문항이 적혀 있었다. '누가 기억하는가', '누가 소유하는가', '누가 반환을 승인하는가'. 나는 세 번째 문항에 펜으로 물음표를 그렸다. "승인하는 사람이 원주인과 다를 수 있다는 겁니까?" "귀환자의 인지 상태가 불안정하면 법정 보호자 또는 개설자가 대신 결정합니다." "현실에 계신 엄마의 의사를 확인할 방법을 마련하면 되잖아요." "정지 시간 동안 연락이 불가합니다." "그럼 기다려야죠. 왜 그 결론을 그렇게 싫어하세요?" 서기관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장부의 책갈피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한참 전 누군가가 서명한 흔적이 보였다. 이름의 마지막 글자만 남고 나머지는 번져 있었다. '보호자의 동의 없이 기억을 반납하지 않는다.' 정작 그 문장이 내가 요구한 내용과 같아서 나는 놀랐다. "원래부터 있었던 규칙이잖아요." "폐기 예정인 오래된 규정입니다." "폐기 예정은 아직 폐기되지 않았다는 뜻이죠." 남하린이 그 말을 듣고 웃었다. 그녀는 자기가 보관국에서 얼마나 오래 있었는지도 정확하게 계산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자기 이름을 적고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곳을 만든 사람들보다 그녀가 더 믿음직했다. 남하린은 손수건을 접어 기억 속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여자는 손수건을 받을 수 없었다. 한 시절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손은 현실의 물건을 붙잡지 못했다. 하지만 그 동작을 따라 하며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분은 당신을 모를 수도 있어요." 남하린이 내게 속삭였다. "그렇다고 아들이었다는 사실이 틀린 건 아니잖아요. 저도 남편을 못 알아봤지만 그 사람이 손을 잡을 때 마음이 조금 놓였거든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의 복구보다 앞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걸 다시 배웠다. 지금 사람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 것. 평범한 세상에서는 별로 대단하지 않은 일인데, 이곳에서는 가장 어려운 절차였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내게 케이크 상자를 건넸다. "도겸아. 생일 축하해." 나는 열세 개의 촛불이 아니라 여섯 개의 촛불을 보았다. 왜 숫자를 잘못 읽었을까. 상자 안쪽에 박힌 초의 그림자는 여섯 개였지만, 포장지에는 열세 번째라는 숫자가 찍혀 있었다. '6년 13번째 정지 기록.' 그녀의 얼굴이 종이처럼 얇아졌다. 그 모습이 서글퍼서 무언가 말하려 했으나, 기억은 내 대답을 기다릴 수 없는 형태였다. "이름만 부른 게 아니구나." 나는 중얼거렸다. "어릴 때부터 엄마가 날 이 시간에서 지켜 줬던 거야." 강문석이 조용히 말했다. "시작한 사람이 누구든, 이 기록을 일부러 남긴 사람이 있다는 건 확실합니다." 나는 어머니의 마지막 미소를 수첩에 적었다. 알아볼 수 없는 목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내일의 내가 이 장면을 다시 읽기 위해서였다. 그때 서기관이 긴급 방송을 내보냈다. [청구서 일괄 집행 시각 조정: 정지 종료 후 00초.] 유나가 시간을 보았다. 03분 12초. "빨리 나가야 해. 세상 시간이 돌아오는 순간 사천 명 넘는 사람이 기억을 잃어." 서기관에게 다시 항의할 틈도 없었다. 보관국 복도가 접히듯 줄어들었다. 남하린은 외부 귀환 문으로 달렸다. 강문석이 내게 작은 봉투를 던졌다. 봉투에는 종이들이 아니라 전자 저장장치 하나가 들어 있었다. "이걸 현실 서버에 연결하세요. 기록을 가져갈 수 없다면, 누가 지웠는지부터 잡아야 합니다." "뭐가 들었습니까?" "보관국이 사람을 기억하는 방식의 원본 로그입니다. 아주 오래된 겁니다." 계단을 내려오며 케이크 상자의 촛불을 몇 번이고 떠올렸다. 어머니의 기억을 본 건 단 몇 분이었지만, 누구에게나 중요한 생일 한 번을 통째로 빼앗는 일이 어떤 뜻인지 이제 알 것 같았다. 나는 휴대전화에 어머니의 이름과 오늘 본 장면을 녹음했다. 나중에 또 잊더라도, 어머니의 목소리만큼은 함부로 남의 서류로 취급하지 않겠다고. 나는 장치를 움켜쥐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거리의 신호등이 보였다. 유나가 내 팔을 잡았다. "어차피 다 잊는다면 어떡할 거야?" "기억을 복원할 수 없어도, 지운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지울 순 없게 만들 겁니다." 정지 시계가 00:00으로 바뀌었다. 도시가 움직였다. 그리고 내 휴대전화에 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 왔다. "여보세요?" 내가 말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동료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송한데요. 차도겸 씨가 누구시죠? 우리 회사에 그런 사람이 있었나요?" 그와 동시에 휴대전화의 연락처 수십 개가 빠르게 지워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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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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