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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21화
PAYLUA ORIGINAL · 제21화

21화. 사람을 기억한다는 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17자

오프라인 책장
[청구 대상: 당신이 차도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모든 사람.] 문장을 세 번 읽었다. 읽을 때마다 뜻이 달라질까 기대해서였다. 하지만 여섯 번째 시간이 흐르는 세계에서 글자는 고집스럽게 같은 자리에 있었다. "이건 대체 얼마짜리 청구서입니까?" 서기관은 두꺼운 서류철을 펼쳤다. "금전으로 환산하지 않습니다. 동일인 확인 기억을 채권으로 설정한 일괄 추심 명령입니다." "쉽게 말해 주세요." "차도겸 씨를 차도겸 씨로 알아보는 사람들이, 그 인식의 근거가 된 기억을 잃습니다." 내가 모르는 법률 용어를 쓰는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두 종류가 있다. 정말 잘 아는 사람과, 잘 알기 때문에 사기를 치려는 사람. 보관국에는 두 번째 종류가 너무 많았다. 나는 서류 맨 아래를 확인했다. 발행자는 구태형, 관리 책임자는 제6시 보관국. 그런데 승인란이 비어 있었다. "발행하고 승인도 안 받았네요." "긴급 추심은 사후 승인할 수 있습니다." "누가요?" 서기관이 침묵했다. "아까 제가 법정에서 이겼잖아요. 동의 없이 보관한 세 사람은 돌아가게 됐고, 원본을 강제로 지우는 것도 막았습니다. 그런데 패소한 쪽이 제 주변 사람들을 또 가져간다고요?" "감사 결정의 범위 밖입니다." "그렇다면 범위 안에 넣죠. 증거 인멸의 연장선이니까." 서기관은 대답하지 않고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유리 너머에 정지된 서울의 저녁이 놓여 있었다. 반쯤 올라간 버스의 와이퍼, 뛰어가다 한쪽 발을 든 배달 기사, 붉게 켜진 횡단보도. 모두가 한 시간 뒤로 밀려난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유나가 내 손목을 붙잡았다. "도겸.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범위가 커." "어머니하고 형사님, 유나 씨 정도 아니에요?" "네 이름이 들어간 회사의 직원 명부를 본 사람도 있어. 병원에서 보호자 연락처를 확인한 사람도 있고. 얼굴과 이름을 함께 떠올린 순간부터 대상이 돼."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전산 개발자는 사람을 식별하는 시스템을 만들면서도, 사람을 기억한다는 행위가 이렇게 위험해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었다. "직접 만난 적 없어도요?" "가능해. 이쪽은 서류를 사람보다 먼저 믿으니까." 손목시계에는 41분 03초가 남았다. 오늘의 정지는 이미 여러 번 늘어나고 줄었다. 그러나 남은 시간만큼은 숫자로 확인할 수 있었다. 적어도 아직은. 나는 청구서를 뒤집었다. 뒷면에는 작게 인쇄된 문장이 있었다. [징수 예정: 정지 종료 시점. 이의 신청은 채무자 본인의 확인 서명에 한함.] "제가 채무자인데, 제 서명으로 멈출 수 있다는 뜻이죠?" "이의 신청만 가능합니다. 집행 정지는 별도입니다." "회사에서 늘 보던 표현이군요. 신청은 할 수 있지만 결과는 책임지지 않는다는 뜻." 나는 명세서 아래쪽에서 조그만 주석을 발견했다. 징수할 기억의 범위가 '인물 식별에 필요한 최소 정보'라고 쓰여 있었다. 최소라는 단어를 보니 기분이 더 나빠졌다. 삭제하는 사람은 최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남겨지는 사람에게는 인생 전부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제 어머니가 지금 제 이름을 잊었다면요. 이 청구서가 그분에게서 또 뭘 가져갑니까?" 서기관이 책상 위로 명세서를 밀었다. "직접 식별 정보가 부족하면 보조 연상 기억을 차례로 징수합니다." "보조 연상이 뭔데요?" "특정 인물을 추론하는 데 사용된 장소, 습관, 목소리, 관계 경험입니다." 나는 어린 시절 살던 집을 떠올렸다. 부엌에서 끓던 미역국 냄새, 겨울 장갑을 말리던 현관, 시험지를 들고 들어갈 때 느꼈던 두려움. 그런 것들이 내 이름과 연결돼 있다는 이유로 사라질 수 있다니. 내가 나를 구하려고 애쓰는 동안 타인의 삶은 구멍이 뚫린 지도처럼 남을 것이다. "그럼 누군가 저를 모른다고 말하기만 하면 안전해지는 겁니까?" "거짓 부인은 효력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결국 당신들이 사람의 머릿속을 뒤져 확인한다는 거네요." 서기관의 입술이 조금 얇아졌다. 유나가 목소리를 낮췄다. "도겸, 청구서가 서류처럼 보이는 건 일부러 그래. 사람은 종이에 찍힌 도장을 보면 누군가 검토했을 거라고 믿거든. 여기도 마찬가지야." 나는 붉은 인장 아래의 작은 일련번호를 수첩에 적었다. 발행 번호는 0006-13이었다. 다른 계약들과 같은 숫자였다. 중요한 건 번호의 의미가 아니었다. 앞으로 같은 번호가 어디에 나타나든 하나의 발행 행위와 연결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사람 이름을 담보로 삼으면서 사업자처럼 서류를 만들었으면, 최소한 보존해야 할 원본도 있겠죠." "증거 보전 조항은 이미 적용 중입니다." 서기관이 말했다. "좋아요. 그 조항이 오늘 처음 사람 편을 드네요." 나는 유나에게 수첩의 일련번호를 읽어 줬다. 그녀는 숫자와 시간을 직접 받아 적었다. 둘 중 하나가 잊어도 다른 하나의 기록을 대조할 수 있도록. 우리 사이의 믿음은 이제 '날 기억해 줘'라는 부탁이 아니라, '나중에 서로 확인하자'는 약속이 되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놓인 펜을 들었다. 서기관이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 유나의 얼굴이 하얘졌다. "잠깐! 보관국에 서명하면—" "알아요. 자기들 문서에 펜 대는 순간 동의했다고 우길 수 있다는 거." 나는 청구서가 아니라 수첩에 적었다. '이의 신청: 본 청구의 대상자는 동의하지 않은 제삼자이며, 발행자는 진행 중인 감사의 피감사인이다. 신청자는 자신에게도 대표권이 없다고 주장한다.' "대표권이 없다는 건 왜 써?" 유나가 물었다. "제가 엄마 대신 엄마의 기억을 내주겠다고 서명할 수 없으니까요. 저를 알아보는 다른 사람들 대신 동의할 수도 없죠." 서기관이 종이를 보고 말했다. "신청인의 친필 서명과 청구서 원본이 분리되어 있습니다. 접수할 수 없습니다." "원본 뒤에 사본을 붙여 주세요. 증거 기록으로." "그 방식은 규정에 없습니다." "방금 감사에서는 타인의 목소리를 우편함으로 받아 증언했잖아요. 그건 규정에 있었습니까?" 서기관은 몇 초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내 직업이 뭐든 간에, 시스템이 스스로 남긴 흔적을 들이대는 순간 거짓말은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때 나는 그 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부터 확인했다. 보관국의 시계는 여전히 흐르지 않았지만 문고리의 그림자는 조금씩 흔들렸다. 누군가 문밖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온다는 사실이 묘하게 반가웠다. 이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이 관리자와 추심자뿐인 건 아닐지도 몰랐다.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났다. 한 번, 두 번. 보관국 안에서는 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거의 만나지 못했다. 서기관이 이마를 찌푸렸다. "현재 심리 중인 절차가 없습니다." "그러면 민원인가 보죠." 문을 연 사람은 강문석이었다. 오른손 중지가 없는 손으로 가죽 가방을 들고 있었다. 그의 뒤에는 모르는 여자가 서 있었다. 짧은 머리에 피곤한 눈, 병원 환자복 위로 큰 점퍼를 걸쳤다. "이름을 적어 주십시오." 강문석이 내게 말했다. "본인 이름 말고, 다른 이름으로요." "누구세요?" 여자가 대답했다. "제 이름은 남하린이에요." 가슴이 철렁했다. 남기혁 형사가 잃어버린 아내. 조금 전에 귀환 절차에 올렸던 바로 그 사람이 눈앞에 서 있었다. "벌써 밖으로 돌아간 게 아니었어요?" "귀환 대기실에 도착했어요. 그런데 제 인수자란에 '차도겸이 증명한 남기혁'이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그녀는 접힌 영수증을 펼쳤다. 잉크가 조금씩 지워지고 있었다. "저는 남편 얼굴은 기억이 안 나요. 하지만 이 서류에 이름을 쓰는 순간, 남편이 누구라는 설명 자체가 사라질 것 같았어요." 강문석이 말했다. "인수자가 청구 대상이 되면 귀환 승인도 무효가 됩니다. 세 사람 모두 다시 끌려갈 수 있어요." 내 손에 든 펜이 미끄러졌다. 가까스로 밖으로 보낸 사람들을 또 빼앗기는 건 견딜 수 없었다. "방법이 있습니까?" 남하린이 손을 들었다. "제가 서명하면 되나요?" "무슨 서명이요?" "남편이 저를 알아보지 못해도 저는 집에 가고 싶어요. 내가 나라는 건, 다른 사람이 기억해 줘야만 성립하는 게 아니잖아요." 가장 중요한 말을 그녀가 아무렇지 않게 했다. 내가 저녁 내내 찾던 반박이었다. 나는 서기관에게 물었다. "집행이 끝나기 전에 청구 대상자들에게 자기 기억을 지킬 권리가 있습니까?" "본인 이의 신청은 허용됩니다." "그럼 청구 대상자가 몇 명인지 알려 주세요. 적어도 한 사람씩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할 기회는 줘야 하니까." 서기관이 무거운 도장을 집어 들었다. 장부가 한 장, 두 장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윽고 숫자가 떠올랐다. [잠정 대상자: 4,183명.] 사천백팔십삼 명. 이름을 알아본다는 이유만으로 피해자가 될 사람들이었다. 나는 그 숫자를 보는 순간 오히려 차분해졌다. 개발하면서 천 건 넘는 장애 알림을 받으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전체를 한 번에 고치겠다는 허세를 버리는 것이다. 공통 원인을 찾아야 한다. "모두가 직접 이의 신청을 할 수는 없겠군요." "불가능합니다." 서기관이 말했다. "그럼 공통 원인은 하나죠. 이 청구서가 유효하다는 전제." 나는 서류의 승인란을 다시 가리켰다. "이게 없으면 집행은 무효 아닙니까?" 서기관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사후 승인 예정입니다." "예정이라는 말은 아직 승인되지 않았다는 말이잖아요." 그 순간 벽에 붉은 도장이 찍혔다. [집행 준비 확인. 승인 대기: 최초 개설자.] 내가 찾고 있던 네 번째 얼굴. 마침내 얼굴 없는 사람의 위치가 한 칸 좁혀졌다. 그때 손목시계에서 진동이 울렸다. [개설자에게 청구서 전달 완료.] 유나가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 사람에게 보내면 안 됐어." "왜요?" "네가 모르는 사이, 그 사람은 이미 청구서를 한 번 승인했거든." "언제요?" 유나가 답하지 못했다. 서기관이 종이 위에 찍힌 오래된 승인 도장을 보여 주었다. 날짜는 6월 13일이었다. 그러나 시각은 오후 6시가 아니었다. [최초 승인 시각: 18:13.] 나는 시계를 내려다봤다. 아직 정지는 끝나지 않았다. 그런데 문 너머에서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도겸아." 한 번도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던, 그러나 이미 잊어버린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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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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