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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88화
PAYLUA ORIGINAL · 제188화

188화. 남도윤이라는 이름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2,626자

오프라인 책장
오후 다섯 시 오십구 분 삼십 초. 구태형이 시간 변경을 보고 욕설을 내뱉었다. “나는 저걸 건드리지 않았어.” “오늘 안 건드렸다는 말은 들었습니다.” 남 형사가 답했다. “나머지는 조사에서 밝히시죠.” 버스 뒷문 안쪽의 손잡이가 다시 움직였다. 나는 발을 내디디려다 멈췄다. 눈앞에서 손잡이가 움직인다고 해서 누군가 나를 부르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구조팀의 검사도 끝나지 않았다. 이채원은 길게 절연된 도구로 문턱의 틈을 확인했다. 거기에는 사람의 손이 아니라 작은 기계 장치가 연결돼 있었다. 철사 끝이 내부 수동 교환기로 이어져 있었다. 무슨 목적이든,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경로였다. “안쪽 사람이 직접 당겼는지는 모르지만, 신호가 생긴 건 맞습니다.” 남 형사가 수동선으로 물었다. “안쪽에 계신 분, 문을 열어 달라는 요청을 보내신 겁니까?” 한참 뒤 대답이 왔다. “아니요. 문을… 닫지 말라는 겁니다.” 그 말에 버스 안쪽에서 덜컹 하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손으로 판자를 밀어 놓는 소리였다. 남 형사가 다시 물었다. “신원을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다른 사람 이름으로… 적지 마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남기혁은… 있습니까?” 형사의 얼굴이 굳었다. 열다섯 해 동안 찾아온 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눈동자에 스쳤다. 그러나 그는 곧 숨을 고르고 말했다. “제가 남기혁입니다.” 수동선 너머로 짧은 마찰음이 들렸다. “대답하지 마. 어릴 때 기억하는 건… 답이 아니야.” “무슨 뜻이죠?” “너는… 이름을 잃을 수도 있어. 나한테 맞춰 말하지 마.” 남 형사는 눈을 감았다.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그 침묵이 얼마나 힘든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나 역시 잃어버린 아버지의 목소리를 좇아 수없이 함정 앞에 섰다. 남 형사는 어린 시절 형에게 받았던 물건 하나를 꺼냈다. 손바닥에 들어갈 만큼 작은 금속 열쇠고리였다. 앞면에는 숫자 17, 뒷면에는 숫자 1이 새겨져 있었다. “형이 군대 가기 전 내게 준 겁니다.” 그가 말했다. “길을 잃으면 첫 번째 길부터 다시 찾으라고요. 이런 물건이 있다면 형이 맞는지 쉽게 알 수 있을 것 같았죠.” “왜 안 물어보세요?” 내가 물었다. “내가 답을 알려 주기 싫어서요. 누군가 형의 물건과 기억을 이용하고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의 손은 떨리고 있었다. 나는 그 떨림을 못 본 척했다. 형사는 열쇠고리를 주머니에 넣고 다시 수동선 앞에 앉았다. 확인할 질문은 가족만 아는 비밀이 아니라, 현재 상대가 원하는 안전 조치였다. “안쪽의 공기 공급은 괜찮습니까? 통신이 끊겨도 구조팀이 상태를 점검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상대는 오래 숨을 고른 뒤 ‘괜찮습니다’라고 답했다. 그 한마디만으로 남 형사가 조금 안도하는 것을 나는 보았다. 과거의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현재의 상태를 묻는 일이 먼저였다. 나는 그 순서를 마음속에 새겼다. 형사는 조용히 말했다. “형인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형이라고 믿어 달라는 증거를 제가 먼저 만들진 않겠습니다.” “그래…” 짧은 말이 흘러나왔다. “그러면 됐어.” 그 목소리는 이전 녹음보다 훨씬 생생했다. 하지만 목소리만으로 같은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남 형사는 가족에게 불필요한 기대를 전달하지 않도록 현장 상황을 기록하고, 생존 확인을 위한 의료 지원을 따로 요청했다. 나는 통신 장치를 바라보았다. “밖에 있는 차도겸입니다. 혹시 지난번 제 이름을 사용하지 않았다는 분과 같은 분이세요?” 잠시 침묵이 흐르고 대답이 왔다. “그 이름을… 빌리지 않았어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나갈 사람이 따로 있어요.”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누구요?” “자기 이름을… 잃은 아이.” 오유나가 나를 바라봤다. 0번 보관실의 아이가 떠올랐다. 한시우가 돌아온 경로, 내 어린 시절의 보호대상 기록. 그런데 또 다른 아이가 있었다면 우리는 무엇을 놓친 걸까. “그 아이가 지금 버스 안에 있습니까?” “아니요. 버스에… 이름만 있어요. 아이는 다른 문으로…” 목소리가 끊겼다. 계기판의 경고음이 더 커졌다. 17:59:48. 구태형은 갑자기 주머니에서 다른 종이를 꺼냈다. 그가 숨겼던 2011년 점검 일지의 뒷부분이었다. 이번에는 찢어져 있지 않았다. ‘마지막 운행은 사람을 태우는 운행이 아니다. 남겨진 이름을 원래의 사람에게 돌려보내는 절차다.’ “왜 이제 말합니까?” 내가 물었다. 그는 나를 바라보지 않았다. “내가 그 절차를 없앴어. 사람을 태우는 기능으로 바꾸는 데 서명했으니까.” “그럼 다시 돌리면 되잖아요!” “그렇게 하면 그동안 받아 낸 계약이 전부 무효가 된다는 걸… 누군가 알고 있어.” 구태형은 처음으로 두려움이 아닌 후회의 얼굴을 했다. “내가 지킨 건 사람들이 아니었어. 내 책임을 가릴 수 있는 서류였지.” 17:59:54. 버스 뒤쪽에서 유리창 하나가 희미하게 빛났다. 안쪽에 사람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어깨가 굽은 남자였다. 그는 창문에 손바닥을 댔다. 남 형사가 목소리를 높였다. “형?”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바닥을 거꾸로 뒤집어 유리에 네 글자를 썼다. ‘먼저 내려.’ 그 아래 다시 적었다. ‘도겸 말고.’ 17:59:59. 세상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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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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