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계기판에는 내가 앉아 있다고 나왔다.
[0번 좌석 점유]
[승객 식별: 차도겸]
[승차 시간: 17:59:58]
실제 시각은 오후 다섯 시 십칠 분이었다. 시간이 앞서 기록된 것이다. 나는 가까이 가지 않았다. 이미 경험했다. 미래 시각이 찍힌 명령문을 좇으면 어느새 내가 그 명령을 수행한 사람처럼 기록된다.
“저한테 지금부터 버스 타라는 거죠.”
“그런 식으로 말하면 시스템이 좋아하겠네.” 문석이 씁쓸하게 웃었다.
남 형사는 주변 통제선을 확대했다. 갑자기 버스가 움직이면 큰 사고가 날 수 있었다. 이채원은 차량의 시동을 확인했다. 엔진은 분리돼 있었고 연료 탱크도 비어 있었다. 그런데 바닥의 진동은 점점 커졌다. 보통 기계가 아니라 시간 정지 장치의 일부가 차체에 남아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버스 밖의 수동 교환기로 돌아왔다. 채원은 0번 좌석 압력 센서와 승객 인증 회선을 분리했다. 앉은 사람이 있는지 감지하는 기능과, 그 사람이 누구이며 무엇에 동의하는지를 결정하는 기능을 한 선으로 묶어 놓은 것이 사고의 원인이었다.
“그러니까 무거운 가방을 올려놔도 제 이름으로 출근이 되는 거예요?”
“그럴 수 있어요. 지금 센서는 압력을 읽고, 이름은 외부 장부에서 자동으로 채우고 있거든요.”
나는 헛웃음이 났다. 일상 회사에서도 출근 체크가 가끔 잘못 찍혔지만, 이곳에서는 잘못 찍힌 출근 하나로 사람의 한 시간이 사라졌다.
“개발한 사람한테 코드 리뷰 요청하고 싶네요.”
문석이 말했다.
“그 코드를 만든 사람이 네 아버지 이름으로 문서를 남겼을지도 몰라.”
“그러면 더더욱 해야죠. 가족 할인은 없습니다.”
우리는 재현 장치에서 작은 모래주머니를 좌석에 올렸다. 아무도 앉지 않았는데 화면에는 내 이름이 떴다. 서아는 그 화면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사람이 승차하지 않아도 ‘차도겸’ 인증이 성립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나는 실험 결과를 간단한 보고서로 정리했다. 제목은 ‘실제 승객 부재 상태에서의 강제 승차 오인식’이었다. 회사에서였다면 버그 보고서가 여기까지 오기 전에 담당자가 “재현 안 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을 것이다.
“재현은 됐잖아.” 문석이 말했다.
“네. 그런데 시스템이 잘못이라고 인정해 줄까요?”
“시스템은 잘못을 인정하는 주체가 아니야. 사람이지.”
그 말을 듣고 화면 아래의 승인자를 확인했다. 운영자 K-07. 승인 시각은 새벽 다섯 시 오십구 분. 두 개의 다른 시간대에서 같은 카드가 사용된 흔적이 있었다. 사람이 손에 들고 움직였다면 불가능한 속도였다.
“원격 복제 카드일까요?”
“가능성은 있어. 아니면 정지 시간 속에서 누군가 움직였거나.”
“둘 다 싫네요.”
문석이 서명 검증 결과를 내밀었다. 전자 서명이 정상이라는 표시가 있었지만, 정상이라는 말은 카드가 유효하다는 뜻일 뿐 들고 있던 사람이 누구인지를 증명하지는 않았다.
나는 모래주머니 옆에 빈 종이 한 장을 올려 두었다. 누군가 이곳에 와서 다시 ‘차도겸’을 강제로 입력하더라도 적어도 그때 사람이 좌석에 없었다는 현장 기록은 남았다. 증거가 사람을 구해 주지 못하는 순간도 있겠지만, 증거 없이 사람을 구했다고 말하는 건 더 위험했다.
남 형사는 외부의 법률·행정 조사팀에 증거를 전달하고 임의 승차 처리의 중단을 요청했다. 나는 모래주머니를 치웠다. 그런데 센서 신호를 끊었는데도 본 장치의 화면은 바뀌지 않았다.
[점유 상태 유지]
[사유: 최초 보관자의 의사 확인 대기]
“이건 센서가 아니라 과거 기록을 보고 있군요.” 문석이 말했다.
우리는 접근 권한을 좁혀 과거의 0번 좌석 로그를 살폈다. 1998년 6월 13일, 오후 여섯 시 십일 분. 차정수가 남긴 기록에는 뜻밖에도 이름이 두 개 나왔다.
[좌석 보호대상: 차도겸]
[현장 응답자: 미확인]
그 사이에 빈칸 하나가 있었다. ‘탑승 의사 확인’이라는 제목의 칸이었다. 그 칸을 누가 삭제했는지는 2011년 재배포 내역에 남아 있었다.
[변경 승인 계정: 운영자 K-07]
나는 구태형을 떠올렸다. 그의 계정이 사건마다 반복해서 나타났다. 실제 작업을 했다는 직접 증거가 아직 충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름을 빌린 사람이 누구인지 찾을 수 있는 로그가 있었다. K-07의 인증키는 개인 컴퓨터가 아니라 차고지에 보관된 물리 카드에서 발급된 것이었다.
우리는 카드를 찾았다. 분실 신고가 된 뒤 한 번도 회수되지 않았다는 기록만 남았다.
그때 매표창구의 작은 창문 밖에 그림자가 지나갔다.
“누구세요?” 유나가 소리쳤다.
대답은 없었다. 우리는 통제 인력에게 알리고 출입구로 향했다. 철문 앞에는 소형 오토바이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 헬멧을 쓴 사람이 출발하려는 순간 남 형사의 동료가 손을 들었다.
“잠시 확인하겠습니다.”
남자는 오토바이를 세우고 헬멧을 벗었다. 나는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구태형이었다.
그는 나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 차를 건드리지 말랬을 텐데.”
“여긴 출입 기록도 안 남는 곳이라면서요. 어떻게 아셨죠?”
그가 웃었다.
“여섯 시가 오기 전에 와야 했으니까.”
남 형사가 물었다.
“왜요?”
구태형은 버스를 바라봤다. 순간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저 안에 있는 사람은 너희가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야.”
“누구죠?” 내가 물었다.
그는 대답 대신 낡은 출입 카드를 내밀었다. K-07. 정확히 우리가 찾던 카드였다.
“이걸 받으면,” 그가 말했다. “오늘 오후 여섯 시에 차가 출발하는 걸 막을 수 있어.”
나는 그의 손을 보았다.
카드 앞면에는 지문이 묻어 있었다. 하나는 어른의 것, 다른 하나는 아주 작은 아이의 것이었다.
그가 낮게 속삭였다.
“하지만 받는 순간 네가 최초 보관자라는 것도 인정해야 하지.”
제18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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