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작품, 이어지는 이야기 · 페이루아에서 다음 페이지를 만나보세요
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83화
PAYLUA ORIGINAL · 제183화

183화. 한 사람이 아니었던 승객들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2,938자

오프라인 책장
“그 버스가 실제로 4,183명을 태울 수 있다는 겁니까?” 남기혁 형사의 질문에 강문석이 고개를 저었다. “그 숫자를 인원으로 취급하면 안 됩니다. 기록 건수예요. 그중에 동일인 중복도 있고 장치 시험 항목도 있어요.” “그런데 버스가 모두를 출발지로 돌려보내겠다고 하네요.” “그래서 더 문제예요. 존재하지 않는 승객의 목적지는 누가 정합니까?” 나는 현장 회의용 화이트보드에 숫자를 적었다. 4,183. 누군가 세상을 끝장내겠다고 할 때 외치기 좋은 숫자였다. 하지만 현실에서 그 숫자에는 서로 다른 장부가 있었다. 1998년 보호대상 목록, 2011년 이동 기록, 2027년 예약 계약. 같은 아이가 세 번 적힌 경우도 있었다. 이름 대신 시설 코드가 들어 있는 경우도 있었다. 이채원이 출발 버튼 옆 회로를 확인하는 동안, 문석은 승차 기록의 원본을 읽기 전용 복사본으로 분리했다. 이름과 주소는 보호하고, 식별번호의 유형과 등록 시각부터 분석했다. “181개가 아니라 171개였죠?” 유나가 물었다. “171건은 버스 귀환 대기 장부입니다. 전체 예약 4,183건과는 다른 묶음이에요. 겹치는 기록이 있다고 해서 같은 뜻은 아니에요.” “정말 사람 찾는 일이 이렇게 복잡해야 해?”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복잡함은 사람이 아니라 장부가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장부를 무작정 지우면 복잡함이 사라지는 대신 사람도 사라질 수 있었다. 우리는 비교 기준을 세웠다. 과거에 실제 승객의 진술이 있었는지, 본인이 돌아오고 싶다고 답했는지, 누군가 대신 답했는지. 남 형사는 구조와 신원 조회를 담당했고, 유나는 오재민의 이름이 사용된 모든 항목을 따로 표시했다. 다섯 번 중 세 번은 장치 코드, 한 번은 대리 호출, 마지막 한 번만 실제 사람과 관련된 연락처가 있었다. “연락처가 남아 있다는 건….” “재민 씨가 직접 썼는지 확인이 필요합니다.” 서아가 말했다. 유나는 말을 멈췄다. 슬퍼하는 사람 앞에서 희망을 아끼는 건 잔인할 때도 있다. 하지만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사람의 생존 증거라고 부르는 것도 잔인하다. 서아는 유나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오후 세 시, 차고지 바깥에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중년 여성이 통제선을 넘어오려 했다. 그녀는 손에 버스표를 쥐고 있었다. “오늘 막차가 뜬다고 해서 왔어요.” 남 형사가 여성을 안전한 곳으로 안내했다. 여자는 2011년 당시 영병원 근무자였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이름은 박미령. 열한 분이 사라진 날 동료가 171번 버스를 탔고, 자신은 막차를 놓쳤다고 했다. “그 동료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돌아왔어요.” 여자가 답했다. “몸은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말했다. “그 사람은 집으로 왔는데 자기 아이가 몇 살인지 몰랐어요. 그러고는 몇 달 뒤에 다시 사라졌어요. 이상하게 경찰에 신고한 기록은 남아 있는데 그 신고서의 이름이 달라요.” 남 형사는 진술을 채록했다. 나는 여자의 손에 쥔 차표를 보았다. 붉은 도장 옆에 ‘전근’이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사람에게 전근이라는 단어를 쓰는 건 이상하지 않다. 하지만 그녀의 동료는 직장을 옮기지 않았다. 몇 달 뒤 다시 불려 갔을 뿐이었다. “버스표를 어디서 받으셨어요?” 내가 물었다. “어제 우편함에 들어 있었어요. 누가 보냈는지는 모르겠어요.” 표 뒷면에는 간단한 안내가 있었다. ‘미귀가 승객 보호자에게: 출발을 승인하면 가족의 기억이 복구됩니다.’ 나는 종이를 보며 이가 갈렸다. 누구보다 아픈 것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기억을 돌려주겠다고 약속하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상대의 상처를 계약의 버튼으로 만들고 있었다. 서아가 말했다. “미령 씨, 이 종이를 갖고 계시다는 이유만으로 동의한 건 아닙니다. 아무 버튼도 누르지 않으셔도 돼요.” “그럼 그 애를 찾을 수 있나요?” “확답은 못 드립니다. 하지만 이런 표가 다른 사람에게도 갔는지 확인해 볼 겁니다.” 여자는 차표를 남기고 돌아갔다. 나는 출입문이 닫힐 때까지 그녀를 바라봤다. 그제야 문제의 규모를 깨달았다. 버스 안에 갇힌 사람이 전부가 아니었다. 밖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기억까지 누군가 이용하고 있었다. 박미령 씨가 떠나기 전, 나는 그녀가 차표를 접는 방식을 기억했다. 아주 오래된 영화표를 다시 주머니에 넣듯 모서리를 반듯하게 맞췄다. 그 표를 버리기엔 그것이 어쩌면 잃어버린 동료와 연결된 마지막 물건일지도 몰랐을 것이다. “하나만 여쭤봐도 될까요?” 내가 말했다. 여자가 돌아봤다. “그분을 다시 만나면 가장 먼저 뭐라고 하실 겁니까?” 그녀는 한동안 생각했다. “안 늦었냐고요. 그날 퇴근하고 같이 먹기로 한 국수가 아직 마음에 걸려서.” “국수요?” “별거 아니죠? 그런데 그 애가 실종되고 나니까 그 별거 아닌 약속을 못 지킨 게 계속 생각났어요.” 나는 고개를 숙였다. 누구나 거창한 소원을 품은 채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건 아니다. 같이 먹지 못한 한 끼, 못다 한 인사, 빌려 주고 돌려받지 못한 책 같은 것이 사람을 붙든다. 그녀가 나가고 나서 유나가 말했다. “재민이가 돌아오면 나는 뭐부터 할까.” “뭐부터 하고 싶으세요?” “그냥 혼낼 거야. 어디 갔었냐고.” 유나는 웃으려다가 눈을 가늘게 감았다. “그리고 라면 끓여 줄래.” 나는 그 말을 잊지 않으려고 수첩에 적었다. ‘귀환 이후의 첫 식사. 오유나의 라면.’ 오후 네 시, 남 형사가 연락을 받았다. 비슷한 차표를 받은 신고가 네 곳에서 접수됐다고 했다. 발송일은 모두 어제. 봉투에는 주소도 이름도 없었다. 버스는 사람을 태우기도 전에 이미 운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문석은 우편물 발송 명령의 출처를 좇았다. 얼마 뒤 화면에 거래처 명칭이 나타났다. [발송 요청: 퇴근망 고객지원 센터] [요청자: 구태형] 나는 이름을 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번에도 서명만 빌린 것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가 빌렸든, 그 장부를 끝까지 따라가야 했다.

PAYLUA 소설 본문은 인쇄가 제한되어 있습니다.

제183화 끝

읽은 위치는 이 브라우저에 저장되며 로그인 중에는 계정에도 동기화됩니다.
READER DISCUSSION

제183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남기려면 로그인해 주세요.로그인회원가입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