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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75화
PAYLUA ORIGINAL · 제175화

175화. 두 개의 이름표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371자

오프라인 책장
남기혁 형사는 형의 이름이 적힌 인계표를 오래 바라봤다. “형은 여기까지 왔네요.” 그가 그렇게 말하기까지 긴 시간이 걸렸다. 나는 남 형사의 손에 놓인 사진을 봤다. 남도윤은 젊은 얼굴로 웃고 있었다. 이 사람이 우리보다 먼저 같은 문을 보고, 어쩌면 똑같은 질문을 했을지도 모른다. “인계표가 진짜인지 확인해야죠.” 형사가 말했다. “형의 행적을 찾고 싶지만 그럴수록 조심해야 해요.” 유나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재민의 이름을 찾을 때마다 같은 선택을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점검실에서 가져온 두 장의 이름표를 대조했다. 하나는 ‘오재민 — 보호대상’, 다른 하나는 ‘R-MIN — 장치 관리 코드’였다. 두 이름표는 각기 다른 시기에 인쇄됐다. 유나가 알고 있는 동생의 학교 사진과 첫 번째 이름표의 출생 정보는 일치했다. 두 번째에는 사람을 식별할 정보가 없었다. “R-MIN은 사람일 수도 있고 모듈일 수도 있죠.” 서아가 말했다. “장치 코드라고 생각하는 게 더 맞겠어.” 문석이 대답했다. “그런데 정산 프로그램이 이걸 ‘오재민’의 약자로 해석했네.” 나는 노트북에 기록 생성 과정을 손으로 그렸다. 장치 코드를 사람 이름처럼 읽게 된 순간부터 오재민은 출근해야 하는 사람이 됐다. 존재하지 않는 업무가 존재하는 사람의 기억을 붙잡았다. 간단한 오류처럼 보였지만 누군가 의도적으로 바꿔 놓은 매핑표가 있었다. 실수가 아니라 수정 이력의 문제였다. “그 매핑표를 누가 바꿨어?” 문석이 여러 버전을 띄웠다. 2011년 6월 11일 오후 6시 11분. 관리자 서명란에는 남도윤의 이름이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 감사 서류에는 전혀 다른 손글씨가 남아 있었다. ‘서명은 회수되었으며 대리 처리에 동의하지 않았음.’ “도윤 씨 이름이 도용됐을 수도 있네요.” 유나가 말했다. “가능합니다.” 남 형사가 답했다. “그런데 형이 실제로 여기에 왔다는 흔적도 있습니다. 어느 부분까지 형이 했는지 분리해야죠.” 남 형사는 서류를 증거 봉투에 넣었다. 그 손놀림이 침착해서 오히려 슬펐다. 가족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법적 절차에 따라 봉인하는 일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외로웠다. 그날 오후 유나는 다른 방에 들어가 오래된 사진을 골랐다. 사진 속의 재민은 생일 케이크 앞에서 두 손을 든 채 웃고 있었다. 유나는 그 사진을 수십 번 본 사람이 아니라 지금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한참 바라봤다. “내가 재민이를 기억하는 방식이 왜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어.” “사진은 그대로인데 기억만요?” “아니.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처음 받아들이게 된 것 같아.” 그녀는 케이크 옆에 적힌 초록 별을 가리켰다. 종이시계 안에도 있었던 표식이었다. 그 별은 유나가 동생에게 주는 생일 표시였다. 재민이 그린 것이 아니었다. “나만 아는 비밀인 줄 알았는데, 사실 가족 사진마다 있어. 그걸 보고 누구든 그릴 수 있겠지.” “그럼 우리가 그 표식을 증거로 쓰면 안 되겠네요.” “그렇지.” 유나가 사진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재민이가 이 사진 속에서 웃었다는 사실까지 버릴 필요는 없어. 내가 확실히 아는 것과 모르는 걸 따로 둘 거야.” 나는 그 말을 수첩에 적었다. 시간 정지 사건이 시작된 뒤부터 나는 무언가를 믿기 위해 너무 많은 문서를 찾았다. 그러나 문서가 사람의 웃음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남 형사는 형의 마지막 실종 신고서도 다시 확인했다. 신고서에는 남도윤이 버스를 타고 외곽 창고로 향했다고 적혀 있었다. 신고인들은 그 말을 어디서 들었는지 서로 다르게 기억했다. 한 사람은 정류장에서 봤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통화 기록에서 추정했다고 했다. 우리에게 지금까지 정확한 증언처럼 전달된 문장이 사실은 여러 추정의 조합이었을 가능성이 있었다. “형이 버스에 탔다는 말부터 잘못됐을 수 있군요.” 남 형사가 말했다. “차 아래의 문으로 들어갔다는 증언도 있었죠.” 내가 말했다. “그 증언도 검증해야 합니다. 하지만 적어도 형을 찾는 방향은 하나 더 생겼어요.” 유나는 그에게 물을 건넸다. “형사님, 재민이 이름이 잘못 쓰였다고 해서 제가 그 아이를 못 찾는 건 아니죠?” “그렇죠. 단서가 하나 틀렸다고 사람까지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유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내가 들은 말 중 가장 중요한 문장처럼 느껴졌다. 나는 잠시 계단으로 나가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집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싶었지만, 전화를 받자마자 그녀가 먼저 내게 밥을 먹었느냐고 물었다. 잃어버린 기억 속의 어머니도 분명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 그녀가 말하는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사라진 장면을 대신 채우려 하지 않고. “먹었어요.” “거짓말하지 마. 목소리에 힘이 없는데.” “그런 건 어떻게 아세요?” “오래 들으면 알아.” 나는 어머니에게 지금 내가 병원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과 위험한 구역에는 구조팀과 함께 들어간다는 사실만 알려 드렸다. 확인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말하거나, 괜찮다고 장담하지 않았다. 전화를 끊고 나서 잠깐 눈가가 뜨거워졌다. 돌아오니 남 형사가 여전히 문서 앞에 서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옆에 섰다. 그가 한참 뒤에 말했다. “도겸 씨, 형이 살아 있다면 제일 먼저 뭐라고 물어야 할까요?” “왜 사라졌냐고 묻고 싶겠죠.” “그렇죠.” “근데 저는 이제, 그동안 괜찮았는지부터 묻고 싶어요.” 남 형사는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들었다. “저도 그렇게 해 보겠습니다.” 저녁 무렵, 이채원은 하부 중계기 전원 회로를 분리한 상태에서 수동 통신선이 외부로 이어지는 경로를 찾아냈다. 그 통신선은 병원 중앙 서버가 아니라 지하 통로 끝의 오래된 교환기로 연결돼 있었다. 교환기에는 작게 ‘귀환인 자율통신’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었다. “원래는 사람을 감시하기 위한 선이 아니었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요.” 채원이 답했다. “안에 있는 사람이 언제든 ‘나갈 준비가 됐다’거나 ‘지금은 싫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든 거예요. 누군가 그걸 출근 확인 신호로 바꾼 거고.” “그럼 그 선을 다시 원래대로 고칠 수 있을까요?” “가능할지 확인할 겁니다. 그냥 선을 끊으면 다시는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바로 그때 교환기의 작은 종이 출력기에서 한 줄이 나왔다. 문석이 손을 대지 않았는데도 장치 안쪽에서 종이가 밀려 나왔다. [외부 근무 기록: 오재민 — 거부] 두 번째 줄이 뒤따랐다. [실내 수동 회신자: 이름 밝히지 않음] 유나는 출력물을 바라봤다. 어제까지는 이름 없는 존재가 무서웠다. 지금은 이름을 밝히지 않겠다는 선택도 누군가의 권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세 번째 줄이 나타났다. [남도윤: 생존 확인 절차 요청] 남기혁 형사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누가 요청했습니까?” 출력기가 짧은 소리를 냈다. [회신자 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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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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