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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74화
PAYLUA ORIGINAL · 제174화

174화. 바닥 아래의 점검실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409자

오프라인 책장
방독 마스크를 쓴 구조팀이 올라온 뒤에야 우리는 지하 점검실로 내려갈 수 있었다. 안전 확인이 끝난 길만 따라가고, 장비의 봉인은 손대지 않는 조건이었다. 나는 누군가 다녀간 흔적을 보려고 천천히 걸었다. 유나는 바로 앞에서 손전등을 들었다. 영병원 아래층은 병원이라기보다 오래된 공장 지하실 같았다. 벽마다 부식된 배관이 지나갔고, 바닥에는 물이 얕게 고여 있었다. 한쪽에 ‘제3 귀환문 하부 중계기’라고 적힌 금속판이 있었다. 글자는 2011년에 붙인 것처럼 보였지만 나사가 바뀐 시점까지 알 수는 없었다. “재민이가 여기 있었을까요?” 유나가 물었다. “아직 흔적만 있어요.” 나는 손전등을 움직여 바닥을 비췄다. 작은 플라스틱 구슬 두 개가 배수로 옆에 놓여 있었다. 유나가 움직임을 멈췄다. “재민이가 놀던 구슬하고 같은 색이야.” “그것만으로는 모르죠.” “알아. 알아서 더 화가 나.” 그녀는 구슬에 손대지 않고 사진을 찍었다. 남 형사는 발견 위치를 표기한 뒤 보존할 수 있도록 구조팀에 요청했다. 나는 유나가 손을 떨며 카메라를 내리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단서는 너무 작아서 사람을 괴롭혔다. 같은 색 구슬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데, 왜 그 두 개가 여기 있어야 할까. 점검실 안에는 작은 작업대가 있었다. 낡은 수동 종의 부품, 1998년 생산된 배터리 케이스, 인쇄된 근무표 몇 장. 그런데 근무표 끝에는 ‘환자’도 ‘직원’도 아닌 이름 없는 칸이 하나 더 있었다. [원격 관측자: 미지정] “사람 이름을 넣기 위한 칸인가?” 내가 말했다. 서아가 종이를 살폈다. “원본에서 이 칸은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안쪽의 상태를 밖에 전달하는 장치 번호였을 수도 있어. 2011년 사본에는 사람 이름이 들어가 있지.” 문석은 복사본을 꺼내 두 문서를 겹쳤다. 글씨를 비춰 보니 실제로 열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장치의 관측 번호를 사람의 근무 번호로 바꾼 흔적이었다. “그럼 재민이의 이름도 이렇게 들어갔겠네.” 유나가 말했다. “가능성은 있어요. 하지만 누가 넣었는지는 따로 찾아야 해요.” 점검실 끝은 철문이었다. 문 위에는 작은 유리창이 있었고, 안쪽은 검었다. 구조팀이 확인했을 때 이 안에는 산소가 충분했고 온도도 일정했다. 다만 문이 안쪽에서 잠겨 있었다. 잠금장치가 작동 중이라는 것이 오히려 이상했다. 전원이 없는 구역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다. “수동 잠금이라고 합니다.” 남 형사가 말했다. “안쪽에서 풀어야 열립니다. 부술 수는 있지만 안에 사람이 있다면 위험할 수 있어요.” 유나는 문 가까이 다가갔다. 한 번 두드리려다가 멈췄다. “나는 오유나야. 대답하지 않아도 돼. 이 문 밖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려 주고 싶어.” 잠시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나는 벽에 붙은 회선 번호를 확인했다.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2011년 기록에 있는 중계기 번호 끝은 171인데, 실제 문에는 117이 붙어 있었다. “번호가 바뀐 건가요?” 남 형사가 사진을 찍었다. “그것도 감정이 필요하겠군요.” “아니.” 문석이 말했다. “잠깐, 내가 171을 잘못 읽은 건가?” 그는 저장해 둔 171번 버스 관련 문서를 꺼냈다. 버스 노선처럼 보이는 항목의 뒤쪽은 사실 탑승자의 숫자가 아니라 ‘하부 케이블 중계 주소’였다. 117과 171은 서로 바뀐 번호로 남아 있었다. 우리가 몇 달 동안 171건의 기록을 사람으로 환산하지 말자고 반복해서 말한 이유가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오래된 주소를 새 체계로 바꾸면서 순서를 뒤집었어.” 문석이 말했다. “그러고는 전체 기록 171건을 승객처럼 표시했지.” “그게 남도윤 씨가 버스에 타지 않았다는 말과도 연결되겠네요.” 서아가 말했다. “맞아. 하지만 여기서 실제로 누가 움직였는지는 별개야.” 구조팀은 점검실 안쪽으로 향하는 통로의 온도와 산소 농도를 주기적으로 확인했다. 일정한 호흡 소리처럼 들리던 기계음은 사실 급기 팬이 회전하면서 생긴 공명이라고 했다. 나는 순간 힘이 빠졌다. 누군가 살아 있다는 증거를 하나라도 더 찾고 싶어 내가 소리를 사람의 숨으로 해석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팬이 돌아간다는 건 누군가 관리했다는 뜻이겠죠?” 채원이 고개를 저었다. “비상 배터리만으로도 일정 시간 작동해요. 지금 얼마나 오래 돌아갔는지까지는 알 수 없습니다.” 나는 웃었다. “이 병원에서는 확실한 게 하나도 없네요.” “확실하지 않다고 다 헛수고는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확실한 부분부터 찾아야죠.” 점검실 벽에는 옛 직원들이 그려 놓은 낙서가 있었다. ‘오늘도 무사히 귀가’라는 문장 옆에 작은 시계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었다. 첫 시계는 18:00, 둘째는 18:11, 셋째는 빈 원이었다. 나는 사진을 찍어 서아에게 보여 줬다. “세 번째 시계가 비어 있어요.” “원래 귀환 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았을 수 있어.” “그런 뜻이면 좋겠네요.” “좋겠다고 해서 확정하진 말고.” “그 말 제가 제일 자주 하는데, 제가 들으니 좀 서럽네요.” 서아가 처음으로 웃었다. 곁에서 지켜보던 남 형사도 입꼬리를 조금 올렸다. 웃음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것은 빈 원이었다. 그 원을 누군가의 이름으로 채우지 않는 것. 요즘 우리가 가장 어렵게 배우는 규칙이었다. 유나는 작은 구슬이 놓인 배수로 근처로 돌아왔다. 그녀는 다시 사진을 확인하다가 한 가지를 발견했다. 구슬은 사진에서 보던 장난감과 달리 안쪽에 기포가 있었다. 재민이가 갖고 놀던 것에는 기포가 없었다고 했다. 그녀는 그 차이도 기록해 달라고 했다. “누군가 여기 유인하려고 놓았다면, 그 사람한테는 똑같이 보였을 수도 있어.” “동생을 기억하는 사람이면 다르게 봤을 수도 있겠네요.” “그래.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재민이가 놓았다는 증거도 안 되지.” 그녀는 사진 한 장을 더 찍었다. 찾고 싶은 마음을 못 믿어서가 아니었다. 찾고 싶은 마음이 너무 커서 기록을 더 정확하게 남기는 것이었다. 유나는 갑자기 철문을 바라봤다. 유리 아래로 작은 흰 종이가 밀려 나왔다. 손가락이 겨우 들어갈 틈이었다. 종이는 습기에 젖어 있었고, 안쪽에서 바깥으로 밀린 흔적이 있었다. 나는 다가가려다 멈췄다. 구조팀의 동의를 받고 종이를 회수했다. 글씨는 잉크가 아니라 연필로 적혀 있었다. ‘문을 부수지 마세요. 지금은 바깥 시간을 빌리지 않아도 됩니다.’ 아래에는 서명이 없었다. 유나가 오래 종이를 내려다봤다. “재민이면 왜 이름을 안 써?”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철문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른다는 점은 바뀌지 않았다. 그렇지만 한 가지는 분명했다. 안에 있는 누군가는 바깥 사람이 문을 열기 위해 무엇을 할지 예상하고 있었다. 돌아가려던 순간, 수동 종 옆에 붙은 날짜표에서 종이 한 장이 떨어졌다. [2011.06.11 인계 담당: 남도윤] 그 아래에는 정반대의 글씨체로 적힌 메모가 있었다. ‘재민의 이름을 쓰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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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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