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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7화
PAYLUA ORIGINAL · 제17화

17화. 증인 한 사람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040자

오프라인 책장
오후 6시 정각, 내 앞에서 자동차가 멈췄다. 정확히는 멈춘 채로 존재했다. 바퀴가 아스팔트를 누르고 있었지만 타이어 아래 작은 물웅덩이는 더 이상 출렁이지 않았다. 신호등은 빨간색과 노란색 사이에서 깜박이던 순간을 붙잡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그 풍경이 싫었다. 여섯 번이나 본다고 익숙해지는 종류의 기괴함이 아니었다. 더 싫은 것은 남기혁 형사였다. “형사님, 움직이지 마세요.” “이미 움직였습니다.” 그가 자신의 손목을 내려다봤다. 검은 띠에는 08:00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이건 뭡니까?” “예전에 비슷한 시계를 차셨을 때는 열세 걸음만 걸어도 몸이 망가졌어요.” “이번에는 여덟 분인가 보군요.” “절대 확신하지 마세요. 저쪽이 여덟 분이라고 썼다고 정말 여덟 분일 리가 없어요.” 유나가 손목의 띠를 확인했다. “이건 빌린 시계가 아니라 증인 입장권이야. 도겸이 넘긴 장부를 형사님이 받으면서 자동으로 증거 인계 기록이 생긴 거지.” “동의도 안 했는데요.” “보관국은 그걸 동의라고 우길 거야. 그러니 여기서도 계속 거부해야 해.” 남 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종이 장부의 표지를 보여 줬다. 장부에는 글씨가 새로 생겼다. [외부 증거 접수: 18:00:00.] [인계자: 차도겸.] [보관자: 남기혁.] [감사 심리 개시를 요구할 수 있음.] 남 형사가 작은 웃음을 지었다. “그러니까 지금 이게 증거 제출 접수증이군요.” “제출 마감이 여섯 시였으니까 겨우 걸쳤네요.” “야근하는 검사한테도 이렇게 빡빡하게 제출하진 않습니다.” 우리 셋이 동시에 웃었다. 상황이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사람은 정신이 나갈 것 같으면 농담이라도 붙잡는다. 맞은편 인도에 검은 문이 나타났다. 마치 원래 거기에 있었다는 듯 벽돌 틈이 열리며 손잡이가 튀어나왔다. 위에는 작은 동판이 달려 있었다. ‘제6시 보관국 감사실’. 나는 손잡이를 잡기 전에 남 형사에게 물었다. “형사님, 여덟 분 안에 반드시 돌아가셔야 해요. 부인 이름도 잊지 마시고요.” 그는 눈을 한 번 감았다. “남하린. 아내 이름 남하린. 잊을 것 같으면 당신이 적어 줘요.” “적어 드리겠습니다.” 문이 열렸다. 감사실 내부는 놀라울 만큼 평범했다. 낮은 천장, 세 줄로 놓인 의자, 물 한 잔이 놓인 길쭉한 책상. 다만 벽에는 시계가 없었고, 창밖에는 건물이 아니라 흰 종이가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감사실의 첫 번째 줄에는 이름표만 놓여 있었다. 김태오, 남하린, 오재민. 정작 의자에는 아무도 앉아 있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오래된 학급 회의 시간을 떠올렸다. 결석한 사람을 두고 모두가 그 사람의 잘못을 의논하던 순간. 본인은 들을 수도 없고, 반박할 수도 없었던 회의 말이다. 이곳의 책상은 깨끗했다. 펜도 새것이었고 유리 물잔에는 먼지가 없었다. 그러나 증인을 위한 자리는 하나뿐이었다. 처음부터 여러 사람이 의견을 말하도록 만든 장소가 아니었다. 유나가 빈 이름표들을 한 번씩 만졌다. 그녀는 오재민 앞에서 조금 오래 멈췄다. “내 동생이 여기 앉을 수 있는 날이 올까?” “그럴 수 있도록 해 보죠.” 내가 말했다. 이곳에서 결정되는 건 계약 문장의 의미만이 아니었다. 빈 의자에 언젠가 실제 사람이 앉을 수 있는지,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였다. 나는 가운데 책상으로 다가갔다. 바닥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는 내 이름표가 붙은 자리를 가리켰다. “감사 요청자 차도겸 씨. 정해진 시간에 오셨군요.” “지각하면 감점입니까?” “그런 규정은 없습니다.” “참 의외네요.” 서기관은 농담을 무시하고 두꺼운 서류를 펼쳤다. “이의 신청 대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시간 분기 후 주체 말소 조건의 적법성. 둘째, 제삼자 기억의 동의 없는 보관. 신청자가 증거를 제출하면 심리하겠습니다.” 나는 종이 장부를 내밀었다. “이게 동의 없는 보관 대상자 목록입니다. 여기 적힌 사람들 중 적어도 세 명은 동의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서기관은 장부를 보지 않았다. “외부인이 작성한 사본입니다. 원본은 보관국의 내부 서버에 있으며 사본의 진정성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진정성이란 말을 참 쉽게 쓰시네요.” 남 형사가 끼어들었다. “이 장부는 차도겸 씨로부터 제가 직접 인계받았습니다. 현실 시각 오후 6시 정각. 인계 과정은 차량 블랙박스와 제 휴대전화, 경찰 무전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시간이 정지됐으므로 그 기록은 원래 없겠지요.” “그래서 종이로도 작성했습니다.” 그가 수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18:00:00, 장부 인수’라고 적혀 있었다. 서기관이 처음으로 종이에 시선을 주었다. “필적 확인이 필요합니다.” “직접 쓰겠습니다.” 남 형사는 자기 이름을 또박또박 적었다. 마지막 획이 끝나자 종이에 붉은 도장이 찍혔다. [독립 증인 서명 확인.] 나는 수첩에 남긴 서아의 문장을 떠올렸다. ‘내 이름을 증인으로 적지 마. 자기 이름을 쓸 수 있는 사람.’ 그래서였구나. 서아는 기억 속에서 목소리를 빌린 증인이 아니었다. 보관국이 이름을 통제할 수 없는 바깥의 사람이 필요했던 것이다. 서기관의 표정은 여전히 평온했다. “외부 증인 한 사람으로는 모든 대상자의 동의 여부를 판단할 수 없습니다.” “모든 대상을 판단하자는 게 아닙니다.” 나는 감사실 책상 아래의 작은 표를 발견했다. ‘당사자 진술’, ‘보관 원장’, ‘동의 여부’. 세 칸으로 나뉜 표였다. 보관 원장 칸은 전부 채워져 있었지만 당사자 진술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기관. 여기 빈칸은 뭡니까?” 그가 답했다. “증명 가능한 진술이 접수되지 않은 항목입니다.” “그럼 서류를 열 때부터 당사자 진술이 없었다는 걸 알았다는 뜻이군요.” “내부 승인자는 서류가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서류가 충분한지 판단한 사람이 구태형이라는 거죠?” 남 형사가 책상 아래 표를 눈여겨봤다. “여기에도 제가 서명할 수 있습니까?” “증인의 서명권은 이의 신청 서류에만 한정됩니다.” “그럼 왜 제 앞에 표를 놓으셨습니까?” 형사는 귀찮게 하려는 사람처럼 끝까지 질문했다. 나는 그가 경찰서에서 매일 이런 식으로 시간을 쓰며 사람들의 진술을 받아 왔으리라 생각했다. 작은 모순 하나를 놓치지 않으려고 같은 질문을 여러 번 반복하는 일. 그때 나는 장부 뒤쪽에 끼워진 낡은 메모를 발견했다. ‘당사자에게 의사를 묻기 전에 서명권을 확인하지 말 것. 서명권자가 먼저 나타나면 진술을 막는다.’ 서아의 필체였다. 나는 그 문장을 마음속에 새겼다. 무엇보다 먼저 사람에게 묻는다. 구태형이 무슨 권한을 가졌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나는 장부의 김태오 항목을 펼쳤다. “세 사람부터 확인해요. 김태오, 남하린, 오재민. 그들이 직접 동의했는지 묻고, 거절했다면 돌려보내세요.” 서기관이 고개를 저었다. “보관 객체는 감사실로 소환할 수 없습니다.” 나는 ‘객체’라는 단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저 사람은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동생이고, 다른 누군가와 다투고 웃으며 살았을 텐데 여기에서는 객체라고 불린다. “그 사람들을 보관물이라고 부르지 마세요.” “시스템 등록 명칭입니다.” “고쳐야겠네요.” “용어 변경은 운영 부서 소관입니다.” “그 운영 부서가 오늘 감사 대상이잖아요.” 서기관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남 형사가 나지막하게 말했다. “차 씨, 계속하세요. 사람 이름을 부르면 저 사람도 모른 척하긴 어려울 겁니다.” 나는 이름 세 개를 천천히 읽었다. 사람이 아니라 사건번호처럼 불리던 이름들. 지금까지 그 이름을 입 밖에 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작은 저항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왜요?” “자기 의사 확인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물어보지도 않고요?” “그들의 상태는 내부 시스템에 등록되어 있습니다.” 나는 웃음이 나왔다. “우리 회사에도 그런 시스템 있어요. 고객 불만 처리 상태를 담당자가 ‘완료’로 바꾸면 고객이 아직 화내고 있어도 완료가 됩니다.” 서기관의 눈이 미세하게 떨렸다. “비유가 적절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규정을 봅시다. 자기 의사를 확인할 능력이 부족하다는 걸 판단한 사람이 누굽니까?” 대답이 없었다. 나는 다시 물었다. “구태형입니까?” 그 이름이 나오자 창밖의 흰 종이에 검은 글씨가 나타났다. [외부 운영 승인자 출석 요청.] 서기관은 서류를 빠르게 넘겼다. “그 절차는 신청하실 수 없습니다. 승인자는 관리 주체에 속합니다.” “바로 그게 문제죠. 관리자가 본인 승인을 근거로 자기 잘못이 없다고 하는 구조잖아요.” 남 형사가 단호하게 말했다. “현실에서도 그런 식이면 수사가 시작됩니다.” 그때 감사실 뒤편 문이 열렸다. 구태형이 들어왔다. 회색 점퍼 대신 검은 정장을 입고 있었다. 평소 회사에서 월요일 회의에 나타나던 관리자처럼 평온한 얼굴이었다. “차도겸 씨. 여기까지 왔네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본 승인서 가져왔습니까?” “가져왔죠. 당신도 보고 놀라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가 서류가방에서 한 장의 문서를 꺼냈다. 첫 장에는 내 서명이 있었다. 6월 13일, 오후 5시 59분 59초. 그리고 그 아래 작게 적힌 문장. ‘동의자: 차도겸. 제삼자 기억의 담보 설정 승인.’ 내 입이 벌어졌다. “이걸 제가 했다고요?” 구태형이 미소 지었다. “당신이 사람들을 구하려고 만든 시스템입니다. 그럼 비용도 당신이 책임져야겠죠.” 나는 문서를 가리켰다. “그런데 이상하네요.” “뭐가?” “제 서명 밑에 있는 날짜요. 6월 13일이면 원본과 제가 분기되기 전인데.” 구태형의 미소가 조금 흐려졌다. “그래서?” “분기 이전 사람이 분기 이후 다른 사람들의 기억을 대신 동의할 수는 없죠.” 감사실 천장이 갑자기 낮게 울렸다. [동의권 범위 충돌 감지.] 서기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심리 중지. 소명 자료를 보완하십시오.” 나는 더 큰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본 서명을 확인하는 방법이 남았거든요.” 그때 남 형사의 손목에서 숫자가 울렸다. 05:12. 남은 시간은 오 분 남짓이었다. 그리고 구태형이 내게 몸을 기울여 속삭였다. “원본을 부르면 당신이 제일 먼저 후회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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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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