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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66화
PAYLUA ORIGINAL · 제166화

166화. 미래 날짜의 지문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455자

오프라인 책장
사람에게는 익숙한 것이 안전하다는 착각이 있다. 나는 평생 키보드 앞에 앉아 일했으니 전산 기록의 날짜를 읽는 건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는 내가 쓴 코드보다 손으로 남긴 지문이 더 많은 것을 말해 줄 것 같았다. 이채원은 BELL-R 모듈을 분리하지 않고 기록 출력부만 차단해 둔 상태였다. 종소리는 여전히 들렸지만 외부 정산망에 ‘확인 완료’가 올라가는 길은 막혀 있었다. 동시에 누가 언제 장치에 손을 댔는지를 추적하기 위해 봉인 상태를 촬영했다. “물리적으로 연결된 장치를 손대지 않으면 데이터는 어디서 찾아요?” 내가 물었다. “관리 이력이 있어요.” 그녀가 답했다. “시설 부품은 바꿔도 마지막으로 확인한 사람의 이름은 남겨야 하거든요.” 그녀가 꺼낸 2011년 관리 대장은 낡은 종이책이었다. 오른쪽에는 손으로 찍은 검은 지문이 있었다. 같은 위치에 다른 도장이 두 번 겹쳐져 있었다. “이건 누가 남겼을까요?” “모릅니다. 지문처럼 보이지만 잉크가 눌린 흔적일 뿐이에요. 사람 지문인지도 감정이 필요해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지난 몇 달 동안 ‘확실하다’고 말하기를 너무 많이 배우지 못한 것 같았다. 남 형사는 종이책의 정식 보존 절차를 밟았다. 이채원은 장비 변경표의 복사본을 우리에게 보여 줬다. 그 표에는 2011년 기기 교체 후 생긴 U-00이라는 이름과, 2027년 1월 1일 자동 적용 예정이라는 문구가 붙어 있었다. “왜 2011년에 2027년 날짜를 만들죠?” 서아가 물었다. “관리 주기를 열여섯 해로 잡아 둔 것 같아요.” 채원이 설명했다. “보안 갱신 주기를 뜻하는 날짜일 수 있어요. 그런데 장부 프로그램이 그 날짜를 계약 시작일로 해석하게 바뀌었죠.” 누군가 장비 점검 주기를 사람의 출근 의무로 둔갑시킨 것이다. 내 직업으로 비유하자면 컴퓨터 업데이트 날짜를 사원의 출근일로 바꾼 셈이었다. 황당했다. 하지만 그 날짜가 실제 기억과 연결된 이상 웃고 넘길 수는 없었다. 시설의 오래된 사무실에는 플로피디스크를 넣는 구형 컴퓨터가 한 대 남아 있었다. 화면은 켜지지 않았지만 먼지가 쌓인 모니터 아래에 ‘전원 사용 후 반드시 종료’라는 글씨가 붙어 있었다.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가장 중요한 안내문은 컴퓨터가 아니라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붙어 있었다. 이채원은 옛 설계자가 남긴 정비표를 보여 주었다. ‘문이 닫혔을 때 호출선은 살아 있어야 함’, ‘응답이 없으면 먼저 기기의 고장을 의심할 것’, ‘사용자를 바꾸기 전 직접 확인할 것’. 뒤쪽으로 갈수록 글씨가 지워져 있었다. 나는 그 표를 보며 이곳을 처음 만든 사람들이 적어도 모든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설계가 나빠서만 이렇게 된 게 아니네요.” 내가 말했다. “일부는 설계가 나빴고, 일부는 나중에 나빠졌겠죠.” 채원이 답했다. “거기서 책임을 나눠 확인해야 해요.” 나는 구형 컴퓨터를 바라봤다. 익숙한 기술은 빠르게 낡지만 오래된 장비에서도 누군가의 선택은 흔적으로 남는다. 내가 찾는 답이 데이터베이스 한 줄이 아니라 정비표의 작은 문장일지도 몰랐다. 문석이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바뀐 해석 규칙은 실수 한 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 아래 세 개의 변환 명령이 순서대로 쌓여 있었다. ‘보호 대기’를 ‘무급 근무’로, ‘경고’를 ‘동의’로, ‘비응답’을 ‘자동 승인’으로 치환한 기록이었다. “각각 다른 시기에 들어간 모듈이네.” 내가 말했다. “한 사람이 한 번에 계획한 범죄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뜻이지.” 우리는 세 모듈의 버전과 등록자를 비교했다. 마지막 변경에는 구태형의 관리 계정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처음 두 변경의 사용자 정보는 비어 있었다. 유나는 유리창 옆에 서서 그 내용을 듣고 있었다. 새벽 시험을 겪은 뒤 자기 이름이 들어간 명령문을 볼 때마다 한 번씩 눈을 감았다. 서아가 의자를 권했지만 그녀는 잠깐 더 서 있겠다고 말했다. “내 이름을 적은 건 누가 맞을까.” “아직 몰라요.” 내가 말했다. “그게 제일 화나. 내가 한 일이 아닌데 나한테 설명할 사람도 없어.” 문석은 변환 명령을 한 번 더 보여 주었다. 첫 번째 수정은 이름을 숫자로 바꿨고, 두 번째 수정은 그 숫자에 의무를 붙였다. 마지막 수정은 응답 시간이 지나면 의무가 확정된다고 적었다. 세 단계 사이에는 몇 년의 시간이 있었다. “이게 제일 위험해.” 문석이 화면 아래쪽을 가리켰다. “각 개발자가 자기 기능만 보면 정상이라고 생각하기 쉬워.” 나는 예전에 대규모 회사 시스템을 고치다가 권한 검사 하나가 빠진 문제를 찾았던 기억을 떠올렸다. 당시에도 한 팀은 로그인만 담당했고 다른 팀은 데이터만 담당했다. 둘 다 자기 영역은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그인한 사용자가 다른 사람의 데이터를 읽을 수 있다면 전체 시스템은 안전하지 않았다. “누군가 이 세 가지를 하나로 묶어 사용한다는 사실은 알아야 했어요.” “맞아.” 문석이 말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른다고 끝낼 수는 없지.” 유나는 화면을 보다가 손을 내렸다. 그녀는 기술적인 표현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자신에게 어떤 일이 생겼는지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걸 설명한다며 너무 많은 말을 쏟아 놓지 않기로 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내 강의가 아니라 자신의 이름이 어디에 적혀 있는지 확인할 권리였다. 점심 무렵, 시설 관리자에게서 오래된 작업 지시서 한 장이 추가로 나왔다. 2011년 모듈을 교체한 날 서명란에 아무 이름도 없다는 이유로 반려됐던 종이였다. 반려 이유 옆에는 볼펜으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인수자 없음. 원본 장치의 소유권 확인 불가.’ 누군가 서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장치의 소유권이 확정되지 않았다. 그런데 후대 시스템은 그 빈자리를 오유나의 이름으로 채웠다. 그 사실을 확인하자 유나는 의외로 잠잠해졌다. “그럼 내 이름을 지우면 되겠네.” “문제는 옛날 빈자리가 그대로 남는다는 거예요.” 문석이 말했다. “다른 사람 이름을 넣을 수 있어.” 유나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이제 이해했어. 나만 빠져나오면 되는 일이 아니구나.” 그날 저녁, 구태형에게서 연락이 왔다. 경찰을 통해 공식 진술 가능 여부를 문의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자신의 출입 기록을 제시하겠다면서 한 가지 조건을 달았다. ‘U-00 장치를 제거하지 말 것. 제거하면 내부 대기자의 귀환 통신이 끊길 수 있음.’ 조건은 협박처럼 보였지만 완전히 거짓말이라고 단정하기도 어려웠다. 우리는 실제로 그 장치가 제3 귀환문의 비상 신호와 이어진 것을 보았다. 나는 휴대전화 화면을 내려놓았다. “저 사람이 지금까지 한 말 중에 가장 싫은 문장이에요.” “뭔데?” 서아가 물었다. “내가 없으면 누군가 죽을 수도 있다는 말.” 유나가 대답했다.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하면 돼. 사실이면 다른 길을 만들고. 거짓이면 거짓이라고 적고.” 그녀는 자기 이름이 찍힌 명세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내일 새벽의 시험까지 남은 시간이 또 줄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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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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