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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64화
PAYLUA ORIGINAL · 제164화

164화. 오재민이 보낸 적 없는 쪽지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768자

오프라인 책장
유나가 동생의 어릴 적 이야기를 길게 꺼낸 것은 세탁소에서 보리차를 마신 지 사흘 만이었다. “오재민. 어릴 때부터 장난감 시계를 뜯어 보는 애였어.” 그녀는 한참 생각하다 덧붙였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나는 탁자에 펼쳐 놓은 사진을 바라봤다. 열 살쯤 된 남자아이가 손목에 종이시계를 차고 있었다. 손으로 그린 시침은 여섯 시를 가리켰다. 오유나는 사진 속 아이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웃고 있었다. 우리는 예전에 재민이의 기억 일부가 보관국의 안전장치로 쓰였다는 단서를 발견했지만, 그것이 누가 언제 승인한 일인지는 아직 확인하지 못했다. “누나가 늦게 오면 자기가 시간을 붙잡겠다고 했어. 그땐 그런 말 하는 애가 귀여웠지.” “지금은요?” “내가 그 말을 이용당한 건 아닌지 무서워.” 유나는 05:59 시험 뒤 주머니에서 나온 노란 종이를 꺼냈다. ‘너를 내보내기 위해 재민이가 들어갔다.’ 유나는 원본이 아니라 사본만 보관했고, 원본은 남 형사가 확보한 상태였다. 문장 속 ‘너’가 유나인지 다른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이걸 재민이가 직접 썼다고 생각해요?” 내가 물었다. “아니. 글씨가 너무 반듯해.” 그 말에 서아가 일어섰다. 그녀는 재민이의 낙서가 남은 종이와 05:59 쪽지를 나란히 놓았다. 모양이 같지 않았다. 그러나 글씨체 차이만으로 위조를 확정할 수는 없었다. 시간도, 쓰는 도구도, 누가 옮겨 적었는지도 달랐기 때문이다. 유나가 사진첩 아래에서 작은 종이 상자를 꺼냈다. 투명한 구슬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재민이는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플라스틱 구슬을 줄에 꿰며 ‘시간은 이렇게 이어지는 거야’라고 말했단다. 실제 시계처럼 움직이지 않아도 하나의 구슬 뒤에 다음 구슬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했다. “나는 그때 무슨 소린지 하나도 몰랐어.” “저도 모르겠어요.” 내가 말했다. “구슬이 시간이라면 제 회사 회의는 아마 실처럼 질기겠네요.” 유나가 아주 짧게 웃었다. 그 웃음이 사라지기 전에 그녀가 말했다. “도겸아, 내가 잃어버린 기억을 네가 찾아 줄 수는 있겠지. 근데 네가 내 기억을 대신 고르지는 말아 줘.” “그러려고 온 거 아니에요.” “알아.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그날 오후 유나는 동생과 자주 갔던 놀이터를 찾아가자고 했다. 놀이터는 낡은 아파트 두 동 사이에 있었다. 미끄럼틀은 새것으로 바뀌었고, 그네의 쇠사슬에는 녹이 슬어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서로 더 높이 올라가겠다고 소리쳤다. 유나는 그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재민이는 저기 말고 저쪽 낮은 그네만 탔어.” “무서워했나요?” “아니. 내가 밀다가 다칠까 봐 자기가 작게 타겠다고 했어.” 그녀는 웃다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할 수 없었다. 유나도 그걸 알 것이다. 그럼에도 누군가를 기억하기 위해 반드시 사진이나 서류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놀이터 벤치에는 한 아이가 이름을 써 놓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이름표 한 장이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지만, 누군가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흔적일 수 있었다. 나는 유나에게 지금 이 장소에서 느끼는 것을 기록할지 물었다. “기록할래. 다만 증거라고 적지는 마.” 그녀는 휴대전화로 그네를 찍었다. 그리고 사진 설명란에 ‘재민이가 좋아하던 곳으로 기억함, 확인하지 못함’이라고 적었다. 매끄럽지 않은 문장이었다. 하지만 유나는 화면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놀이터를 떠나려는데 오래된 아파트 관리인이 우리를 불렀다. 그는 유나의 얼굴을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종이시계를 든 모습을 보고 말했다. “옛날에 여기서 시계 만든 애들이 있었지. 동네 아이들이 종이를 줄에 꿰어서 이쪽 저쪽에 걸어 놨거든.” 유나가 바로 질문을 던지지 않고 기다렸다. 관리인은 이름도 날짜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대신 그때 아이들이 시간을 맞추려다 시계가 서로 달라 싸웠다는 이야기만 했다.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가장 작은 애가 그러더라고. 시계가 다르면 같이 기다리면 되잖아.” 유나는 손에 쥔 종이시계를 내려다봤다. 이것이 재민이 이야기일 가능성은 있지만 확정할 수는 없었다. 관리인은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다. 우리는 감사 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렸다. “오늘은 아무것도 못 찾았네.” 내가 말했다. “아니.” 유나가 조용히 답했다. “오래전 내가 누구를 기다렸는지 생각할 수 있었어. 그건 내 시간이야.” 우리는 쪽지의 종이 재질을 조사하기로 했다. 문석이 찾아낸 자료에 따르면 2011년 영병원 장비실에서는 노란 종이의 확인표를 사용했다. 1998년에는 회색 종이였고, 2026년에는 모두 전자 화면으로 바뀌었다. 이 종이가 실제로 2011년의 것이라면, 새벽 시험이 과거 물건을 꺼내 보였다는 뜻이 된다. 유나는 구슬 상자를 덮으며 한 가지 이야기를 더 했다. 재민이는 누나에게 편지를 쓸 때 마지막 줄에 꼭 물음표를 세 개 붙였다고 한다. 이유를 물었더니 질문이 세 개면 누나가 적어도 하나는 대답할 거라고 했다. 유나는 그 말을 듣고 동생에게 질문을 하나씩만 하라고 가르쳤다. “그럼 재민이는 말을 잘 들었어요?” 내가 물었다. “한 번에 물음표 하나만 쓰는 대신 편지를 세 장 썼어.”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아이가 만든 시계라면 종이 구슬을 잔뜩 꿰어 놓은 이유도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재민이에게 시간은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는 기회였을지 모른다. 그 뒤로 유나는 한동안 입을 다물었다. 좋은 기억을 말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기억이 더 선명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웃은 이유를 확인하고 나서야 조금 편안한 표정이 됐다. “그 애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내가 잊어도, 다른 사람이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그럼 제가 지금 들은 것부터 적어 둘게요. 아니, 유나 씨가 적으실래요?” “내가 쓸게.” 그녀는 수첩에 작은 물음표 세 개를 그렸다. 마지막 하나의 꼬리가 길게 휘어졌다. 영병원 창고에서 남 형사는 장비 반출 목록을 확인했다. 목록에는 오재민이라는 이름이 직접 적혀 있지 않았다. 대신 ‘보호 관측자 가족 연락처’라는 항목 아래 어린이 명단이 숨겨져 있었다. 대부분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나는 문서 오른쪽에 있던 코드 하나를 발견했다. [U-00 / 대기자 보호 장치] “U-00이 사람 아니라고 했죠.” “맞아.” 문석이 말했다. “누군가를 대신 보호하는 장치의 식별자야.” “보호한다는 말을 왜 근무표에 쓰죠?” “원래는 출근도 급여도 상관없는 장치였을 수 있어. 나중에 인수 계약에 붙여 버린 거지.” 유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제어 장치의 이름에 자기 과거가 붙었다는 사실보다, 그것이 보호라는 이름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더 아픈 것 같았다. 창고 밖에서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인근 어린이집 아이들이 산책을 나온 것이었다. 유나는 창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았다. 아이들 얼굴을 훔쳐보지 않으려는 듯 시선을 내렸다. “재민이가 진짜 그 안에 있다면?” “그때는 재민이한테 물어봐야죠.” “없다면?” “없다는 사실을 지어내지 않고 확인해야 하고요.” 유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문석이 보관국의 옛 설계 파일을 열었다. 화면 한쪽에 수동 종의 회로도가 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아주 짧은 설명이 있었다. ‘U-00은 원래 열쇠가 아니다. 열쇠를 빼놓을 수 있도록 만든 빈자리다.’ 누군가 보호 장치를 강제 인수 장치로 바꿔 놓은 셈이었다. 그때 유나의 휴대전화에서 알림이 울렸다. [대리 관측 수당 입금 완료: 0원] [다음 시험까지 남은 시간: 17시간] 시험은 끝나지 않았다. 한 사람이 버텨 내면 기계는 다음 시험 날짜를 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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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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