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아홉 시, 오유나는 세탁소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는 그녀에게 바로 다시 실험실로 가자고 하지 않았다. 사람을 한 번 통과시켜 보고 또 통과시켜 보자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지, 최근 몇 달 동안 배웠다. 유나는 조용한 장소를 원했고, 동네 세탁소가 막 문을 연 시간이라는 이유로 그곳을 골랐다. 주인은 그녀를 알아보고 의자를 내주었다.
“옷 찾아가러 온 건 아니죠?”
“아니요. 오늘은 커피만요.”
“그럼 더 좋은 거 드려야지.”
주인은 따뜻한 보리차를 건넸다. 오유나는 두 손으로 컵을 감싸 쥐었다. 새벽 다섯 시 오십구 분을 겪은 사람에게는 커피보다 뜨거운 물이 먼저 필요한 것 같았다.
그 사이 강문석에게서 이상한 자료가 도착했다. 오유나 명의의 급여명세서였다.
[근무 일자: 2027.01.01]
[지급 항목: 대리 관측 수당]
[지급 예정액: 0원]
[차감 항목: 과거 귀환 부채 11분]
“새해 첫날에도 일 시키면서 월급은 없네.” 내가 말했다. “이건 보관국이 아니라 악덕 콜센터 아닙니까?”
유나는 웃지 않았다. 종이를 손가락으로 밀어 내며 말했다.
“급여명세서가 있다는 건 누군가 내가 일했다는 기록을 만들었다는 거지. 내 돈이 0원이라는 게 중요한 게 아니야.”
“맞아요. 근무 사실부터 확인해야죠.”
남 형사가 정식으로 확인해 줄 수 있는 부분은 한정돼 있었다. 이 장부는 국가의 실제 급여 시스템이 아니라 보관국 외부 정산망 내부의 문서였다. 그렇다고 위험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보관국은 오랫동안 사람이 출근했다는 허구의 기록을 실제 기억과 연결해 온 곳이었다.
우리는 지난 몇 년간 유나가 출입했던 장소를 확인했다. 출입 기록에 있는 시설 중 절반은 실제 건물이 아니었고, 몇 곳은 이미 폐업한 업체 이름이었다. 유나는 이름이 익숙하다고 했다. 그러나 익숙함은 증거가 아니었다.
“이상해.” 서아가 지도를 펼쳤다. “시험 명령이 발생한 곳은 영병원인데, 정산은 시 외곽 물류센터로 돌아가 있어.”
“거기 전기실을 건드리면 해결되려나?” 내가 말했다.
“도겸아.”
“알아요. 건드리자는 게 아니라 회선 구조만 보자는 거죠.”
시 외곽으로 나가는 도로에는 트럭이 줄지어 있었다. 하늘이 밝아지자 공사장 먼지가 떠올랐다. 유나는 차창에 머리를 기대고 지나가는 건물의 번호를 셌다. 문석의 지도로는 물류센터까지 스물일곱 분이었다. 실제로는 사고 때문에 사십오 분이 걸렸다.
“전에 여기에 와 본 적 있나요?” 내가 물었다.
“몰라.” 그녀가 말했다. “저기 녹슨 광고판은 아는 것 같은데, 내가 아는 곳인지 누가 보여 준 곳인지 모르겠어.”
광고판에는 오래전에 문을 닫은 학원의 이름이 남아 있었다. 나는 말하려던 것을 삼켰다. 익숙한 풍경이 반드시 잃어버린 기억의 열쇠는 아니었다. 버스 창밖으로 열 번쯤 보았던 거리일 수도 있었다.
센터 입구에서는 출근한 사람이 출입증을 찍으며 하나씩 들어갔다. 경비원은 우리를 방문자라고 적었고, 출입 목적과 연락처를 확인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런 확인 절차를 귀찮게 여겼다. 그러나 이름을 제대로 묻는 장소에 서자 오히려 마음이 놓였다. 적어도 이 문은 누군가 대답하지 않았다고 자동으로 열렸다고 적지는 않았다.
물류센터는 지금도 운영 중이었다. 남 형사가 미리 연락해 현장 관리자를 만났다. 그곳에서 일하는 윤미라라는 여성은 우리가 가져온 2027년 명세서와 모양이 비슷한 전자 근무표를 알고 있었다. 본인은 주중마다 새벽 교대조에 들어갔지만 어느 날부터 새벽 한 시간이 자꾸 빠졌다고 했다.
“사람들은 일찍 퇴근해서 좋겠다 그러더라고요.” 그녀가 말했다. “근데 그 한 시간에 누굴 데려다주고, 어디로 출근했는지를 제가 기억 못 하면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녀는 서류철에서 아이의 그림을 꺼냈다. 엄마가 버스 앞에 서 있는 그림이었다. 제목은 ‘엄마가 나를 데리러 온 날’이었다.
“그날이 언제예요?” 유나가 물었다.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간 첫날요. 저는 분명 데리러 갔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이는 누가 데리러 왔는지 말을 안 하려고 해요.”
미라 씨의 손등에는 기름때가 남아 있었다. 사람의 사생활을 캐러 온 게 아니라는 말을 하려다 멈췄다. 우리는 이미 그녀에게 아픈 이야기를 물어보고 있었다.
“그 기록을 확인하고 싶으세요?” 유나가 물었다.
“네. 다만 우리 애는 건드리지 말아 주세요.”
유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약속은 기록보다 중요했다.
미라 씨는 현장에서 사용하는 작업 장갑을 벗었다. 엄지와 검지 사이에는 작은 굳은살이 있었다.
“우리 애가 제일 무서워했던 건 제가 늦는 게 아니었어요. 데리러 오기로 한 사람이 누구인지 자꾸 달라지는 거래요.”
“아이에게 직접 물어보진 않았습니까?” 유나가 물었다.
“물어봤죠. 그런데 한 번은 엄마가 왔다고 하고, 다음 날엔 다른 이모가 왔다고 하고. 나중에는 내가 물어보면 울더라고요.”
그녀는 아이의 그림을 다시 접었다.
“그래서 요즘은 묻지 않아요. 아이가 말하고 싶을 때 말하겠죠.”
나는 기록을 복원하면 모든 가족에게 좋은 일만 생길 거라고 단순하게 믿었던 적을 떠올렸다. 어떤 사람은 진실을 알아야 앞으로 살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진실을 들을 준비가 필요하다. 누구의 기억을 언제 돌려줘야 하는지 정하는 것은 우리 몫이 아니었다.
서아는 미라 씨가 보관을 허락한 근무 자료만 복사했다. 아이의 그림은 가져가지 않았다. 그 그림에는 사건을 증명하는 숫자보다 사람이 감당하는 시간이 더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지만, 그래서 더 소중한 사적인 물건이었다.
관리자의 입회 아래 구형 교대 기록 장치를 살폈다. 출근 시각은 오전 여섯 시로 표시됐지만 서버 파일에는 다섯 시 오십구 분에 먼저 출근한 것으로 적혀 있었다. 그리고 매번 같은 서명 토큰이 찍혀 있었다.
U-00.
나는 종이에 그 문자 세 개를 썼다.
“오유나의 U일까요?”
문석은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단순하면 좋겠지. 옛날 형식에서는 U가 사용자라고만 돼 있어. 이름은 나중에 붙인 거야.”
“그럼 유나 씨가 먼저였던 게 아니라, 먼저 만들어진 빈 자리에 유나 씨 이름을 끼웠을 수도 있겠네요.”
유나가 조용히 말했다.
“내가 첫 번째 희생자일 수도 있고, 첫 번째로 확인된 사람일 수도 있겠네.”
우리가 물류센터에서 나올 때 미라 씨가 뒤따라왔다.
“제 한 시간은 어떻게 되나요?”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대신 서아가 말했다.
“잃어버렸다는 기록은 남겨 두겠습니다. 아직 되찾았다고 쓰지는 않을게요.”
미라 씨는 조금 실망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우리가 듣지 못한 대답을 대신 써 주는 것보다 나았다.
차에 타려는 순간, 유나의 휴대전화로 낯선 문자가 왔다.
‘U-00은 사람 이름이 아닙니다. 열쇠 이름입니다.’
발신 번호는 없었다. 그 아래에는 이튿날 오전 다섯 시 오십구 분의 시험 대상 명단이 붙어 있었다. 이름은 아직 공란이었다.
제16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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