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한 시 사십팔 분.
나는 강문석이 보낸 메시지를 세 번 읽었다. 읽을수록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아닌데 세 번이나 읽은 이유는 간단했다. 내 이름 대신 오유나의 이름이 있었다.
[2027년 자동 출근망 사전 시험]
[시험 일시: 다음 날 05:59]
[최초 호출 대상: 오유나]
새벽 다섯 시 오십구 분까지 여섯 시간 남짓. 잠을 잘 것인지, 누군가를 깨울 것인지, 아니면 당장 보관국 서버를 뜯어낼 것인지 선택해야 했다. 마지막 선택지는 내 직업상 익숙하지만 법적으로 그다지 권장되지 않았다.
나는 유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 자요?”
“자는 사람한테 전화해 놓고 묻는 질문치곤 신선한데.”
“시험 명단에 이름이 있어요.”
“알아.”
놀란 것은 나였다.
유나는 낮에 관측실을 나서기 전에 자기 장비의 근무 식별자가 바뀌었다는 것을 발견했다고 했다. 평소에는 이름과 일련번호만 표시되던 진단판에 ‘선행 호출자’라는 낯선 항목이 추가됐다는 것이다. 그녀는 그 화면을 촬영하고, 독립 저장 장치에도 로그를 복사해 두었다.
“왜 말 안 했어요?”
“이상이 있다고 다급하게 말하면 네가 혼자 달려올까 봐. 그리고 그땐 아직 시험인지 오류인지 구분이 안 됐어.”
“제 평판이 이렇게까지 바닥인가요?”
“네가 혼자 문 앞에 갔던 횟수를 세어 줄까?”
나는 반박하지 못했다. 유나는 잠깐 웃더니 다시 진지해졌다.
“나는 새벽에 그 자리에 있을 거야. 그걸 하지 말라고 연락한 거면 미리 말해 둬.”
“하지 말라는 게 아니에요. 혼자 있지는 말라고요.”
전화기 너머에서 종이를 넘기는 소리가 났다.
“그 말은 들어 줄 수 있어.”
우리는 남기혁 형사, 진서아, 강문석에게 차례로 연락했다. 남 형사는 정식 입회 가능 범위와 현장 안전 조치를 확인하겠다고 했고, 서아는 근무표와 시간표가 같은 서류인지부터 분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문석은 전산 장부에서 시험 명령의 경로를 추적 중이었다.
“한 가지 이상해.” 문석이 통화에 들어오자마자 말했다. “표제는 2027년인데 실행 명령은 내일이야. 날짜가 서로 안 맞아.”
“시스템이 이제 연도도 헷갈리나?”
“아냐. 2027년 1월 1일에 시행할 규칙을 미리 시험하는 거야. 규칙의 적용 연도와 실제 시험 시각은 별개 필드라고.”
즉 새벽의 한 번이 끝이 아닐 수 있었다. 시험이 성공하면 내년 첫날 수천 건의 미귀가 기록이 자동 출근으로 바뀐다. 그리고 응답이 없을 경우 승인된 것으로 처리하는 조건은 그대로 살아 있었다.
“시험을 취소할 수는 없어요?” 내가 물었다.
“어떤 층에서 취소해야 하는지 찾아야 해. 사용자 화면에 보이는 취소 버튼은 장비의 표시만 숨겨. 외부 정산망에 있는 예약 명령은 그대로 남아.”
나는 휴대전화 메모장에 ‘화면 끄기 ≠ 시험 중지’라고 적었다. 개발자라면 가끔 메모를 안 해도 되는 진리를 메모해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그걸 잊고 프로그램을 만든다.
전화 통화를 마친 뒤 나는 어머니 집으로 돌아갔다. 잠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침대에 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어머니는 아직 설거지를 끝내지 않았고 싱크대에는 내가 먹었던 국그릇이 있었다. 나는 그릇을 빼앗아 씻으려 했지만 어머니가 손을 막았다.
“또 급한 일 있어?”
“네. 그런데 회사 일은 아니에요.”
“회사 일이 아니면 네가 안 가도 되겠네.”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젖은 행주를 접어 걸었다.
“누가 아프니?”
“친구한테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럼 그 친구는 뭐래?”
“자기가 가겠대요.”
어머니는 나를 바라봤다. 내 얼굴에 아버지의 어떤 습관이 보였는지 잠깐 미간을 좁혔다.
“누군가를 지켜 준다는 사람들은 가끔 그 사람한테 먼저 물어보는 걸 잊더라. 네 아버지도 그랬어.”
어머니가 아버지의 나쁜 점을 말하는 건 드문 일이었다. 나는 귀를 기울였다.
“정수 씨는 내가 무거운 걸 들면 무조건 빼앗으려고 했거든. 나는 손을 놓을 준비가 안 됐는데.”
“그래서요?”
“어느 날 같이 들자고 했지. 그다음부터는 좀 나았어.”
아버지가 사람을 대했던 방식이 기록 속 영웅담만큼 완벽하지 않았다는 말이 이상하게 도움이 됐다. 나는 어머니에게 내일 돌아와 아침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냉장고에서 작은 주먹밥 두 개를 꺼냈다. 하나는 유나에게 주라고 했다.
“그 친구가 먹기 싫으면 억지로 주지 말고.”
“알겠어요. 이 집안은 동의 절차가 철저하네요.”
어머니는 내 어깨를 툭 쳤다.
“그건 절차가 아니라 예의야.”
나는 두 개의 주먹밥을 가방에 넣었다. 오늘 우리가 다뤄야 하는 것은 거대한 서버의 예약 명령이었지만, 내 가방 안에서 가장 무겁게 느껴지는 물건은 작은 밥 두 개였다.
새벽 네 시 삼십 분, 우리는 영병원 별관 밖에 모였다. 아직 문이 열리지 않아 찬 공기가 주차장 아래쪽으로 고여 있었다. 자동판매기 커피를 마시며 유나가 내 손목을 보았다.
“시계는?”
“서랍에 있어요. 차면 좋은 일이 없어서.”
“그럼 오늘은 시계를 대신하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되겠네.”
유나는 자기 휴대전화와 작은 태엽시계를 나란히 보여 줬다. 하나는 통신망 시간에 맞춰졌고, 하나는 사람이 손으로 감은 것이다. 서아가 그 뒤에 종이 시간표를 들고 있었다.
“셋이 다르게 가면요?” 내가 물었다.
“그럼 다르다고 적는 거야.” 서아가 말했다. “틀린 걸 하나 정해서 나머지를 지우는 게 아니라.”
영병원 별관의 문을 열어 준 시설 담당자는 야간 근무를 막 끝내는 중이었다. 눈 밑에 그림자가 짙었고 장갑 낀 손에는 열쇠가 여러 개 걸려 있었다. 그는 모르는 사람의 야간 작업에 책임자로 이름을 올리는 것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작업이 끝나면 제가 퇴근해도 되죠?”
“그렇습니다.” 남 형사가 답했다. “관리자님이 퇴근하지 않아도 될 사유는 없습니다.”
담당자가 잠깐 웃었다. 이 건물에서 퇴근한다는 말이 농담처럼 들렸던 모양이다. 나는 우리가 요청하는 관측이 시설 근무자의 쉬는 시간을 또 빼앗는 것은 아닌지 확인했다. 그는 후임자가 곧 교대한다고 했다. 우리는 두 사람이 인수인계하는 동안 작업실 밖에서 기다렸다.
어쩌면 거창한 사건의 현장에서 가장 중요한 판단은 누가 초인종을 눌러야 하느냐가 아니라, 피곤한 사람이 제때 자러 갈 수 있느냐일지도 몰랐다. 나는 그 생각을 수첩 모서리에 적었다. 누군가의 퇴근을 지켜 주겠다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실제 근무표 한 칸을 바꾸는 일은 훨씬 어려웠다.
남 형사는 사전 입회 기록에 우리 이름을 적었다. 그러나 유나의 이름 아래에는 이미 전자서명이 들어 있었다.
[관측자 본인 확인: 완료]
[확인 시각: 05:59:59]
벽시계는 아직 새벽 다섯 시 십이 분이었다.
유나가 그 숫자를 오래 바라봤다.
“내가 아직 하지도 않은 확인을 누가 했지?”
나는 기록을 확대했다. 서명 옆에 붙은 작은 글자는 더 끔찍했다.
[확인 근거: 과거 동의의 연장]
그녀가 과거에 어떤 것에 동의했는지, 우리는 아직 모른다. 하지만 여섯 시간 뒤의 대답을 이미 받은 것으로 처리하는 시스템은 확실히 잘못됐다.
나는 유나를 바라봤다. 그녀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복도 끝을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내 농담을 받아쳤을 텐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유나 씨.”
“응.”
“혹시 오늘 새벽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내가 기억을 잃더라도 당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적어 둘게요.”
“그보다 중요한 게 있어.”
“뭔데요?”
“내가 말하지 않은 것은, 말하지 않았다고 적어.”
그때 유나의 태엽시계가 혼자 한 칸 움직였다. 초침은 앞으로 간 것이 아니라 뒤로 물러섰다.
실제 시각, 05:58:58.
보관국의 화면에는 이미 이렇게 떠 있었다.
[오유나 출근 완료]
제16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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