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나처럼 움직이는 것을 보는 일은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오래전 멈춘 거리에서 오유나를 처음 봤다. 그때는 세상에 나만 특별한 줄 알았고, 그 믿음이 깨지는 게 두려웠다.
하지만 제3 귀환문 앞에서 본 여자는 달랐다.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몰랐다. 심지어 실제로 나와 같은 시간에 움직이는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유리에 비친 영상은 시간 정지 중에 별도로 재생되는 기록일 수도 있었다.
“누구세요?”
내 입술이 움직였다.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손가락으로 관측창을 두드렸다.
딱. 딱.
짧은 소리 두 번.
그리고 종 하나가 울렸다. 긴 소리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낮에 같은 신호를 들었다. 대화가 가능하다는 표시였다.
나는 창 안쪽의 얼굴을 바라봤다.
“지금은 문을 열지 않겠습니다.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진짜 사람에게 말한 건지, 녹화된 화면이 우연히 비슷한 움직임을 보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을 적었다. 18:00:09. 나중에 다른 기록과 비교할 수 있도록.
그때 내 손목시계가 갑자기 뜨거워졌다. 손목에서 시계를 떼어 내려 했지만 금속 고리가 풀리지 않았다. 시계 화면에는 처음 보는 숫자가 나타났다.
[귀환 관리 후보: 차도겸]
[대체 근무 개시: 2027.01.01 06:00]
“내년?”
아직 오지 않은 날짜였다. 보관국은 과거의 이름을 빌려 현재 사람을 속이는 데 그치지 않고, 미래의 근무 기록까지 미리 만들고 있었다. 나는 다시 화면을 눌러 상태를 읽었다.
[대상 근무 기록 수: 4,183]
[사전 승인: 대기]
[자동 승인 조건: 현 담당자 응답 없음]
그 조건은 우리가 지금까지 막아 왔던 강제 동의의 다른 이름이었다. 누군가 대답하지 않으면 대신 정산한다는 방식. 이번에는 온 나라의 사람들에게 적용될 수 있었다.
“누가 이런 걸 만든 거야?”
내 질문에 대답하듯 문 안쪽의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바라본 곳은 안쪽 벽이었다. 그곳에는 내가 몰랐던 작은 출입 표시등이 있었다. 푸른색 불이 한 번 깜빡이고 꺼졌다.
나는 손목시계의 기록을 최대한 그대로 적으려 했다. 그런데 첫 줄을 쓰는 순간, 문 안쪽의 여자가 입을 열었다.
'도윤은 버스에 타지 않았어요.'
목소리는 아주 작았다. 그래도 내 귀에는 분명하게 들렸다.
“뭐라고요?”
'그 사람은 버스를 따라간 게 아니라, 차 밑에 있는 문으로 들어왔어요.'
나는 남기혁의 형이 2011년에 귀환 차로 장비 회수에 입회했다는 기록을 떠올렸다. 그렇다면 171번 버스 안에서 남도윤처럼 보였던 사람과, 실제 남도윤이 서로 다른 사람일 수도 있었다.
“지금 말씀하시는 건, 남도윤 씨가 여기 있다는 뜻인가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 대신 관측창에 손가락을 대었다. 그녀의 손바닥 아래에 짧은 문장이 떠올랐다.
'한 사람을 두 번 세지 마.'
그때 나는 깨달았다. 171건이 전부 사람 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도, 우리는 여전히 이름을 하나씩 찾아내면 사람이 하나씩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 정지와 귀환 기록은 같은 사람이 여러 시점에서 남긴 요청을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세기도 했다.
여자가 창에서 멀어졌다.
비가 다시 떨어지기 시작했다. 시계 초침이 움직였고, 서아가 갑자기 내 팔을 붙잡았다.
“도겸아, 얼굴 왜 그래?”
“봤어.”
“뭘?”
“문 안에 누가 있었어. 도윤 씨 이야기를 했고.”
유나는 내가 벗어 놓지 못한 손목시계를 보았다. 금속 고리가 차갑게 식어 있었다. 서아는 녹음 상태와 관측 장비의 시간을 확인했다. 우리가 얻은 것은 내 진술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장비에는 몇 초의 신호 변화만 남아 있었다.
남 형사가 도착하자 나는 그 말을 그대로 전했다. '도윤은 버스에 타지 않았다.' 형사는 한참 아무 말이 없었다.
“확인해 봐야겠죠.” 그가 말했다.
“실망하지 않으셨어요?”
“형이 버스에 있든 문에 있든, 찾을 이유는 같아요.”
우리는 강문석에게 미래 근무 기록의 사본을 보내려 했지만 장치가 파일을 내보내지 않았다. 내 수첩에 손으로 적은 숫자만 남았다. 2027년 1월 1일 오전 여섯 시. 4,183건. 자동 승인 조건.
관측실을 떠나기 전 우리는 임시 조치 목록을 정리했다. 누가 어떤 장치에 접근할 수 있는지, 잘못된 자동 확인이 다시 켜질 경우 무엇부터 확인해야 하는지, 미귀가자를 숫자로 발표하기 전에 어떤 검증을 해야 하는지. 나는 한 장의 종이에 모든 문제를 적을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유나는 장비 도면을 접으며 말했다.
“한 가지는 조금 마음이 놓여.”
“뭔데요?”
“오늘은 문을 열지 않았잖아.”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그게 성공입니까?”
“열어 달라고 하지 않은 문을 열지 않은 건 성공이지. 누가 봐도.”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 형사도 잠시 생각하다가 웃었다. 우리가 얻은 단서보다 지켜 낸 약속 하나가 더 중요한 날이었다.
“그런데 너 괜찮아?” 유나가 물었다.
“또 무슨 일이 생기겠어요?”
“그 말을 하면 늘 뭔가 생기더라.”
“그럼 취소. 오늘 밤은 아무 일도 안 생긴다.”
“그것도 같은 말이야.”
나는 손을 들었다. 입을 다물겠다는 뜻이었다. 서아는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우리 모두 피곤해 보였지만, 이번만큼은 서로의 피로를 숨기지 않았다.
차를 타기 전 남 형사가 유나에게 물었다.
“내일도 관측실에 나오실 수 있겠습니까?”
“일정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가능하면 올게요.”
그때 나는 그 대답을 평범한 약속으로 들었다. 유나가 다음 새벽 첫 번째 출근망 시험 대상으로 지정될 거라는 사실은 아직 몰랐다.
그날 밤, 나는 어머니 집에서 밥을 먹었다. 밥솥은 오래된 기계라서 보관국이 손댈 수 없을 것 같았다. 확신은 못 하겠지만, 적어도 어머니가 덜어 준 밥에서는 계약서 냄새가 나지 않았다.
“오늘도 늦었네.” 어머니가 말했다.
“네. 그래도 왔잖아요.”
“그거면 됐어.”
나는 오래전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식탁의 빈 의자를 바라봤다. 누가 앉아야 하는 자리인지 정해 놓지 않은 의자였다. 돌아오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그때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전에 남 형사는 누락된 171건의 자료를 분류한 임시 표를 보여 주었다. 어떤 번호는 한 사람이 두 번 기록을 남긴 것이었고, 어떤 번호는 서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공유하고 있었다. 또 어떤 항목은 사람의 출입이 아니라 음성 메시지의 발신 건수로 처리돼 있었다.
“그럼 171명을 구했다는 말도, 171명이 실종됐다는 말도 그대로 쓸 수 없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다시 구분하고 있습니다.” 남 형사가 답했다. “부정확한 숫자 하나로 실종 신고를 끝내 버리면, 그 사람을 두 번 잃게 되니까요.”
나는 인쇄된 자료에 붉은 선을 그었다. 기록 한 건은 실제 사람 한 명을 뜻하지 않을 수 있었다. 동시에 기록 한 건에 여러 사람의 삶이 얽혀 있을 수도 있었다. 이 문제는 화면에서 숫자만 바꾸면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숫자를 올바르게 세는 것부터 시작할 수는 있었다.
그날 내가 시간이 멈추는 동안 본 여자에 대해서도 표에 별도 항목을 만들었다. 이름은 미확인이었고, 성별이나 나이도 유리 너머의 관찰만으로는 확정할 수 없었다. 그 사람은 2011년의 남도윤을 언급했다. 이것은 내 기억에만 남은 진술이었다. 서아는 원본 녹음에 없다는 사실도 함께 적었다.
“상실한 기억이 또 있을까?” 서아가 물었다.
“모르겠어. 어머니가 웃던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아직도 생각이 안 나.”
서아는 한동안 말을 하지 않다가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 같은 날 다른 각도에서 찍힌 사진이 있었다. 어머니가 웃고 있었고, 나는 라면 국물을 셔츠에 쏟은 채 허둥대고 있었다.
“너 그날 라면 끓인다고 해 놓고 냄비 뚜껑을 열다가 다 튀었어.”
“그런 일도 있었어?”
“응. 네가 엄청 창피해했지.”
나는 사진을 바라봤다. 기억은 돌아오지 않았지만 웃을 수 있었다.
“정말 내 인생 최고의 장면을 잃었네.”
“걱정 마. 사진은 남아 있으니까.”
어머니가 웃던 이유를 나는 아직 직접 떠올리지 못했다. 하지만 그 사진을 보는 지금의 기분은 새로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간을 정지할 수 있는 능력이 내 모든 기억을 빼앗을 수는 없다고 믿고 싶었다.
집에 돌아오며 나는 손목시계를 서랍에 넣었다. 다음 날 아침 여섯 시가 어떤 모양으로 오든, 적어도 오늘 밤에는 시계를 보지 않고 잠들고 싶었다.
밤 열한 시 사십팔 분, 강문석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미래 근무 기록은 단말기 오류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 외부 정산망에도 같은 날짜가 예약돼 있어.'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답을 쓰려다 멈췄다. 이어서 두 번째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런데 새벽 6시 시험 대상 명단을 확인했어. 첫 번째 대상자가 네가 아니야.'
[2027년 자동 출근망 사전 시험]
[시험 일시: 다음 날 05:59]
[최초 호출 대상: 오유나]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지금까지 여섯 시는 내가 가진 능력이었다.
내일 새벽에는,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동안 누군가 오유나의 시간을 가져갈지도 모른다.
제16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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