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사진을 오래 보았다. 내가 화면의 사람을 가리키기 전에 먼저 자신의 돋보기를 꺼냈다.
“네 아버지 손 같진 않네.”
나는 놀라서 고개를 들었다.
“손바닥에 선이 있으면 아버지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요.”
“그 선은 흉터가 아니었을 거야.”
“무슨 말이에요?”
어머니는 거실 서랍에서 낡은 수첩을 꺼냈다. 내가 어렸을 때 끄적거린 낙서가 종이 귀퉁이에 남아 있었다. 자동차 바퀴는 네 개였지만 다리가 여섯 개쯤 달린 사람이 웃고 있었다.
“너희 아버지는 손에 늘 검은 먹선을 그었어. 다치면 손에 난 흉터를 기록으로 남기려던 게 아니야. 일하는 곳에서 위치를 표시하는 데 쓰던 선이었지. 무슨 장치를 만질 때마다 손등이나 손바닥에 선을 그어 놓더라고.”
“그럼 그 사람이 아버지일 수도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만, 그 장치에 들어가 본 사람은 다 그렸을 수도 있지.”
어머니는 차분했다. 오랫동안 기다린 사람은 때로 기다리지 못한 사람보다 덜 성급했다.
나는 수첩에서 검은 선 옆에 작게 적힌 글자를 발견했다.
'밖 / 안.'
아버지가 장치의 어느 쪽에 있었는지를 표시한 것이다. 선의 방향이 달랐다. 밖에 있는 사람은 손바닥에 세로선을, 안에 들어간 사람은 손등에 가로선을 그었다.
“그러면 우리가 본 자국은…….”
“정확히 어느 면에 있었는지부터 봐야겠지.”
이채원이 보내 준 사진을 다시 확대했다. 유리 안쪽에 찍힌 손바닥은 분명했다. 하지만 검은 선은 손바닥 중앙이 아니라 빛이 반사된 손등과 겹쳐 있었다. 투명한 유리가 방향을 뒤집었다면 해석도 달라질 수 있었다.
나는 수첩을 덮었다. 내가 본 것이 아버지의 증거라고 생각한 순간부터 사진을 그쪽으로만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서아에게 전화가 왔다. 원본 테이프의 물리 편집 흔적을 더 자세히 분석한 결과, 1998년 음성은 끝부분에서 잘리지 않았다고 했다. '문을 닫는다'는 기계음이 그 뒤에 들어가 있는 건 2011년 트랙이었다. 두 소리를 하나로 재생하도록 만든 이후에 사람들은 아버지가 문을 닫았다고 믿게 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면 아버지가 안에서 사람을 못 나오게 막은 게 아니라…….”
“아직 단정하지 마.” 서아가 말했다. “아버님이 그날 무슨 결정을 했는지는 더 찾아야 해. 다만 우리가 들었던 '문을 닫는 소리'가 1998년 현장에서 나온 것이라는 근거는 약해졌어.”
그 직원의 기록에는 이상한 도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문 앞의 회선과 기계식 종을 연결한 평면도였다. 차정수 이름 옆에는 빨간 펜으로 X가 표시돼 있었지만, 설명란은 비어 있었다.
“여기에 X가 왜 있죠?” 내가 물었다.
“작성한 사람이 남아 있지 않아.” 강문석이 말했다. “안전 점검을 완료했다는 표시일 수도 있고, 장비를 사용하지 말라는 표시일 수도 있어.”
유나가 도면 위에 투명지를 올렸다. 1998년의 배선과 2011년 수정 배선을 다른 색 펜으로 따라 그렸다. 겹쳐 보니 이상한 점 하나가 나타났다. 원래는 바깥 대기 구역에서만 열 수 있는 비상 해제 장치가 있었다. 2011년 이후 그 장치는 장부상 안쪽 문을 여는 버튼으로 분류돼 있었다.
“사람이 움직인 게 아니라 버튼의 이름이 움직였네.” 내가 말했다.
“정확해.” 유나가 대답했다. “서류에선 문을 닫은 사람이 바뀌었지만, 현장 설비는 그대로였을 수 있어.”
그 발견을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실물 장치의 표찰을 다시 조사했다. 표찰 밑에 더 오래된 글씨가 있었다.
'외부 대기 중 / 임의 개방 금지'.
원래 버튼은 누군가를 가두려는 장치가 아니라, 무작정 문을 열어 위험을 만들지 않도록 막는 안전 장치였을 가능성이 생겼다. 이 단순한 명칭 하나가 2011년에 바뀌면서 아버지가 문을 닫았다는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를 변호하는 서류로 곧바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내가 다시 이름 하나로 사건을 설명하게 된다. 강문석은 점검 결과를 객관적인 항목으로 정리했고, 서아는 반대 해석이 가능한 부분까지 주석에 남겼다.
나는 유나에게 말했다.
“우리 언제쯤 진실을 다 알게 될까요?”
유나는 나를 바라보다가 웃었다.
“너 개발하면서 요구사항 다 맞춰 본 적 있어?”
“없죠. 절대 없죠.”
“그러니까 서두르지 마. 다 아는 날을 기다리느라 지금 고칠 수 있는 오류를 놔두면 더 큰 장애가 나.”
그 말은 개발자의 언어로 들으니 무척 명확했다. 우리는 아직 아버지의 일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현재 동의 신호가 거꾸로 전달되는 오류는 고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부터 해야 했다.
저녁에 강문석이 옛 시설 직원 한 명의 진술을 가져왔다. 그 직원은 당시 현장에서 안전 점검을 맡았고, 차정수와 함께 장비를 끌 때까지 남아 있었다고 했다.
“문이 닫힌 게 아니라 끊긴 겁니다.”
기록에 남은 직원의 말이었다.
“정수 씨는 사람이 안에 있다고 생각해서 문을 못 닫았어요. 대신 음성 회선만 남겨 놓자고 했죠. 밖에서 기다리면서 신호를 받을 수 있도록요.”
나는 몇 초 동안 숨을 쉬는 법을 잊었다.
아버지가 문을 닫은 사람이 아니라 밖에 남아 있던 사람이라는 문장은 사실에 가까울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오늘 내 수신기에 나타난 그 문장은 2026년에 조립됐다는 사실도 동시에 참이었다. 사람의 과거를 이용해 만들어진 현재의 거짓말은, 진짜 사건을 일부 담고 있어서 더욱 위험했다.
“그럼 안에 남은 사람은요?” 내가 물었다.
직원 진술은 거기서 끝났다. 담당자는 그 뒤로 현장에 다시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나는 지하 통로에서 찍은 사진을 바라봤다. 검은 선. 작은 종. 어두운 창.
문 너머 사람이 아버지를 흉내 낸 이유는 아버지가 나가려는 사람을 막았기 때문이 아닐지도 몰랐다. 유일하게 밖에 남아서 대답을 기다리던 사람의 목소리가 아버지 것이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신호가 오기 전, 어머니는 내가 가져간 사진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 그녀는 내가 어떤 대답을 기대하는지 아는 듯했다.
“도겸아, 네 아버지가 좋은 사람이었다는 걸 증명하려고 애쓰지 마.”
“왜요?”
“좋은 사람이었다면 그 사람이 한 좋은 일이 남겠지. 잘못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도 남아야 하고.”
어머니는 잠깐 소파에 기대앉았다.
“네가 아버지를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일은, 그 사람 이름으로 거짓말하지 않는 거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범인이라는 말을 들으면 화가 났고, 아버지가 영웅이라는 말을 들으면 기뻤다. 그렇게 매일 마음이 흔들리는 동안 정작 아버지가 어떤 사람으로 살았는지는 놓치고 있었다.
식탁 위에는 그가 사용하던 손목시계가 있었다. 나는 예전처럼 시계를 고쳐 보고 싶었다. 멈춘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시계를 만든다면 언젠가는 이 모든 일이 해결될지도 모른다는 어리석은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시계를 내 손에서 가져갔다.
“이건 고장 난 게 아니야.”
“왜요? 멈춰 있잖아요.”
“고장 나서 멈춘 게 아니거든. 네 아버지가 돌아오지 않던 날 내가 멈춰 둔 거야.”
나는 어머니를 바라봤다. 시계가 멈춘 이유는 기계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마음이었다. 어머니는 그 시계를 다시 돌리고 싶지 않을 수도 있었다. 처음으로 나는 고쳐 드리겠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때 오래된 수신기에서 신호가 하나 도착했다.
'당신은 바깥에서 기다릴 사람입니까?'
나는 처음으로 그 질문이 나를 협박하는 대신,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묻는 것처럼 들렸다.
제15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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