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6월 11일.
달력에서 날짜를 확인했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에게는 생일이거나 기념일이었을 하루가, 다른 누군가에게는 동의하지 않은 계약을 덮어씌운 날이었다.
“아버님 목소리가 원본에 있었을 수는 있어.” 서아가 말했다. “하지만 뒤에 추가된 지시는 아버님이 아닐 수도 있잖아.”
“알아.”
“진짜 알아?”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면 아버지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일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지우고 싶었다. 기록만 봐서는 아직 그럴 수 없었다. 1998년의 목소리가 실제 아버지인지도 확인되지 않았다.
남 형사는 테이프 보존 과정에 대한 보고를 받아 왔다. 음성에서 특정인의 이름을 찾아내기보다, 녹음 장치에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의 목록을 추적하는 편이 더 확실하다고 했다. 2011년 보관 장부에는 그날 실험실에 출입한 사람의 명단이 일부 남아 있었다.
이채원이 표시한 칸에는 두 개의 이름이 있었다.
구태형.
남도윤.
“형이 왜 거기 있었죠?” 남기혁이 물었다.
그는 동생도 형사도 아닌 사람처럼 떨리는 목소리였다. 나는 그를 바라봤지만 어떤 위로를 해야 할지 몰랐다. 그동안 우리는 남도윤을 실종자나 귀환 관리 보조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테이프를 수정한 날 그가 실험실에 있었다면, 그의 역할은 훨씬 복잡할 수 있었다.
“출입했다고 조작했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 형사가 스스로 말했다.
“맞습니다.” 강문석이 대답했다. “같은 날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는 어느 기계를 누가 건드렸는지 알 수 없어요.”
우리는 출입 기록의 원본을 찾았다. 서류에는 '남도윤' 이름 옆에 붉은 도장이 있었다.
'장비 회수 입회'.
구태형 옆에는 다른 도장이 찍혀 있었다.
'시스템 이관 승인'.
동일한 장소에 있었더라도 두 사람이 맡은 업무는 달랐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두 기록을 한 칸으로 합쳐 둔 흔적도 보였다. 시스템 이관 뒤 장부를 재작성하면서 역할 열이 사라진 것이다.
“이것도 복원해 둬야겠네요.” 내가 말했다.
남 형사는 잠시 창밖을 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이 무슨 일을 했든, 한 칸으로 합쳐 버리는 건 수사가 아니죠.”
우리는 테이프의 두 번째 트랙에서 말하는 사람을 확인할 단서를 찾았다. 음성은 약간 변조되어 있었지만, 문장 끝마다 숨을 짧게 들이마시는 습관이 남아 있었다. 전문가의 분석이 필요했고, 우리는 가설을 좁히는 수준에서만 기록했다.
사진을 기다리는 동안 남 형사는 오래된 기사 한 장을 보여 주었다. 2011년 영병원 별관 안전 점검 뒤 실종됐다는 청년의 짧은 지역 기사였다. 이름은 비공개였고, 가족이 수색을 요청했다는 두 문장만 있었다.
“이게 형일까요?” 내가 물었다.
“당시에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손가락으로 기사 아래 작은 문구를 가리켰다.
'관계 기관은 해당 청년이 자발적으로 현장을 떠난 것으로 추정.'
“이 문장 때문에 수색이 느려졌어요. 자발적으로 떠났다는 근거를 제게 보여 준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말이 기사에 실렸고, 사람들은 형이 그냥 집을 나간 줄 알게 됐죠.”
남 형사는 기사 복사본을 가방에 넣었다. 접힌 자국이 너무 많아 모서리가 하얗게 닳아 있었다.
“제가 형사가 된 뒤에도 이 사건만큼은 쉽게 못 보겠더라고요.”
“형사님이니까 더 잘 아실 줄 알았는데.”
“아는 게 많아지면 의심할 것도 많아집니다. 그중 제일 의심하기 어려운 건 제가 정말 알고 싶었던 대답이에요.”
나는 남 형사를 보았다. 그는 오랫동안 형을 찾으면서, 형과 관련된 모든 단서를 믿고 싶어 했을 것이다. 나도 아버지 이름이 뜨면 그랬다. 우리 둘 다 누군가의 실종 사건을 다루는 전문가가 아니었다. 개인적인 기다림이 수사 기록 사이에 섞여 들어가면 서로를 해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워 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때 남 형사가 말을 이었다.
“형이 정말 장비를 회수하러 갔다면, 왜 집에 돌아오지 않았을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제가 바라는 답은 있어요. 누군가를 도우려다 갇혔다는 거. 그러면 적어도 형을 원망할 수는 없으니까.”
그는 잠깐 웃었다.
“그런데 원망할 일도 형에게 직접 물어볼 기회가 있어야 하겠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도윤이 돌아오더라도 그가 동생의 바람에 맞춘 사람일 필요는 없었다. 그저 자신이 겪은 일을 자기 말로 설명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남 형사에게 연락이 왔다. 2011년 장비 점검 당시 찍힌 단체 사진의 원본이 발견됐다는 소식이었다. 사진의 원본에는 날짜 말고도 중요한 것이 있었다. 오른쪽 아래에 시설 점검표 번호가 보였다. 남 형사는 그 번호를 정식 문서 검색에 활용할 수 있도록 담당자에게 전달했다. 몇 시간 뒤 같은 번호의 보고서가 발견됐다.
보고서 첫 페이지에는 '장비 고장 없음'이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하지만 세 번째 페이지에는 서로 반대되는 말이 있었다.
'안쪽에서 중단 요청 신호 확인.'
'자동 처리상 귀환 동의 신호로 입력됨.'
“완전히 반대로 입력됐는데 왜 고장이 없다고 했을까요?” 내가 물었다.
강문석이 문서를 펼쳐 보였다.
“당시 검사 기준이 장비가 데이터를 받았는지만 확인했기 때문일 수 있어. 데이터가 무슨 뜻인지는 따로 검사하지 않았던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컴퓨터는 데이터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지만, 그 데이터가 누군가의 '싫다'는 말인지 '좋다'는 말인지는 사람이 제대로 설계하지 않으면 모른다.
보고서 마지막에는 작은 서명란이 있었다. 세 명의 승인권자가 기계적으로 결재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칸이었다. 한 칸은 비어 있었고, 다른 칸에는 지워진 인장이 있었다. 유일하게 또렷한 글씨는 '장비 회수 보류 — N.D.Y.'였다.
“남도윤이 회수를 막으려 했을 수도 있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럴 수도 있죠.” 남 형사가 대답했다. “그래서 이 보고서를 더 찾아봐야겠어요.”
그는 형의 이름을 소리 내어 읽지 않았다. 대신 이니셜 그대로 수첩에 적었다. 가족을 찾는 사람의 마음을, 수사 기록이 가능한 범위 안에서 붙잡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진 속 구태형은 오른손에 붕대를 감고 있었고, 옆에는 남도윤으로 보이는 청년이 낡은 금속함을 들고 있었다.
금속함의 표면에 '04'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형이 테이프를 숨긴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맡긴 걸 옮겼을 수도 있죠.” 내가 말했다.
그때 서아가 사진 확대를 멈췄다.
“잠깐. 저 뒤에 있는 사람.”
배경에 찍힌 유리문 너머, 흰 옷을 입은 여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알아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손가락 끝이 유리 위에 닿아 있었다.
그리고 그녀가 쓴 글씨 한 줄이 희미하게 보였다.
'아직 안 나갔어.'
우리가 제3 귀환문 안에 있다고 추측했던 사람은 1998년의 아이 하나뿐이 아니었다. 어쩌면 2011년에도 누군가 자신을 밖으로 내보내 달라는 대신, 아직 여기에 있다고 말하려 했던 것이다.
제157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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