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을 열겠다고요?”
시설 관리자는 우리가 내민 요청서를 두 번 읽었다. 안전 점검을 위해 잠긴 장비를 분해하는 건 드문 일이 아니지만, 작동 중인 귀환 회선 옆에서 28년 묵은 테이프를 꺼내겠다는 사람은 처음일 것이다.
“문은 건드리지 않습니다. 종의 외부 보관함만 확인할 겁니다.” 강문석이 설명했다.
관리자는 도면을 검토하고 내부 공기가 외부로 새어 나오지 않는 구조인지 확인한 뒤 작업 조건을 정했다. 누군가 안쪽에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 원래 종을 치는 기능은 유지해야 했다. 우리는 점검 시간이 제한될 수 있다는 데 동의했다.
“시간이 오래 걸리면 중단합니다.” 유나가 말했다.
“너무 뻔한 말을 멋지게 하네.” 내가 중얼거렸다.
“뻔한 말 안 지키는 사람이 꼭 사고를 치거든.”
그 말에는 반박할 수 없었다.
황동 종 바깥쪽에는 덮개를 연 흔적이 있었다. 봉인용 납선이 끊어져 있었고, 그 위에 2011년 시설 점검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우리는 스티커를 먼저 촬영한 뒤 승인된 범위에서 덮개를 열었다.
안에는 손바닥만 한 빈 공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바닥에 검은 카세트 한 개가 놓여 있었다.
'04 / 원음. 혼합 금지.'
이채원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4번 테이프는 2011년에 폐기됐다고 적혀 있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폐기 보고서를 만든 뒤에도 실물을 남겨 두었다. 누가 보관했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이 물건은 존재했다.
“음성이 담겨 있을까요?”
“일단 상태부터.” 이채원이 말했다. “오래된 테이프를 그대로 재생하면 손상될 수 있어요.”
우리는 보존 전문가에게 전달하기로 하고 봉투를 밀봉했다. 그러자 종이 한 번 울렸다. 짧은 소리 두 번. 대화 가능이라는 신호였다. 관리자는 즉시 손을 멈췄다.
“안에 계신 분. 바깥에서 보관 물품을 하나 확인했습니다.” 서아가 말했다. “지금 대화를 원하시나요?”
긴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는 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서아는 더 재촉하지 않았다. 우리가 찾은 것은 테이프이지, 안쪽 사람이 대답할 의무가 아니었다.
카세트를 봉투에 넣기 전, 이채원은 겉면에서 작은 붉은 점을 하나 발견했다. 테이프를 분해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던 자리에 손으로 찍은 표시였다. 그녀는 자료집을 뒤적여 과거 보관 규칙을 확인했다.
“이건 '양면 원음' 표시예요. 앞뒤가 같은 내용을 담는다는 뜻이 아니라, 한쪽에 질문을, 다른 한쪽에 그 질문에 대한 답을 담는 방식이죠.”
“둘을 동시에 재생하면?” 내가 물었다.
“한 사람이 두 역할을 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어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서아가 고개를 들었다.
“2011년 편집자가 두 트랙을 하나로 합쳤다는 건, 질문하는 사람과 답하는 사람을 같은 사람처럼 만들 수 있었다는 뜻이야.”
나는 처음 병원에 왔던 날을 떠올렸다. 화면에는 늘 하나의 이름이 떠 있었다. 누가 물었는지도, 누가 대답했는지도 같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우리는 그것이 시스템상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제야 그 당연함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황동 종을 다시 덮은 뒤 테스트를 한 번 진행했다. 바깥에서 종을 짧게 두 번 쳤고, 안쪽으로 신호가 전달되는지 독립 장치로 확인했다. 잘못 연결된 2011년 중계기는 여전히 이 신호를 승인으로 해석하려 했지만, 오늘은 자동 출력 경로가 차단되어 있었다. 장부에 새로운 동의 항목은 생기지 않았다.
“처음 설치한 사람은 이렇게까지 생각했을까요?” 서아가 물었다.
“누군가 더 나쁜 식으로 사용할 걸 예상했을 수도 있지.” 유나가 말했다.
그 말이 무섭게 들렸다. 좋은 장치를 만드는 일과 그 장치가 나중에 악용되지 않게 만드는 일은 같은 과제가 아니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일을 다했다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앞으로 누군가가 고칠 수 있도록 흔적만 남겨 둔 걸까.
퇴근길에 나는 도면의 빈칸을 보았다. 수동 종 아래에는 작은 나사 구멍이 두 개 더 있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달려 있지 않았지만, 원래 또 다른 장치를 연결하도록 만든 자리 같았다. 현장 담당자는 그 구멍을 측정해 추가 기록을 남겼다.
서아가 내게 말했다.
“그 종을 남겨 둔 사람은 우리가 찾을 때까지 기다렸던 걸까?”
“아니면 누가 찾아도 찾게 해 둔 거겠지.”
나는 그 말이 더 좋았다. 영웅 한 명이 정답을 찾도록 만든 장치보다, 누구라도 들을 수 있는 종이 훨씬 오래 살아남았으니까.
보존실에서 테이프를 안정화하는 동안 나는 서아와 편의점에 다녀왔다. 그녀는 커피를 두 개 집더니 내 손목을 보았다.
“오늘 몇 번 멈췄어?”
“정확히는 한 번 반.”
“반?”
“시간은 다시 움직였는데 제 정신은 아직 퇴근을 못 했거든.”
서아가 커피 하나를 도로 놓았다.
“그럼 한 잔만 마셔. 집에서 자.”
우리는 잠깐 웃었다. 지하 복도의 형광등과 황동 종은 웃지 않았다. 그곳에서는 누군가 멈춘 순간과 누군가 앞으로 가는 순간이 여전히 엉켜 있었다.
오후 늦게 보존실에서 연락이 왔다. 4번 테이프에는 두 개의 독립된 트랙이 있었다. 한쪽에는 어린아이의 음성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다른 한쪽에는 나이가 든 남자의 목소리가 녹음돼 있었다. 두 트랙은 같은 시각에 녹음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자성 기록의 상태가 달랐다.
“하나는 1998년 원본일 수 있고, 다른 하나는 2011년에 추가됐을 가능성이 있네요.” 이채원이 말했다.
“가능성 말고 무엇부터 확인할 수 있죠?”
“물리적인 편집 흔적이요. 그리고 각 트랙의 언어가 다른지.”
재생 전에 우리는 파일을 둘로 복제해 서로 다른 장비로 점검했다. 한쪽에는 원본 보존 데이터와 시간 정보만 남겼고, 다른 한쪽으로 음성을 들었다. 장비가 낡아서 속도가 조금만 달라져도 목소리가 이상하게 들렸다. 이채원은 첫 재생을 중단하고 헤드와 재생 속도를 다시 맞췄다.
“목소리의 높이가 다른 사람으로 들릴 수 있어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사람 이름을 찾으려고 하는데, 기계 속도 하나로 이름이 바뀌겠네요.”
“그래서 음성 감정이 어려운 거예요.”
두 번째 재생에서 우리는 처음 듣는 배경음을 들었다. 유리잔이 부딪히는 소리, 종이가 접히는 소리, 먼 곳에서 누군가 아이를 부르는 소리. 대화는 아주 짧았지만 그 안에 하나의 공간이 들어 있었다. 1998년의 병원은 기록 화면 속 숫자가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숨결이 있던 곳이었다.
'여긴 왜 이렇게 조용해?' 아이가 물었다.
'밖에서는 지금 시계가 멈췄거든.' 누군가 대답했다.
'그럼 엄마도 안 움직여?'
'엄마는 나중에 다시 움직일 거야.'
'내가 나오기 싫으면?'
잠깐의 침묵 뒤에 대답이 들렸다.
'네가 싫으면 우선 기다릴 거야.'
나는 녹음기를 꺼 버리고 싶었다. 그 목소리가 아버지의 것이었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이채원은 소리의 특징을 비교하기 전까지 어떤 결론도 내리지 않았다. 나도 고개를 끄덕이며 수첩에 적었다. '질문자 미확인. 응답자 미확인. 대화는 있음.'
정식 추출본에서 가장 먼저 또렷이 들린 소리는 아이의 울음이었다.
'나가고 싶지 않아.'
조금 뒤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그럼 여기서 기다리자. 네가 나갈 준비가 될 때까지.'
남자의 목소리는 아버지와 비슷했다. 하지만 파일을 들은 누구도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두 번째 트랙에는 전혀 다른 말이 담겨 있었다.
'관리 대상이 응답하지 않았으므로 차정수의 음성으로 귀환 동의를 대체한다.'
내 손가락이 떨렸다.
여기에는 누군가의 음성을 저장한 흔적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응답하지 않는 사람을 대신해서 대답하게 만들겠다는 지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트랙의 마지막에는 날짜가 읽혔다.
'2011년 6월 11일.'
열세 해 뒤 누군가 원본 위에 또 하나의 목소리를 올린 것이다.
제156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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