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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55화
PAYLUA ORIGINAL · 제155화

155화. 손바닥의 검은 선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429자

오프라인 책장
내가 아버지 손바닥의 상처를 기억하는 이유는 별것 아니었다. 어린 날 장난감 자동차를 고쳐 달라고 졸랐을 때, 아버지가 드라이버를 놓치며 다쳤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기억했다. 하지만 기억은 이미 여러 번 찢어졌다. 어떤 날은 아버지의 목소리가 떠오르지 않았고, 어떤 날은 어머니가 나를 부르던 이름을 잊었다. 그러니 검은 선 하나가 아버지의 상처와 같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사진은 남겼죠?” 유나가 물었다. “예. 그런데 창 안쪽에 비친 거라서—” “모양만 확인하자. 누군지 말하지 말고.” 현장 담당자는 창의 내부 반사 가능성을 확인했다. 센서 화면에는 실제 움직임과 일치하는 신호가 남아 있었지만, 손바닥 자국은 흔적 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빛으로 투사된 영상이었을 수도 있었다. 나는 벽에서 등을 떼었다. 아버지 얼굴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눈을 속일 수도 있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래도 저쪽에서 긴 신호를 보냈잖아.” 서아가 말했다. “그건 지금 확인할 수 있는 일이야.” 우리는 긴 신호가 나왔을 때 안쪽 통로의 어떤 설비가 작동했는지 조사했다. 수동 종 옆에 연결된 작은 산소 감지기가 같은 시각에 잠깐 변동을 기록했다. 농도 자체는 위험한 수준이 아니었지만, 장치가 스스로 공기를 순환시키는 자동 모드로 바뀌었다는 표시가 있었다. “누군가 내부에 들어갈 수 있다는 뜻은 아닙니다.” 현장 담당자가 말했다. “하지만 환기 통로가 따로 있다는 건 확인됐네요.” 남 형사는 시설 담당 부서에 추가 조사를 요청했다. 우리는 무리하게 출입문을 열지 않기로 했다. 그 안쪽 공간이 실제로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 형사는 신원 확인보다 구조 안전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한편 강문석은 C-07 장비의 2011년 교체 지시서를 가져왔다. 나는 서류에서 기이한 항목을 발견했다. '음성 인계 키: CHJ-98.' “차정수의 이니셜이잖아요.” “그렇게 보이지만 확정할 수 없어.” 강문석이 말했다. “사번이나 프로젝트 코드일 수도 있고.” 뒤쪽 첨부물에는 1998년 보존 테이프에서 추출한 짧은 음성 표본들이 있었다. 아버지가 회의에서 발표하는 소리, 어린아이를 달래는 소리, 전화기에 대고 어떤 질문을 반복하는 소리. 자료 생성 시점은 확인됐지만 그 자료를 합성기에 올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다른 문제였다. “내 목소리를 사용하도록 허락했다는 서류는요?” 내가 물었다. “없어. 적어도 현재 확인된 범위에서는.” 그 사실은 구태형의 조작을 바로 증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온 2026년 회신을 아버지의 진짜 의사라고 볼 근거를 한층 약하게 만들었다. 서아가 서류 뒷장에 붙은 오래된 손글씨를 가리켰다. '화자를 찾을 수 없을 때는 보관자의 목소리로 읽게 할 것.' “이 문장 때문에 아버님 목소리를 쓰게 된 걸까?” “아마도.” “그런데 왜 하필 아버님이 보관자야?”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날 저녁, 나는 어머니 집에 들렀다. 긴 하루를 보내고 거실에 들어서니 식탁에 김치찌개가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내 표정을 보고 숟가락부터 건넸다. “생각은 먹고 해.” 나는 몇 숟가락을 먹다가 물었다. “엄마, 아버지는 왜 그 일 계속하셨을까요? 그만둘 수도 있었잖아요.” 어머니는 냄비를 내려놓았다. “그때도 내가 그렇게 물었어.” “뭐라고 하셨어요?” “잘못 작동하는 기계를 두고 나오면, 그 기계 안에 있던 사람한테는 아무도 설명을 못 해 준다고 하더라.” 그녀는 잠시 생각했다. “그렇다고 네 아버지가 잘한 일만 했다는 뜻은 아니야. 가족은 몇 번이나 기다렸고, 정수 씨도 잘못한 선택이 있었겠지. 나도 화가 많이 났어.” 나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완벽하게 만들지 않는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지금껏 내가 찾으려 한 아버지는 너무 멋있거나 너무 끔찍한 사람 둘 중 하나였다. 하지만 가족에게는 늦게 들어오고 밥을 남기고 가끔 말실수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혹시 아버지가 손바닥에 선을 그렸어요?” “왜?” “유리 안쪽에서 그런 손을 봤어요.” 어머니는 자신의 손을 펴 보였다. 손금 사이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때 장비 안팎을 표시하려고 그린 게 있었지. 그런데 정수 씨만 그린 건 아니야. 신입 직원들도 그렇게 하라고 배웠을 거야.” “그러면 누구인지 더 모르겠네요.”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있으면 되지. 네가 꼭 알아야만 밥이 넘어가니?” 나는 조금 웃었다. 아무리 큰 비밀도 어머니 앞에서는 밥 한 그릇의 크기로 작아졌다. 식사를 마칠 때 어머니가 오래된 우편 봉투 한 장을 주었다. 1998년 병원에서 아버지 앞으로 보낸 것이었다. 안에는 종이가 없었지만, 겉면에 수정된 주소가 남아 있었다. 병원 별관에서 집으로 보내려던 우편물이 중간에 반송된 것 같았다. 반송 사유는 뜻밖이었다. '수취인의 요청으로 발송 보류.' 아버지는 어떤 편지를 쓰고도 보내지 않기로 결정했던 모양이다. 그 편지는 도대체 누구에게 보내려던 것일까. 그때 이채원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카이브에 남은 4번 테이프의 폐기 목록을 다시 살펴보다가 실제 보관 물품의 이름과 다른 표시를 발견했다고 했다. '4번 테이프 — 폐기.' 그 아래 아주 작은 글씨. '원본은 수동 종 함 내부로 이관.' 도면 한쪽에는 누군가 작은 화살표를 그려 놓았다. 황동 종과 나란히 그려진 좁은 선이었다. 처음엔 전선인 줄 알았지만 자세히 보니 '물품 전달'이라고 적혀 있었다. 구조 당시 사람의 손을 넣지 않고도 작은 물건을 옮길 수 있도록 만든 별도 보관함이었다. “누군가 테이프를 넣을 수 있었겠네요.” 내가 말했다. “네. 사람이 직접 문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요.” 강문석이 대답했다. 그런데 2011년 점검 목록에는 그 물품함의 위치가 지워져 있었다. 사진으로 남긴 도면에는 흔적이 보였고, 출력본에서는 빈 공간이 된 부분이었다. 누가 왜 지웠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심코 내가 아끼던 USB를 떠올렸다. 메모장에는 중요한 비밀번호가 들어 있지 않았지만, 처음 만든 프로그램의 소스가 남아 있었다. 누군가 그 USB를 '폐기'했다고 적어 두고 따로 보관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해야 할까, 고마워해야 할까. “한 가지는 확실하네요.” 서아가 말했다. “없어졌다고 적힌 물건이 정말 없어졌다고 믿을 수는 없다는 거.” “반대로 남아 있다고 적힌 사람도 진짜 남아 있는 건 아닐 수 있고.” 나는 그렇게 말해 놓고 스스로 놀랐다. 아버지의 이름이 계속 나오기 때문에 아버지도 여전히 그곳에 있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 날 우리는 장비 관리자 입회 아래 물품함을 확인하기로 했다. 문을 여는 것과 물건을 확인하는 일을 분리하면 누군가의 선택을 빼앗지 않고도 단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다시 제3 귀환문의 도면을 펼쳤다. 조금 전까지 사람의 신호가 들렸던 바로 그 황동 종. 누군가 우리를 문 앞까지 이끌었고, 그곳에서 들린 노크가 잃어버린 녹음의 보관 위치를 알려 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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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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