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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54화
PAYLUA ORIGINAL · 제154화

154화. 벽 너머의 노크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3,999자

오프라인 책장
영병원 별관에 도착했을 때 비가 내리고 있었다. 검은 우산들이 젖은 주차장 바닥에서 서로 부딪혔다. 복도에는 오래된 소독약 냄새가 남아 있었고, 형광등은 절반만 켜져 있었다. “지금부터는 손으로 열 수 있는 문만 건드린다.” 유나가 말했다. “처음 듣는 보안 규칙인데요.” “오늘 만들었어. 너 때문에.” 웃으려던 나는 제3 귀환문 앞에서 입을 다물었다. 금속 문짝에는 손바닥만 한 관측창이 있었고, 관측창 너머는 새카맸다. 문이 잠겨 있는지조차 구분하기 어려웠다. 이곳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기계의 일부로 취급되었고, 지금도 사람이 안에 있다는 확실한 증거는 없었다. 현장 담당자가 절연 장갑을 건네주었다. 벽면의 작은 진단판에서 직접 들어오는 음성과 이전 녹음의 재생 상태를 따로 표시했다. 음성 합성기 C-07의 출력은 분리돼 있었다. “조금 전의 두드림이 다시 들리면 기록합시다.” 남 형사가 말했다. 나는 녹음 시간을 맞췄다. 서아는 마이크 앞에서 목소리를 낮췄다. “안에 계신 분. 저희는 밖에 있습니다. 지금 이야기하고 싶지 않으면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열한 분쯤 기다렸을 때, 관측창 아래쪽 금속판에서 작고 분명한 진동이 전해졌다. 딱. 딱. 긴 간격. 딱. 현장 담당자가 마이크의 소리를 완전히 낮췄다. 그래도 진동은 들렸다. “스피커 출력이 아니네.” 그가 중얼거렸다. “그럼 누군가 직접 안쪽을 건드렸다는 뜻입니까?” 내가 물었다. “그럴 가능성이 있어요. 다만 파이프나 다른 기계적 진동이 전달됐을 수도 있죠. 위치를 특정해 봅시다.” 우리는 벽을 뜯어내지 않았다. 비접촉 진동 센서를 붙여 위치를 비교했다. 가장 큰 진동이 잡힌 곳은 문고리가 아니었다. 문 옆으로 손 하나가 들어갈 만한 작은 구조물이었다. 먼지를 털어 내자 황동으로 된 종이 한 개 드러났다. 실험실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기 위해 설치한 수동 호출기였다. “전원하고 관계없는 장치네요.” 서아가 말했다. “맞아.” 유나가 끄덕였다. “누구든 몸을 움직일 수 있으면 울릴 수 있는 것.” 현장 담당자는 우리가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창고에서 오래된 사진을 가져왔다. 황동 종이 처음 설치되던 날의 장면이었다. 병원 복도에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서 있었고, 가운데에는 목재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 “저기.” 유나가 말했다. 사진 속 상자 뚜껑에는 작은 글자가 있었다. '응답할 수 없는 사람을 위한 경고 장치.' 나는 웃지 못했다. 그 장치는 사람을 꺼내기 위한 버튼이 아니라, '지금은 안 된다'고 말할 수 있도록 만든 종이었다. 28년 뒤 장부는 그 신호를 반대로 읽고 있었다. 사진 오른쪽 가장자리에는 검은 펜으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영병원 별관 개보수 날짜와 일치했다. 다른 사진에서는 같은 종의 레버를 눌러 시험하는 사람이 보였다. 그의 얼굴은 흐렸지만 왼쪽 가슴의 명찰에는 '차정수'라는 글씨가 있었던 것 같다. 확대할수록 픽셀은 깨졌고, 나는 더 이상 사진을 키우지 않았다. “왜 못 알아보겠지.” 내가 중얼거렸다. 서아가 대답했다. “사람 얼굴을 꼭 알아봐야 하는 건 아니야. 그 사람 손으로 만든 장치가 무슨 일을 하려고 했는지 보면 되잖아.” 나는 도면을 보았다. 안쪽에서 세 번 누르면 외부의 모든 자동 명령이 일시 중지되도록 만들었다. 아무 말을 하지 못해도 중단을 요청할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었다. 2011년 수정 도면에는 그 중단 회선이 C-07의 동의 신호 입력으로 연결돼 있었다. “한 선을 다른 단자에 꽂은 거네.” 내가 말했다. “그 한 선 때문에 누군가 '그만'이라고 말하면 기계는 '좋아'라고 받아들인 거지.” 서아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나는 2011년 수정자의 이름을 찾아보려 했다. 누군가 사인을 했다면 그 사람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수정란에는 이름 대신 07이라는 숫자만 있었다. 구태형의 계정인지, 장비 점검 번호인지 여전히 알 수 없는 숫자였다. “이걸 원상복구하면 어떨까요?” “당장 선을 옮기면 안 됩니다.” 현장 담당자가 말했다. “안쪽이 현재 어떤 상태인지 모르니까요. 먼저 독립된 시험 장치에서 원래 규칙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래전 잘못된 연결을 발견했다고 지금 손으로 뜯어 고치는 것도 위험했다.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그 전선 하나에 기대어 살아 있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모두가 잠시 말이 없어졌다. 장부에는 돌아오지 않은 사람을 '미종료 항목'이라고 썼지만, 저쪽에서는 누군가 팔을 들어 종을 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우리는 황동 종의 바깥쪽에 도면이 남아 있는지 살폈다. 낡은 표지에 작은 글자가 적혀 있었다. '긴 신호 1회: 위험.' '짧은 신호 2회: 대화 가능.' '짧은 신호 3회: 중단 요청.' 방금 들은 건 짧은 두 번 뒤에 한 번 더 있었다. 오래되어 간격이 불규칙했으므로 뜻을 단정할 수 없었다. 서아는 대화를 시도하되, 먼저 상대가 멈추고 싶다는 신호를 정할 것을 제안했다. “저희도 같은 방식으로 답해도 될까요?” 세 번의 짧은 소리가 돌아왔다. 딱. 딱. 딱. 나는 손을 뗐다. 도면에 따르면 중단 요청이었다. 그런데 바깥 장비 화면에는 전혀 다른 문장이 나타났다. [내부 당사자: 대화 참여 동의] “누가 저걸 입력했지?” 강문석이 로그를 확인했다. 디지털 장부가 수동 종소리를 반대로 해석하고 있었다. 세 번의 짧은 신호를 듣고도 시스템은 '동의'라고 표시했다. 2011년 개조 이력에는 신호 체계가 재정의되었다는 한 줄뿐이었다. “이건 신호 번역이 아니라 왜곡이야.” 서아가 말했다. 우리는 자동 문답 기능을 중단하고 종소리의 원본 파형만 보존했다. 문 안쪽에 있는 누군가가 세 번 두드렸다는 사실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멈추고 싶다고 했는데도 시스템이 계속 말을 시키려 했다는 점이었다. 돌아갈 준비를 하던 순간, 종이 다시 울렸다. 이번에는 긴 소리 하나였다. 위험. 관측창 안쪽에서 작은 불빛이 켜졌다. 불빛 뒤로 사람 같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내가 한 걸음 다가가자 그림자는 멈췄다. 그리고 유리 안쪽에 글씨가 천천히 떠올랐다. '목소리를 믿지 마.' 곧 두 번째 문장이 이어졌다. '그 목소리는 내가 빌려 쓰는 거야.' 나는 갑자기 아버지가 남긴 회신을 떠올렸다. 문 안에서 스물여덟 해 동안 아버지의 이름으로 대답했다는 사람. 누군가의 목소리를 빌려 쓴다는 표현은 너무 정확했다. 서아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지금 쓰시는 목소리가 본인의 목소리가 아니라는 뜻인가요?” 내 시야에 어릴 적 장면 하나가 스쳤다. 아버지는 내 장난감 기차가 멈추면 무조건 건전지를 바꿔 끼우지 않았다. 먼저 레일을 살펴보고, 바퀴에 실이 걸렸는지 확인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급하게 손을 흔들었다. “아빠, 빨리 해 줘.” “기차가 왜 안 가는지도 봐야지.” “그냥 빨리 가면 되잖아.” “그랬다가 바퀴가 부러지면?” 오래된 기억은 내 머릿속에서 영상처럼 완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얼굴은 뿌옇고, 기차 색깔도 매번 달라졌다. 하지만 느리게 손을 움직이던 모습만큼은 선명했다. 나는 관측창에서 한 걸음 물러났다. 몇 개월 전이었다면 이 유리를 깨고 당장 안으로 들어가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건전지를 바꾸기 전에 레일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나는 문 앞에 있던 남 형사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는데도, 이상하게 문을 열고 싶습니다.”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나도 형의 얼굴을 봤을 때 그랬으니까.” “형사님은 어떻게 참았어요?” “참은 게 아닙니다. 지금 필요한 절차부터 한 거죠.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 더 조심해야 하니까요.” 그 말을 듣고 나니 관측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닫힌 문은 넘어야 할 장애물일 수도 있지만, 안에 있는 사람을 보호하는 경계일 수도 있었다. 그림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유리 표면에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손가락 다섯 개가 또렷했다. 손바닥 한가운데에는 검은 선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내가 어릴 적 아버지의 손에서 봤던 상처와, 위치가 같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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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4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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