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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5화
PAYLUA ORIGINAL · 제15화

15화. 일곱 번째 차도겸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118자

오프라인 책장
“왜 일곱 번째냐고요?” 나는 계단 끝의 남자를 보고 물었다. 강문석은 사진보다 마른 얼굴이었다. 무엇보다 오른손 중지가 없었다. 사진 속에는 멀쩡한 손가락이 다섯 개였으니, 지난 일곱 달 동안 내게만 불행한 일이 일어난 건 아니었다. 그의 어깨 너머로 계단 아래를 보았다. 뒤쪽에는 낡은 형광등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려 있었는데, 몇 개는 꺼져 있었다. 어두운 구간에서는 꼭 누가 서 있는 것 같은 실루엣이 보였다. 내가 눈을 깜빡이면 사라졌다. 강문석은 내가 그쪽을 본 것을 알아차리고 몸으로 시야를 가렸다. “아래에 뭐가 있습니까?” “보관실로 이어지는 시험 통로입니다. 아직 폐쇄하지 못했어요.” “이상하군요. 이 시스템은 왜 폐쇄된 문이 그렇게 많죠?” “열고 나면 닫을 권한이 없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요.” 그의 말은 우스운 농담 같았지만, 이 세계에서는 곧잘 그런 규칙이 사람을 망가뜨렸다. 한 번 내준 접근 권한, 한 번 확인받은 계약, 한 번 놓친 서명. 다시 되돌리려면 사람의 기억이 필요했다. 강문석은 계단을 한번 돌아봤다. “여긴 시간을 전문으로 다루는 곳 아닙니까?” 그는 한숨을 쉬었다. “그 농담, 처음 듣는 게 아니네요.” 유나가 내 옆으로 내려왔다. 그녀는 강문석을 보자마자 얼굴을 굳혔다. “살아 있었군요.” “완전히 살아 있는 상태는 아닙니다.” 강문석은 내게 종이 한 장을 건넸다. 양식에는 내 이름과 일곱 칸의 체크박스가 있었다.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칸에는 ‘완료’라는 도장이 찍혔고, 일곱 번째에만 ‘진행 중’이라고 적혀 있었다. “당신은 오늘까지 여섯 번 시간 정지를 사용하고, 그때마다 기억을 하나씩 잃었습니다. 그건 일주일의 요금입니다. 하지만 보관국이 일곱 번째라고 부르는 이유는 달라요.” 나는 종이를 더 가까이 보았다. 완료된 항목 옆에는 날짜 대신 ‘회차’라는 단어가 쓰여 있었다. “회차?” “6월 13일 이후 당신은 여섯 차례 보관국 안으로 들어가 계약을 갱신했습니다. 실패할 때마다 외부에서 살아가던 기억을 묶어 보관하고, 새로운 구간을 시작했어요. 몸을 새로 만든 게 아닙니다. 기억의 출발점을 다시 정한 거죠.” “이전의 저는 무엇을 잃었죠?” 나는 그 질문을 하고도 손가락으로 종이를 세었다.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내가 모르는 나의 시간이 줄을 서 있었다. 보관국에서 지운 것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구간이라는 말은 이해할 수 있었다. 컴퓨터라면 스냅샷을 만들어 이전 상태로 되돌리는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컴퓨터에서 데이터가 사라졌다고 그 데이터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마지막으로 주고받은 말, 남의 손을 잡은 순간, 누군가를 위해 울었던 시간은 적어도 한 번은 현실에 있었다. “분기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은 무슨 일을 겪었죠?” 강문석이 입술을 깨물었다. “일부는 계속 당신을 찾았습니다. 일부는 당신을 피했어요. 당신이 그때 무슨 선택을 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요.” “그 사람들이 저를 기억합니까?” “대부분은 희미하게만. 기억이 수정되니까요. 그래서 당신은 매번 사건을 처음 겪는 것처럼 시작했습니다.” 나는 유나에게 고개를 돌렸다. “유나 씨도요?” “난 지워진 적 없어. 다만 네가 날 바라보는 눈빛이 여섯 번 바뀌는 걸 봤지.” 그녀의 말이 더 아팠다. 나는 여섯 번 관계를 새로 시작했고, 그녀는 여섯 번 끝까지 기다렸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같은 감정으로 사랑했을 거라는 보장은 없었다. 오히려 그녀가 나를 도울 이유가 무엇인지 더 묻고 싶었다. “나중에 제대로 들어 볼게요.” 유나가 내 눈을 피하지 않았다. “응. 끝까지 물어.” “그럼 저는 여섯 번 죽었다 살아난 겁니까?” “아니요. 같은 사람이 여섯 번 자신을 잊었습니다. 다만 두 번째 분기가 생기던 때의 차도겸, 그 한 사람만 보관국에 남았어요.” 나는 원본이라고 불린 남자를 떠올렸다. 그가 진짜라면 나는 가짜인가. 강문석은 내가 묻기도 전에 말했다. “출발점이 다르다고 누가 진짜고 누가 가짜인 건 아닙니다. 당신들은 분기된 순간 이후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가진 시간은 여덟 분뿐이라면서요.” “계약상 체류 허가의 잔여 시간입니다. 생명과 같은 건 아니에요. 허가가 끝나면 보관국이 그를 기록에서 지우겠다고 통보한 거죠.” 나는 숨을 조금 편하게 쉬었다. ‘여덟 분 후 죽는다’는 말을 사실처럼 받아들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록에서 지우는 일이 이곳에서는 죽음보다 덜 위험하다는 보장도 없었다. 강문석은 나를 계단 아래로 이끌었다. 통로 양쪽에는 분전반과 인쇄기가 놓여 있었다. 인쇄기는 전원이 꺼져 있었는데도 종이를 토해 냈다. 종이마다 시간이 찍혀 있었다. 17:59:59. 17:59:59. 17:59:59. “여기서 실험한 겁니까?” “우리가 만든 건 정지 현상 자체가 아니었어요. 정지되는 시간을 발견한 뒤 그 안으로 사람이 들어갈 수 있게 했죠.” “누가 발견했는데요?” 강문석이 입을 다물었다. 유나가 그 대신 말했다. “서아.” 내 가슴이 불편하게 조여 왔다. 낯선 이름이면서 동시에 오래된 약속 같았다. “진서아가 뭘 발견했죠?” “6시 정각마다 아주 짧은 틈이 벌어지는 곳. 그 틈에는 사고로 사라진 사람들의 마지막 인식이 남아 있었어.” 나는 이해하려고 애썼다. “사람이 죽으면 기억이 남는다는 겁니까?” “모두의 기억이 아니라, 특정한 순간에 끊긴 인식의 잔향이요.” 강문석이 말했다. “서아 씨는 그걸 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마지막 순간을 되돌려 그 사람에게 선택을 돌려주려 했어요. 처음 목적은 구조였습니다.” “그런데 왜 지금은 기억을 돈처럼 걷고 있죠?” 강문석이 벽에 걸린 종이 그래프를 보여 줬다. 선 하나가 우상향했다. 제목에는 ‘제6시 보관국 일일 회수량’이라고 쓰여 있었다. “구태형이 이 현상을 사업으로 바꿨습니다. 구하지 못한 사람의 마지막 1초를 보관하는 데 돈이 든다고 주장했죠. 그리고 살아 있는 사람의 기억을 대가로 받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돈이 되기는 합니까?” “기억은 위험의 증거이면서 개인의 결정 패턴입니다. 누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누구를 사랑하고, 어떤 선택을 되풀이하는지 알 수 있어요. 가치가 크죠.” 나는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쥐었다. “그러니까 어머니의 기억도 자료로 본 겁니까?” “예. 외부 접촉자들은 감사 대상의 진위를 입증할 수 있으니, 보관국이 먼저 관계를 훼손하려 한 겁니다.” 위층에서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누군가 인쇄소의 철문을 열려고 했다. 강문석이 고개를 들었다. “구태형이 왔군.” “형사님에게 연락하겠습니다.” “안 됩니다. 외부 통신으로 이 방의 위치가 기록됩니다.” “이미 저쪽이 알고 찾아왔는데요.” “장소를 아는 것과 감사 증거의 위치를 아는 건 다르죠.” 그는 한쪽 벽을 열었다. 안에는 낡은 카세트테이프와 종이 장부가 있었다. 장부 표지에는 ‘제6시 손실 내역’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었다. “전자 기록은 바뀌어도 이 장부는 바뀌지 않습니다. 이유는 간단해요. 서아 씨가 시간 바깥에서 손으로 쓴 종이니까.” 강문석은 서류 앞에 놓인 낡은 카세트테이프를 한 개 들어 올렸다. 라벨에는 ‘6월 13일, 구조 실험 1차’라고 쓰여 있었다. 그는 옆에 있던 소형 녹음기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지직거리는 잡음 뒤에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서아였을 것이다. “기록합니다. 오늘 오후 6시 직전에 확보한 대상자의 인식 잔향은 외부와 동기화되지 않았습니다. 사람을 되살린다고 말할 근거가 없습니다. 우리는 아직 죽음과 기억의 차이를 모릅니다.” 다음 목소리는 내 것이었다. “그러면 실험 중단해야지. 동의를 얻을 방법도 없잖아.” 그리고 세 번째 목소리. 구태형이었다. “기회를 놓치면 다시는 못 해. 지금 멈추면 7개월짜리 연구비가 날아가.” 그 짧은 녹음에서 세 사람의 목적은 명확했다. 누군가는 구하려 했고, 누군가는 두려워했고, 누군가는 돈을 잃을까 걱정했다. 가장 나쁜 건 그 세 가지가 처음에는 모두 합리적인 이유처럼 들렸다는 점이었다. “이거 가져가도 됩니까?” “녹음기는 두고 테이프만.” “원본이 필요할 텐데요.” “그래서 복제본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대신 누가 재생하든 같은 소리가 남도록 서아 씨가 손을 댔죠.” 나는 테이프를 가방 안쪽에 넣었다. 증거의 종류가 하나 늘었다. 종이와 음성. 내 기억이 남지 않아도, 남들이 들을 수 있는 목소리가 남았다. 나는 장부를 펼쳤다. 수백 명의 이름과 징수된 기억의 설명이 빽빽했다. 가족과 함께 먹은 마지막 식사. 자녀가 처음 걸음마를 했던 날. 고백을 받던 오후. 사람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조각들이 회계 장부처럼 정렬되어 있었다. 맨 마지막에는 익숙한 이름 세 개가 있었다. 남하린 — 미반환. 오재민 — 미반환. 김태오 — 보관 확인. “이름 옆에 보관 확인이라는 건 무슨 뜻이죠?” “김태오는 아직 몸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나머지 두 사람도 돌아올 가능성은 있지만, 지금 위치를 알아야 해요.” 유나가 장부 모서리를 만졌다. 떨리는 손가락이 오재민이라는 이름을 훑었다. “재민이가 살아 있네요.” “가능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강문석의 말은 조심스러웠다. 유나는 그 차이를 알면서도 장부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바깥 철문이 벌컥 열렸다.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강 선임. 숨바꼭질은 이제 끝내죠.” 구태형이었다. 강문석이 장부를 접어 내 가방에 밀어 넣었다. “도겸 씨. 감사 때 제출할 건 목록만이 아니에요. 구태형이 승인한 원본을 찾아야 합니다.” “그건 어디 있습니까?” “그 사람 손에요.” 위층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한 걸음, 두 걸음. 계단의 불빛이 하나씩 꺼졌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통로 끝 종이 시계에는 17:59:59가 인쇄되고 있었다. “유나 씨. 여기서 나갈 길은?” 유나가 벽을 가리켰다. 벽에는 아주 작은 손잡이 하나가 있었다. 위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비상 퇴근.’ 나는 웃음이 나왔다. “우리 회사에 이런 버튼이 있었다면 진작 퇴사 안 했을 텐데.” 손잡이를 당기려던 순간, 강문석이 내 손을 붙잡았다. “하나만 기억하세요. 그 문을 지나면 당신이 가진 증거의 값이 정해집니다.” “얼마나 비싼데요?” 그는 한참 침묵했다. “당신이 아직 잃지 않은 기억 중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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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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