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동안 나는 회사에 가지 못했다.
연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회사가 어디에 있는지 기억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 지도 앱을 열면 위치를 알 수 있었다. 전화번호를 보면 팀장의 이름도 나왔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 사무실의 냄새와 복도 소리가 희미해졌다. 나는 그런 것들을 잃어버린다는 게 무엇을 뜻하는지 처음으로 실감했다.
“관측을 계속하면 더 지워질 거야.” 유나가 말했다.
“이미 잃은 걸 되찾으려고 계속 보는 건데, 볼수록 잃는다고?”
“그래서 지금 할 수 있는 걸 찾아야지. 네가 기억을 잃지 않는 방식으로.”
서아는 내게 오늘 하루만이라도 관측 장치에서 떨어져 있으라고 권했다. 남 형사는 외부 열람 절차를 맡았고, 이채원은 남은 테이프를 보존했다. 박혜림의 증언을 공식적으로 남기는 일도 별도 담당자가 진행했다. 사건의 중심에서 잠깐 빠져도 일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지금까지 나는 모든 서버가 내가 없으면 멈추는 것처럼 일해 왔다.
그날 점심, 어머니가 도시락을 들고 찾아왔다.
“그냥 같이 밥 먹자고.”
나는 부끄럽게 웃었다. 어머니는 반찬통을 열고 아무렇지도 않게 밥을 퍼 주었다. 어릴 적 무엇을 잊었든 내가 밥을 먹는 방법까지 잊지는 않았다는 사실에 괜히 안심했다.
“엄마. 아버지가 정말 돌아오지 못한 걸까요?”
어머니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모르지. 그런데 안 돌아온 사람을 돌아왔다고 쓰는 건 싫어.”
“돌아왔는데 우리가 몰랐을 수도 있잖아요.”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누군가 나타나면 먼저 물어보려고.”
어머니는 잠깐 웃었다.
“그 사람이 네 아버지라고 주장하더라도.”
그 말이 이상하게 힘이 됐다. 나는 종이에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 보려다가 그만뒀다. 기억나지 않는 부분을 억지로 채우는 건 나중의 나를 더 혼란스럽게 할 수 있었다.
오후에 서아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채원이 3번 테이프의 남은 구간에서 손상된 음성을 복원하지 않고도 읽을 수 있는 부속 메모를 찾았다고 했다. 플라스틱 케이스 안쪽에 얇은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 위조 여부는 확인해야 했지만, 1998년 볼펜 잉크로 적은 수기 기록처럼 보였다.
'문 안: 목소리 1. 밖: 목소리 2. 귀환 의사 확인은 별도.'
나는 웃음이 났다. 그렇게 어려운 사건인데, 처음부터 누가 문 안에 있고 밖에 있는지 구분하는 메모 하나가 있었던 것이다.
“종이에 별 의미 없는 숫자처럼 써 둔 건데, 이걸 2011년에 누가 합쳐 놨네요.” 서아가 말했다.
“목소리 하나 더 만들면 계약을 하나 더 팔 수 있다고 생각했나 봐.”
“아직 동기는 모르지.”
나는 웃음을 거뒀다. 서아의 말이 맞았다. 분노는 수사를 시작하게 해 주지만, 증거를 대신할 수는 없다.
우리는 그 메모와 녹음 파형이 같은 구간을 가리키는지 대조했다. 여자아이의 첫 번째 말은 안쪽에서, 두 번째 말은 밖에서 들렸다. 바깥 아이가 누구인지, 안쪽 아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일은 여전히 남았다.
그런데 서아가 메모의 뒷면을 보여 줬다.
'귀환문 내부 낙서 보관 / 첫 글자: 새'.
“이게 이름일까?”
“글자 하나로는 몰라. 새벽일 수도 있고, 새우일 수도 있고, 그냥 새를 그렸을 수도 있지.”
“새우는 좀…”
나는 손을 들었다.
“농담이야. 개발자한테 너무 큰 문학적 상상력을 기대하지 마.”
서아가 작게 웃었다. 그 웃음 뒤에 오래된 불안이 남아 있었다.
“그런데 왜 이름을 안 알려 주려고 했는지는 알 것 같아. 이름을 알려 줬더니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바꿔 놓았잖아.”
우리는 그 문장을 오랫동안 생각했다. 이름을 묻는 것이 늘 친절한 일은 아니다. 특히 그 이름이 시스템에서 누군가를 대신 일시키거나 귀가 처리하는 열쇠로 쓰인다면.
오후 세 시에 팀장이 또 전화를 했다.
“도겸 씨, 병가를 더 쓰는 게 낫겠어요?”
나는 당황했다. 그가 늘 늦게 퇴근시키던 모습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목소리에는 진짜 걱정이 섞여 있었다.
“괜찮습니다. 조금 쉬면 복귀할 수 있어요.”
“복귀하려면 건강부터 확인해요. 서버는 다른 사람이 볼 수 있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는 한동안 아무 대답도 못 했다. 내 기억 속 팀장은 내가 없으면 시스템이 무너진다고 말하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실제로는 다른 사람이 일을 맡고 있었다. 기억이 사라지면 사람은 과거를 미화하거나 왜곡할 수 있었다.
“팀장님. 제가 회사 몇 층에서 일하죠?”
그는 잠시 침묵했다.
“왜 그런 걸 물어요?”
“가끔 기억이 흐려져서요.”
“도겸 씨, 진료를 받아 보는 게 좋겠어요. 몇 층인지는 지금 알려 드릴 수 있지만, 그게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나는 진지하게 고맙다고 말했다. 대답은 휴대전화 메모에 적었다. 의학적인 검사를 받는다고 시간 정지의 비밀을 설명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일상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혼자 감추고 버틸 문제가 아니었다.
통화를 마치고 돌아오니 유나가 메모를 보고 있었다.
“팀장도 가끔 좋은 말을 하네.”
“그러게. 회사가 사람을 너무 놀라게 한다.”
“이건 회사가 아니라 네가 놀라운 거야. 드디어 도움받는 법을 배우는 중이잖아.”
나는 반박하려다 멈췄다. 그 말이 맞았다. 옛날의 나는 모든 문제를 코딩으로 해결하려고 했다. 이름을 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게 프로그램 수정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따뜻한 국 한 그릇과 쉬어도 된다는 말일 수도 있었다.
서아에게도 전화가 왔다. 아카이브 담당자는 자료 설명을 더 해 주고 싶지만 오늘은 쉬라고 했다. 서아는 예전 같았으면 곧바로 달려갔을 것이다. 이번에는 '내일 연락드리겠다'고 답했다.
“우리 둘 다 성장했네.” 내가 말했다.
“응. 네가 더 늦었지만.”
둘이 웃는 동안 오후의 빛이 식탁 위를 천천히 옮겨 갔다. 나는 그 움직임이 끊기지 않기를 바랐다.
나는 오랜만에 집 앞을 걸었다. 가게에는 저녁 준비 냄새가 퍼지고, 아이들은 학교 가방을 흔들며 지나갔다. 퇴근 시간의 길은 전혀 특별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단 한 번도 허락되지 않았던 평범함이었다.
공원 벤치에 앉아 종이컵의 따뜻한 커피를 마셨다. 서아가 옆에 앉았다.
“뭐 생각해?”
“지금 내가 멈추면 저 사람들 다 멈출까 봐.”
“그래서 멈추지 않기로 한 거잖아.”
“내가 선택할 수 있을까?”
“오늘은 그런 버튼이 있대. 안 되면 또 막아야지. 근데 그 일을 네가 혼자 할 필요는 없어.”
그녀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도겸아, 네가 시간을 멈추는 능력이 없어져도 난 너랑 이야기할 거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그건 좀 손해 아닌가? 초능력자 친구가 보통 더 재밌잖아.”
“솔직히 초능력 없는 네가 더 재밌을 수도 있어. 전에는 퇴근이라도 했지.”
우리는 한참 웃었다. 기억이 사라지는 공포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래도 오늘 하루를 내가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는 조금 선명해졌다.
저녁이 되자 손목시계가 작게 울렸다. 평소처럼 강제로 멈추는 알림이 아니었다.
[관측 참여 여부 선택]
[미참여 시 기존 기록 유지]
나는 순간 놀랐다.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가 화면에 실제로 나타난 것이다. 강문석은 원본 대조 이의 신청이 일부 모듈에 반영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확정된 건 아니었다.
나는 '미참여'를 선택했다. 세상이 어떻게 흐르는지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멈춰서지 않아도 다른 사람들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시계는 여섯 시를 알리고 조용해졌다.
하지만 내 앞에 앉은 어머니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다. 국그릇에서 김이 올라왔다. 밖에서는 자동차가 지나갔다. 세상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그 평범한 광경을 몇 초 동안 바라봤다. 스물여덟 해 동안 누군가의 시간이 장치 안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의 선택만큼은 내 것이었다.
그때 서아에게 메시지가 도착했다.
'내일 오전 6시, 세 번째 귀환문 실물 접속 시험 예정. 당신의 입회는 필수가 아닙니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문장이 있었다.
'다만 문 안쪽에서 당신을 찾고 있습니다.'
누가 찾는지도 모르면서, 내 마음은 벌써 움직이고 있었다.
제148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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