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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45화
PAYLUA ORIGINAL · 제145화

145화. 원본보다 늦게 만들어진 원본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125자

오프라인 책장
'원본'이라는 단어를 믿기 시작하면 위험하다. 내가 개발자로 일하며 깨달은 사실이었다. `final`, `final2`, `final_really`라는 파일이 한 폴더에 있는 회사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세상에 마지막 버전은 없다. 마감 직전의 버전만 있을 뿐이다. 우리는 문은경의 계정에서 발송된 파일을 바로 열지 않았다. 파일을 받은 장치와 분리한 복사본에서 헤더와 작성 경로만 조사했다. 내가 보기에도 발신인 표시와 실제 인증 경로가 일치하지 않았다. 누군가 그녀의 이름으로 기계를 움직이고 있었다. “보낸 사람이 문은경 선생님이 아니라면 누구일까요?” 서아가 물었다. 문은경은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관리하던 계정은 한 번도 제 개인 것이 아니었어요. 몇 번 이관됐죠. 이제 누가 그 이름을 쓸 수 있는지 저도 모릅니다.” 남 형사는 계정 접근 기록을 보존하도록 요청했다. 무턱대고 범인을 한 사람으로 지목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우리는 1998년의 음성을 얻는 대신, 2026년 누군가가 만든 위조 파일 하나를 얻었다. 실망스러웠지만 실마리였다. 같은 시각 박혜림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녀는 전날 가져오지 못한 낡은 업무 수첩을 발견했다고 했다. 안쪽에는 직원들의 교대 시각과 음성 녹음 장치를 점검한 표시가 있었다. 문서 사진을 보내겠다는 말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원하신다면 직접 만나 확인하겠습니다. 민감한 부분은 가리고요.” 박혜림은 잠깐 침묵하다가 말했다. “고맙네요. 지금은 사진으로 보내는 것도 좀 겁나요.” 우리는 서아와 유나가 함께 박혜림의 집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동안 나는 1998년의 날짜와 2011년 수정 기록을 나란히 적었다. 차정수가 처음 만든 건 11분을 보관하는 장치였다. 기억을 지우는 장치도, 사람을 다른 사람의 가족으로 인계하는 장치도 아니었다. 그런 기능은 뒤에 붙었다. “처음부터 악한 발명은 아니었을 수도 있겠네.” 내가 말했다. 강문석이 대답했다. “기술의 의도와 피해는 다를 수 있어. 아버지의 의도가 선했다고 해서 여기서 벌어진 일이 사라지진 않겠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를 이해하는 일과 면죄부를 주는 일은 다르다. 박혜림의 수첩에서 '반환 시험 3차'라는 항목을 발견한 건 그날 오후였다. 날짜는 1998년 6월 11일. 기록에는 세 장의 자기테이프가 있다고 적혀 있었다. 1번은 구조 요청. 2번은 귀가 의사. 3번은 '외부 회신'. “외부 회신?” 서아가 물었다. 박혜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에서 보내는 말만 저장하면 아무도 대답할 수 없잖아요. 안쪽에 있는 사람에게 밖에서도 말을 전할 수 있게 한 거예요. 지금 생각하면 그 기능이 중요했죠.” “어디에 보관했습니까?” “1번과 2번은 병원 장치에 있었고, 3번만 별도 우편 보관소로 갔어요. 병원 전산이 손상되면 다른 쪽에서 다시 들을 수 있도록.” 나는 등 뒤가 서늘해졌다. 우리가 그동안 찾아 헤맨 '원본 질문'은 하나의 파일이 아닐 수 있었다. 안쪽에서 나간 목소리와 밖에서 돌려보낸 답이 서로 다른 보관소에 있었던 것이다. “그럼 어린 서아가 들었다는 질문도 두 방향으로 나뉘겠네요.” “그렇죠. 어느 쪽에서 나온 말인지 모르고 붙이면 질문 자체가 달라져요.” 박혜림은 마지막 페이지를 펼쳤다. 누군가 연필로 회신 테이프의 상태를 적어 둔 기록이었다. '3번 테이프, 2011년 재확인. 자성 손상. 원형 카세트 이관.' 그 아래에 장소가 적혀 있었다. 영병원의 물리 보관실이 아니었다. 오래된 지방 방송국의 자료실이었다. 방송국은 2011년 폐국됐고 자료는 민간 아카이브로 넘어갔다고 했다. “방송국에서 왜 병원 음성을 보관했을까요?” 박혜림은 고개를 저었다. “정확한 사정은 몰라요. 다만 그때 지역 재난 방송망을 비상 회신 경로로 시험한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망이 끊겼을 때 누군가의 목소리를 다시 돌려보내려 했던 거겠죠.” 서아가 책상 위의 펜을 내려놓았다. “그럼 1998년의 내 목소리가 남아 있다면, 누군가가 나를 보냈는지보다 내가 누구에게 말을 돌려줬는지부터 알 수 있겠네.” 나는 그녀를 바라봤다. 여전히 어린 시절이 기억나지 않는데도, 그녀는 무슨 말을 들어야 할지 점점 또렷해지고 있었다. 우리는 방송국 자료실의 현재 소유 기관을 확인하기로 했다. 자료를 무단으로 가져오거나 사본을 넘겨받지는 않았다. 자료를 보유한 쪽에서 정식 열람 절차와 당사자의 보호 범위를 안내받아야 했다. 오후 내내 나는 처음 회사에 입사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했다. 건물 외벽의 유리색은 기억나는데 사무실 층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던 식당의 이름도, 매주 월요일이면 커피를 사 오던 선배의 얼굴도 조금씩 흐릿했다. 나는 휴대전화에 '내가 직접 확인한 오늘의 일'이라는 메모를 만들었다. 병원에서 돌아와 그날을 떠올릴 수 없을 때도, 내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확인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메모를 쓰면서 이상한 걸 발견했다. 나의 기록은 빠진 기억이 무엇인지 말해 주지 못했다. 나는 이미 잊어버린 것의 이름을 알아낼 수 없었다. 동료의 말과 사진을 보면 짐작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원래 내 기억이었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면 사진이 있으면 다 해결되는 게 아니네.” 서아가 말했다. “응. 사진은 내가 뭘 봤는지 보여 주지만, 그걸 보고 무슨 마음이었는지까지는 말해 주지 않아.”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씩 약속했다. 기억이 없어진 사람이 모르는 말을 했다고 몰아붙이지 않기. 기억을 되찾겠다며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추측하지 않기. 질문할 때는 대답하지 않을 시간을 남겨 주기. 서아는 마지막 약속을 듣고 조금 웃었다. “그건 내가 지금까지 너한테 가장 많이 요구한 것 같은데.” “그렇지. 원래 개발자는 요구사항을 뒤늦게 이해하는 법이거든.” 그녀는 휴대전화로 내 모습을 찍을까 하다가 다시 물었다. 내가 허락하자 짧은 영상을 남겼다. 영상 속 나는 복잡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미래의 네가 이걸 보면 뭐라고 해 주고 싶어?” 나는 한참 생각했다. “네가 오늘 회사 층수를 잊었다고 오늘의 네가 사라진 건 아니다. 그리고 남한테 대신 기억해 달라고 부탁해도 된다.” 그녀는 녹화를 끄고 나를 보았다. “좋네. 그건 나도 듣고 싶던 말이야.” 우리는 그렇게 당장 어떤 문도 열지 않은 채 한 시간을 보냈다. 내 이야기를 하는 게 이기적인 일처럼 느껴졌지만, 잊히는 사람을 구하겠다고 나 자신을 모두 지우는 것도 답은 아니었다. 박혜림의 수첩에는 쓸데없어 보이는 메모도 많았다. 야간 당직자의 간식 종류, 고장 난 형광등, 병원 복도를 청소하던 사람의 휴가 날짜까지 적혀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런 부분을 건너뛰려고 했다. “이런 생활 기록도 남겨 둬.” 서아가 말했다. “사건과 관계가 있어?” “당장은 모르지. 하지만 그때 거기에도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잖아.” 나는 수첩을 다시 보았다. '1998년 6월 11일, 비가 그치고 아이가 웃음.' 사건의 중심 날짜 옆에 있었다. 누구의 웃음인지 모르지만, 전부 고통뿐이었던 날은 아닐지도 모른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내 휴대전화가 울렸다. 사무실 팀장에게서 온 문자였다. '도겸 씨, 내일은 진짜 회사 나오죠?' 나는 답장을 쓰다가 멈췄다. 아주 잠깐, 회사가 어느 건물 몇 층에 있는지 생각나지 않았다. 화면의 지도 앱에서 주소를 봤다. 익숙해야 할 회사 로고가 낯설었다. 손목시계에 자그마한 글자가 떴다. [시간 정지 관측 누적 비용: 최근 기억 1개 보류] [해제 조건: 소유자 확인] “이젠 기억까지 보류하네.” 내가 말했다. 유나가 운전석에서 나를 봤다. “무슨 기억?” “우리 회사 층수가 기억 안 나.” 유나가 잠깐 웃었다. “그건 나도 몰라.” “농담이 아니라 진짜로.” 그녀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내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서아가 내게 공책을 건넸다. 나는 회사 주소와 오늘 있었던 일을 내 글씨로 적었다. 기억이 빈자리를 다시 채울지는 몰라도, 적어도 내일의 내가 기록을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공개된 방송 아카이브의 안내 담당자였다. '문의하신 1998년 음성 자료 중 3번 카세트가 목록에 있습니다. 단, 열람 예약자 명단에 이미 진서아 님의 이름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예약 시각은 내일 오후 여섯 시 십일 분이었다. 서아는 예약한 적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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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5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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