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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43화
PAYLUA ORIGINAL · 제143화

143화. 네가 대신 골라서는 안 되는 사람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165자

오프라인 책장
박혜림은 생각보다 키가 작았다. 책상에 앉으면 발끝이 바닥에 간신히 닿을 것 같았지만, 눈빛만큼은 우리 가운데 가장 단단했다. “녹음부터 켜려고 했으면 돌아가라고 했을 겁니다.” 그녀는 우리가 마련한 빈 탁자를 보더니 말했다. 남 형사가 웃으며 녹음 장비를 가방에 넣었다. “원하지 않으시면 하지 않습니다. 다만 사건 관계가 있는 문서의 존재와 보관 경위는 확인하고 싶습니다.” 박혜림은 손때 묻은 파일 하나를 꺼냈다. 표지에 오래된 우편 표식이 붙어 있었다. 편지는 없었다. 대신 보내지 못한 봉투의 크기를 재어 둔 도면과 반송 기록이 있었다. “옛날에는 음성을 바로 보내지 못하면 종이로 전달하는 장치도 썼어요. 녹음을 자기테이프에 담고, 받은 쪽에는 어느 구간을 재생해야 하는지 알려 주는 식이었죠. 전자 기록이라고 모두 멀쩡히 남은 건 아니에요.” 그녀는 1998년 6월 11일의 전송 신청서를 가리켰다. '질문 저장 / 수신 확인 불필요 / 발신인 식별 보류.' “이건 누가 썼나요?” 서아가 물었다. “제가 접수했어요. 하지만 질문을 만든 사람은 아닙니다.” “그럼 무슨 내용이었나요?” 박혜림은 서아의 얼굴을 바라봤다. 눈치를 보는 대신, 말을 골랐다. “그날 저는 병원에서 아이들이 있는 병실로 갔어요. 문이 잠긴 공간에 누가 남아 있는지 확인할 수 없어서, 안에서 들리는 소리를 임시로 저장했습니다. 어른들은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고 말했지만 저는 그런 기술을 이해하지 못했어요.” 나는 얼른 메모했다. '병실', '문', '임시 저장'. 우리가 봤던 거창한 장부보다 훨씬 구체적인 말이었다. “그 아이에게 뭘 물으셨죠?” “제가 한 질문은 이거였어요. '여기 누구 있니? 괜찮니?' 그것뿐입니다.” 스피커에서 들었던 질문과 달랐다. '문이 열리면 누구를 먼저 밖으로 보내고 싶니?' 박혜림은 그런 질문을 한 적이 없다고 했다. “2011년 기록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남 형사가 태블릿의 해당 문장을 보여 줬다. 박혜림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화면을 보고 있었다. “이건 틀렸어요.” “누가 바꿨는지 아십니까?” “모릅니다. 하지만 이건 질문이 아니라 선택을 강요하는 말이에요. 아이에게 누굴 먼저 보낼지 결정하라고 할 이유가 없었어요.” 서아는 말없이 손가락을 꼼지락거렸다. 내가 알던 그녀의 버릇이었다. 마음에 남는 말을 들으면 일단 손끝부터 움직였다. “그때 아이가 뭐라고 했어요?” 박혜림은 파일의 뒤쪽에서 접힌 종이를 꺼냈다. 파란 크레파스 자국이 남아 있었다. 오래되어 획을 식별하기 어려웠지만, 몇 글자는 읽혔다. '나 말고도 있어요.' 그 아래에는 다른 글씨가 덧붙어 있었다. '기다려 주세요.' “저게 서아 씨 글씨인지는 몰라요.” 박혜림이 말했다. “다만 그날 누군가 병실 안에 다른 사람이 있다고 알려 줬습니다. 우리는 안에 몇 명이 있는지조차 확실히 몰랐어요.” 나는 숨을 고르며 물었다. “그럼 왜 이 종이가 2011년에 없어졌습니까?” “없어진 건 아닙니다. 접수 원본은 다른 보관소로 넘어갔어요. 그때부터 서류가 두 개로 갈라졌습니다. 하나는 병원 기록, 하나는 귀환 장치 기록. 서로 다른 사람이 편집했죠.” 강문석이 무심코 몸을 일으켰다. “그럼 2011년에 음성 원본만 바뀌었을 수도 있지만 종이 사본은 남았겠네요.” “남았으면 좋겠네요.” 박혜림이 답했다. “다만 제 손에 있는 건 제가 베껴 둔 메모입니다. 원본은 아니에요.” 우리는 그 종이의 정체를 구분해 적었다. 기억의 증거가 될 수는 있지만, 바로 누군가에게 권리를 부여하는 도장은 될 수 없었다. 박혜림은 한참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 여자아이, 지금도 어딘가에 있습니까?” 서아가 고개를 끄덕이려다 멈췄다. “제가 그 아이인지는 아직 모르겠어요. 하지만 제가 여기 있는 건 확실해요.” 박혜림의 눈시울이 조금 붉어졌다. 그녀는 서아를 안으려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말했다. “그때 어른들은 아이가 대답하지 않으면 기계가 대신 대답한다고 했어요. 저는 그게 편한 기술이라고 생각했죠. 이제야 그 말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알아요.” 박혜림은 떠나기 전에 낡은 서류 한 장을 더 꺼냈다. 1998년 병원에서 사용한 간이 안내문이었다. 병실 안과 밖을 나누는 선이 그려져 있었고, 통신할 때 확인해야 할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첫째, 들리는 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확인되지 않으면 이름을 붙이지 않는다. 둘째, 소리를 전달하는 사람은 말한 사람의 의사를 대신 판단하지 않는다. 셋째, 전달된 말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졌는지 별도로 확인한다. “이건 누가 만들었죠?” 내가 물었다. “당시 의사가 쓰던 건 아니에요. 기술 쪽에서 왔던 분이 급히 적어 줬어요. 성함은 차정수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라는 이름이 나올 때마다 마치 얼굴을 보게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종이에는 낡은 문장들뿐이었다. “이것도 원본은 아니에요. 제가 근무 안내판을 베껴 놓은 거죠.” 박혜림이 말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기억을 거창한 증거처럼 팔지 않았다. 보고 적은 것과 나중에 들은 것을 따로 구분했다. 서아는 종이에 적힌 둘째 조항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때부터 답은 누가 대신 하면 안 되는 거였네.”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실제 일은 다르게 흘렀죠. 누가 괜찮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을 대신 밀어 넣어도 된다고 믿었거든요.” 박혜림은 고개를 숙였다. “저는 안에 있던 아이가 무서워하면 밖에서 달래 주면 된다고만 생각했어요. 그 아이가 내 목소리를 싫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못했어요.” “그렇게 생각하셨다고 해서 선생님이 잘못된 기계를 만들었다는 뜻은 아니에요.” 서아가 말했다. “그래도 그때 무엇을 보았는지 이야기할 책임은 제게 있겠죠.” 서아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박혜림은 더는 울지 않았다. 대신 수첩에서 다음 번에 확인해야 할 항목을 꼼꼼히 적었다. 마음의 빚을 갚겠다며 누군가의 삶을 대신 결정하는 방식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정확하게 돕는 방식이었다. 나는 아버지가 적었다는 세 문장을 다시 읽었다. 그동안 아버지를 되찾기 위해서라면 모든 장치를 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가 남긴 것이 정말 저 문장이라면, 아버지는 내가 문을 여는 방법보다 문 앞에서 멈추는 방법을 배우길 바랐을지도 모른다. 도서관을 떠나려는데 박혜림이 서아를 다시 불렀다. “한 가지 기억나네요. 그날 밖의 아이는 끝까지 안쪽 아이를 이름으로 부르지 않았어요. 대신 계속 같은 말을 했죠.” “무슨 말이요?” “'내가 듣고 있어.' 그 말이었어요.” 서아는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 형사는 박혜림에게 그날 병원에 아이가 몇 명 있었다고 들었는지 묻지 않았다. 대신 질문의 기록에 등장하는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그녀는 벽 하나 사이로 두 소리가 들렸지만 직접 본 건 한 아이뿐이었다고 했다. “그러면 다른 소리가 사람인지 장치인지 몰랐다는 뜻인가요?” 서아가 물었다. “그땐 아이가 우는 소리로 들었어요. 그런데 저는 병실 문을 열지 못했습니다. 소리만 듣고 안에 몇 명이 있었는지 말할 수는 없죠.” 어린 시절의 기억을 찾으려는 서아에게 잔인할 만큼 신중한 답이었다. 그러나 그 신중함이 오히려 믿을 만했다. 밖으로 나왔을 때 비가 그쳐 있었다. 우리는 오래된 도서관 계단에 잠깐 앉았다. 남 형사는 박혜림의 말을 공식 진술로 남길지 본인과 추후 협의하기로 했다. 오늘의 이야기를 마음대로 수사 기록에 얹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럼 진짜 질문은 '괜찮니?'였네.” 내가 말했다. “그럴 가능성이 커졌지. 아직 원본은 찾아야 해.” 서아가 대답했다. “그때 누가 기다려 달라고 했다면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까?” 그녀는 먼 길을 바라봤다. “나도 모르겠어. 그래도 오늘 처음으로 누가 나한테 뭘 부탁했는지 조금 알게 됐어. 누굴 대신 골라 달라는 게 아니었어.” 그 순간 내 시계에 새 메시지가 떴다. [2011년 편집된 질문의 효력 정지 신청 가능] [원본 대조 증인: 2인 필요] [기존 음성 보관자 박혜림: 확인됨] [미확인 증인: 1인] 마지막 칸에 자동으로 이름이 입력되고 있었다. `진서아`. 나는 서아에게 화면을 보여 주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끈질기다. 내가 알고 싶은 건 질문인데, 저쪽은 자꾸 나를 서명란에 앉히네.” 서아는 화면을 끄고 일어섰다. “그럼 우리도 끈질기게 원본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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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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