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질문 하나를 읽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의 허락을 받아야 할까.
회사에서라면 답은 간단했다.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고, 회신이 없으면 팀장에게 물어보면 된다. 하지만 서아 앞으로 온 질문은 보내진 날짜가 1998년이었다. 서아가 일곱 살이던 해. 그 무렵 나는 받아쓰기에서 '기린'을 '기름'이라고 쓸 만큼 세상에 대해 아는 게 없었다.
“읽어 볼게.”
서아는 주저하지 않았다. 다만 손을 뻗기 전에 한 가지를 확인했다.
“질문을 보는 것과 대답하는 건 다른 거지?”
강문석이 두 번째 화면을 띄웠다. 오래된 보관국 장비는 '열람'과 '수신 확인'이라는 버튼을 바로 붙여 두었다. 마치 둘이 같은 행위인 것처럼.
“장치 설명서에는 분리되어 있어. 그런데 실제 화면에선 두 버튼의 간격이 너무 가까워. 내가 읽기 전용 사본을 따로 띄울게.”
나는 회사에서 만든 사용자 화면들을 생각했다. 실수로 결제 버튼을 누르기 좋게 만든 쇼핑몰도 욕을 먹는데, 여기는 실수 한 번에 사람의 과거가 바뀐다. 최악의 사용자 경험상을 준다면 이 장치가 압도적인 1등이었다.
남기혁 형사는 열람 과정의 시간을 자신의 수첩에 적었다. 오유나는 서아에게 앉을 자리를 권했다. 문은경은 원본 봉인 표시를 사진으로 남겼다. 어느새 우리는 말을 적게 하는 대신, 할 일을 나눌 줄 알게 되었다.
원본 일부가 떠올랐다.
[발신 시각: 1998.06.11 18:10:59]
[최초 보관: 음성 반환 회선 06-11]
[수신인 색인: 진서아]
[색인 최종 변경: 2026.10.26]
“잠깐.” 내가 말했다. “보낸 건 1998년인데, 서아 이름을 여기에 붙인 건 어제야.”
서아의 손이 멈췄다. 그녀는 잠깐 얼굴을 찌푸리더니 되물었다.
“그럼 일곱 살 나한테 질문이 도착했다고 단정할 수 없는 거네.”
“맞아. 1998년에 보관한 무언가를 어제 네 앞으로 분류했을 수도 있어.”
내 손목시계가 짧게 진동했다. 화면에는 익숙한 선택지가 나타났다.
[질문 수신인 확인]
[예 / 아니오]
유나가 내 손목을 잡았다.
“대답하지 마. 네가 수신인도 아닌데 왜 네 시계가 묻고 있어?”
“내 시계는 관심이 많거든. 남의 일에 특히.”
서아가 웃을 뻔하다가 참았다. 나는 두 버튼 대신 손목시계의 로그 화면을 열었다. 알림이 표시된 경로는 '가정 회선'이 아니라 '관측자 공용 통지'였다. 그러니까 누가 받아야 하는지를 아직 확인하지도 않았으면서, 시스템은 일단 주변의 움직이는 사람에게 떠넘기려 했던 것이다.
“관측자에게 질문을 전달했다고 해서 관측자가 대신 답할 수는 없습니다.” 남 형사가 말했다.
문은경이 서류를 한 장 더 꺼냈다. 1998년 회선 이용 안내서였다. 붉은 도장 아래 작게 쓰인 문구가 눈에 띄었다.
'아동에 대한 인계 질문은 보호자 승낙과 별개로 대상자의 의사를 기록하되, 무응답이나 이해 불능을 승낙으로 취급하지 않는다.'
서아는 그 문장을 오래 읽었다.
“그럼 질문이 있었다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네. 누군가 내게 물어봤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됐어야 하니까.”
“그렇지.”
“그런데 왜 아무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하지?”
그 질문에는 답이 없었다.
서아는 오랜만에 자기 수첩을 꺼냈다. 표지에 아이가 그린 작은 종이배가 있었다. 우리가 1998년 기록에서 여러 번 본 그 모양이었다.
“내가 왜 자꾸 이 배를 그리는지 모르겠어.”
“그림을 보고 기억이 날까?”
“아니. 그림이 내 기억을 대신하는 것 같아. 내가 이걸 그려 놨으니 그때도 내가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기 쉬워져.”
나는 종이배의 접힌 선을 바라봤다. 기억이 사라지는 내게는 그 말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았다. 손목시계의 로그도, 수첩의 기록도, 적는 순간부터 그 사람의 과거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남 형사는 오래된 기록에 적힌 신원 식별 절차를 살폈다. 1998년 문서에는 아이의 이름을 확인하는 사람이 두 명 필요하다고 돼 있었다. 그런데 2026년 전자 색인에는 '관측자 이름 자동 승계'라는 항목이 붙어 있었다.
“누가 이 기능을 추가했습니까?”
강문석은 버전 기록을 읽었다. 서명 칸에는 `07`이라는 번호만 있었다. 구태형이 사용한 계정과 같았지만 그 계정을 여러 사람이 공유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름이 보이지 않는다고 사람까지 보이지 않는 건 아닙니다.” 남 형사가 말했다. “그때 실제로 단말기를 쓴 사람을 추적해야죠.”
서아는 내게 물었다.
“도겸아, 네가 지금 한 질문에 나중의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붙여 놓으면?”
“화낼 거야. 아주 크게.”
“그럼 나도 지금 화내도 되는 거지?”
“당연하지.”
그녀는 수첩을 닫았다. 화를 내면서도 손목시계를 부수지 않았다. 그것은 더 이상 침묵하겠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끝까지 알아내겠다는 표정이었다.
문은경은 봉투의 밀봉 상태와 열람 과정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을 별도 장부에 적어 주었다. 그 종이는 보관국 전산과 연결되지 않은 평범한 종이였다. 내가 왜 그런 기록을 두 번이나 남기냐고 묻자 그녀가 대답했다.
“하나가 바뀌면 다른 하나와 비교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사람이 기억하는 것도 하나의 기록이지만, 한 사람에게만 모든 걸 맡기고 싶지는 않아요.”
수첩과 종이와 음성. 우리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진실에 접근하고 있었다.
남 형사는 서아에게 다시 한 번 말했다.
“질문이 존재했다는 사실은 기록하겠지만, 서아 씨가 그 질문의 수신인이라는 것은 아직 확정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그 짧은 대화를 오래 기억하고 싶었다. 서아가 누구인지 밝혀 주는 말은 없었다. 대신 그녀가 모르는 일을 모른다고 말할 자리가 생겼다.
서아는 손바닥에 '수신인 확인 전'이라고 적었다가 얼른 지웠다. 나중에 자신이 잊을까 봐 몸에다 표시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는 조용히 새 공책의 첫 장을 펼쳐 그녀에게 건넸다.
“피부 말고 종이에 적자. 나중에 바꾸거나 덧붙일 수 있게.”
우리는 사본의 음성 재생만 허용했다. 소리가 나기 전, 화면에 빈칸 두 개가 나타났다. 하나는 질문, 하나는 응답. 응답란에는 펜으로 마구 긁어 버린 듯한 검은 선이 있었다.
스피커에서 오래된 전자 잡음이 흘렀다. 병원 방송처럼 멀리서 발소리가 들렸고, 여자가 누군가를 달래는 소리가 따라왔다.
'괜찮아. 지금은 대답하지 않아도 돼.'
그 뒤에 어린아이의 숨소리가 들렸다.
'그럼 저 아이는요?'
나는 서아를 바라봤다. 그녀는 입술을 꼭 다물고 있었다.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질문을 읽었다.
'문이 열리면, 누구를 먼저 밖으로 보내고 싶니?'
우리는 잠시 말을 잃었다. 돌아올 집을 선택하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제 음성은 아이에게 다른 사람의 순서를 정하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일곱 살에게 저런 걸 물었다고?” 내가 중얼거렸다.
서아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질문이 원래 저거였다는 보장도 없어.”
그녀는 화면 오른쪽 아래의 파형을 가리켰다. 문장은 하나로 들렸지만, 중간에 아주 짧은 잡음이 있었다. 마치 녹음테이프를 자르고 다시 붙인 것처럼.
강문석이 저장 시각을 두 개로 나누어 보여 주었다.
[기본 음성: 1998년 기록]
[질문 재편집: 2011년 등록]
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2011년. 남도윤이 세 번째 문으로 들어간 해잖아.”
남 형사는 아무 말 없이 화면만 봤다. 형의 이름을 말할 때면 그가 억지로 감정을 누르는 것을 이제는 알아볼 수 있었다.
서아가 조용히 물었다.
“그럼 내게 정말 도착한 질문을 찾자. 이 문장에 답하지 말고.”
나는 수신 거부가 아니라 '질문 원본 검증 요청'을 선택했다. 시스템은 느리게 응답했다.
[원본 문장 복원에는 발신 회선의 물리 기록이 필요합니다.]
[보관 매체: 미회수]
[최종 인계자: 박혜림]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이어 주소가 나타났다. 폐업한 영병원에서 세 정거장 떨어진 작은 우체국이었다.
그리고 그 밑에 덧붙은 한 줄.
[발신자 확인 전까지 진서아의 응답권 잠금]
서아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답을 쓰기 전에, 처음으로 질문의 문이 잠긴 것이다.
“가자.” 그녀가 말했다.
“어디로?”
“그때 편지를 맡긴 사람에게. 살아 있는지부터 찾아봐야겠지만.”
나는 수첩에 박혜림이라는 이름을 썼다. 쓸 때마다 잊어버리는 기억이 하나쯤 떠오를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지워지지 않았다.
그 사실이 도리어 무서웠다. 시스템이 우리를 그냥 보내 줄 리 없었으니까.
제141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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