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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38화
PAYLUA ORIGINAL · 제138화

138화. 열한 분의 거실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521자

오프라인 책장
세상이 멈췄을 때 나는 가장 먼저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유나는 움직이고 있었다. 서아도 움직였다. 남기혁 형사는 펜을 쥔 채 나를 바라봤다. 문은경은 그대로 서 있었다. 그녀의 눈앞에는 떨어지던 종이 먼지가 허공에 떠 있었다. "문은경 선생님은 움직이지 않는군요." 남 형사가 말했다. "자기 뜻으로 동의한 적이 없으니까요." 서아가 답했다. "우리가 움직인다고 해서 이 사람까지 끌고 들어와선 안 돼요." 나는 창고 문밖을 봤다. 길가의 자동차도, 나뭇잎도 멈췄다. 그러나 멈춘 세계 위에 또 다른 영상이 겹쳐졌다. 좁은 거실이었다. 오래된 텔레비전과 갈색 장판, 네 식구가 앉기엔 작은 나무 식탁. 내가 그린 그림 속 집을 실제로 보는 것 같았다. "이게 1998년 우리 집입니까?" "아직 모릅니다." 서아가 말했다. "서로 다른 기록의 영상이 겹쳐 있을 수도 있어." 서아는 바닥에 보이는 문양을 사진으로 남기려고 했다. 카메라는 실행됐지만 저장 시각은 멈춘 채였다. 그녀는 화면을 확대했다. 오래된 장판의 모서리에 작은 긁힌 자국이 있었다. "그거 기억나?" 그녀가 물었다. "모르겠어." "네가 말한 옛집 식탁과 비슷한데, 이 방이 실제로 존재했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나는 어머니가 그려 준 평면도를 꺼냈다. 창문의 위치는 비슷했지만 냉장고 자리가 달랐다. 어머니는 냉장고가 부엌으로 들어가 있었다고 했는데, 눈앞 거실에는 텔레비전 옆에 냉장고가 서 있었다. "기억이 틀릴 수도 있고, 재현 영상이 틀릴 수도 있어." 내가 말했다. "그래. 둘 다 가능해." 유나는 냉장고 문을 열지 않았다. 열 수 있는지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대신 거리와 방향을 표기했다. 출입구에서 세 걸음, 식탁에서 한 걸음 반. 공간이 흐릿해지면 숫자라도 남기기 위해서였다. 그때 창문에 작은 손자국이 나타났다. 누군가 유리 안쪽을 손바닥으로 눌렀던 흔적이었다. 내가 손을 대려 하자 서아가 고개를 저었다. "손자국이 있다고 누군가 바로 옆에 있다는 뜻은 아니야. 지금은 오래된 기록을 보고 있는 거니까." 나는 손을 거두었다. 안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몸이 앞서 나갔다. 그 마음을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마음이 증거가 되도록 두지는 말아야 했다. 거실 창문 밖으로 비가 내렸다. 빗방울은 유리 앞에서 멈췄지만 거실 안의 전화기만 울렸다. 따르르릉. "시간이 멈췄는데 전화벨이 울려요." 내가 말했다. "기록 재생일 수 있어." 유나가 설명했다. "발신된 목소리만 시간 밖으로 보내는 회선이니까." 나는 전화기 앞으로 다가갔다. 화면 속 물건인지 실제 물건인지 알 수 없어서 처음에는 손을 내밀지 않았다. 171번 버스의 문처럼, 만지는 행위가 곧 다른 사람의 이름을 다시 승차시키는 명령일 수 있었다. [가정용 반환 회선: 1998.06.11 18:11] [수신 대상: 가족 주거지] [음성 발신자: 미확인] 시계가 텍스트를 띄웠다. 발신자가 미확인이라는 말이 오히려 위안이 됐다. 누가 들려주는 목소리든, 먼저 아버지라고 써 놓지는 않았으니까. "통화는 듣기만 할 수 있습니까?" 나는 물었다. 강문석의 목소리가 이어폰에서 들렸다. 바깥의 그는 멈췄어야 했지만, 우리가 미리 연결해 둔 음성 장치는 별도 기록 회선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실시간인지 저장된 메시지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여기서 수신을 누르면 응답 신호를 보낼 수도 있어요. 확실하지 않습니다. 기기를 건드리지 말고 주변에 표시된 출력 장치를 찾아보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휴대전화 화면의 녹음 표시가 깜빡였다. 실제 현재에서 기록하고 있는지도 검증해야 했다. 거실의 소파 옆에는 작은 녹음 장치가 있었다. 그것은 열두 번쯤 다른 음성을 재생했다. 첫 번째는 어른의 숨소리, 두 번째는 아이가 훌쩍이는 소리. 네 번째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정수 씨, 한 명이 더 있어요.' 나는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일단 목소리부터 확인하죠. 나갈지 묻지 않고 출구를 열면 안 됩니다.' 다른 남자가 대답했다. '안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묻습니까?' '그래서 먼저 들을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이 회선이요.' 낡은 수화기 뒤쪽에 차정수라는 작은 이름표가 보였다. 그 이름표 역시 원본인지 확실하지 않았다. 그때 거실 한쪽의 문이 열렸다. 누군가의 발소리가 들렸다.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식탁에 놓인 의자 하나가 천천히 밀려났다. "도겸아. 뒤로 물러나." 서아가 말했다. 나는 뒤로 물러섰다. 멈춘 시각의 거실이 내 머릿속 기억을 훑는 것 같았다. 어머니가 국을 끓이던 냄새, 손잡이가 느슨한 부엌 찬장, 아버지가 한 번도 버리지 못한 고장 난 라디오. 하지만 그런 기억이 진짜 내 것인지, 눈앞 영상 때문에 떠올린 것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거실 전화기는 마지막으로 한 문장을 재생했다. '이 집으로 보내지 마세요. 그 사람은 여기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나는 숨을 삼켰다. "아버지 목소리 같아." 서아는 나를 보았다. "비슷해. 하지만 누가 말하는지 확신하지 마. 말의 내용은 기록할 수 있어." '그 사람'이 누구인지, 그때 어디에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귀환 대상을 가족 주소로 보내는 것을 반대했다. 서아는 수화기 뒤에 달린 종이 패를 살펴봤다. 종이에는 낮은 글씨로 '수신하는 자의 신분은 확인된 경우에만 기록할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2011년 이후의 장부에는 그 문장이 빠져 있었다. "서아야. 그러면 여기서 우리 이름을 쓰면 안 된다는 거지?" "적어도 통화 기록에 이름을 덮어쓰지는 말아야 해. 우리가 듣고 있다는 사실과 그 사람이 누구인지는 다른 문제니까." 나는 기록을 잠깐 멈춰 달라고 부탁했다. 정지된 세계에서 또 시간을 멈춰 달라는 부탁은 웃겼지만, 그만큼 이해할 시간이 필요했다. 강문석은 장치의 반응이 실제 시간이 아니라 기록의 상대 시각으로 움직이고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문 앞에 있는 선택지를 읽었다. '확인 완료', '대리 수취', '질문 이의'. 첫 두 개는 무엇을 하는지 설명이 부족했다. 마지막 것만 1998년 원문 규칙에 접근할 수 있었다. "내가 답을 모르는 건 잘못이 아니지?" 내가 말했다. "잘못 아니야." 유나가 대답했다. "모르면서 안다고 누르는 게 문제지." 그 말에 나는 잠깐 웃었다. 회사에서 오작동하던 배포 스크립트를 다룰 때도 같은 원칙을 지켰어야 했다. 그때는 그저 야근을 한 번 더 하면 됐지만, 지금은 사람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문 앞 작은 안내창에는 또 하나의 문장이 있었다. '가족 대표는 자동 지정됩니다.' 나는 가족 대표라는 표현을 지웠다. 누구도 어머니에게 그런 대표직을 준 적이 없었다. 기록 속 시계는 계속 움직였다. 사십 초. 삼십구 초. 우리는 이름을 쓰지 않고 원본 규칙의 출처부터 찾았다. [18:10:31] [귀가 위치 확인: 가족 주거지] [응답 없을 시 최근 수령인 적용] 갑자기 문 옆에 다른 화면이 나타났다. 그 안에는 우리 어머니가 살고 있는 현재 아파트가 보였다. 화면에는 식탁 앞에 앉은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다. 실제 영상인지 재생 영상인지 구분되지 않았다. "현재 어머니를 끌어들이겠다는 거예요?" 유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우선 우리가 받는 화면이 진짜인지부터 확인해. 운영망이 가족사진으로 겁을 줄 수 있어." 남 형사는 현실의 관리실 직원에게 연락할 수 있는 기록 채널을 확보했다. 통화는 지연됐지만 어머니의 상태를 확인했다는 짧은 메시지가 돌아왔다. 실제 현재 시각을 함께 확인한 답이었다. 화면 속 어머니의 모습은 최소한 실시간 생중계라고 주장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스템은 끈질겼다. [대리 수취인: 가족] [최종 확인까지 00:00:15] 나는 서아에게 말했다. "그 버튼을 거부하면 어떻게 되죠?" "모르지. 그래도 아무 말 없이 넘겨두면 누군가 무응답을 동의로 처리할 거야." 우리 앞의 허공에 한 칸짜리 입력창이 생겼다. 대리 수취인 이름을 쓰는 칸이었다. 나는 그 칸을 누르지 않았다. 대신 화면 아래의 설명문을 확대했다. '수취인 식별 불능 시 현재 가족 대표 자동 입력.' 나는 거기에 이름을 쓰는 대신, 입력창 옆의 작은 링크를 찾았다. '검증 이의 신청.' 클릭하자 저장된 규칙의 원본 사본이 열렸다. 1998년 문장은 짧았다. '확인되지 않은 귀환은 귀가로 처리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을 신고 사유에 그대로 붙였다. 시스템은 한동안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작은 글자가 떠올랐다. [귀가 대리 수취: 이의 접수] [자동 처리 중단: 임시] 멈춘 거실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의자가 제자리로 돌아갔다. 마지막으로 전화기에서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제가 여기서 기다려도 돼요?' 누군가 대답했다. '네가 원하면. 하지만 여기가 네 집인지부터 함께 확인하자.' 시간이 다시 움직였다. 문은경이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떨어뜨렸다. 그리고 봉투의 뒷면에 처음엔 없던 문장이 보였다. '2번 사본 수신: 1998년 가족 주거지. 미도착.' 보낸 사람은 우리 집이 아니었다. 받을 사람도 우리 가족이라는 보장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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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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