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분은 컴퓨터를 다시 켜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일반인이 쓸 수 있는 최고의 대응법은 전원을 껐다 켜는 것인데, 우리 앞에 놓인 것은 보관국의 근무 장부였다. 나 같은 개발자에게도 그 시스템은 기계보다 규칙을 바꾸는 사람들 때문에 훨씬 어려웠다.
"지금 수취 거부 버튼을 누르면 됩니까?" 남기혁 형사가 물었다.
"눌러야 할지도 모르지만 먼저 원문을 확인해야 합니다." 서아의 목소리가 전화기에서 들렸다. "버튼이 무슨 명령을 보내는지도 알아야 하고요. 거절하려고 누른 게 동의 신호가 되는 경우를 봤잖아요."
나는 관리실 유리벽을 바라봤다. 밖에서는 아이가 자전거를 밀고 지나가고 있었다. 아이 어머니는 장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내 손목에서 울리는 경고음이 들리지 않았다.
문은경이 가방에서 접힌 인계 대장을 꺼냈다. 종이는 세월에 누렇게 변했지만 글자는 분명했다. 2004년 보관소로 이동한 기록, 2011년 보관 연장 기록, 2019년 폐업에 따른 수탁자 이관 기록. 맨 아래에는 인계 조건이 적혀 있었다.
'수취인은 현재의 차도겸. 대리 수취 불가. 수취가 없을 경우 그대로 보관.'
"그때 아직 어린아이였던 제가 지금 수취인이 된 겁니까?"
"1998년 원문을 제가 보지 못해서 단언할 수 없습니다. 이 이름은 2004년 대장에 처음 나옵니다."
"아버지가 언제 맡긴지도 모르시는군요."
"네. 그래서 확인서를 진품이라고 주장하지도 않겠습니다. 제가 보증하는 건 보관 중에 손대지 않았다는 범위뿐입니다."
문은경의 목소리는 정중했지만 단호했다. 허구의 시간에 갇힌 사람들에게는 드물게 반가운 태도였다.
서아가 강문석을 연결했다. 그는 통화가 되자마자 말했다.
"자동 인계 조건이 일반 계약과 충돌합니다. 아마도 운영망이 빈 대답을 수락으로 처리하고 있어요. 수령 물건을 옮길 필요는 없습니다. 가족 주소를 대상으로 한 인계 상태만 별도로 보류시키겠습니다."
"그게 됩니까?"
"우리에게 열람권이 있는 건 맞지만 수정권은 없습니다. 정상적인 이의 제기 경로를 찾고 있습니다. 우선 스냅샷 보존 요청부터 하죠."
나는 일곱 번째 차도겸이라는 이름으로 엉뚱한 기록이 남던 날을 떠올렸다. 나에게 확인하지 않고 내 이름을 썼던 일. 수취 여부를 내가 결정한다는 말이 화면에서는 무응답으로 동의한 것으로 바뀌는 일. 모든 것은 비슷한 곳에서 출발했다.
"제가 직접 문장으로 남길게요."
문은경은 우리가 보는 시계 화면을 직접 확인하지 못했다. 그녀에게는 액정에 일반적인 시각만 표시돼 있었다. 나에게는 '가족 혈연 자동 승인'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우리는 같은 장치를 보고 있었지만 서로 다른 정보를 받고 있었다.
"지금 보이는 문구를 제가 읽어 드릴게요. 선생님이 받아 적어 주세요."
나는 한 줄씩 읽었다. 문은경은 종이에 쓰고 나서 의미를 물었다. 어떤 기술 약어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도, 내가 본 원문은 전할 수 있었다.
남 형사는 자기 휴대전화에 시각을 남겼다. 화면을 사진 찍는 것만으로는 해당 창이 실제 장치에서 생성됐는지 증명하기 어렵다며 전송 기록도 보존하자고 했다. 나는 회사에서 장애 로그를 확인하던 버릇으로 시계의 화면이 바뀌는 순서를 적었다. 오 분 남음, 보류 실패, 가족 승인 재시도.
"형사님. 회사에서 이 정도로 테스트하면 인사 고과를 잘 받겠죠?"
"회사가 그렇게 좋은 데였습니까?"
"아니요. 그러니까 집에 가려고 하는 거죠."
서아가 수화기 너머에서 작게 웃었다. 그 웃음 때문에 어깨의 힘이 조금 빠졌다. 앞으로 남은 시간에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정할 수 있었다. 장치에 무언가를 입력하기 전에 다른 가족에게 피해가 없는지 확인하기. 안전한 외부 공간에 있는 보온통을 건드리지 않기. 자동 승인 규칙이 원문과 다르다는 점을 기록하기. 그것이면 충분했다.
나는 시계의 응답 입력창을 열었다. 문은경이 종이 위에 손가락을 올리며 조용히 지켜봤다.
'나는 차정수의 미전달 귀가 확인서에 대한 자동 수취에 동의하지 않는다. 확인서의 존재와 내용 검증을 요청하며, 그 사이 상태는 미수취로 유지한다.'
보내기를 누르려는데 시스템이 빨간 표시를 띄웠다.
[수취 거부 불가: 수령 예정자가 최초 계약 당사자의 직계 가족]
[혈연 관계 자동 승인 조항 적용]
"이게 대체 무슨 소리예요? 가족이면 거부할 수 없다고요?"
문은경이 바로 반박했다.
"제 인계 대장에는 그런 조항 없습니다. 법적인 효력 여부도 이 자료만으로 알 수 없고요."
유나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어머니는 물을 마시고 있었고 건강에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 물건을 받으러 온 사람이 보온통을 들고 있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식탁에 놓인 통을 쓰다듬었다고 했다.
"도겸아." 어머니가 통화에 들어왔다. "그런 물건, 네가 혼자 결정하지 마. 나도 네 아버지 가족이었잖아."
"엄마. 위험할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더더욱 나도 알아야지."
그 말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나는 늘 어머니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설명을 나중으로 미뤘다. 그 사이 어머니는 자신에 관한 결정을 다른 사람에게 맡겨야 했다.
남 형사는 관련 담당 기관에 문의해 수취 통지의 효력 다툼과 개인정보 도용 신고를 준비했다. 운영망이 관공서나 경찰을 알아듣는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러나 바깥 세계의 기록도 동시에 남겨야 나중에 누군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남은 시간은 네 분이었다.
우리는 문은경에게 원본 인계서의 앞뒤를 보여 달라고 요청했다. 종이 맨 뒤에는 작게 접힌 단서가 있었다. 대장을 비스듬히 비추자 지워진 복사 글자가 떠올랐다.
'귀가 확인은 물건의 수취로 대신할 수 없다.'
그 아래에는 연필로 문장이 하나 더 쓰여 있었다.
'이 문서를 내 아들에게 보내야 하는 날이 온다면, 내 아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부터 확인해 주세요.'
나는 그 필체를 알아봤다. 아버지가 내 초등학교 준비물에 이름을 써 주던 바로 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아버지의 필체인지는 비교해야 했다. 기억은 자꾸 내게 정답을 미리 주려고 했다.
"도겸아, 그 문장 다시 읽어 줘."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나는 천천히 읽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사람이 그러곤 했어." 어머니가 말했다. "퇴근했다는 전화보다 발소리를 듣고 싶다고. 집에 와서 신발을 벗는 걸 보기 전까지 기다리겠다고."
시계에 새로운 창이 나타났다.
[자동 인계까지 00:01:00]
[가족 확인 대체 진행]
"대체 진행이 뭔데요?" 내가 말했다.
그 순간 어머니의 집에 있던 보온통 손잡이에서 작고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유나가 통을 멀리 떨어진 식탁 끝으로 옮겨 놓았다. 반사적으로 기계를 열어 보려던 나는 멈췄다.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는 물건을 억지로 열어 본다고 안전해지는 것은 아니었다.
관리실 영상 속 우리 집 인터폰이 다시 켜졌다.
화면에는 어머니의 얼굴이 비쳤다.
[가족 대리 수취인 확인: 차도겸의 모친]
나는 외쳤다.
"엄마에게 대신 선택시키지 마!"
대답 대신 시계가 짧게 진동했다.
[가족 대리 수취 요청 전송]
전화 소리를 듣기 직전까지 어머니는 부엌에서 국을 다시 데우고 있었다. 유나는 어머니에게 먼저 전화를 받지 않을 권리가 있음을 설명했다. 어머니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
"내가 누구랑 통화할지 그 시계가 정하는 건 싫다."
그 말이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 나는 웃고 싶었지만 목이 아파 오히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평생 아버지를 기다리던 사람에게도, 누군가의 대리 확인인이 될 의무는 없었다.
창밖에서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 내 손목의 숫자와 바깥 세계의 시간이 여전히 똑같이 흐르고 있다는 걸 확인했다. 도망갈 수 있는 몇 초와 도망갈 수 없는 결정을 혼동하지 않기로 했다.
시계가 다시 경고를 띄웠다.
[대리인 응답 수신 시 원본 문서 수령 확정]
원본 문서에는 그런 규칙이 없었다. 우리는 그 차이를 외부 기록에 남기고, 어머니가 스스로 선택할 시간을 지키기로 했다.
어머니의 집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
제13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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