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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3화
PAYLUA ORIGINAL · 제13화

13화. 엄마가 나를 잊었다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5,149자

오프라인 책장
어머니가 나를 잊었다. 보통 드라마라면 이 장면에서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하늘을 향해 소리를 질렀을 것이다. 나는 그 대신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엄마. 지금 어디야?” “누구세요?” 두 단어가 가슴 한가운데에 박혔다. “차도겸이야.” “죄송해요. 이 번호가 내 휴대전화에 아들이라고 저장돼 있는데…… 내가 아들이 있었나?” 나는 로비 한가운데서 눈을 감았다. 주위에서는 커피를 사 들고 돌아오는 직원들이 떠들고 있었다. 세상은 멀쩡했다. 적어도 겉으로는. “집에 있어. 내가 지금 갈게. 문 아무한테나 열어 주지 말고.” “왜 반말을 하세요?” “나중에 설명할게.” 전화를 끊자 유나가 말했다. “보관국이 감사 증거를 없애는 중이야. 네가 기억을 잃고도 관계를 유지한다는 사실 자체가 그들한테는 불리하니까.” “우리 어머니는 계약자도 아니에요.” “맞아. 그래서 불법이야.” 나는 한동안 유나를 바라봤다. 초능력과 계약과 시간 분기 같은 말들이 머리 위를 떠다녔다. 그런데 눈앞의 문제는 단순했다. 어떤 조직이 증거를 없애기 위해 남의 어머니를 건드렸다. 그건 마법이 아니라 범죄였다. “강문석이 누굽니까?” “보관국의 외부 기술 책임자였어. 네가 처음 분기를 만들 때 같이 있었지.” “죽었어요?” “모르겠어. 이름이 지워진 건 적어도 그 사람이 감사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뜻이야.” 나는 남 형사에게 어머니의 문자와 내 수첩을 촬영해 보냈다. 그리고 택시를 잡았다. 운전기사에게 주소를 말한 뒤 휴대전화 음성 메모를 켰다. “차도겸, 월요일 오후 3시 49분. 기억 삭제가 오후 6시 이외 시간에 발생했다. 피해자는 내 어머니. 조사 목표는 복구가 아니라 삭제의 증명.” 유나가 뒷좌석에서 물었다. “왜 복구가 아니야?” “복구도 해야죠. 하지만 복구에만 매달리면 또 지워 버릴 겁니다. 이번에는 누가, 언제, 어떤 권한으로 그랬는지 남겨야 해요.” 개발자의 장점 중 하나는 장애 원인을 찾기 전부터 복구 버튼을 누르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지 안다는 것이다. 집에 도착하니 어머니는 현관문을 체인까지 걸어 잠가 놓았다. 내가 문 앞에서 이름을 말하자 안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신분증 보여 주세요.” 나는 문구멍에 주민등록증을 들이댔다. 문이 조금 열렸다. 어머니는 낯선 청년을 보는 얼굴이었다. “진짜 우리 아들이에요?” “네.” “내가 왜 널 모를까.”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눈물이 먼저 떨어졌다. 기억을 잃는 사람은 잃었다는 사실조차 모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머니는 집안 곳곳에 붙은 사진을 보며 자기 마음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사진 속 이 아이가 나랑 닮았는데, 내 아들이래. 왜 아무 감정이 안 날까.” “저는 기억나요. 엄마가 오늘 아침 달걀말이를 해 준 것도요.” “그건 나도 기억나. 그런데 누구한테 해 줬는지가 안 떠올라.” 그녀는 식탁 의자를 붙잡았다. 나는 어머니에게 앨범을 가져왔다. 낡은 천 표지의 앨범에는 사진을 붙인 흔적과 오래된 풀 냄새가 남아 있었다. 첫 장에는 세 살 무렵의 내가 곰 인형을 안고 있었다. 뒤쪽에는 아버지가 휘갈겨 쓴 날짜가 있었다. “이 아이가 정말 너니?” “네. 저예요.” “왜 나는 기억이 안 나지?” 어머니는 사진 위에 손을 얹었다. “부모가 자기 자식을 잊는 일이 생길 수 있을까.” 나는 어머니가 말을 멈출 때마다 기다렸다. 나의 기억을 다시 설명하는 게 그녀에게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가 될 수 있으니까. 어머니가 나를 키웠던 수십 년의 시간을, 내가 몇 분 만에 다시 가르칠 수 있을 리 없었다. 기억이 지워진 사람에게 모든 사실을 한꺼번에 주입하는 건 거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압축해서 보내는 것과 비슷하다. 보내는 쪽은 빨라도 받는 쪽은 버거울 수밖에 없다. 나는 어려운 사실부터 말하지 않고, 가장 작고 분명한 것부터 적었다. ‘나는 차도겸. 당신의 아들. 현재 함께 있고, 당신을 해치지 않을 것.’ 그 문장을 어머니 앞에 놓자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 나를 믿어 달라고 했을 때 내가 가장 원했던 태도가 바로 그것이었다. 먼저 듣고, 스스로 판단하는 것.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게 하나 있어요.” 내가 무심코 그렇게 말하자, 어머니의 얼굴이 이상해졌다. “그 말, 누가 가르쳐 줬어?” 나는 대답할 수 없었다. 어디서 들은 말인지 기억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서아가 했던 말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일곱 달 전의 내가 수없이 반복해 왔던 말일 수도 있었다. 어머니는 앨범을 두 장 더 넘겼다. 초등학교 운동회 사진이 나왔다. 나는 꼴찌로 달리면서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이상하네. 이 사진은 감정이 나.” “무슨 감정이요?” “내가 누군가를 기다렸던 것 같아. 운동장에서 넘어지는 아이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어. 그런데 그 아이가 너인지는 모르겠어.” 나는 그때 처음으로 희망을 품었다. 보관국이 이야기 자체를 도려냈더라도 감정의 모양까지 완전히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그 틈을 따라가면 어머니가 어느 날 나를 다시 아들로 알아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조급하게 기억하라고 강요할 생각은 없었다. “괜찮아요. 지금 당장은 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돼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는 사람이면 내가 이렇게 걱정되진 않겠지.” 나는 눈물을 참으려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손이 떨려 컵 가장자리에 이가 부딪혔다. 평생 잊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장면들이 이렇게 어이없이 사라지는 걸 보면서도, 사람을 만질 수 있다는 사실만은 지킬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떨리는 손을 바라봤다. “많이 무서웠겠다.” 내가 한 말이었다. 그녀가 아니라 나에게 해야 하는 말처럼 들렸다. 나는 앨범의 뒤쪽을 다시 펼쳤다. 사진마다 장소와 날짜를 천천히 설명했다. 어머니는 몇 장을 넘긴 뒤 아주 조심스럽게 내 손등을 만졌다. “손에 흉터가 있네.” “어릴 때 자전거 타다 넘어졌어요.” “이상하다. 흉터를 보니까 왜 속이 아프지.” “그때 많이 놀라셨나 봐요.” 어머니는 기억하지 못하는 상처를 앞에 두고 울었다. 나는 그녀가 나를 사랑했던 시간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기를 빌었다. 방 안에 놓인 꽃병이 눈에 들어왔다. 노란 국화였다. 꽃병 아래에는 내가 쓴 것으로 보이는 카드가 있었다. ‘엄마 생신 축하해. 올해는 꼭 일찍 갈게.’ 생신은 지난주였다. 첫날 내가 잊었던 기념일. 나는 카드의 필체를 보자 죄책감이 몰려왔다. 선물을 미리 준비하고도 얼굴을 제대로 못 보고 온 모양이었다. “이건 내가 가져다 둔 거예요?” “그런가 봐. 꽃은 있는데 누가 줬는지는 모르겠어.” 어머니가 카드를 읽었다. “글씨가 참 예쁘네.” “제 글씨는 악필인데요.” “어릴 때 내가 억지로 연습시켰나 보지.” 우리는 잠깐 웃었다. 웃음이 끝나자 이상한 침묵이 찾아왔다. 나는 유나에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에게 일어난 일을 당장 되돌릴 방법이 있느냐고. 답장은 짧았다. ‘지금 바로 고칠 수 없어. 먼저 기록해. 기억을 대신 만들어 넣으면 더 큰 피해가 날 수 있어.’ 나는 어머니의 설명을 가로채지 않고 끝까지 들을 준비를 했다. 오후 4시 20분. 남기혁 형사가 도착했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었다. 수사 기록을 보존할 수 있도록 공증용 서류와 녹음 장치를 들고 온 동료가 동행했다. 형사는 어머니의 진술을 받았다. “오후 3시 몇 분쯤 기억이 끊겼습니까?” “정확히는 몰라요. 반찬을 넣고 집에 와서 낮잠을 조금 잤는데, 깨고 나니 이 아이 얼굴이 낯설었어요.” “특정한 소리나 냄새가 있었나요?” “전화벨 소리가 났어요. 그런데 받기 전에 끊겼어요.” 형사가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가 하나 있었다. 번호가 아니라 문자열이 표시되어 있었다. `ARCHIVE/CONSENT_REVOKED`. 나는 화면을 사진으로 남기고, 유나에게 확인했다. “이게 보관국 번호입니까?” “감사 대상자의 관계 동의를 철회했다는 뜻이야.” “우리 엄마가 동의한 적도 없는데?” “바로 그래서 감사가 필요한 거지.” 남 형사가 얼굴을 찌푸렸다. “현실에서 입증할 수 있는 건 부재중 전화 기록뿐이군요.” “아뇨.” 내가 말했다. “통신사 서버엔 이 번호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기록이 남을 겁니다. 기록을 확보해야 합니다.”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현실적인 수사는 내 초현실적 경험보다 훨씬 단단한 발판이었다. 하지만 유나는 창밖을 계속 바라보고 있었다. 맞은편 주차된 흰색 승합차. 차 안에는 사람이 없었다. 그럼에도 앞유리에 검은 우산이 비쳤다. “도겸, 네 어머니를 여기 두면 안 돼.” 나는 어머니에게 설명했다.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기억에 문제가 생겼고, 경찰이 조사 중이며, 며칠 동안 안전한 곳에 있어야 한다고. 어머니는 이상할 만큼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널 모른다고 해서, 네 말까지 거짓말인 건 아니겠지.” 그 말이 나를 붙잡았다. 우리가 나가려는데 식탁 서랍 안에서 낡은 손목시계가 나왔다. 첫날 사라졌던 바로 그 시계였다.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거 네 아빠 물건이야. 네가 어릴 때 고장 났는데, 왜 여기 있지?” 시계의 초침은 5시 59분 59초에 멈춰 있었다. 뒷면에는 못으로 긁은 작은 숫자가 있었다. 0613. 유나가 시계를 본 순간 숨을 삼켰다. “저건 도겸이 만든 게 아니야.”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요?” 그녀가 대답하기 전에 벽시계가 한 번 울렸다. 아직 오후 4시 47분인데도. 식탁에 펼쳐 둔 내 수첩의 글씨가 서서히 바뀌었다. [감사 증거 1건 확보.] [증거 보유자 보호 조치 적용.] [보호 조치 대상: 차도겸의 모친.] 나는 안도하려다 마지막 문장을 보고 굳었다. [보호 장소: 제6시 보관국.] 어머니의 손목에 검은 종이 띠가 나타났다. 일상 시간 속에서, 문 하나 열지 않았는데도. 남 형사가 곧장 손을 뻗었다. 그러나 종이 띠는 이미 그녀의 피부 안쪽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엄마!” 어머니는 내 얼굴을 바라봤다. 모르는 사람을 보는 표정이었지만 손만큼은 놓지 않았다. “아까부터 자꾸 네 이름이 생각나.” 그녀가 속삭였다. “도겸아, 나 아직 널 모르겠는데…… 손은 놓으면 안 될 것 같아.” 그때 유나가 내 아버지의 시계를 낚아채 벽에 던졌다. 유리가 깨지는 소리가 났다. 검은 띠가 잠시 멈췄다. “이건 보호 조치가 아니야.” 유나가 외쳤다. “증인을 통째로 가져가겠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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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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