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오전 7시 13분.
누군가 우리 집 문을 열쇠로 열었다.
나는 식탁에 앉아 수첩을 읽고 있었다. 어젯밤 잃어버린 기억의 빈자리를 메우느라 밤을 꼬박 새운 참이었다. 최근 내 인생은 드라마 시즌 정주행과 비슷했다. 단, 시즌이 끝날 때마다 주인공의 기억이 삭제된다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었다.
문이 열리자 반사적으로 볼펜을 들었다.
“누구세요?”
“엄마.”
여자가 대답했다.
중년 여성이 양손에 반찬 봉지를 들고 서 있었다. 내 얼굴을 보더니 눈썹을 찌푸렸다.
“전화 목소리가 이상해서 와 봤어. 회사는 안 가니?”
나는 반찬 봉지에 쓰인 식품 가게 이름과 손에 들린 낡은 열쇠를 번갈아 보았다.
그 여자가 어머니라는 사실은 알았다. 가족관계증명서에도 그렇게 적혀 있다. 사진 속에서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 나를 안고 있던 사람도 그녀다.
그런데 목소리가 낯설었다.
그녀는 냉장고 문을 열더니 김치통을 정리했다. 마치 수십 년간 해 온 일처럼 자연스러웠다. 실제로 수십 년간 했을 것이다. 내가 잊었을 뿐이다.
“살이 왜 이렇게 빠졌어?”
“잠깐 일이 있어서요.”
“너, 나한테 무슨 일 숨기고 있니?”
나는 거짓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기억이 좀 이상해요.”
어머니의 손이 멈췄다.
“병원 가 봤니?”
“아직요.”
“그럼 오늘 가자. 회사보다 네가 먼저지.”
당연한 말인데도 목구멍이 아팠다. 나는 사실을 적은 수첩 한 장을 보여 드릴까 고민했다. 그러나 세상이 멈춘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그분은 걱정만 더할 것이다.
어머니가 식탁에 달걀말이를 올려놓았다.
“먹고 가. 너 어릴 때도 긴장하면 밥을 안 먹었어.”
“제가 어릴 때 어떤 아이였어요?”
어머니가 웃었다.
“손해 보는 걸 제일 싫어하면서, 남이 손해 보는 건 못 보던 애.”
나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건 지금도 그런데.”
“그러니까. 사람은 잘 안 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나는 한동안 식탁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내가 잃은 것은 목소리 한 조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아들이었다. 그 사실이 괜히 무서웠다. 기억을 계속 잃으면, 언젠가 그분이 나를 아들이라고 부르는 이유까지 의심하게 될까.
9시 04분. 남기혁 형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당신 말대로 해 봤습니다.”
“서버 전원요?”
“어젯밤 6시 00분 01초에 차단했어요. 전기설비 담당자와 출동 기록도 남겼고요. 그런데 이상한 게 나왔습니다.”
나는 곧장 경찰서로 향했다.
기혁 형사의 책상에는 출력물 세 장이 놓여 있었다. 회사 지하 서버실 전력 사용량 그래프였다. 오후 6시 정각까지 평범하게 움직이던 선이, 6시 00분 01초에 수직으로 튀어 올랐다.
나는 그래프의 좌표축을 먼저 확인했다. 전력량계는 분명 건물의 메인 배전반에 연결돼 있었다. 센서 오류라면 전압과 전류 모두 비정상이어야 한다. 그런데 전류는 정상이고 누적 사용량만 거꾸로 흘렀다. 누군가 과거에 사용한 전력을 지금 돌려받는 것처럼.
수첩에 작은 계산을 적었다. 우리가 멈춘 한 시간 동안 사용하는 휴대전화나 손전등은 전기를 먹는다. 그 에너지는 어디서 오는 걸까. 돌아온 뒤에 한꺼번에 청구된다면, 전력이 음수로 찍힌 순간은 대금을 정산한 흔적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숫자만으로 결론을 내릴 생각은 없었다. 상상은 가설로 적고, 측정한 사실과 분리해 두는 것. 내가 개발자로 일하며 배운 드문 미덕이었다.
“전력 사용량이 왜 음수로 바뀐 거지?”
“정확히는 계측기에서 음수 값이 찍혔습니다. 전기가 건물로 들어간 게 아니라 밖으로 나온 것처럼.”
형사가 다음 장을 펼쳤다. 전력 차단 이후 서버실의 영상 감시 장비는 정상적으로 종료되었다. 문제는 종료 직전 마지막 한 프레임이었다.
나는 그 프레임을 보고 숨을 멈췄다.
서버실 복도에 사람이 여덟 명 서 있었다. 모두 정면을 향하고 있었다. 회사 시설 담당자도, 야근하는 직원도 아닌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실종 전단에서 본 얼굴이었다.
그중 한 사람을 나는 알아봤다.
김태오. 두 달 전부터 행방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그 남자.
“이 사람들이 어디서 나타났습니까?”
“모릅니다. 6시 정각 프레임에는 없어요. 1초 뒤에는 전원 차단으로 영상이 끝났고.”
“그러면 1초 사이에 나타난 겁니다.”
남 형사는 서류를 탁자에 내려놓았다.
“차 씨. 지금부터 하는 말은 녹음하지 마세요.”
나는 휴대전화를 뒤집었다.
“실종자들 중 일부는 공식 기록이 지워졌습니다. 신고서가 전산에서 없어졌는데 출력물은 남아 있어요. 접수 번호로 검색하면 없는 사건이라고 나옵니다.”
“누군가 경찰 시스템까지 건드린 겁니까?”
“그랬다면 로그가 남아야 합니다. 그런데 삭제 기록 자체가 없어요.”
나는 수첩에 적힌 ‘현실 쪽 기록까지 정리’라는 문장을 떠올렸다.
“삭제가 아니라, 처음부터 입력되지 않은 것처럼 바뀐 거군요.”
나는 전력 그래프를 한 번 더 봤다. 전기 소비량이 음수가 된 지점에는 기계가 측정하지 못한 시간의 빈칸이 없었다. 수치는 딱 한 번 튀었다가 다시 안정됐다. 정지된 한 시간은 계측기에 존재하지 않았고, 우리가 남긴 흔적만 현실의 1초에 몰려 나온 것이다.
“형사님. 그 프레임을 화면 캡처 말고 장비에 저장된 원본 데이터로 확보하셨습니까?”
“네. 정전 전에 저장된 장치 자체를 봉인했습니다. 시설 관리자는 이상 현상을 설명하지 못했고요.”
“누가 장비를 교체하러 오면 절대 혼자 내주지 마세요.”
형사가 미간을 좁혔다.
“그 정도는 압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건 백업뿐이라서요.”
“백업이라는 말은 이해합니다. 경찰에서도 원본 확보, 대조본 작성, 증거 인계 기록이 제일 중요하거든요.”
그는 책상 구석에 놓인 투명 봉투를 보여 줬다. 검은 실 한 조각이었다. 지난번 계단에서 내 발목을 스쳤던 것과 같은 물질. 경찰관이 일반 비닐이 아니라고 적어 두었다.
“분석 결과는?”
“아직요. 기계가 재료를 못 알아본답니다. 종이 같다가도 섬유 같다고요. 그래서 현상 자체를 기록하게 했습니다.”
나는 봉투를 노려봤다.
“사람이 지워져도, 이런 것만은 남는군요.”
“그래서 제가 조사하는 겁니다.”
“그럼 누가 기억을 지워도 형사님은 사건을 포기하지 않으시겠네요.”
“기억은 잊을 수 있어도 수첩은 안 버립니다.”
내가 형사에게 처음으로 믿음이 생긴 순간이었다.
남 형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는 저도 한순간 아내 이름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그의 눈이 붉어졌다.
“남하린. 그게 우리 아내 이름입니다. 오늘 아침까지 종이에 스무 번 썼어요.”
나는 자꾸 틀어지는 세상에서 종이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것 같았다.
“증거 보관은 형사님이 하세요. 원본 파일이랑 계측 기록, 목격자 진술까지요. 저는 서버를 조사하겠습니다.”
“회사에서 입수한 자료를 경찰에 넘기겠다는 뜻입니까?”
“불법으로 빼 오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접근할 수 있는 업무 로그부터 볼 거예요.”
형사는 못 미더운 표정이었다.
“진짜로요?”
“네. 초능력자라고 압수수색 영장까지 발급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요.”
회사에 도착한 시각은 오전 11시였다. 월요일 오전 회의를 빼먹은 덕분에 팀장의 메신저가 폭발해 있었다.
‘도겸 씨, 살아 있어?’
‘장애 대응 누가 해?’
‘아니 진짜 살아 있냐니까?’
나는 답장을 보냈다.
‘살아는 있습니다. 오늘 연차 씁니다.’
그 뒤 관리자 권한으로 접속 가능한 시스템의 장애 이력을 확인했다. 평소라면 업무와 관련된 인증 로그, 배포 로그, 서버 장비 정보 정도만 조회할 수 있다. 그런데 지난 목요일 서버실의 출입 기록에 이상한 칸이 생겨 있었다.
출입자: 차도겸.
승인자: 차도겸.
출입 시간: 18:00:00.
체류 시간: -59분 59초.
음수 체류 시간.
물리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는 값이었다. 나는 내 사번으로 접근 기록이 만들어진 경위를 추적했다. 일치하는 관리 스크립트 이름이 나왔다.
`minute0_sync`.
파일 소유자는 퇴사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름은 강문석. 7개월 전에 회사를 떠났다는 시스템 엔지니어였다.
나는 그 사람을 본 기억이 없었다. 팀 단체사진을 찾아보니 오른쪽 끝에 서 있었다. 말끔한 얼굴에 목에는 푸른색 출입증이 걸려 있었다. 사진 설명을 보던 나는 놀라서 마우스를 놓았다.
촬영일: 6월 13일.
‘0613’은 서아가 남긴 날짜였다. 이 날짜에 무엇이 있었던 걸까.
강문석의 인사 기록은 열람 권한이 없었다. 대신 시스템에 남은 마지막 커밋 메시지가 있었다.
‘Clock is not broken. Somebody is stealing the missing hour.’
시계가 고장 난 게 아니다. 누군가 사라진 한 시간을 훔치고 있다.
동료에게 강문석을 아느냐고 물었다. 그의 표정이 이상해졌다.
“누구?”
“강문석 선임이요. 시스템 운영하던 분.”
“우리 팀에 그런 사람이 있었나?”
“단체사진에도 있잖아요.”
사진을 다시 열었다.
오른쪽 끝에는 사람이 없었다. 아까 분명 있었던 자리에는 회의실 벽만 보였다.
나는 서둘러 종이에 이름과 파일 해시값을 적었다. 잠시 뒤 시스템 목록에서도 커밋 작성자 이름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
오후 3시 40분. 유나가 회사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감사 신청했구나.”
나는 수첩을 내밀었다.
“당장 증거를 모아야 합니다. 누가 기록을 바꾸고 있어요.”
유나는 내가 적은 이름을 보더니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았다.
“강문석?”
“알아요?”
“그 사람이…….”
그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내가 재촉하려는 순간 회사 건물 로비의 전광판이 저절로 바뀌었다.
[제6시 보관국 감사 공지]
[증거물 오염 방지 조치 실시]
[대상: 차도겸의 외부 접촉자]
전광판을 바라보는 사람은 우리 둘뿐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광고 영상이 지나가는 것처럼 무심하게 걸었다.
유나가 내 팔을 잡았다.
“늦었어. 감사가 시작되면 상대편도 움직일 수 있어.”
내 휴대전화에 어머니에게서 문자가 왔다.
‘도겸아. 미안한데, 네가 누군지 기억이 안 난다.’
나는 그 글자를 읽었다. 손끝의 감각이 사라졌다.
세상은 아직 멈추지 않았다.
시간은 오후 3시 41분이었다.
제12화 댓글 0
댓글·공감·신고는 로그인 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전 익명 댓글은 그대로 표시됩니다.
댓글을 불러오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