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재의 사진은 우리를 곧장 영병원으로 돌려보내지 않았다. 오히려 사무실 바닥에 앉혀 놓았다.
유나는 종이 위에 시각 세 개를 적었다. 05:59, 06:00, 06:11. 한 칸씩 띄워 적으니 숫자가 계단처럼 보였다.
"이상하지 않아?" 그녀가 말했다. "우리는 매번 여섯 시가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진은 그 직전에서 시작해."
"벽시계가 틀렸을 수도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바로 그거야. 벽시계가 틀렸는지부터 확인해야 해."
서아는 사진 오른쪽에 보이는 작은 텔레비전을 확대했다. 화면 아래에는 그날 방송된 교통 안내 자막이 있었다. 남 형사는 기록 보관소에서 당시 편성표를 조회했고, 방송 화면과 대조할 수 있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나는 또다시 신비한 시간을 다루면서 지극히 평범한 문서에 의지하고 있었다.
"시간 정지 능력자 조사단인데 왜 하는 일은 회계 감사 같죠?"
강문석이 웃지 않고 대답했다.
"우리가 증명을 잘할수록 누군가의 시간을 함부로 빼앗기 어려워지니까요."
나보다 훨씬 비싼 월급을 받아도 될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가 실제로 얼마 받는지는 몰랐다.
사진의 또 다른 문제는 배전반이었다. 옛 도면에는 붉은 스위치가 없었다. 2011년 보수 공사 때 새로 달았다는 기록도 없었다. 시우는 두 단자의 간격을 재고 장치 제조사의 옛 부품 목록을 찾아냈다. 비슷한 스위치는 산업용 비상 우회 장치에 쓰였지만, 사진 속 물건이 정확히 그 모델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건 기계 설명만 보고 누르면 안 됩니다." 시우가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눌렀던 버튼이 몇 개인데요."
"저는 대부분 안 눌렀습니다. 누르려다 혼났죠."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확실해. 도겸이는 누르기 전부터 위험한 표정이 되거든."
사진이 진짜 2011년의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 우리는 필름 가장자리 번호를 읽었다. 그 번호로 사진을 찍은 기종과 현상 시기를 좁힐 수 있을 뿐, 날짜를 완전히 증명할 수는 없었다. 구태형이라는 이름만 듣고 바로 결론을 내리기엔 빠진 부분이 많았다.
남 형사는 이미 여러 번 복제된 파일보다 최초의 필름을 보존할 수 있는지 부탁했다. 최윤재는 처음에는 망설였다. 그에게 그 필름은 오래 숨겨 온 자신의 비겁함을 증명하는 물건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날 도망쳤다는 것도 다 나오겠죠?" 그가 물었다.
"보고 계신 것을 그대로 이야기하시면 됩니다." 서아가 말했다. "누구에게도 기억나지 않는 사실을 만들어 달라는 게 아닙니다."
그는 가만히 듣다가 대답했다.
"그럼 보고 싶은 장면만 골라서 보여 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세 장 모두 가져가세요."
나는 그 결정을 쉽게 칭찬하지 못했다. 두려움을 품고 오래 살아온 사람이 물건을 내놓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의 말을 이용해 누군가를 범인으로 지목해 버리면 그 결심까지 배신하는 일이 될 수 있었다.
사진 원본을 보낸 사람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벽시계가 틀린 게 아닙니다. 문이 열리기 전에는 모두 여섯 시를 기다렸지만, 실제로 전원이 들어온 건 오십구 분이었습니다.'
그 아래에는 스캐너로 읽은 회로 배치도가 있었다. 붉은 스위치의 이름은 `WITNESS BYPASS`, 증인 회로 우회. 차정수가 남긴 원본 설계도에는 이런 선이 없었다. 누군가 증인이 직접 확인해야 한다는 조건을 우회하는 장치를 추가했을 가능성이 컸다.
우리가 찾던 최초 개방 기록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동시에 무척 불편한 질문이 떠올랐다.
"우회 스위치만 제거하면 되는 거 아니에요?" 내가 물었다.
"지금 동작하고 있는 장치가 그 스위치에 어떤 식으로 묶여 있는지 모르잖아." 유나가 말했다. "기록 속 사람이 있다면 더 위험해."
맞는 말이었다. 우리는 기술자가 고치는 것보다 먼저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워야 했다.
다음 날 오전, 서아와 나는 최윤재의 수리점으로 갔다. 오래된 변압기와 선풍기가 천장까지 쌓여 있었고, 선반에는 종이테이프로 '아직 쓸 수 있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그 글씨가 마음에 들었다. 내 노트북에도 붙이고 싶었다.
수리점 안은 낯설게 익숙했다. 아버지가 집에서 고장 난 라디오를 고치던 책상이 떠올랐다. 아버지는 언제나 나사를 종류별로 작은 그릇에 나눠 담았다. 나는 어린 마음에 멋져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개발자가 되고 나서야 그게 얼마나 중요한 습관인지 알았다. 서로 다른 나사를 한 통에 섞어 놓으면 마지막에 꼭 하나가 남았다.
이곳에서도 최윤재는 나사를 종류별로 나누고 있었다. 그런데 낡은 나무 상자 하나에는 어떤 글씨도 없었다. 내가 그쪽을 보자 그는 상자를 덮었다.
"저건 고칠 수 없는 물건입니다."
"버리시면 되잖아요."
"고칠 수 없다고 해서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니까요."
문장에 걸린 나는 더 묻지 않았다. 그가 보관하는 물건들이 추억인지 죄책감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서아는 방 안의 사진을 허락을 구한 뒤 촬영했다.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가 주는 단서였지만, 그는 오랫동안 혼자 이 물건들을 숨겨 왔다. 한 번 질문해서 모두 털어놓게 하려고 압박하면 다음 이야기는 잃을 수 있었다.
"기억나시는 만큼만 이야기해 주세요." 그녀가 말했다. "확신하지 못하는 부분은 그대로 두셔도 됩니다."
그제야 최윤재가 상자에서 손을 뗐다. 작은 손놀림이었지만 나는 그 장면을 또렷하게 기억했다.
최윤재는 젊은 시절 사진보다 훨씬 작은 체구였다. 그는 우리에게 의자를 내주지 않고 먼저 문을 잠갔다.
"두려워서 그런 건 아닙니다. 저 안쪽 창고에 있는 물건 때문에 그래요."
그가 내민 것은 플라스틱 도시락통이었다. 뚜껑을 열자 낡은 공구와 세 장의 필름이 있었다. 필름에는 2011년 배전반 앞에서 찍힌 장면이 연속으로 들어 있었다.
첫 번째에는 아무도 없었다. 두 번째에는 사람이 등장했다. 세 번째에는 스위치가 아래로 내려와 있었고, 사람의 모습은 프레임 밖이었다.
"저 사람이 구태형인가요?" 내가 물었다.
최윤재가 날카로운 눈으로 나를 봤다.
"그 이름을 어디서 들었습니까?"
"현장 운영망과 관련된 사람입니다. 지금 조사 중이고요."
노인은 긴 숨을 쉬었다.
"구태형은 그날 저기 왔습니다. 하지만 이 필름 속 남자가 그 사람인지는 모릅니다. 사진이 흐리니까."
그가 구태형의 이름을 인정하면서도 사진의 얼굴까지 확정하지 않는 태도가 고마웠다.
"그 사람은 무슨 일을 했습니까?" 서아가 물었다.
"통행을 막았어요. 기록을 밖으로 빼내면 안 된다고. 대신 이상한 계약서를 내밀었죠. 문을 닫아 두면 미귀가자 문제가 자동으로 정리된다는 내용이었어요."
"누가 서명했죠?"
"그 계약서는 서명란이 없었습니다."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서명 없는 계약서로 사람을 묶었다고요?"
"서명한 사람은 없었지만, 출근 도장 찍는 자리는 있었지요."
도장. 다시 도장 이야기였다.
최윤재가 꺼낸 필름 봉투 뒷면에는 청색 펜으로 숫자가 적혀 있었다.
`5:59 수동 기동 / 6:00 자동 승인 / 6:11 봉쇄`
나는 세 단계가 같은 사건처럼 정산됐던 이유를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섯 시 오십구 분에 사람이 스위치를 누르고, 여섯 시에 프로그램이 승인하고, 여섯 시 십일 분에 문이 닫힌다면, 서명 없는 기록 하나가 세 사람의 행동을 지워 버릴 수 있었다.
"그럼 그날 실제로 누가 스위치를 눌렀습니까?"
최윤재는 대답 대신 오래된 안전 장갑 한 켤레를 책상 위에 놓았다. 왼쪽 장갑 안쪽에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도윤.'
내 심장이 덜컥했다. 남 형사의 형 이름과 같았다.
"남도윤 씨가 누른 겁니까?"
"아니요." 노인이 말했다. "그 장갑을 끼고 스위치를 잡은 사람은 따로 있습니다. 그리고 남도윤은 그 사람을 막으려 했어요."
노인은 필름 세 장을 정확히 겹쳐 빛에 비췄다. 겹친 사진에는 배전반 앞을 가로막는 팔 하나가 나타났다. 장갑을 낀 팔과 스위치를 내린 맨손은 분명히 서로 다른 사람의 것이었다.
최윤재가 그제야 의자를 끌어왔다.
"내가 증언할 수 있는 건 여기까지예요. 그 사람이 누군지 여러분이 찾아야 합니다."
남도윤은 누군가를 막았던 것이다.
그 사실이 형사를 구할 수 있을지, 더 깊은 위험으로 끌고 갈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문을 연 사람'과 '문을 열지 못하게 막은 사람'을 같은 이름으로 기록해서는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이제 증거로 보여 줄 수 있었다.
제123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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