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 봉투 속 카드가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보면 누구라도 놀랄 것이다. 나는 그보다 먼저 봉투를 잡고 있던 형사의 얼굴을 봤다.
남기혁은 표정을 바꾸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경찰 수사관에게 미확인 현상이란 낭만적인 사건이 아니라 절차가 필요한 사고였다. 봉투를 내려놓고 일련번호를 확인한 뒤, 방금 촬영된 영상을 복제하도록 지시했다.
"이 카드가 스스로 움직였다는 건 제가 보고한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그 움직임이 무엇을 증명하는지는 별도로 확인하겠습니다."
그의 말에 나는 마음이 놓였다. 누군가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라 부르거나 이름을 보고 범인이라 단정하는 일은 지난 백이십 화 동안 충분히 겪었다.
강문석이 현장에서 촬영한 자료를 나란히 띄웠다. 독립 카메라에서는 카드가 봉투 안에서 미세하게 펴지는 모습이 찍혔다. 운영망 화면에는 전혀 다른 문장이 기록돼 있었다.
[차도겸-07, 2011년 출근 확인 완료]
"누가 확인했죠?" 나는 물었다.
"없습니다." 강문석이 말했다. "현장 확인자는 공란이에요."
"제가 여섯 시에 회사에 가는 것도 싫어하는 사람인데, 과거에 대리 출근까지 했다고요?"
유나는 심각한 얼굴로 받아쳤다.
"안타깝지만 네 이름을 가진 계정은 성실한 직원인가 봐."
"그 직원한테 밀린 야근수당을 청구할 수 있을까요?"
"먼저 존재부터 입증해."
우리는 폐쇄된 별관에서 조금 떨어진 임시 사무실로 옮겼다. 관리자와 함께 2011년 기록을 조회할 수 있는 단말기를 확보했지만, 전원이 들어오자마자 시스템이 원격 동기화를 요구했다. 시우가 네트워크 선을 뺐다.
"동기화하면 현재 정보로 옛 기록이 덮일 수 있어요. 일단 이미지를 떠서 해시부터 비교하죠."
그는 저온 보관실에 있던 낡은 하드디스크의 파일 목록을 보여 줬다. 출입자 명단은 두 개였다. 하나는 사람들이 지문을 찍고 직접 들어온 물리 출입 기록, 다른 하나는 권한을 호출해 장치를 움직인 논리 출근 기록.
2011년 4월 18일 오전 여섯 시, 물리 출입자는 없었다. 건물 앞 감시 기록에는 정전으로 인한 공백이 있었다. 그런데 논리 출근 기록에는 `차도겸-07`이 있었다.
"그럼 원격에서 열었다는 뜻이에요?" 서아가 물었다.
"가능성 중 하나입니다." 시우는 단정하지 않았다. "나중에 과거 날짜로 입력됐거나, 누군가 장치를 다시 켜면서 옛 시각을 불러왔을 수도 있어요."
나는 화면 아래의 조그만 숫자를 가리켰다.
`접속 회선: 0번 / 연결 실패 17회 / 성공 1회`
"열일곱 번이나 실패하고 한 번 성공했네요."
"누군가 오래된 문을 여는 법을 몰랐거나, 의도적으로 재시도했을 수 있죠." 강문석이 말했다.
영병원은 1998년에 일부 건물이 폐쇄됐고, 이후 보관 자료는 여러 업체를 거쳐 이관됐다. 2011년 재개방은 그중 한 번의 관리 전환과 겹쳤다. 그 사실은 문서에 적혀 있었지만, 정작 관리 전환을 승인한 사람의 서명은 읽기 어려웠다.
나는 옆 페이지를 보다가 멈췄다.
'근무자 동의 확인: 불필요. 비인적 처리로 분류.'
"비인적 처리라는 게 뭐죠?"
"사람이 직접 들어가지 않으니 직원 출근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뜻이었겠죠." 시우가 말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차도겸이라는 사람의 출근이 됐고요."
서아가 의자를 뒤로 밀었다.
"시스템에 들어간 권한과 사람이 한 행동을 계속 한 줄에 적어 놓으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시우는 화면에 두 장의 근무 카드를 띄웠다. 첫 카드에는 `차도겸`이라는 이름이 굵게 표시됐고, 두 번째 카드에는 `사용자 미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가 두 카드를 겹치자 이름이 없는 사람의 출근 시각이 차도겸의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화면을 만들면 보는 사람이 속기 쉽죠." 시우가 말했다.
"속이는 쪽이 화면을 만들면 더 쉽겠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서 인터페이스에 표시된 텍스트만으로 증거를 삼지 않는 겁니다."
그는 오래된 백업을 읽는 도구의 버전을 확인했다. 저장 형식이 바뀔 때마다 시간대 정보와 사용자 이름을 해석하는 규칙도 바뀌었다. 메모 하나에는 '미지정 코드를 기본 관리자 이름으로 매핑'이라는 문장이 있었다. 그 문구를 처음 읽은 사람은 편의를 위한 기능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수천 건의 기록이 쌓인 뒤에는 기본 이름을 가진 사람이 모든 일을 한 것처럼 보이게 됐다.
나는 회사에서 로그를 정리하다 `UNKNOWN`이라는 값을 함부로 하나의 계정으로 합친 일을 떠올렸다. 장애가 난 날 우리는 누가 어떤 요청을 보냈는지 한참 헤맸다. 다행히 그때 문제는 회원의 장바구니가 잘못 표시된 정도였다. 여기서는 한 사람의 살아온 날짜가 달라졌다.
"관리자 이름 하나만 바꿔도 과거 근무자가 수백 명 바뀌겠군요."
시우는 마우스에서 손을 뗐다.
"그래서 고치기 전에 복제본부터 만드는 겁니다. 원래 잘못된 기록도 왜 그렇게 됐는지 보여 주는 증거니까요."
우리는 처음부터 두 개를 나누기로 했다. 파일 앞에는 '계정 사용', 뒤에는 '확인된 현장 인물 없음'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당연해 보이는 구분이 기록 속에서는 스물여덟 년 동안 사라져 있었다.
백업 파일을 복제한 다음 실제로 하나를 열어 보니, 첫 줄의 시각이 현실의 시각과 같았다. 2026년 오늘의 날짜였다. 그런데 파일 설명에는 `2011년 출근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나는 파일을 다시 열고 저장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복제본에조차 현재의 열람 시각이 덧씌워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록을 보면 개발자들이 다 의심스러워지겠어요." 내가 말했다.
"개발자는 원래 의심하면서 일하는 사람이잖아." 서아가 대답했다.
그 말은 맞았다. 프로그램에 '성공'이 뜬다는 이유만으로 성공한 게 아니었다. 누가 실패했는지도 봐야 했다.
시우는 문서 속 `접속 회선 0번`이라는 값이 실제 회선 번호가 아닐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일부 장치는 오류가 나면 없는 포트에도 0을 넣었다. 우리는 0번이 특별한 비밀 통로라는 식으로 기록하지 않았다. 오히려 제대로 연결되지 않은 자리를 나중에 누군가 임의의 사람 이름으로 메웠을 가능성이 더 컸다.
나는 그때부터 화면에 표시되는 '확인 완료'라는 말을 한 번도 그대로 믿지 않았다. 완료란 무엇이 끝났다는 뜻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했다. 사람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뜻일 수도 있고, 프로그램이 오류 없이 숫자를 썼다는 뜻일 수도 있었다.
점심 무렵 남 형사가 2011년 당시 시설을 담당한 사람의 연락처를 찾아 왔다. 이름은 최윤재. 당시 야간 보안 설비 업체 직원이었고, 지금은 작은 전기 수리점을 운영한다고 했다. 연락이 닿자 그는 우리가 보낸 카드 사진을 한참 보고 있었다고 했다.
"그 카드 아직 있어요?" 그가 물었다.
"보존 중입니다. 사진으로 확인하셔도 됩니다."
"뒷면에 세 번째 문이 그려져 있죠?"
"맞습니다."
전화 너머에서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제가 그린 겁니다. 출입구가 세 개여서가 아니에요. 둘을 잠그고도 한 사람의 말은 밖으로 나올 길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나는 전화기를 내려다봤다.
"사람의 말이요?"
"그때 그 장치는 사람보다 기록을 먼저 내보냈습니다. 나는 그게 무서웠어요. 밖에서는 누군가 돌아왔다고 적히는데, 안에선 계속 집에 보내 달라는 소리가 났으니까."
남 형사가 그 말을 메모하고, 동의를 구해 통화를 녹음했다.
"2011년에 문을 열었던 사람을 알고 계십니까?"
노인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문을 말하는 겁니까. 버튼을 누른 사람? 그 버튼을 설치한 사람? 그 버튼으로 누군가를 가둬도 된다고 허락한 사람?"
세 가지 모두 다른 사람일 수 있었다.
우리는 다음 날 수리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전화를 끊자 서아가 내 수첩의 한쪽을 가리켰다.
"방금 이야기, 세 개의 문이랑 똑같지 않아?"
나는 새 페이지에 세 줄을 그었다.
'버튼을 누른 사람.'
'문을 다시 연결한 사람.'
'그 문이 닫히지 않게 만든 사람.'
그러자 멈춰 있던 시계가 한 번 울렸다.
[출근하지 않은 개방자 확인 절차]
[질문 1: 개방 지시의 원본을 찾으십시오.]
누군가 우리에게 정답을 알려 주려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저 화면도 사람들을 속여 온 운영망의 일부일 수 있었다.
나는 안내를 지우지 않고 별도 항목에 옮겼다. 증거로 보존하되 명령으로 따르지는 않기 위해서였다.
그날 저녁, 최윤재에게서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 오래된 배전반 앞에 젊은 남자가 서 있었다. 얼굴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그의 손에는 커다란 붉은색 스위치가 들려 있었다.
사진 뒤편 종이에는 단 한 줄이 적혀 있었다.
'2011년 4월 18일, 두 번째 시도는 오전 여섯 시가 아니었다.'
사진을 확대하자 벽시계는 다섯 시 오십구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군가 여섯 시가 되기 전에 문을 열려 했던 것이다.
제122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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