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정수.
아버지 이름이 적힌 화면을 보는 동안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이름은 내게 사람의 이름이었다. 함께 밥을 먹고, 고장 난 선풍기를 고치고, 내가 처음 작성한 프로그램을 보고 이상한 표정을 짓던 사람의 이름. 그런데 보관국은 그 이름을 마지막 현장 책임자라는 직함으로만 취급했다.
"이제 또 아버지가 대신 책임지라는 거군요." 내가 말했다.
강문석이 화면을 확대했다.
"그렇게 읽히긴 합니다. 다만 누가 실제로 호출을 받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돌아가신 사람에게 문서를 보낸들 무슨 소용이겠어요."
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어머니는 아버지가 언제 떠났는지 기억하고 계셨다. 나 역시 그의 마지막 손을 놓았던 날을 기록으로 알고 있었다. 그 기억의 일부는 이미 보관국에 빼앗겼지만, 기록이 사라졌다고 죽은 사람이 다시 책임자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남기혁 형사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버스 운전석의 남자가 형이었는지 확인할 자료를 조금 더 찾았다고 했다. 옛 휴게소 정비 원장에는 '귀환 차로 관리 보조 — 남도윤'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필체와 서명은 다른 자료와 비교 중이었다.
"형사님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나고 싶습니까?"
"네. 아주 많이요. 그렇지만 그 사람이 형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우리 집으로 데려가지 않을 겁니다. 어머니도 스스로 만날지 결정하실 수 있어야 하니까요."
그의 목소리는 단단했다. 나는 그가 버스 앞에서 울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때와 지금 어느 쪽이 더 용감한지 비교할 수 없었다. 한 사람은 잃어버린 가족을 보고 울고, 다른 사람은 그 가족을 찾기 위해 성급한 확신을 미루고 있었다.
강문석과 서아는 1998년 원본 장치의 문서를 대조했다. 원래 귀환 장치에는 아주 짧은 규칙이 있었다.
'귀가를 확인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직접 본 범위만 기록한다.'
그 밑에 차정수의 글씨와 비슷한 필체로 한 줄이 더 있었다.
'보지 못한 출발과 도착을 연속된 하나의 근무로 계산하지 않는다.'
나는 그 문장을 읽다가 이상한 걸 알아챘다. 운영망은 사람의 출발과 도착을 연결해 하나의 퇴근으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1998년 장치의 원래 목적은 그 반대였다. 출발한 사람과 도착한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그리고 정말 도착했는지 따로 관측하도록 만든 것이었다.
"누군가 장치의 용도를 뒤집어 놓았군요."
"그럴 가능성이 높아요." 시우가 말했다. "우리가 가진 변경 이력에서 2011년부터 '도착 확인'이 '도착 예정'과 같은 값으로 처리되는 부분이 보여요."
"예정만 되어도 귀가 완료가 되는 건가요?"
"일부 경로에서는요. 그래서 실제로 돌아오지 않았는데도 돌아왔다고 적힐 수 있습니다."
내가 눈을 감았다. 4,183건의 출입 기록이 처음부터 사라진 사람 4,183명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는 출발 기록만 있었고, 누군가는 도착 확인이 빠져 있었고, 누군가는 같은 경로를 두 번 통과했다. 그 숫자를 한 번에 해결하려는 욕심 때문에 더 많은 사람이 위험해졌다.
"그럼 171건은요?" 내가 물었다.
시우는 두 자료를 겹쳐 보여 주었다.
"171건은 '귀환 완료'로 처리됐지만 외부의 직접 확인 기록이 없는 건들입니다. 지금 우리가 보류한 건 이 항목들이에요. 실제로 귀가했는데 확인 기록만 없는 사람도 있을 수 있고, 이수민 씨처럼 귀가하지 못했던 사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171명을 구했다고 말할 수도, 171명이 아직 갇혀 있다고 말할 수도 없는 거네요."
"맞아요."
답은 실망스러웠다. 나는 오늘만큼은 큰 승리를 원했다. 소설 속 주인공이라면 아버지의 숨겨진 장치를 가동해 모든 사람을 구하고, 돌아온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장면쯤은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우리 앞에 있는 건 복잡하고 오래된 사람들의 삶이었다. 한 번에 해결할 수 없다는 이유로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날 오후, 우리는 종점 처리실의 남은 장부를 다시 확인했다. 이상하게도 2011년 정비 영수증의 맨 뒤에는 어제 없던 작은 첨부물이 있었다. 원본에 원래 있던 종이인지, 누군가 새로 넣은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나는 그것을 확정적인 증거라고 부르지 않고 사진으로만 남겼다.
첨부물에는 보관국 내부의 야간 근무표가 찍혀 있었다.
[근무 구간: 2011.09.14 18:00 — 종료 시각 미정]
[담당자: 차도겸]
[제7차 분기: 연결]
[대체 관측자: 남도윤]
"또 제 이름이군요."
나는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몇 명이 내 이름으로 야근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우리 회사 인사팀이 이 사실을 알면 연장 근무 수당부터 계산하려 할지도 모른다. 물론 회사는 내가 시간 정지에 들어간 한 시간을 휴게시간으로 처리할지도 몰랐다.
유나가 내 농담을 듣고 웃었다. 잠시 얼굴이 풀어졌다가 다시 진지해졌다.
"그런데 이건 그냥 이름을 베껴 쓴 문서가 아닐 수도 있어."
"왜요?"
"여기, 마지막 줄을 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차도겸은 2011년에 이곳에 있지 않았다. 차도겸이라는 이름의 담당 권한이 이곳에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천천히 읽었다. 아버지와 관련된 오래된 권한이 훗날 나에게 넘어왔고, 그 권한이 2011년에도 내 이름으로 표시됐다는 설명이 가능해졌다. 실제 사람이 시간 여행을 했다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렇다면 2011년의 여자에게 자신을 차도겸이 아니라고 말한 남자는 누구였을까. 그 질문이 남았다.
시우가 화면을 넘겼다. 귀환 차로의 운영 기록 가운데 낯선 파일이 하나 있었다. 파일명은 `WITNESS_ORIGINAL_1998`, 마지막 수정일은 바로 어제였다.
"이건 누가 수정했어요?" 내가 물었다.
"서명은 없습니다. 대신 접근 경로가 있어요."
그는 낡은 버스 회로도를 띄웠다. 뒤쪽 문과 운전석 사이에 작은 연결선이 있었다. 그 선이 이어지는 곳은 우리가 몰랐던 세 번째 출입구였다.
[차량 하부: 제3 귀환문]
나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첫 번째는 사람들이 올라타는 문, 두 번째는 스스로 내리겠다고 말할 때 열리는 문. 세 번째는 보이지 않았다. 그 문은 누구를 위해 만든 것일까.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 표시는 없었다.
유나는 종이 위에 세 개의 작은 문을 그렸다. 첫 번째 문 위에는 '타는 곳', 두 번째 문 위에는 '내리는 곳', 세 번째 문 위에는 물음표가 있었다.
"그거 제가 수첩에 먼저 그린 그림보다 훨씬 낫네요." 내가 말했다.
"너는 사람 다리를 세 개나 그렸잖아."
"그건 당시 긴박한 상황을 표현한 예술적 기법입니다."
"네가 예술을 한다고? 아주 위험한 신호네."
우리는 잠깐 웃었다. 하지만 그림 속 세 번째 문은 웃고 넘어갈 수 없었다. 출입구가 세 개라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길이 있다는 뜻일까. 아니면 누군가 앞과 뒤의 문을 모두 닫아 놓고, 보이지 않는 길로 사람들을 빼돌렸다는 뜻일까.
나는 아버지가 어릴 적 그려 주던 간단한 도면을 떠올렸다. 장난감 자동차에 달린 작은 스위치, 건전지의 양극과 음극을 연결하는 전선. 아버지는 언제나 도면 끝에 작은 빈칸을 남겨 놓았다. 내가 이유를 물으면 '나중에 네가 알게 된 걸 적으라고' 했다.
그 기억이 진짜인지, 잃어버린 기억을 대신 만들어 낸 장면인지 자신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지금도 빈칸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은 분명했다. 나는 유나의 세 번째 문 아래에 '미확인'이라고 썼다.
빈칸을 채우지 않아도 이야기가 끝나는 건 아니었다. 오히려 아무 이름이나 써 넣지 않기 위해 우리는 계속 살아 있어야 했다. 나는 받지 않았다. 음성 메시지가 하나 도착했고, 남 형사와 서아가 보는 앞에서 재생 여부를 결정했다. 발신 경로는 확인되지 않은 상태였다.
우리는 안전하게 복제한 파일에서 소리만 들었다.
'차도겸 씨.'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제 버스 운전석에 앉아 있던 사람과 비슷하게 들렸다.
'그날 171건을 한꺼번에 구하지 못한 건 실패가 아닙니다. 다만 아직 차 밑에 남은 문이 있어요.'
짧은 잡음이 났다.
'기혁이한테는 내 이름을 먼저 말하지 마세요. 본인이 기억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확인하게 해 주세요.'
이어 낡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한 가지. 차정수 씨는 1998년에 그 문을 닫았습니다. 그런데 2011년에 누군가 다시 열었어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사람 누구야?"
음성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마지막 문장을 남겼다.
'내일 아침 여섯 시, 그 문을 열었던 사람이 다시 출근합니다.'
파일이 끝났다.
우리 앞의 화면에는 새로운 시각이 나타났다.
[06:00:00]
[귀환 차로 재개 예정]
[최초 출입자 확인: 대기]
아버지의 이름이 적힌 호출장 아래, 지금까지 가려져 있던 또 다른 이름의 첫 글자가 드러났다.
구.
나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름 하나만으로 죄를 확정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구태형이 정말 무엇을 했는지 확인할 기회가 왔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수첩 마지막 장에 적었다.
'171건은 아직 확인 중. 이수민 씨의 안전 확인 계속. 남도윤의 신원 미확인. 차정수의 계약 원본 확인. 그리고 내일 오전 여섯 시, 차 밑의 세 번째 문.'
무언가를 적을 때마다 내 손은 자꾸 떨렸다. 나는 휴대전화를 들어 어머니에게 전화했다. 어머니는 내가 왜 이렇게 늦게까지 밖에 있는지 물었다.
"엄마. 이번에는 꼭 퇴근해서 집에 갈게."
"그래. 밥 해 놓을게."
그 짧은 대답을 듣고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처음 이 일이 시작되던 날에도 나는 여섯 시에 퇴근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세상이 멈춰도 변하지 않는 소원이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 혼자만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제120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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