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가장 긴 기다림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팀장의 퇴근 허락을 받는 시간이 아니었다.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를 만나도 되는지 결정하기를 기다리는 시간이었다. 이수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자는 신원 확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었다. 아직 모든 절차가 끝나지 않았지만, 담당자의 도움을 받아 가족에게 연락하는 방식을 함께 논의하고 싶다고 했다.
"가족이 원하면 만나게 하면 되지 않습니까?" 내가 물었다.
서아가 나를 바라봤다.
"그분이 가족을 만날 준비가 됐는지도 중요해."
"그렇죠."
나는 말을 고쳐 삼켰다. 구하고 싶은 마음이 너무 앞서서 정작 당사자의 마음을 먼저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실수는 지금까지 여러 번 했다. 이번에는 수첩을 열어 두지 않았다. 내 생각보다 그 사람의 말을 더 오래 듣기로 했다.
병원 상담실에서 여자에게 편안한 자리를 내주었다. 그녀는 자기 가방을 무릎에 올려놓고 앉았다. 사진 속에서 봤던 갈색 가방이었다. 끈 한쪽이 해져 있었고, 지퍼에는 작은 인형이 매달려 있었다. 정말 2011년의 물건인지 검사해 봐야 알겠지만, 가방을 쥐는 손놀림만큼은 오래 사용한 물건을 대하는 사람의 것이었다.
"가족을 만나고 싶으세요?" 담당자가 물었다.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다시 저었다.
"보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알던 얼굴이 아닐 거잖아요. 엄마는 늙었을 거고, 지연이는……"
목이 메는 듯 말을 멈췄다.
"저도 늙었나요?"
그 질문에는 누구도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울을 한 번 보고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 의학적 검사가 진행 중이었고 나이는 서류로만 알 수 있었다. 그렇더라도 십오 년을 잃었다는 느낌은 숫자로 계산할 수 없었다.
그녀는 손을 내려놓고 작게 웃었다.
"제가 없어지는 동안 사람들은 계속 밥을 먹었겠네요. 생일도 지나갔고. 누군가는 결혼했을 수도 있겠고."
"네." 내가 말했다. "그랬을 겁니다."
"그게 제일 이상해요. 내가 없는 시간에도 세상이 잘 돌아갔다는 게."
나는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내 시간 정지가 처음 일어났던 날에도 세상은 한 시간 뒤에 다시 돌아갔다. 나 혼자 무서워했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 일을 겪지 않았다. 돌아왔다는 사실이 곧 잃은 시간을 되찾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여자가 자신의 가방에서 구겨진 종이를 꺼냈다. '동생 지연이 생일엔 먼저 집에 간다'는 문장이 적힌 쪽지였다.
"이게 제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약속이에요. 지연이 생일이었거든요."
"지금도 직접 전화하고 싶으십니까?"
여자는 잠시 고민했다.
"먼저 목소리만 듣고 싶어요. 갑자기 만나면 저는 울 것 같아요."
담당자가 안전한 방법으로 연락을 조정했다. 상대에게도 충분히 설명하고, 통화 여부를 스스로 정할 기회를 주었다. 우리가 중간에서 둘의 마음을 대신 정하지 않았다.
기다리는 동안 나는 복도 창가에 앉았다.
유나는 편의점에서 물 두 병과 주먹밥을 사 왔다. 나는 뜯어 보지 않은 주먹밥을 손에 쥐고 한참 앉아 있었다. 배는 고팠지만 이상하게 목에 걸릴 것 같았다.
"또 책임감에 체했어?" 유나가 물었다.
"이렇게 돌아온 사람이 또 생기면 어떡하죠. 한 명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우리가 다 감당해야 하는 건 아니야."
"그런데 우리가 모른 척하면, 누가 알아봐 주죠?"
유나가 내 옆에 앉았다. "모른 척하지 않는 것과 모든 일을 우리가 직접 하는 건 다른 거야. 저분에게는 저분의 가족이 있고, 도움 줄 기관이 있고, 저분 자신이 있어. 우리는 그 사이에 있는 사람인 거지."
나는 손에 쥔 주먹밥을 내려다봤다. 포장지에 적힌 소비기한은 내일이었다. 평범한 날짜 하나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앞으로 흘러가는 시간이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저분에게 내일이 있다는 거네요." 내가 말했다.
"그래. 그리고 우리한테도."
유나는 주먹밥 포장지를 먼저 뜯었다. "그러니까 먹어. 배고프다고 전원을 끄고 아무거나 누르기 전에."
나는 웃고 말았다. 업무 서버 장애가 나면 야식부터 시켜 먹던 개발자의 본능이 어디 가겠는가. 한입 베어 무는 순간 병원 복도를 지나던 간호사가 우리 쪽을 바라봤다. 우리는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세상이 멈추는 일보다 이곳에서 음식 먹다가 혼나는 일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남 형사는 잠시 뒤 전화했다. "가족들에게 확인되지 않은 희망을 먼저 보내지 말아 주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민 씨가 직접 남긴 말이 있다면, 본인이 허락하지 않는 한 외부에 공유하지 마세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누군가의 인생을 처음부터 다시 기록하는 일은 조회수를 얻을 만한 신기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이 아니었다. 그 사람의 남은 시간을 지키는 일이었다. 남기혁은 따로 담당자에게 자료를 인계하고 있었다. 그가 어제 본 버스 운전석의 남자를 형으로 확신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기록에 남겼다. 기혁에게 그 일은 용기가 필요했다. 동생이라면 형이라고 부르고 싶었을 테니까.
한 시간이 지나 여자는 통화할 준비가 되었다고 말했다. 상담실의 문은 닫혀 있었고 우리는 밖에서 기다렸다. 안에서 어떤 말이 오갔는지 듣지 않았다. 몇 분 후 문이 열렸을 때 그녀의 눈은 붉었다.
"지연이가 저보다 나이가 많아졌대요." 그녀가 말했다.
그 말이 이상했다. 여동생이 언니보다 나이가 많아졌다는 표현이 숫자로는 말이 안 되지만, 그 마음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뭐라고 하던가요?" 내가 물었다.
"언니가 돌아왔다고 말해 줘서 고맙대요. 그런데 아직 믿기 어렵다고요."
여자는 웃으면서 눈물을 닦았다.
"그래서 제가 그랬어요. 나도 안 믿긴다고. 일단 내일 다시 통화하자고."
나는 그 대답이 좋았다. 누군가를 만나 한 번에 모든 것을 회복할 수 있다고 약속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시간 정지에서 돌아온 사람에게도 시간이 필요했다.
그런데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 급히 걸어왔다. 강문석이었다. 그의 얼굴이 굳어 있었다.
"운영망에서 공식 귀환 확인서를 보내 왔습니다."
"좋은 소식 아닌가요?"
"내용을 봐야 합니다."
그가 보여 준 화면에는 병원 이름과 수민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직 신원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도, 운영망은 이미 귀환 완료라며 전자서명을 요구하고 있었다.
[귀환 확인자: 이수민]
[171건 귀환 처리의 최종 증인으로 간주]
[기한: 오늘 23:59]
나는 화가 치밀었다.
"한 사람을 내보내 줬다고 다른 170건까지 증명하라고요?"
"더 심각한 건 이 문장입니다." 강문석이 말했다.
[당사자 미서명 시 보호 협력기관을 통해 대리 확인]
처음부터 같은 수법이었다. 사람이 결정을 늦추면 누군가 대신 한다고 했다. 이번에는 병원이나 보호 기관까지 이용하려 했다.
서아가 단호하게 말했다.
"그 협력기관에 바로 알려야 해. 사실관계가 불명확한 전자 확인서가 왔고, 대리 서명을 유도하고 있다고."
담당자는 안내를 받자 문서를 증빙 자료로 보존하겠다고 했다. 수민에게 서명을 요구하지 않았고, 어떤 종류의 자동 전달도 허락하지 않았다. 우리는 공식 절차에 필요한 사실만 전했다. 초자연적 장치라는 설명보다 '신원이 확정되지 않았고 본인이 동의하지 않았다'는 두 문장이 더 중요했다.
그날 밤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수민 씨가 확인서 내용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우리는 해당 문서가 무엇을 뜻하는지 설명하고, 검토할 시간을 갖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잠시 후 그녀가 직접 전화를 걸어왔다.
"저는 지금 여기 있는 것밖에 증명할 수 없어요. 다른 사람이 집에 돌아온 건 제가 본 적 없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말했다.
"그러면 확인서에 그렇게 적어도 되나요?"
나는 서아를 바라봤다. 서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의 말이었고, 누구도 그 말을 대신 써 줄 필요가 없었다.
여자는 서류의 빈칸에 한 문장을 적었다.
'나는 나 자신이 여기 도착한 것을 압니다. 다른 사람의 귀가를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운영망이 그 문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일괄 귀환 증인 확보 실패]
[상위 현장 책임자 소환]
호출 대상의 가려진 이름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것을 느꼈다. 화면이 또 나를 찾으려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이름은 달랐다.
차정수.
오랫동안 사라진 아버지가 171건의 마지막 현장 책임자로 호출되고 있었다.
제119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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