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윤이 운전자가 아니라 내리는 문을 지키고 있었다.
그 문장을 읽는 순간, 내가 버스의 방향을 잘못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줄곧 앞문이 열리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앞문은 과거 기록을 다시 태우는 입구였다. 귀환을 막는다는 이름으로 사람을 다시 안쪽으로 밀어 넣는 문.
"내리는 문이 어디죠?" 내가 물었다.
유나가 버스 중간의 접이식 문을 가리켰다. 오래된 시외버스의 실제 구조와 맞지 않는 위치에 작은 출구가 있었다. 그쪽에는 노란 손잡이가 하나 붙어 있었다.
[하차 전용]
[승객의 직접 요청이 있을 때만 개방]
"이건 누르면 되는 거네요." 내가 말했다.
"대신 누르지 말고." 서아가 짧게 덧붙였다.
나는 손을 내렸다. 그 한마디가 이제는 몸에 배었다. 나도 누군가를 구하는 영웅이 되고 싶을 때가 있었다. 한 번 버튼을 누르면 수십 년 갇힌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모두가 나를 향해 박수를 치는 장면. 하지만 이곳에서는 영웅이 되려고 서두를수록 누군가의 권리를 빼앗을 위험이 컸다.
버스 안쪽의 여자가 중간 문을 향해 걸어왔다.
여자가 처음 움직이기 전에 중간 출입구의 손잡이가 잠깐 떨렸다. 나는 버스 옆에 떨어진 낡은 안내문을 보았다. 글자 중 일부는 젖어서 읽기 어려웠지만, 가운데 한 줄만 또렷했다.
'승객은 직접 하차를 요청할 수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누군가 볼펜으로 적은 작은 문장이 있었다.
'직접 말할 수 없는 승객에게도 기다릴 시간을 주세요.'
나는 그 글씨가 아버지 것일 거라고 생각했다가 곧 수첩에 '필체 미확인'이라고 적었다. 그 이름만 보이면 아버지를 떠올리는 습관이 생겼다. 아버지가 남기지 않은 말까지 남겼다고 믿어 버리면 나 자신이 가장 싫어하던 기록 조작을 하는 셈이었다.
버스 안쪽에서는 신발 끄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세 걸음 걷고 멈췄다. 문으로 나오는 길이 무서운 듯했다. 우리가 문밖에 서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그 여자를 안심시킬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그녀에게 우리는 갑자기 다른 시간에서 나타난 낯선 얼굴일 뿐이었다.
"우리가 뒤로 물러나죠." 서아가 말했다.
남 형사와 나는 문에서 몇 걸음 떨어졌다. 버스의 유리창에 비친 우리 그림자가 작아졌다. 여자는 한 걸음 더 걸었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 순간 휴게소의 멈춘 자판기가 잠깐 울렸다. 삐, 하는 한 음절. 나는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화면에는 2011년의 광고가 잠깐 떠올랐다. 그 시절 유행하던 음료의 그림이었다. 문 안의 여자는 그 그림을 보고 멈춰 섰다.
"저걸 알아보는 것 같은데?" 유나가 속삭였다.
"그런 것 같아. 하지만 어디서 봤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서아가 대답했다.
여자는 자판기를 오래 바라봤다. 누군가가 낯익은 물건을 확인할 때의 표정이었다. 우리는 그 표정을 그녀의 신원 증명으로 쓰지 않았다. 대신 멈춘 여섯 시 안에서 어떤 일상적 기억이 남아 있는지 알 수 있는 작은 장면으로 간직했다. 그 이동만큼은 분명해 보였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유리에 맺힌 손자국도 조금씩 사라졌다. 여자가 문 앞에 서자 낡은 손잡이가 아래로 움직였다.
[하차 요청: 1건]
[신원 확인: 미완료]
[외부 보호자 지정: 미완료]
문이 열리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본인이 나가겠다는데 왜 못 나가게 하는 거야?"
서아가 화면의 작은 문장을 읽었다.
[외부 보호자 지정 실패 시 하차 요청 취소]
우리는 그 문구를 보고 동시에 서로를 바라봤다. 누군가를 보호한다며 서명하게 한 뒤, 그 서명을 책임 인수로 바꾸던 수법과 똑같았다. 보호자를 지정해야 나갈 수 있다고 하고, 보호자가 없으면 다시 보관한다.
"보호자가 없어서 사람이 갇히는 구조는 잘못됐어." 유나가 말했다.
"미확인 상태로 나간 뒤 보호를 받을 수 있어야 해." 서아도 말했다.
남 형사가 앞으로 나섰다. 그는 경찰 수첩이나 형사증을 꺼내지 않았다. 지금 그는 실종자의 동생이자, 그 실종을 남의 이름으로 덮지 않겠다고 약속한 사람이었다.
"본인이 원하면 안전하게 이동할 장소를 마련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누군지부터 모르시는 분에게 제 서명을 강요하진 않겠습니다."
그 말을 들은 여자가 문손잡이를 다시 눌렀다. 우리는 그녀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 없었다. 대답을 기다리는 짧은 침묵이 왔다. 바로 그때 시계가 18:09를 가리켰다.
[하차 요청 처리 대기]
[잔여 시간: 02:00]
휴게소 바닥의 과거 승강장 선이 조금씩 뒤로 밀리기 시작했다. 곧 버스가 다시 출발하려 한다는 뜻이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옆의 소화기함을 봤다. 유리를 깨고 강제로 문을 열어 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유리 너머의 여자가 우리의 도움을 원한다고 말한 적은 아직 없었다.
"말 대신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자." 유나가 제안했다.
그녀는 흰 손수건을 꺼냈다. 네 귀퉁이를 구분할 수 있도록 검은 점을 하나 그렸다. 그리고 손수건을 펼쳐 버스 문 앞에 보여 주었다. 손가락으로 자기 몸을 가리킨 뒤, 손수건을 가리켰다. 이건 우리 물건이라는 뜻. 이어 손수건을 땅에 놓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만약 안쪽 사람이 스스로 다가올 수 있다면 그 사람의 움직임이 우리의 힘에 끌리지 않았음을 적어도 조금은 확인할 수 있었다.
중간 문 아래에 좁은 틈이 생겼다. 손수건 한 귀퉁이가 틈 안쪽으로 끌려갔다가 다시 나왔다. 검은 점 옆에 작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나오고 싶어요.'
나는 입 안쪽을 깨물었다. 감격해서 소리를 지르려다 참았다. 이 문장을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아직 모르지만, 적어도 그 사람의 의사로 읽을 만한 신호가 나타났다.
그때 화면이 바뀌었다.
[승객 직접 하차 요청 확인]
[보호 장소 지정: 승객의 사후 선택]
"됐어." 서아가 숨을 들이켰다.
그러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이유가 마지막 줄에 나타났다.
[하차의 증인 1명 필요]
우리는 다시 세 사람을 바라봤다. 지금 여기 있는 사람들 누구라도 증인이 될 수 있을까. 남 형사는 서둘러 서명할 수 없다고 먼저 말했다. 그가 자신의 가족 일에 직접 연결돼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서아는 문구를 기록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유나가 손을 들었다.
"내가 보겠어. 내가 본 행동만 증언할게. 누군지, 어디서 왔는지는 말하지 않을 거야."
버스 중간 문 옆에 작은 종이가 나타났다. 유나는 읽고 또 읽었다. 거기에는 승객의 안전을 보장한다는 과장된 조항도, 귀환 결과를 대신 책임진다는 문구도 없었다.
[관측 내용: 승객이 직접 손수건에 하차 의사를 적는 장면]
[관측 한계: 승객의 신원과 과거 이동 경로는 미확인]
유나는 자신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 눈으로 나를 가리켰다.
"도겸아, 기록해. 내가 뭘 했는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나는 수첩에 시간과 행동을 적었다. 버스 중간 문이 조금씩 열렸다. 여자의 신발이 한 짝 보였다. 그 신발이 주차장 바닥에 닿자 철거된 승강장 선과 현재의 흰 주차선이 동시에 흔들렸다.
여자는 한 걸음 나왔다. 그리고 바로 주저앉았다.
우리는 달려들지 않았다. 그녀를 놀라게 할까 봐 거리를 두고, 다쳤는지 물었다. 여자는 오랫동안 숨을 고르더니 자기 가방을 가리켰다.
"가방을…… 주세요."
목소리가 들렸다. 녹음된 목소리와는 달랐다. 숨이 끊기고 갈라지는 살아 있는 사람의 목소리였다.
나는 눈앞의 여자를 보았다. 얼굴은 2011년 사진과 닮아 있었지만 같은 사람인지 아직 알 수 없었다. 그녀의 발치에 그림자가 생겼다. 현실의 빛을 받는 그림자였다.
[18:10:17]
[귀환 상태: 검증 대기 1건]
그때 중간 문 뒤에서 누군가가 크게 외쳤다.
"도겸 씨! 그 여자만 내리게 하고 차를 보내요!"
낯선 남자의 목소리였다. 그런데 내 이름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운전석에 사람이 보였다. 어른 남자였다. 눈가에 깊은 주름이 있었고 왼쪽 손에는 동그란 손목시계가 감겨 있었다.
남기혁이 들고 있던 승차권이 바닥에 떨어졌다.
"형……?"
운전석의 남자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확인하지 마. 이 차가 두 번째 출발을 하면 네가 알던 이름들이 다 뒤집혀."
그는 손목시계를 들어 보였다. 시계 바늘은 여섯 시 십일 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먼저 이 버스를 빈 차로 보내야 해."
제115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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