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남도윤이 아닙니다.'
버스 뒷유리에 적힌 글자를 읽자마자 남기혁 형사는 한걸음 물러섰다. 그가 찾는 형의 이름을 부정하는 문장이 그를 오히려 더 아프게 한 것 같았다.
"그럼 누구야?" 내가 중얼거렸다.
손자국은 바뀌지 않았다. 차창 안쪽의 누군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을지도 몰랐다. 문제는 보이는 것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언제나 같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보관국은 이름을 붙이고 서명을 복사하는 방식으로 사람을 가뒀다. 그 시스템 안에서는 '나는 남도윤이 아니다'라는 말조차 누군가가 남도윤의 이름을 다시 사용하려는 속임수일 수 있었다.
오유나가 뒷창문 아래 번호판을 살폈다.
"여긴 좌석 번호가 열아홉까지만 있네."
"버스에 서른 몇 좌석은 있잖아요." 나는 물었다.
"실제 버스에는 그렇지. 그런데 화면에 표시된 탑승 좌석은 열아홉까지야."
나는 1998년 남기혁 가족의 승차권을 떠올렸다. 좌석 18번과 19번. 그리고 미탑승 확인이 적힌 20번 자리. 그동안 우리는 20번에 누가 앉으려 했는지를 추적했다. 하지만 정말 누군가 앉았을까?
나는 안내판을 읽었다.
버스 옆면에는 원래 목적지가 적혀 있던 홈이 있었다. 종점 이름이 낡아서 읽히지 않았다. 나는 손전등을 비춰 글자를 확인하려 했다. '영병원'처럼 보이다가 곧 '우리 집'처럼도 보였다. 내가 보고 싶은 문구를 눈이 제멋대로 완성하는 것 같았다.
"조명 각도를 바꿔 봐." 유나가 말했다.
그녀가 옆에서 빛을 옮기자 긁힌 자국만 남았다. 글자는 아니었다. 나는 괜히 머쓱해졌다.
"제 눈이 또 시간을 넘겨버렸네요."
"눈은 원래 그렇게 보기도 해. 믿고 싶은 모양을 만들지." 유나가 말했다. "그래서 한 명만 보면 안 되는 거야."
서아는 그 자리를 사진과 그림으로 따로 남겼다. 남 형사는 그 모습을 오래 지켜봤다. 가족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자신의 눈이 만들어 낸 가족의 흔적을 얼마나 믿고 싶은지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후면 보관칸: 수령 예정자 미정]
[좌석 20번: 승객이 아닌 보관 대상]
서아가 소리 낮춰 말했다.
"스무 번째 자리는 빈 좌석이 아니라 보관칸이야. 누가 탔던 자리를 비웠다는 뜻이 아닐 수도 있어."
"그럼 이 자리에서 남도윤 씨가 사라졌다는 것도 아직 확실하지 않군요."
"도윤 씨가 사라졌다는 가족의 기록은 있어. 하지만 그 장소가 여기인지 다른 곳인지는 구분해야 해."
남기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이 사람이 지금 어떤 희망을 붙잡고 버티는지 생각했다. 형이 버스 안에 있었다면 찾아낼 수 있을 것 같고, 없었다면 처음부터 다시 찾아야 한다. 둘 다 두려운 결론이었다.
버스 출입구 옆에 작은 손잡이가 나타났다.
[후면 보관칸 긴급 개방]
[개방 시 앞쪽 귀환 171건에 대한 보류 요청 취소]
"이걸 열면 앞사람들을 다시 태우는 거네요." 내가 말했다.
"그렇게 설계했겠지." 서아가 대답했다. "궁금한 걸 열어 보려는 사람에게 다른 사람의 권리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식."
나는 손잡이에서 눈을 떼었다. 이건 선택이 아니라 협박이었다.
노란 손잡이에는 손자국 같은 얼룩이 있었다. 오랜 시간 사용된 흔적일 수도 있고 누군가 일부러 그려 놓은 무늬일 수도 있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다가 손을 뻗지 않았다. 유나가 가방에서 얇은 장갑을 꺼냈지만, 물리적으로 잡을지 말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우리는 동시에 알았다.
"여길 열면 안에 있는 누군가를 볼 수는 있겠지." 남 형사가 말했다.
"네." 내가 대답했다.
"형이 있다고 해도요?"
"형이 있어도요."
그는 마른침을 삼켰다. 우리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가족을 찾을 기회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아무리 옳은 원칙을 이야기해도 덜 아프지 않았다.
남 형사는 오래된 승차권을 다시 펼쳤다. 종이는 가장자리부터 해져 있었다. 어머니가 몇 년 동안 서랍에 넣어 두고, 가끔 꺼내 손으로 펴 봤을 모습이 눈에 그려졌다. 그것은 조사 대상이기도 했지만 누군가에게는 세월이 접혀 들어간 가족 물건이었다.
"저한테는 아직도 18번 자리가 기억납니다." 그가 말했다. "형이 창가에 앉으라고 자리를 양보해 줬어요. 사실은 제가 창가에서 멀미를 더 했는데도요. 형이 그걸 기억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창가 자리에 앉고 싶었나 봐요."
"아뇨. 형은 늘 내가 하고 싶은 말보다 제가 하기 어려운 말을 먼저 알아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묻고 싶어요. 왜 아무 말도 없이 떠났는지."
그의 목소리가 가늘어졌다. 나는 어깨를 두드릴까 하다가 그냥 옆에 섰다. 어떤 위로는 말을 덜 하는 편이 나았다.
우리가 원칙을 지키고 있다고 해서 잃어버린 사람을 덜 그리워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마음까지 차갑게 만들 필요는 없었다. 전자서명 화면에서 '계속' 버튼을 누르면 아래에 숨은 약관까지 전부 동의했다고 처리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개발자였다. 누군가 이런 사용자 화면을 만들어 내게 테스트를 맡겼다면 버그 목록 열 장을 써 주었을 것이다.
"차라리 취소 버튼부터 찾아보죠."
우리는 버스 앞쪽으로 이동했다. 문과 차체의 틈새에는 1998년 차량 번호가 찍힌 작은 금속판이 있었다. 그 위에 현재 운영망의 자산 번호가 덧씌워져 있었다. 서로 다른 두 번호가 같은 버스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유나가 금속판 가까이 손전등을 비췄다. 그 아래에 눈에 익은 문장이 있었다.
'사람의 이름을 문에 달지 말 것.'
"이 문구는 차정수 씨가 남긴 안전 메모와 똑같아." 그녀가 말했다.
나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버지가 이 차를 본 적이 있다면, 그가 만든 귀환 장치가 여기에 쓰였다는 뜻일 수 있었다. 하지만 누군가 아버지 글씨를 베꼈을 가능성도 있었다. 우리는 문구의 형태를 따로 보존했다.
[18:07:04]
[귀환 회차 재개까지 3분 56초]
갑자기 버스 차체가 흔들렸다. 앞유리의 171이라는 숫자가 지워졌다가 다시 나타났다. 차창 안쪽에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금속성이라기보다 누군가 신발 끝으로 바닥을 두드리는 듯했다.
"누가 있어." 유나가 말했다.
"누군지 모르잖아." 서아가 답했다.
"그래도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우리가 앞문으로 돌아가자 투명한 버스 문 너머에 여자 한 사람이 서 있었다. 작업복 위에 얇은 카디건을 입었고, 어깨에는 작은 갈색 가방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 이수민과 닮아 보였다. 그러나 얼굴을 확신할 만큼 뚜렷하지 않았다.
그 여자는 문에 양손을 댔다. 입 모양만 움직였다. 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우리는 손전등으로 '들리지 않는다'는 신호를 보냈다.
그녀가 바닥에 쭈그려 앉았다. 보이지 않는 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문장을 썼다. 글씨가 차창에 뒤집혀 나타났다.
'승차한 적 없어요.'
나는 그 글을 몇 번이나 읽었다.
"수민 씨가 마지막으로 탄 건 버스가 아니었다는 거야?" 남 형사가 중얼거렸다.
두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퇴근하려다가 문을 열었어요. 들어가 보니 모두 버스 안이라고 말했어요.'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우리가 아는 시간 정지의 문도 그랬다. 회사 계단실의 문을 열면 0번 보관실이 나왔다. 장소가 버스라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그 문을 통과하게 했는지였다.
그녀는 무언가를 더 쓰려 했다. 그때 안내판이 꺼지고 붉은 경고가 켜졌다.
[승객 개별 발언 제한]
[관측자에 의한 무단 심리 진행 감지]
"우리 아직 질문도 안 했는데요!" 내가 외쳤다.
[발언을 계속하려면 후면 보관칸 개방에 동의하십시오.]
다시 선택을 밀어붙였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를 더 듣기 위해서 171건의 보류를 포기하라고 한다.
그때 남기혁이 주머니에서 승차권을 꺼냈다. 오래 접힌 종이였다. 좌석 18번, 19번. 그는 그 아래 '20번 미탑승'이라는 옛 기록을 펼쳤다.
"형은 분명 그날 승강장에 있었어요. 하지만 이 종이에 어느 자리를 탔다고도 적혀 있지 않습니다."
그는 종이를 찢지 않았다. 문에 내밀지도 않았다. 그저 자기 손에 쥔 채 말했다.
"저는 형을 찾겠습니다. 하지만 그걸 핑계로 모르는 분들을 다시 가두는 결정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손목시계가 조용히 울렸다.
[후면 보관칸 개방 요청: 취소]
[귀환 171건 보류: 유지]
안쪽의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우리 쪽으로 손을 들어 보였다. 마치 이제야 제대로 들었다는 듯이.
나는 그제야 알아차렸다. 버스가 던지는 선택을 거절하는 것도 하나의 행동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과 같지 않았다. 우리는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분명하게 하지 않고 있었다.
그때 뒤쪽 창문에 세 번째 문장이 나타났다.
'남도윤은 운전하지 않았어요.'
그리고 그 아래에 덧붙은 한 줄.
'그는 우리가 내리는 문을 지키고 있었어요.'
제114화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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