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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13화
PAYLUA ORIGINAL · 제113화

113화. 이수민의 손바닥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502자

오프라인 책장
버스 안쪽의 손바닥은 내가 알던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수민이라는 이름을 처음 들은 건 남기혁 형사의 2011년 사건 파일에서였다. 스물다섯 살 여성. 야간 공장에서 일했고, 어느 날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가족은 찾았지만 서류에는 귀가 완료라고 적혔다. 오늘에서야 그 사람의 손을 보게 된 것이다. 적어도 손처럼 보이는 무엇을. "수민 씨." 남 형사가 버스에 다가섰다. 나는 그의 소매를 잡았다. 감정이 먼저 움직이는 순간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남 형사는 멈췄다.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차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잠깐 바라봤다. "한 번만 부르겠습니다. 그다음은 답을 기다릴게요." 창문 너머에서 손가락 하나가 움직였다. 안쪽에 입김이 서렸다. 그 위에 글자가 나타났다. '왜 아직도 저를 찾으세요?' 형사가 천천히 대답했다. "돌아왔다고 적힌 기록 때문에 찾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돌아오는 모습을 본 적이 없습니다." 손바닥이 떨렸다. 글씨가 지워졌다가 다시 생겼다. '그럼 기록을 고쳐 주세요.' "고치려고 합니다. 다만 지금 대화하는 사람이 수민 씨인지 확인할 수 있을 때까지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버스 안쪽은 조용해졌다. 나는 그 말이 너무 차갑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지만 남 형사의 태도에는 이상한 다정함이 있었다. 돌아왔다고 덮어 버린 사람에게, 아직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끝까지 남겨 주고 있었다. 그러자 다른 창문에서도 손자국들이 나타났다. 제각각 다른 높이와 모양이었다. 어떤 것은 손바닥뿐이고, 어떤 것은 손가락 한 개만 찍혀 있었다. 유나가 자국의 개수를 세다가 중단했다. "사람 수로 세면 안 되겠어. 한 사람이 여러 번 찍었을 수도 있어." "기록 건수와도 구분해야겠지." 서아가 말했다. 나는 수첩에 '손자국 12개 확인, 개별 신원 미확인'이라고 썼다. 여러 일을 겪은 뒤에도 숫자를 정확하게 다루는 일은 지루했다. 하지만 그 지루함 때문에 누군가가 소리 없이 지워지는 일을 막을 수 있다면 계속할 생각이었다. 버스 앞문 아래에 자그마한 투입구가 열렸다. 우체통 입구처럼 좁았다. [승객에게 질문 가능: 질문 1개] [질문 제출 시 해당 승객의 귀환 심사 진행] 서아가 작은 문장을 읽었다. "함정일 수도 있어. 질문하는 게 곧 심사 진행에 대한 동의가 되게 해 놨네." "질문도 못 한다면 답을 어떻게 듣죠?" 내가 물었다. "질문과 심사 개시를 분리해야지." 나는 수첩에서 종이 한 장을 뜯었다. 앞쪽에 '당신이 원하면 한 번만 질문하겠습니다. 원하지 않으면 질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썼다. 그 종이를 문에 넣으려 했지만, 투입구는 받아 주지 않았다. 시스템이 정해 놓은 질문 양식이 아니었던 것이다. 유나는 내 손을 잡아당겼다. "그럼 이쪽 방법을 써." 그녀는 버스 유리에 손전등을 비췄다. 별도의 버튼이나 코드가 없는, 오래된 작은 손전등이었다. 강한 빛 대신 세 번의 짧은 점멸을 만들었다. 그 신호는 과거 오재민이 보관실에서 길을 찾을 때 쓰던 신호와 닮아 있었다. 우리가 미리 정한 뜻은 하나였다.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버스 안쪽에서 두 번의 짧은 빛이 돌아왔다. 남 형사가 숨을 들이켰다. "그 답이 무슨 뜻입니까?" "정해 놓은 의미는 없어요." 유나가 말했다. "단지 신호가 돌아왔다는 뜻입니다." 잠깐 실망하는 표정이 스쳤지만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수민'이 적힌 가방에서 다시 종이가 흘러나왔다. 이번에는 우리가 손을 대지 않아도 글자가 보였다. '동생 지연아. 네 생일엔 내가 먼저 집에 갈게.' 남 형사는 얼굴을 가렸다. 2011년 당시 수사 파일에 있던 가족 연락처를 내가 어렴풋이 기억했다. 이수민에게 여동생이 있었고, 지난번 전화한 사람도 여동생이었다. 그러나 그 이름을 이 종이에서 처음 확인한 셈이었다. "그 문장은 수민 씨가 가족에게 한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확인해 보죠." 서아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형사님, 잠깐 물러나 계시겠어요? 제가 차창 문구와 가방 위치를 그림으로 남길게요." 남 형사가 물러난 사이 나는 유리를 지켜봤다. 두 번째 줄이 나타났다. '나는 엄마 얼굴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그 문장을 유리 안쪽에서 본 내 얼굴과 겹쳐 보았다. 첫 번째 시간 정지가 끝난 날 나는 어머니 목소리를 기억하지 못했다. 가족사진을 보면서도 사진 밖에서 내 이름을 부르던 그 따뜻한 억양을 찾을 수 없었다. 집에 돌아오자 어머니는 내 표정을 보고 약이라도 잘못 먹었느냐고 물었다. 나는 '아니요'라고 대답했다. 설명할 수 없는 순간에는 늘 그 말부터 하게 됐다. 그날 밤 어머니가 밥솥을 여는 소리를 듣고서야 내 기억이 어디까지 남아 있는지 알았다. 밥솥에서 올라오는 김, 부엌 바닥의 차가운 타일, 냉장고에 붙은 할인 마트 전단. 그 모든 것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는데 목소리 하나가 비어 있었다. 보관국은 가장 아픈 곳을 정확히 골랐다. 지금 버스 안쪽의 사람도 그런 공백을 안고 있을까. 아니면 손자국은 진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우리가 흔들리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만든 영상일까. 어느 쪽이든 그 문장은 무심히 넘길 수 없었다. 유나가 내 시선을 따라 유리를 봤다. "네 얘기랑 비슷하지?" "네. 너무 비슷해요." "그렇다고 네 경험을 이 사람한테 그대로 대입하진 마." "그거 참 어려운 말이네요." "어려워도 해야지. 네 기억을 잃었을 때 누군가가 '나도 그런 적 있으니 당신도 이럴 것'이라고 정해 버리면 싫었을 거잖아." 나는 가만히 웃었다. 잔인하게 정확한 여자였다. 내가 실수할 때마다 늘 가까운 자리에 있으면서도 내 말을 대신하지 않았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는 그 점이 차갑다고 느껴졌지만, 이제는 그것이 그녀만의 보호 방식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가족 얼굴에 대한 기억 상실을 주장하는 기록 확인'이라고 적었다. 누구의 엄마였는지 모른다고 해서 그 문장을 지우지 않기로 했다. 내 속에서 뭔가 내려앉았다. 나도 어머니 목소리를 잃어버린 적이 있었다. 가족이 누군지 문서로는 아는데, 기억 속에서는 낯선 사람이 되어 버리는 일. 그 공백을 남에게 설명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나는 알고 있었다. "당신이 여기 있다면," 내가 유리에 대고 말했다. "무엇을 원하십니까? 밖으로 나오고 싶나요? 아니면 아직 결정하지 못했나요?" 그 질문에는 함정이 있었다. 나는 잠시 후 그것을 깨달았다. 답을 선택해 달라고 종용하는 일 자체가 누군가의 결정을 재촉할 수 있었다. 그래서 덧붙였다. "지금 대답하지 않아도 됩니다. 돌아갈 곳이 정말 당신의 집인지부터 확인할 수 있어요." 손바닥이 천천히 사라졌다. 내가 아직 답을 기다리는 동안 차창 안쪽으로 얇은 그림자가 지나갔다. 한 사람이 벽을 붙잡고 걸어가는 자세였다. 그림자는 문 쪽으로 향하다가 반대편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벽에 손바닥 하나를 더 찍었다. 처음 찍힌 손자국과 같은 크기인지는 알 수 없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두 자국을 같은 사람의 것으로 적으려다가 펜을 멈췄다. "또 적으려 했지?" 서아가 물었다. "네. 같은 사람이 두 번 찍었다고." "그럴 수도 있어. 아닐 수도 있고." "그러면 그림으로만 남길게요." 나는 손바닥 두 개를 나란히 그렸다. 문쪽의 자국은 엄지가 더 아래로 보였고, 뒤쪽 자국은 손가락 세 개만 남았다. 서아가 시선을 옮겨 그림의 크기를 맞춰 주었다. 이렇게 사소한 일을 하는 사이 버스 안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게 됐다. 왠지 가슴이 아팠다. 누군가는 지금 도움을 요청하는데 나는 고작 손가락을 그리는 것밖에 못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남 형사가 말했다. "도겸 씨. 제가 2011년에도 서류부터 확인한다고 가족에게 원망을 들었습니다. 그래도 그때 '귀가 확인'을 믿지 않고 끝까지 의심했어야 했어요. 지금 당신은 적어도 보지 못한 걸 봤다고 적지는 않고 있습니다." 내 펜이 잠시 멈췄다. 그 말이 위로라는 걸 알았다.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느리고 답답하더라도, 거짓된 확신 때문에 누군가가 다시 사라지는 일은 막아야 했다. 버스 안내판이 반응했다. [승객 1건의 귀환 심사: 개시 보류] [이전 귀가 완료 기록: 재검토] 나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승객의 신원을 확인한 것도, 안전하게 구출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시스템이 '미확인'이라는 상태를 받아들였다. 사람을 무조건 앞으로 밀어 넣는 방식에 처음 작은 틈이 생긴 것이다. 그 순간 남기혁의 카세트 녹음기에서 소리가 흘러나왔다. 녹음기에는 1998년의 남도윤이 남긴 테이프가 들어 있었다. 누가 재생 버튼을 눌렀는지 보지 못했다. 어린 소년의 목소리가 뚝뚝 끊어졌다. '기혁아. 내 동생. 혹시 네가 듣고 있으면—' 소리는 갑자기 끊겼다. 그 뒤로 낡은 버스의 엔진 소리가 났다. '맨 뒷자리는 열지 마. 거긴 돌아온 사람들이 타는 자리가 아니야.' 남 형사가 나를 바라봤다.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뒤쪽 창문에 다른 손자국이 나타났다. 작은 소년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위에 문장이 하나 적혔다. '나는 남도윤이 아닙니다.' 시계는 18:06을 가리켰다. 우리에겐 다섯 분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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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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