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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으로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103화
PAYLUA ORIGINAL · 제103화

103화. 1998년에 없는 출입증

퇴근하면 시간이 멈춥니다 · 4,705자

오프라인 책장
어느 날부터 나는 사진 속 '그림자'라는 말을 싫어하게 됐다. 사진에 모르는 사람이 나오면 언제나 그림자라고들 했다. 얼굴이 흐린 사람도 그림자, 유리 반사도 그림자,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도 그림자. 우리가 말하기 편하려고 붙인 이름인데 정작 당사자가 살아 있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그 말 속에서 사라졌다. 버스 유리에 남은 손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적어도 손처럼 보이는 흔적이었다. 우리는 그것이 사람의 손인지, 유리 표면에 비친 다른 물체인지부터 확인해야 했다. "사진을 보낸 쪽은 우리한테 도윤 씨가 밖에 있었다고 믿게 만들고 싶을 수 있습니다." 강문석이 말했다. "그럼 내일부터 버스 회사에 다니면서 창문 닦아야 해요?" 내가 물었다. "과장하지 마세요. 해당 차량의 당시 차종과 창 배치를 먼저 확인하자는 말이에요." 하필 버스 회사는 통폐합을 거쳐 이름이 세 번 바뀌었다. 1998년의 운행 기록도 대부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남 형사가 가지고 온 승차권의 발권소 도장은 진짜로 보였다. 확인 가능한 범위가 생긴 것이다. 나는 그 사이 다른 걸 조사했다. 1998년 영병원 내부 출입증 목록. 기존 파일에는 병원 출입자로 등록된 남기혁의 이름이 없었다. 그런데 2019년 통합망의 검색 화면에서는 남기혁이 '관측 책임자'로 나타났다. 이름 옆에는 직원번호처럼 보이는 열세 자리의 코드가 있었다. "직원번호라면 재직 정보가 있을 텐데요." "그게 문제죠." 한시우가 키보드를 돌렸다. "같은 코드가 2009년에는 '자료 열람 요청자', 2019년에는 '대체 관측자'로 쓰였습니다." "하나의 번호가 승진도 하고 전직도 한 건가요?" "사람의 이력이 아니라 권한의 이력일 가능성이 큽니다." 나는 코드를 적었다. 앞부분은 영병원 최초 사고를 나타내는 날짜였지만, 뒷부분은 반복될 때마다 바뀌었다. 프로그램 개발자가 보면 이상한 구성이었다. 기본키는 한 번 만들어지면 사람이 성장한다고 바뀌지 않는다. 그런데 이 코드는 권한이 바뀔 때마다 다른 신분증으로 변신하고 있었다. 시우가 테스트 환경에서 같은 형식의 가짜 번호를 만들어 봤다. 1998년 사고 파일을 가져와 2019년의 전산 통합망에 등록하는 순간, 이름이 없는 '미확인 관측자' 필드가 마지막 열람자의 이름으로 채워졌다. "기본값이 이래요?" "그렇습니다. 원본에 없던 이름이 새로운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갑니다." "그럼 남 형사님이 1998년에 있었던 걸 증명하는 기록은 아니네요." "적어도 이 통합망 화면은 증명하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남 형사님이 거기 없었다는 결론까지 낼 수는 없죠." 우리는 그 말을 정확히 구분해 적었다. '2019년 통합 이후의 권한명은 1998년 현장 출입 기록으로 간주할 수 없다.' 서아가 문장을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때도 그랬어. 어린애가 했던 말을 어른이 된 나의 동의로 바꿔 적었잖아." "이번엔 형사님이 후대 열람자로 찍힌 걸 과거 증인으로 바꾼 거지." 남 형사는 자신의 이름과 관련된 분석에서 한 발 떨어져 있었다. 대신 이 문제를 맡게 된 별도 수사관을 통해 어떤 기록을 정식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 확인해 줬다. 그는 우리 말을 곧장 사실이라고 발표하지도, 의심스럽다고 버리지도 않았다. 나는 개발자로서 아주 작은 실험 하나를 제안했다. 시험망에서 열람자와 책임자를 별도 항목으로 나누고, 어떤 기록이 실제로 바뀌는지 비교하자는 것이었다. 시우는 원본을 복사한 비식별 샘플에서만 실험하는 조건으로 허락했다. 첫 번째 샘플에는 열람자 '가', 책임자 '나'를 넣었다. 그런데 옛 통합 기능을 실행하자 '가'가 두 칸 모두에 들어갔다. 두 번째에는 책임자를 비워 둔 채 열람 로그만 추가했다. 결과는 같았다. 시스템은 마지막으로 문서를 본 사람을 책임자 칸에 채웠다. "한 줄만 고치면 될 것 같은데요." 내가 말했다. 시우는 고개를 저었다. "그 한 줄이 이미 운영 중인 데이터 수만 건에 영향을 줍니다. 지금 당장 바꾸면 앞선 결정이 모두 왜 그렇게 내려졌는지 추적하기 어려워져요." 나는 그제야 이해했다. 오류를 알아냈다고 바로 고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잘못된 결과로 이미 누군가의 신분이 바뀐 세계에서는, 변경 전후를 함께 보존해야 했다. 우리는 시험 결과만 따로 서명해서 남겼다. 새로운 기능의 정답을 찾기 전에 낡은 오류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놓치지 않도록. 오후 네 시. 전산실 한쪽에 설치된 오래된 카드 판독기가 갑자기 켜졌다. 전원 연결을 해제해 둔 장치였다. 화면에는 영병원 직원 출입증처럼 보이는 이미지가 떠올랐다. [이름: 남기혁] [발급일: 1998.06.13] [접속일: 2026.10.27] "날짜가 두 개네요." 유나가 말했다. 그 사이 아주 작은 글씨가 있었다. [인쇄 원본 생성일: 2019.03.04] "하하."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스물여덟 해 전에 발급됐다는 카드가 일곱 해 전에 인쇄됐다고 친절하게 써 놨네요." "정말 친절한 걸까요?" 서아가 물었다. 그 말에 웃음이 멈췄다. 누군가 일부러 모순을 남겼을 수도 있었다. 조작 사실을 숨기려면 메타데이터를 지우는 게 더 쉬웠다. 그런데 이 카드는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흔적을 숨기지 않았다. 강문석이 판독기 안쪽을 열지 말자고 했다. 현재 증거로 봉인된 장비이므로 관리자의 입회와 촬영이 필요했다. 우리는 기다렸고, 담당자가 왔을 때 화면에 떠 있는 정보를 함께 확인했다. 판독기 옆에는 먼지가 내려앉은 책상 하나가 있었다. 책상 밑에는 종이 파쇄기가 놓여 있었고, 그 위에는 '시험 장비 반납 예정'이라는 오래된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스티커에 쓰인 예정 날짜는 2019년 12월이었다. "7년 전에 반납해야 할 물건이 왜 아직 있죠?" 내가 물었다. 시우는 시설 담당자의 점검 기록을 확인했다. 실제로 장비를 반환했는지 여부가 빈칸으로 남아 있었다. 자동 재고 시스템에는 반납 완료, 종이 점검표에는 설치 유지. 또다시 둘 중 어느 쪽이 맞는지 알 수 없는 상태였다. "어쩌면 누군가 장치를 숨겨 둔 건 아니겠죠?" 유나가 물었다. "그 가능성도 있지만, 인수인계가 빠졌을 수도 있어. 기록 불일치가 누군가의 고의인지부터 단정하면 안 돼." 나는 답했다. 이날 우리가 얻은 가장 중요한 단서는 남 형사의 이름이 적힌 출입증 자체가 아니었다. 어떻게 폐기되지 않은 장치가 아직도 과거의 신분을 새로 인쇄할 수 있었는가 하는 질문이었다. 장비의 작은 프린터가 종이를 토해 냈다. 카드의 코드 옆에 낯선 표식이 있었다. 두 개의 빈 사각형과 그 사이에 찍힌 파란 점. "이건 카드 번호가 아니라 관측 경로 표시예요." 시우가 말했다. "어떤 경로죠?" "관측자가 현장에 없을 때 후속 열람자를 대리인으로 지정하는 테스트 기능입니다. 원래는 운영되지 않아야 했어요." "테스트 기능이 왜 2019년 위탁망에 있어요?" 그 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프로그램이 시험 기능을 남겨 놓고 실제 서비스로 나가는 일은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이 기능은 사람 이름을 가져와 수십 년 전 사고의 책임자 칸에 쓰는 장치였다. 그때 화면 아래에 작은 추가 정보가 나타났다. [이름 공급원: 경찰청 실종사건 전자 기록] [최초 연계: 2011.08.19] 남 형사는 오래된 수첩을 펼쳐 보기 전에 한동안 눈을 감았다. 나는 그가 수사 내용 때문에 망설이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는 내게 묘한 질문을 했다. "제가 기억하는 첫 사건이 정말 첫 사건이었을까요?" "무슨 뜻이에요?" "경찰이 된 뒤 있었던 일을 연도별로 적어 놨는데, 어느 페이지에는 한 해의 번호가 두 번 나옵니다. 반대로 몇 달은 텅 비어 있어요. 업무상 비공개라서 기록을 옮기지 않은 것인지, 제가 애초에 적지 않은 건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그는 나에게 자기 기록을 믿어 달라고 하지 않았다. 기록이 무엇을 증명하지 못하는지를 먼저 설명했다. 나는 회사에서 장애 보고서를 쓸 때 떠오르는 기억을 전부 사실로 적었던 적이 있었다. 로그에는 없는 장면도 확신에 차서 썼다가 나중에 수정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럼 수첩에 없는 사건이 있다면 그건 일단 없는 걸로 해야겠네요." 내가 말했다. "아닙니다. 없는지 아직 모르는 거죠. 수첩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그 순간 나는 남 형사를 이번 일의 의심 대상이라는 말 한마디로 설명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지 알았다. 누군가가 그를 과거 사건의 책임자라고 써 놓았어도, 그가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는 별개의 문제였다. 남 형사가 보관해 온 첫 실종 사건 파일의 날짜였다. "2011년에 형사님이 누굴 찾으셨죠?" 내가 물었다. 그는 한참 입을 열지 않았다. 마침내 낡은 수첩에서 한 장을 찾아 펼쳤다. "이수민 씨. 야간 공장에 다니던 스물다섯 살 여성입니다. 가족이 집에 돌아오지 않는다고 신고했어요." "찾았습니까?" "당시 기록에는 '귀가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족은 끝내 본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남 형사가 내 쪽으로 수첩을 밀었다. 서류의 맨 위에 찍혀 있는 파란 점은 조금 전 출입증 프린터에서 나온 표식과 같았다. "그게 저를 계속 이상하게 만들었습니다.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는데 왜 돌아왔다고 적히는지." 그때 내 손목시계에 또 하나의 알림이 떴다. [관측 책임 인수까지 02:00:00] [부재 시 2011년 서명 기록을 사용합니다.] 오늘 여섯 시까지 두 시간.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남 형사의 현재 서명만이 아니었다. 2011년, 실종자를 찾기 위해 남긴 서명까지 누군가 자기 뜻대로 사용하려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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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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