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을 의심하는 일에는 재능이 없었다.
여섯 시마다 세상이 멈춘 뒤로는 더욱 그랬다. 멈춘 커피를 보고도 누군가 장난치는 게 아닐까 생각했고, 낯선 여자가 멈춘 세계에서 걸어오는 걸 보고도 피곤해서 환각을 보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이제는 그 여자가 내 옆에서 라면 스프를 먼저 넣어야 한다고 우기는 사람이라는 사실만 확실하다.
그런 내가 가장 믿고 싶었던 사람은 남기혁 형사였다.
그리고 방금, 그 사람의 이름이 1998년 사고의 관측자 명단에 나타났다.
[관측 책임 인수 예정자: 남기혁]
[인수 확인 시각: 내일 18:00]
"제가 기억하는 한, 그 병원에 간 적 없습니다."
형사는 화면을 끈 뒤 손을 떼었다. 급하게 지우려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떠 있는 문장이 자기 신분을 확정하는 것을 거부하는 태도였다.
"제 사건은 다른 수사관에게 이관 요청하겠습니다. 그리고 모두 제 개인 장비를 검사하지 마세요. 제 이름이 들어갔다고 해서 여러분에게 조사권이 생긴 건 아니니까요."
"저희가 형사님 휴대전화까지 뒤질 사람들이었습니까?" 내가 물었다.
"도겸 씨는 당황하면 시스템 관리자 계정을 찾는 사람이잖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장애가 나면 먼저 로그를 보고, 그래도 안 되면 관리자 페이지를 뒤지고, 마지막으로 팀장님을 찾았다. 팀장은 거의 언제나 없었다.
나는 남 형사가 자기 이름을 보는 표정을 잊을 수 없었다. 다른 사람의 기록에 익숙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이 그곳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갑자기 낯선 장소에 서 있었다. 나는 모니터를 끄고 의자를 하나 더 가져왔다.
"혹시 저희가 형사님이 한 일을 의심한다고 생각하세요?"
"의심하는 건 괜찮습니다. 다만 제가 모른다는 말을 못 믿겠다고 할까 봐 그게 두렵습니다."
서아가 말했다. "제가 얼마 전까지 그랬어요.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 말을 증명하려면 기억을 전부 내놓아야 한다고요. 그런데 다 잃어버린 뒤에는 뭘 내놓겠어요?"
남 형사는 잠시 눈을 감았다. 이어서 수첩을 펴고 한 문장을 적었다. '기억 없음은 유죄의 증거가 아님.' 수사관의 기록으로 쓰려고 적은 게 아니었다. 스스로 내일 아침에도 그 문장을 믿기 위해 적어 둔 것 같았다.
남 형사는 자신의 부서에 연락했다. 수사관이 당사자가 되었으므로 사건 기록 접근과 증거 인계 과정을 분리하겠다는 설명이었다. 누구도 그를 즉시 범인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렇게 하는 것이 나중에 남 형사가 발견할 사실까지 지키는 길이었다.
서아는 종이컵 두 개를 들고 다가왔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형사님을 보호해야겠네요."
"보호보다는 확인이 필요합니다. 내 이름이 어떻게 들어갔는지."
"확인하는 동안 서명을 요구해도 안 하실 거죠?"
"누가 요구하더라도 안 합니다."
내 손목시계는 그 대답을 기다렸다는 듯 한 번 진동했다.
[임시 관측자 확인 요청]
[승인 버튼을 누르면 1998년 원본 관측 책임을 현재 시각에 연결합니다.]
"저한테도 떴는데요."
형사가 자기 휴대전화를 꺼냈다. 경찰 업무용 프로그램의 알림과 비슷하게 디자인된 창이 떠 있었다. 그런데 발신자는 없고, 버튼에는 단 하나의 선택지만 있었다.
[계속]
"이게 동의라는 겁니까?" 그가 물었다.
"프로그램이 제일 좋아하는 동의죠. 거절 버튼 없이 동의할 때까지 뜨는 창."
오유나가 내 팔을 쳤다.
"농담은 나중에 해. 저거 닫아도 무슨 일이 생기는지 모르잖아."
나는 웃음을 거뒀다. 명령을 실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스크린샷과 화면 영상을 남겼다. 한시우가 검증용 격리망에서 동일한 알림을 재현했지만, 실제 인수 절차와 연결하지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계속' 버튼의 효과를 모르는 상태에서 누르지 않는 일이었다.
밤 열 시, 영병원 옛 관리동의 임시 관측실에 우리 여섯 명이 남아 있었다. 창밖으로 버스가 정류장에 섰다. 승객 하나가 문을 닫으려는 기사에게 손을 흔들었다. 버스가 잠깐 기다린 뒤 다시 출발했다. 여기는 시간이 흐르는 세계였다. 시간 정지 시스템의 바깥에서도 사람들은 서로를 잠깐 기다릴 수 있었다.
"내일 여섯 시 전에 뭘 알아야 하죠?" 내가 물었다.
강문석이 화이트보드에 세 줄을 적었다.
'1998년 원본에 남기혁이 있는가.'
'언제 이름이 추가되었는가.'
'인수 거부가 가능하도록 어떻게 보존할 것인가.'
"다른 질문은요?" 서아가 물었다.
"누가 추가했는가. 그건 지금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세 개부터."
나는 첫 질문 아래에 '진짜 원본'이라고 썼다가 지웠다. 1998년 장부라고 표시돼 있어도 2019년에 다시 만든 데이터베이스 파일일 수 있었다. 오래된 날짜와 오래된 기록은 같은 것이 아니었다.
시우가 작은 금속 상자를 가져왔다. 9번 계단실에서 회수한 빨간 도장 봉투의 복제 사진과 별도로, 영병원 관리인이 보관한 1998년 근무일지 목록이었다. 원본 종이는 여전히 봉인된 보관실에 있었고, 우리가 가진 것은 촬영 기록과 열람 허가 문서였다.
"남기혁이란 이름은 목차에 없습니다. 하지만 빠졌다고 단정할 수도 없어요. 목차와 본문이 다른 경우가 있었으니까요."
나는 형사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서랍을 열어 뭔가를 꺼냈다. 접힌 종이 한 장이었다.
"그날 어디 있었는지 알아낼 자료가 있습니다. 다만 지금은 개인적으로 가진 기억과 다르다는 정도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정식으로 제출할 준비를 하겠습니다."
"어디 계셨어요?" 내가 묻자 그가 잠시 침묵했다.
"병원과는 아주 먼 곳이었죠. 그런데 그걸 입증하는 게 저한테 중요한지, 거기 있지 않았다는 걸 누군가 알기 싫어하는 게 중요한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남 형사가 가져온 종이는 증거가 아니라, 더 많은 질문의 시작이었다. 우리는 각자 다른 방법으로 같은 날짜를 확인했다. 서아는 1998년 영병원 측 서류를, 시우는 2019년 전산 통합 이력을, 나는 원본과 복제본의 필드 이름을 비교했다. 서로 다른 출처에서 발견된 시각을 큰 종이에 붙여 나가니 예상보다 빈칸이 많았다.
"이 빈칸이 다 삭제된 기록입니까?" 유나가 물었다.
"모르는 건 아직 삭제됐다고도 못 해." 나는 답했다. "그냥 우리가 아직 못 찾은 정보일 수 있어."
남 형사는 소파 끝에 앉아 오래된 승차권을 만지작거렸다. 그가 내게 물었다.
"도겸 씨는 아버지 기록을 처음 발견했을 때 어떠셨습니까?"
"다 찾았다고 생각했죠. 아버지가 살아 있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름만 보이면요. 그다음부터는 매번 제가 기대한 답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찾는군요."
"네. 제 기대랑 실제 기록은 다르니까요. 그래도 누가 아버지에 관해 한 문장이라도 쓴다면 그냥 넘어가지는 못하겠어요."
남 형사가 고개를 숙였다. 수사관으로 있을 때는 질문을 받는 사람에게 시간을 주는 데 익숙했겠지만, 자기 차례가 되자 손끝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나는 그 손을 보고 더 묻지 않았다.
우리가 조심해야 할 건 전자 화면에 등장한 이름을 무턱대고 믿는 일만이 아니었다. 얼굴을 마주한 사람에게도 자기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말할 시간을 주는 일이었다.
새벽 한 시에 운영망의 화면이 바뀌었다. 인수 확인까지 열일곱 시간이 남았는데도 시스템은 세 번이나 남 형사의 신원을 재조회했다. 조회 실패 알림마다 한 줄씩 다른 문구가 붙었다.
[본인 확인 실패 — 대리 동의 채널 탐색]
[가족 연락처 조회 실패]
[기존 수사 기록의 서명본 대조 대기]
나는 세 번째 문장을 보자 자리에서 일어섰다.
"형사님, 서명은 어디다 하셨어요?"
"경찰이 서명하는 문서가 한둘입니까?"
"그러니까요. 오늘 누르지 않아도 옛날에 한 서명을 가져와서 동의했다고 우기려는 거잖아요."
서아가 나를 진정시켰다.
"아직 시도라고 떴어. 실제로 가져갔다는 뜻은 아니야. 어떤 자료에 접근하려는지부터 보자."
시우가 발신 로그의 경로를 확인했다. 원본 사고 서버가 아니라 2019년 위탁 전산 통합망에서 요청이 나왔다. 여덟 개의 연결 경로 중 이미 위험하다고 표시해 놓은 네 번째 경로였다.
"남 형사님 개인기록을 찾는 게 아닙니다." 시우가 말했다. "수사 업무에서 작성한 서명 화면을 보려는 것 같아요."
형사의 표정이 처음으로 굳었다.
"그렇다면 누가 제 이름을 쓰는 데 필요한 자료를 이미 알고 있다는 얘기군요."
우리는 전자 서명을 가져오지 못하게 담당 기관에 긴급 보존과 접근 제한을 요청했다. 무턱대고 전산망을 끊는 대신 누가 언제 어떤 자료를 요구했는지 남기기로 했다. 형사 자신도 사건 처리에서 손을 떼고, 승인권한이 없는 일반 관계자로 남았다.
아침 여섯 시. 창밖 빵집에 불이 켜졌다. 내 눈은 뜨거웠다. 남 형사는 아직 잠들지 않았다.
해가 뜨기 조금 전 남 형사의 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 이번에는 운영망이 아니라 어머니에게서 온 평범한 문자였다. '새벽부터 무슨 일이니. 밥은 먹었니.' 남 형사는 답장을 쓰다 지웠다. 그리고 화면을 내게 보여 주었다.
"어머니는 늘 밥부터 물으세요."
"저희 어머니도요. 큰일이 나도 밥 먹고 나서 혼내시죠."
"내가 묻고 싶은 건 형 얘기인데, 밥을 먹었냐는 질문 앞에 서면 갑자기 열세 살이 돼요."
그는 '먹었어요. 오늘 오후에 전화드릴게요'라고 답했다. 자기 가족과 이야기하는 데에도 아직 준비가 필요했다. 다른 사람에게 기억을 강제로 내놓으라고 하는 운영망의 방식과는 정반대였다.
우리는 잠깐 불을 끄고 창가에 섰다.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지만 어제 멈춘 여섯 시의 문제는 그대로 있었다. 그래도 작은 차이가 생겼다. 누군가에게 확인을 강요하던 화면 대신, 먼저 밥을 챙겨 주는 사람의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그가 펼친 낡은 종이에는 1998년 6월 13일이라는 날짜와 고속버스 회사의 도장이 찍혀 있었다.
"그날, 열세 살이었던 저는 어머니와 버스를 타고 다른 도시로 갔습니다."
도장은 흐릿했지만 옆에 적힌 좌석 번호는 또렷했다. 18번과 19번.
"그런데 오늘 아침 어머니께 여쭤보니 이상한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가 내게 종이를 건넸다.
"버스를 탄 사람은 둘이 아니었다고요."
접힌 승차권 밑에 작은 종이가 하나 더 있었다.
'좌석 20번 — 미탑승 확인.'
누군가 타지 않은 세 번째 자리를, 스물여덟 해 동안 가족이 간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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